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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눅17:17)

예수님은 아마도 갈릴리 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여정에서 곧장 사마리아 땅을 통과하실 수도 있으셨을 것 같다. 그러나 주님은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셨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열 명의 나병환자는 예수님을 멀리서 바라보며 은혜받기를 사모하고 있었다. 그들은 율법에 따라 오늘날처럼 격리되어 사마리아인과 유대인들이 섞여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그들은 정상인들에 가까이 올 수 없었으며 아마도 나병으로 성대도 온전하지 못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들은 힘을 내어 주님을 기다렸고 마침내 주님을 보자 멀리서 힘주어 외쳐대며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다. 이것은 작은 믿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신다. 즉시 열 명의 나병 환자들은 순종하여 가던 중에 깨끗함을 받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은 열명이 주님의 말씀에 제사장에게 가기 전에 깨끗하게 될 줄을 믿었다는 것이다. 이 역시 귀한 믿음이다. 그리고 유대인의 나병환자들은 주님께 감사하지 않고 제 갈길로 가벼렸고 오직 사마리아인만 주님께 돌아와 감사를 한다.  마태복음 8장에 나병환자를 고쳐 주신 기록이 있고 그 후 기록된 두 번째 나병환자의 치유의 기록이 나온다. 여기 누가복음 17장의 기록된 목적은 앞에 것과 다르다.  누가는 유대인들의 선민임을 자부하면서 믿기 어려운 배은 행위를 폭로하고 있다.

 

열 명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기뻐하심은 우리가 측량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리스도의 명령에 밝은 희망으로 간 것은 큰 믿음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뿌리 없는 떡 잎만 있는 잠정적인 신앙(Calvin 주석)이었다. 이 잠정적인 신앙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다면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께 신실하게 확고하게 자리한다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육적인 치유가 아홉 명의 유대인에게 주어졌으나 영혼의 구원은 없었다. 그저 육의 잠정적인 은사를 받았을 뿐이다.

 

오늘을 살며 우리는 누가복음 17장 11절로 19절에 기록된 배은의 유대인들과 같이 육적인 은사를 받은 후 영혼 구원까지 이르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베드로가 증거한 것처럼 샛별이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우리들의 육체의 남은 시간을 하나님 말씀을 신뢰하며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