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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눅24:21)

1. 성경 : 누가복음 24장 13절 ~ 27절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1)

 

2. 묵상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이십오리쯤 떨어진 조그만 성읍이었다. 마가는 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기사를 짤막하게 다루고 있으며 마태와 요한은 아예 다루지 않고 있다. 누가는 매우 상세하게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기사를 다루고 있다. 이 성구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하며 오늘을 사는 신자들에게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며 유익하게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부활의 주님께서 왜 두 증인을 택하셔서 나타나셨는가? 하는 것을 살필 필요가 있다. 두 제자들 중 한 사람의 이름이 글로바라고 밝힌 것은 열한 명의 제자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것은 열한 사도들의 나태함을 질책하기 위함이었다고 Calvin선생은 주석했다. 필자도 그런 Calvin선생의 주석이 맞다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는 여러 차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그들은 마음에 새겨듣지 않았다. 주님은 25절에서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라고 질책하신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면서도 그들의 눈이 가리워져서 여느 때와 똑같은 주님이셨으나 알아보지 못한다. 길을 걸으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여인들의 부활의 증언과 베드로와 요한이 빈 무덤을 보았다는 말도 이야기한다. 그런 두 제자의 심성은 진리를 알기를 원하는 그들의 마음을 보셨기에 그리스도는 그들을 질책하며 무지를 일깨워 준다. 악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시험하기 위한 악의에 찬 질문도 없었기에 주님은 그들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셨고 그들의 어두웠던 눈이 밝아져 부활의 주님이셨음을 깨닫는다.

 

21절에서 글로바가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에서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원한 사람이라 치부할 수도 있으나 뒤에 이어지는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는 글로바와 또 다른 제자들이 주의 십자가의 고난으로 인한 공포에 휩싸여 있으나 믿음을 견지하려는 그들의 신앙을 엿보게 한다. 삼일 째에 살아 나리라는 부활의 소망을 견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누구나 시험은 당 할 수 있다 이를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처럼 그리스도를 바로 믿는 믿음으로 극복해야 함을 깨닫는 2021년 12월 10일 아침이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