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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눅19:44)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으나 배은과 악의 때문에 무참하게 멸망할 것을 보신 그리스도께서 우셨다.  성경은 예수님이 우신 것을 세 번 기록하고 있다.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동정의 눈물을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며 예루살렘 성을 보시며 우신 것과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신 것이 그것이다. 예루살렘이 거룩하신 분의 거처로 선택되었고 영원한 구원의 언약이 머무르고 있어야 하며, 이곳의 성소로부터 온 세상을 향한 구원이 나와야 함을 숙고하셨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슬퍼하셨다.

 

그리고 그 멸망은 대속의 은혜를 베푸시기 위하여 오신 메시아이신 눈 앞의 예수 그리스도를 멸시하므로 멸망의 길을 걷는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라고 한탄하신다. 하나님으로 임재하셔서 택하신 백성들의 구원을 원하셨으나 믿지 못함을 넘어 죽이려고 하였으며 철저하게 외면하고 멸시하였던 당시의 지도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할 정도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주님의 말씀대로 AD 70년에 티투스장군에 의하여 그대로 이루어진다.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철저히 파괴되는 모습은 오늘을 사는 신자가 회개하지 않을 때 맞이 할 형벌을 보는 듯하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믿음의 길에서 배도하지 않고 신앙을 지키며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열므나의 비유처럼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수건에 싸 두었다가 게으르고 악한 종이라 책망을 들으며 엄한 심판을 맞이 할 것이 뻔한데 인간은 코 앞에 닥친 엄청난 재앙을 외면하며 외줄 타기를 하는 유랑 단원처럼 하루하루를 사는 듯하다.

 

주님이 다스리시는 지상교회가 '복준다', '잘된다'는 류의 강론은 넘쳐난다. 예루살렘 성을 보시며 슬피 우시는 것처럼 책망하시는 강론은 듣기가 어렵다. 경건의 능력은 고사하고 경건의 모양이라도 있는 예배를 체험하기 어렵다. 마치 인문학 강연을 보는 듯하고 예비군 훈련장의 강의와도 같다고 하면 지나친 혹평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