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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눅20:5) 로마 정권에 의하여 세워진 대제사장이었으므로 종신직이었던 대제사장이 둘 이상인 세상에 하나님이 정하신 법에 따라 세워진 것도 아닌 그들은 스스로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주님에게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말하라고 한다.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도 알아본 메시아 앞에서 무슨 권위로 하느냐고 묻는다. 이런 류의 표리 부동한 무지의 종교지도자들과 같이 신앙생활을 했던 당시의 교인들은 영의 양식을 어떻게 먹고 자랐을까? 아마도 진리의 말씀에 목말라 있었을 것이다. 주님이 전하시는 말씀의 진실성에 대한 수차에 걸친 공격에도 실패한 그들은 이제는 그리스도의 소명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라는 주님의 질문에 그들은 서로 수군대며 의논했다. 요한복음 1장 6절은 "하.. 더보기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눅19:44)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으나 배은과 악의 때문에 무참하게 멸망할 것을 보신 그리스도께서 우셨다. 성경은 예수님이 우신 것을 세 번 기록하고 있다.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동정의 눈물을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며 예루살렘 성을 보시며 우신 것과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신 것이 그것이다. 예루살렘이 거룩하신 분의 거처로 선택되었고 영원한 구원의 언약이 머무르고 있어야 하며, 이곳의 성소로부터 온 세상을 향한 구원이 나와야 함을 숙고하셨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슬퍼하셨다. 그리고 그 멸망은 대속의 은혜를 베푸시기 위하여 오신 메시아이신 눈 앞의 예수 그리스도를 멸시하므로 멸망의 길을 걷는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라고 한탄하신다. 하나님으로 임재하셔서 택하신 백성들의.. 더보기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눅19:33) 예수님의 공생애 중 마지막 일주일이 시작되는 순간을 누가는 누가복음 19장 28절로부터 기록하고 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 가시더라"라고 ~~ 벳바게와 베다니 두 마을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예수님은 두 제자들을 맞은편 마을로 가서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끌어오라고 명하셨다. 제자들은 즉시 순종했고 명하신 대로 나귀 새끼를 이끌고 주님 앞에 제자들은 왔고 예수님은 제자들이 안장을 대신하여 자기들의 옷을 걸쳐 놓은 그 나귀의 등에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다. 이 말씀을 Calvin은 다음과 같이 그의 주석에서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나귀를 끌어 오도록 제자들을 보내신 것은 여행으로 피곤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목적을 위해서였다. 자기 죽음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엇으며 주님은 이 엄숙한.. 더보기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눅19:26)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도중에 십자가의 고난을 세 번째로 말씀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로마의 압제로부터 풀려나는 메시아 왕국을 생각하고 있었다. 누가복음 19장 11절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라고 증거 한다. 이에 주님께서는 열므나의 비유를 말씀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야만적인 무감각함을 일깨워주고 계신다. 누가복음 19장 11절로 27절에는 어떤 귀인과 종들이 등장한다. 귀인은 예수님을 비유로 표현하신 것이며, 종들은 택함을 받은 신자들을 비유로 표현된 것이다. 12절의 "먼 나라로 왕위를 받기 위하여 간다"는 성구는 주님의 재림 시까지의 이 땅에서 가시적으로 부재하심을 뜻한다. 십자가의 고난 후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며 하.. 더보기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눅19:4) 인간은 자기의 공로로 구원되지 않고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 돈으로도 인간의 어떠한 공로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주어지는 것임을 누가복음 19장 1절로 10절은 아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칼빈선생은 구원의 과정을 여덟개의 단계로 구분하였다. “소명-중생-회개-신앙-칭의-양자-성화-영화” 소명과 중생은 성령의 역사로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즉 믿음의 자손으로 인정하셨다. 성령님의 역사로 삭개오를 하나님은 부르셨다. 삭개오는 여리고를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보고 싶은 마음이 불일 듯 한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유대인으로부터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기는 하였으나 다수의 세리들을 거느린 세리장이었다. 지체 높은 세관의 장이었다. 그런 그가 키.. 더보기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눅18:34) 그리스도께서 수난에 대하여 두번씩이나 말씀하셨으나 제자들은 깨닫지 못하였다. 주님은 누가복음 18장 31절로 34절에서 다시 세번째로 자신이 수난을 받으실 것을 말씀하셨으나 34절에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이유는 제자들의 생각이 달랐던 것 같다(윤교식목사 강론). 이를 존 칼빈은 그의 주석에서 ‘그 말씀을 충분히 숙고하는 가운데에 받아들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주석하고 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관심이 없으면 깨닫지 못하게 되고 결국 주님은 외로운 고난의 길을 가시고 있었다(윤고식목사 강론). 제자들의 무지로 그리스도 자신이 희생제물로 드릴 준비가 되어 있음을 말씀하시고 있음을 두려움으로 겁에 질려서 생각하기를 꺼려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칼빈선생은 추론하고 있.. 더보기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눅18:27) 누가는 누가복음 18장 18절에서 "어떤 관리"라고 기록한다. 또한 그는 큰 부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사는 공관복음이 공히 기록되고 있으며 마가복음에는 이 관리가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앉아 묻자오되~"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이 사람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나 율법 교사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주님을 시험하려고 교만한 마음에서 주님 앞에 나타났었고 누가복음 18장 18절로 30절에 기록된 이 관리는 분명 주님으로부터 배우기를 원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주님에게 "선한 선생님이여~"라고 칭한다. 그는 아마도 주님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즉 하나님으로 성 육신하신 메시아라는 사실은 모른 채로 '선한 선생님'이라고 칭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생각을 바로 잡으신다. .. 더보기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눅18:17) 누가복음 18장에서 기도에 대한 교훈 뒤에 이어지는 주님의 가르침은 어린아이를 데려온 것을 꾸짖는 제자들을 보시면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라고~~ 이 본문은 마가, 마태, 누가복음 공히 등장하는 주제다.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한 의욕을 갖고 신앙에 움직여 자발적으로 찾아온 자들 뿐만 아니라 그의 은혜가 필요함을 깨달을 만큼 충분한 나이가 들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영접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교훈해주고 있다. 주님은 그 어린아이들을 데려 왔을 때 친절과 사랑으로 영접하셨으며 엄숙한 축복의 의식으로 그들을 아버지께 성별 시키셨다.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들지 않는 자는 천국 백성이 될 수 없음을 주님은 말씀하신다. 오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