나의 신앙 썸네일형 리스트형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느3:5) 드고아는 아모스 선지자를 배출했던 도시였다. 그런데 그곳의 귀족들은 느헤미야를 통하여 진행되는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지 않았음을 성경은 기록한다. 당시의 교회의 지도자였던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앞장섰으며 각 마을의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하였는데도~~~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의 공동체의 각 구성원이 힘을 합하여 하나가 될 때 그 힘을 발휘하게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낸다. 이방에서 출생하여 성장해서 폐르시아제국의 관원이었던 느헤미야의 믿음과 하나님을 향한 그의 사랑이 어떠한 정도인가를 가늠할 수 있는 기록이 3장에서 엿볼 수 있다. 강요하지 않고서도 하나님의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었던 그의 지도력은 무었이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는 신중한 사람이었고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며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기에.. 더보기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느2:20 下)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신 느헤미야가 수개월여의 여정끝에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그는 신중했고 그에게 내주하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른 사람임에 분명하다. 때가 무루익어갈 즈음에 그는 하나님의 선한 손길로 도우심으로 아닥사스다왕의 말을 예루살렘에 돌아와 있는 이들에게 전하자 성을 건축하기로 힘을 내어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려 하는데, 사탄이 방해하는 사탄의 역사를 맞게된다. 산발랏은 사마리아지역을 맡은 총독이고, 도비야는 암몬지역의 관원이었고 게샘은 아라비아의 통치자 였던 듯하다. 이들은 이방인으로 아닥사스다왕이 다스리는 지역의 관리들로서 이스라엘이 다시 일어서는 것을 원치 않는 무리들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느헤미야는 외친다.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더보기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느2:8) 느헤미야는 간절히 기도하였다. 바벨론 70년의 하나님의 징계의 기간이 끝이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한지 13년이나 흘렀으나 성은 여전히 허물어진채로 복구되지 않은 상태로 환난 중에 있음에 '이스라엘'이라는 믿음의 공동체를 위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간구하며 애통하며 기도하였음이 분명하다. 눈물로 애통하며 기도하는 이에게 하나님은 아닥사스도의 눈을 여셔서 수심에 찬 느헤미야를 보게하셨다.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라고 그는 묻는다. 느헤미야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선한 손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묵도하였다. 그는 해야 할 말을 위하여 묵도했을 것이다. 잘못 말하면 일을 그르칠 수도 있는 것이기에 더욱 해야 할 말을 해야 했다.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 더보기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느1:11) "느헤미야"는 '여호와의 위로'라는 뜻이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왕 제20년 기슬르월(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에 여름 궁인 수산궁에서 관리로 있었던 듯 하다. 당시는 주전 446년 11월 중순 이후 어느날로 추산된다. 하나님의 뜻으로 고레스 칙령으로 1차 포로가 귀환된 것은 주전 445년이다. 1차 포로가 귀환된지 약 13개월이 되는 시점에 그의 형제인 '하나니'로부터 예루살렘의 형편을 듣는다. 참담한 소식에 그는 울며, 금식하며 기도한다. 아마도 3개월여는 기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한다. 신명기 30장 4절이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다. 아닥사스다왕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한 것이다. 말씀하신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느헤미야는 믿었다.. 더보기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눅16:9) 얼른 깨닫기가 어려운 성구가 누가복음 16장 8절의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주인이다. 왜 주인은 ‘자기의 재물을 잘못 관리하여 낭비한다’는 소문에 자기의 청지기를 챡망한 주인의 모습이 16장 1절에 기록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 재산을 횡령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는 청지기를 잘 했다고 칭찬했다면 그는 아마도 천하에 둘도 없는 바보임에 틀림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천하에 둘도 없는 이 바보와도 같은 주인과 불의한 청지기를 왜 비유로 왜 말씀하셨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불의한 청지기가 되라는 의미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리가 없기 때문에 더욱 난해하다.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함께 먹는다”고 수근거리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 더보기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2:2) 바울사도는 고린도의 성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못 박히신 것"을 전하기로 작정하였음을 말한다. 바울사도는 당대에 그 누구보다도 석학이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아니했다"고 고린도전서 2장 1절에서 밝히고 있다. 계속하여 2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고난 외에는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고 또한 말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을 낳는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십자가 고난 외에는 아무것도 선포하지 않는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뭔가 가치있는 것을 선택한다'는 의미인지 쉽게 깨닫기 어려워 보인다. 이미 그는 사도행전 17장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아덴에서의 실패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리스.. 더보기 또 찾아낸 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눅15:9) 유대사회에서 결혼 풍습은 좀 특별한 구석이 있어 보인다. 결혼 할 때에 신랑은 신부에게 사랑의 증표와 지참금으로 드라크마 열개를 꿰어 장식품으로 머리에 두르게 하거나 목에 걸도록 하는 그들만의 독특한 풍습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결혼 반지와도 같은 소중한 것으로 이것을 잃어버렸을 경우에는 남편으로부터 이혼도 감수해야 할만큼 소중한 것이 바로 여인의 "열드라크마"입니다.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움막의 바닥을 쓸어내며 찾아내기 위하여 이 여인은 애를 씁니다. 급기야 그 귀중한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았기에 벗과 이웃을 불러서 즐거워 했다고 주님은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여기에는 두가지 소중한 의미가 함축된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 중 하나는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잃어버린 죄인 한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주님의 수고와 .. 더보기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눅14:12) 벗이나 형제를 식사에 초대하는 것은 우리의 생활에서 늘상 있는 일이다. 새로이 집을 장만해서 이사를 하거나, 자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경우 자축하는 의미에서 벗이나 형제들 그리고 이웃을 초청하기도 한다. 세상에서는 이런 것을 두고 친교활동 또는 사교라고 한다. 받은 것 만큼 베풀고 베푼 것 만큼 베품을 받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것은 인지상정인 듯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가복음 14장 12절로 14절에서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오직 누가복음에만 나온다. 얼른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혈육이나 친구를 배제하고 오직 낯선 사람들만을 초대하는 것이 익숙한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무정한 일이기 때문이다. 왜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셨을까? 그것도 한 바리새인 지도자.. 더보기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1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