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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사도행전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행19:9)

1. 성경 (행19:8 ~20)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8)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9)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0)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1)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2)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3)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4)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5)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6)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7)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8)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19)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20)

 

2. 묵상 (Calvin선생주석)

"8 회당에 들어가~~~~~" ; 우리는 이 말씀에서 바울이 그리스도께 충성을 바치기로 이미 작정한 경건한 사람둘에게 자기의 사역을 시작하고 있었으며 그 후에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거나 그를 영접하지 않은 다른 유대인둘을 교회에 편입시키기 위하여 회당에 들어갔었음을 알 수가 있다. 누가는 바울이   "대담히 ……강론하며" 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계속적인 석달의 기간 동안에 그들이 바울의 말을 잘 듣고 있었음을 우리가 알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그들이 그의 말을 들었던 것은 그가 복음의 교훈을 교묘하게 숨겼거나 분명치 않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그들에게 서서히 접근해 갔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리고 누가는 바울이  '하나님 나라’ 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했다 고 우리에게 전할 때 바울이 갖고 있었던 확신에 대한 중거를 보여 주고 있 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라는 이 말이 조상들에게 약속되고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나타나게 될 그 ‘새로움'을 자주 의미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모든 것이 부적당하고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기 때문에 선 지자들은· 그가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것은 메시아의 강림에 의하여 될 것을 사실 그대로 말했기 때문이다.

 진실로 이 나라는 우리를 반역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리로 되돌려주고, 원수된 자들을 자녀로 만들어 주기 때문에 이 나라는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들 자신에게 화해시켜 주시고 아들삼으심으로 우리를 자기 백성이 되게 하시는 값없는 최의 용서와 둘째로 우리를 자기의 형상으로 닮아가게 하는 새로워진 생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누가는 "바울이 ……강론하며 권면" 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공중· 앞에서 주장하고 있었던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건전한 이유들을 활용하고, 그리고, 이에 부가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문을 완전히 열도록 자기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자극제로서 경건한 권면을 하면서 강론했음 올 의미한다. 만일 우리가 경건한 권면으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떠한 교묘한 말도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 우리는 바울이 에베소에 처음 왔을 때 만큼 유대인들이 어느 곳에서도 그처럼 조용히 그리고―바울이 그러했던 것 처럼-참을성을 가지고 그의 말을 들었다는 기록을 읽지 못한다. 왜냐하면 다른데 유대인들은 소란을 일으키고 그를 몰아내었음에 반하여 여기서는 그가 더 오래 머물도록 요청을 받기 까지 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삼개월동안 그들 중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노력한 다음에는 많은 사람들 속에 있는 불경건과 고집이 나타나고 있다. 누가는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 하늘의 교리는 이런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버림 당한 자들이 격노하도록 하거나 그들이 더욱 완고하게 한다.

  그 교리의 본질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는 우연인데 이른바 진리가 이런 사람들을 누를 때 그들의 숨은 독이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누가는 그들이 ‘‘우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했다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복음울 경멸하는 자들은 마침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들이 받아들이고자 하지 않는 것을 향하여 적대적인 공격을 할 만큼 자신들을 타락시키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다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다.  단지 다른 모 든 사람들도 가능한 한 자기들의 불경건과 동일한 것에 참예시키려는 것이다.

 ‘도' (道)라는 말이 생활의 온갖 도리를 의미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말이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적용되고 있다. 지금 누가는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그가 보여준 모범으로 우리가 가망이 없고 시정할 수 없는 완고함을 경험할 때에는 우리의 노력을 더 이상 허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를 받는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바울은 "이단에 속한 사람은 한두 번 훈계한 후 에 멀리하라"(딛 3 : 10)고 디도에게 권면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 씀이 돼지와 개들에게 남용되면 그 말씀에 부끄러운 모독이 끼쳐지기 때문 이다. 동시에 약한 자들을 돌아보는 것도 바른 일이다. 건전한 교리에 대한 약한 비방과 거짓 선전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가진 경건의 마음이 혼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제자둘을 그들과 구별하여 따로 세웠다. 염소가 가진 그 더러운 냄새가 양무리에게 전염되지 않게하며 하나님은 순전하게 섬기는자들 중에서 신앙고백이 자유롭게 나오게 하려는것이었다.

 

"날마다 강른하여~~~~"  ;이 귀절은 바울이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 얼마나 중단없이 열정적이었으며 배우는 데 일차 지루함을 느낀 사람들이 너무도 변덕스럽거나 쾌락을 사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가르침을 듣는데 즐거운 마음과 취미로써 열렬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적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론 한편 으로, 바울은 자기가, 말하자면 , 우리 속으로 모아 들였던 자기가 책임지고 있는 양들에 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밖에 있는 자들에 대하여 관심을 잃지 않고 말씀을 계속하여 강론 하면서 그들 중에도 가르침을 받을 만한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했다. 누가는 그곳을 ‘두란노 서원’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당시에는 로마인들이 은 아시아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므로 이 ‘두란노'는 그때 최고의 권력을 가진(誌 7) 사람임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 곳은 두란노라는 사람이 그. 도시에 비용을 내어 세우고 기증한 전에 실내 체육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일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그들의 집회를 위하여 설립자의 이름을 가진 한 공공의 장소를 사용했던 것이다.

 

"10 사는 자는~~~~~다~~~~~" ; 누가는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들으려고 그곳으로 찾아 왔음을 의미하지 않고 아시아의 전체가 그가 하고 있는 설교의 평판을 들었으며 그가 전한 복음의 씨앗이 멀리 그리고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서 그의 수고는 한 도시에서 뿐만 아니라 먼 곳에서까지 열매를 맺었음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가 한 장소에서 전파되어 멀리 그리고 넓게 퍼져 나가면 이 진리는 그 전파자의 음성이 들려질 수 없는 곳에서 되울리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 진리는 이 사람에서 저 사람에게로 전달되며 사람들은 이를 서로 가르치기 때문이다. 각 사람이 자기의 능력을 따라 이 믿음을 열렬하계 중거하지 않으면 한 사람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11  비범한 능력을(証 8)"   ; 누가는 성경이 자주 그렇게 하듯이 ‘기적'을 "능력'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기적은 하나님의 특이한 능력에 대한 중거였기 때문이다. 누가는 바울의 사도직이 이들 표적으로 두드러지게 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그의 가르침의 권위가 더욱 분명하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표적들은 사람을 그 대행기관으로 하여 나타난다는 말은 일반 적인 말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표적들에 대한 영광은· 그것들의 유일한 장본이신 하나님께 돌아가고 그 대행기관인 사람은 사역자로서 그의 바론 위치에 세워지게 된다.

 그 기적들을 확대하여 말하려고 누가는 그들이  ‘손수건 과 앞치 마' (sudaria et semicinctia) 를 병든 자들에 게 가지고 갔으며 이것들올 얹어서 그들이 나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능력이 바울에게 임한 이유는 확실히 분명하다. 그가 그리스도의 참된 사도임을 증명하고 복음에 대한 사항들의 신뢰를 얻으며 그의 사역을 확고히 하기 위에서였다. 여기서 기적의 바른 사용에 관하여 우리가 앞에서 말한 것 을 다시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수건으로 병자들을 고치신 사실에는 바울이 현창에 없을지라도 그를 보지 못한 자들이 그의 가르참을 공손히 받아돌인 그런 이유 때문에 교황과 그를 섬기는 사람들이 그들이 가진 유품들을 위하여 이 말씀을 비뚤어지게 해석하고 있으니 불합리하다. 그들은 자기들이 프란시스(Francis)의 신발과 바지, 로세 (Rose의 허리띠, 성 마가레트(St. Margaret)의 빗, 그리고 이와 비슷한 시시한 것들을 숭배하는 것과 같이, 사람들이 손수건들을-그를 존경하는 것같이 존경하고 입 맞추기 위하여 바울이 그것들을 보낸 것처럼, 이 말씀을 의곡하고 있다. 이는 부당하다. 오히려 사람들은 바울이 누구도 그것들을 값이나 그 장려함을 보고 미신을 만들어내지 않도록 가장 값싼 것들을 선택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 영광은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전적으로 그리고 은전히 주장 하려는 것이 그의 의도였던 것이다.

 

"13절 "  ; 바울의 사도직은 위에서 언급한 그 기적들에 의하여 확증되었음이 더욱 분명하게 보여지도록 누가는 지금 어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용했을 때 그같은 악용이 가혹하게 벌을 받았음을 보려주고 있다. 우리는 이 사실로부터 그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으로서 바울이 그리스도를 충성스럽게 전하고 있었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하려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없이 그것이 바울을 그 대행기관으로 나타나게 되었음을 알게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그 기적들이 복음의 순수한 가르침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셨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귀신을 쫓아내는 행위를 위하여 그 기적들을 불법적으로 사취하는 자들을 극히 엄중하게 형벌하시기 때문이다 .. 이 사건으로부터 우리가 또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흐리게 하는 모든 기적은 마귀의 속임수이며 순전한 신앙을 확고하게 하는 것외에 다른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의 순수한 기적을 자기 것인 양 사용하고자 하는 자들은 속이는 자들이란 사실이다.

 

"마술하는~~~~~ 어떤~~~~~" ;나는 이 행위가 어리석은 경쟁의식으로 부터 생겨났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 중에서 자기의 능력을 자주 여러가지 방법으로 나타내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마귀를 쫓아내시기 위하여 한 때는 선지자들을 자기의 행위자로 쓰셨다. 이 사실은 하나의 구실로 내세우면서 그들온 스스로 귀신을 쫓아내는 행위를 자행했다. 그리고 이렇게 함 으로씨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도 없이 한가지 독별한 의식을 분별없이 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이 비 정상적인 행위를 묵인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계속되었던 그들 조상들의 신앙에 더욱 헌신하고자 이렇게 했다.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서 그릇된 야심은·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충돌이 생기계 했다.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의 뜻에 의하여 고안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미신이한 항상 악화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교황은 더욱 높은 자리로 승전될 그의 모든 성직자들에게 이 귀신을 쫓아내기가 공통적인 어떤 것이 되기를 원했댜. 왜냐하면 그들이 수위로 임명된 다음에 그들은 즉시 악령에 대한 주술을 위 임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저인 실행에 있어서 그들은 스스로 어리석은 자들이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텅비고 효력이 없는 칭호만을 부여 받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마귀를 주문으로 불러내는 능력을 전혀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신을 몰아내는 사람들은 실행하지 않는 이 직임을 가짐으로써 스스로 비웃음을 받고 있다. 끝없는 과오를 범하게 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당연한 결과이다. 이 사람들에 관한 한. 우리는 그들이 정처없는 방랑자들이며 시장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들이었다고 짐작한다. 그리고 오늘날 교황이 다스리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그들과 같은 자들을 많이 보고 있다. 왜냐하면 누가는 그들이 돌아 다녔다(circumivisse)고 말하고 있으며 이 말로써 그는 그들이 속임수를 위한 기회가 나타나는대로 그들의 발걸음을 이곳저곳으로 옮겼음을 의 미하고있기 때문이다,

 

"내가~~~~~.. 예수를 빙자하여~~~~" ; 그 사기꾼들은 그들이 전에 그릇되게 자랑하고 있었던 그 능력을 다시 얻기 위하여, 혹은 복음의 빛을-.어둡게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이 전에 가지고 있었던 그 능력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의 도움을 비는 이 기원은 두 가지 면에 있어서 결함이 있었다. 왜 냐하면 그들이 바울의 교훈을 이해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떤 믿음도 없이 그들은 마법의 주문이 되기까지 하는 것을 위하여, 하나의 구실로서, 그 교훈을 악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가지 결함을 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도 없이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사용 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자기들 마음대로 했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믿음에 의하여, 인도되고 받은 소명의 한계를 넘지만 않으면 하나님과 그리 스도의 이름으로 도우심을 비는 것은 합당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실에로부터 사전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깨우침이 없이는 어떤 것을 해보려고 하지 말라는 경고 를 받는다. 이는 우리가 불경스러운 자들에게 내리시는 형벌과 비슷한 형벌 울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주님온 친히 우리가 기도하도록 격려하고 계신다. 기적을 행하는 은사를 받지 않은 자들은 그 한계 안에 머물러 있도 록 하자. 왜냐하면 사도들이 스스로 명령하여 더러운 귀신들이 나오도록 했 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지신 분으로 인정했으며 자기들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성실하계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았기 때문 이다.

 

"16 악귀들린 사람이 그들에게(許9) 뛰어올라," ;  우리는 마귀가 그를 통 하여 그런 일을 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원래 그가 일곱명 (許10)의 강건 한 젊은이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들의 옷을 벗긴 다음에 그들을 쫓아내는 그처럼 난폭한 큰 힘을 가전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 님의 성령과 사단의 영은· 서로 대적하고 있다고 단정하여 말할 수 있다는 사실 외에 마귀가 어떻게 사람 속에 거처할 수 있는가에 관하여 확실하게 섣 명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 에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역시 그는 이와 반대되는 현상으로 사단이 모든 불신자둘 안에서 자유롭게 역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 다(고전 3 : 16, 고후 6 : 14 이하 참고).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누가가 하나의 특별한 종류의 내주(內住)를 논하고 있음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하면 사단이 자유로운 지배력을 가지고 그 사람 전부를 장악하고 있는 경우를 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능력이 말소리에 국한되지 않으며 자기 아들의 이름이 미신을 위하여 사취당하는 것을 히락지 아니하심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이러한 일이 있게 하셨다.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께서 사단이 우리를 희롱하도록 허락하실 때 우리는 그가 우리의 육체에 상처를 주시는 것보다 우리는 더욱 가혹하게 형벌을 받고 있음을 깨닫기로 하자. 왜냐하면 거짓 기적온 불신자들을 미혹하는 소름끼치는 매력이 되어 그들이 하나님의 빛을 배치하므로 더욱 어두움 속으로 뛰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

 

"17. 두려워하며~~~~~" ;그리 스도의 이 름을 경건치 못하계 악용한 데 대하여 ,. 하나님께서 내리신 형벌의 결과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 (religio)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극히 격렬한 보응자이시며 그들은 그리스도를 공손히 섬기계 되었다는 두드러진 실예로써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교훈을 그들이 경멸하지 않게 하시려 는 것이었다. 이 사건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범할 때 자기의 십판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지경까지 우리를 이끌어 가시기 위하여 자기의 온갖 심판을 활용하신다는 사실을 떠나서 그리스도의 위엄이 특별히 중시되고 있으며 복음의 능력이 확증되었다. 자기들의 마법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의적으로 더럽히는-사기꾼들을 위해서는 더욱 가혹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그들이 그처럼 큰 신성모독에 대하여 형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하 지 않도록 하자. 누가의 기록 중에 "다 이 일을 알고"라는 말씀은 ‘전반적으로' 또는 ‘모든 곳에'라는 말과 같다. 왜냐하면 누가는 사람들이 이 사건을 서로 이야기 ·하여 알려지게 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냐 그리고 이렇게 되어 그리스도의 이음은 많은 사람들 중에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 누가는 그가 위에서 말한 그 두려움에 대한 하나의 증거를 전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이전 생황 중에 가쳤던 범과를 숨김으로씨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키지 않기 위하여 이를 스스로 고백했을 때 그들이 하나님을 향한 심각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음에 대한 참된 중거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인들이 순전하고 솔직한 고백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인가를 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평판보다 더욱 귀하계 여기는 것도 없으므로 그들에게는 치욕을 당하지 않는 것이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언제나 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자기들의 부끄러운 행위를 덮어 가리려고 애쓴다. 그러므로 이 자발적인 고백은 회개와 두려움을 느꼈음에 대한 중거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감각으로 철처하계 감동을 받지 않는 한, 하늘에서 심판을 면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모욕과 치욕을 견디고 스스로 이 땅에서의 심판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그가 ‘많이’라는 말을 쓴 사실로부터 그들 모두가 같은 이유 때문에 찾아온 것이 아니었음을 추측한다. 왜냐하면, 많은사람들이 속에 숨겨둔 과오로 인하여 괴로와하는 것처럼, 그들이 오랫동안 양심을 괴롭혀 왔으리 라는 사실온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가는 만인 공통의 한 법을 정하고 있지 않으며 유사한 약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본받을 만한 하나의 실예를 제공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의 회개에 대한 중거를 보이고 바울에게 충고와 도움을 구하려는 것 외에 자기들의 행위를 고백한다는 이유는 없기때문이다. 사람들이 세례를 받기 위하여 요한에게 나아갔을 때 자기들의 죄를 고백한 그 사람들의 경우에는 하나의 다론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기들이 아무런 다른 목적을 갖지 않고 회개하게 되 었음을 고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누가는 하나님께서 신실한 자들에게 자기의 엄중하심에 대한 설예를 보여주실 때 그들이 하나님을 높이는 마음으로 감동되었던 한 경우롤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황과 그를 섬기는 자들의 뻔뻔스러움은 더욱 크다. 그들 은 이 사실을 그들의 포악에 대한 변명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성칙자들의 귀에 들려주는 죄의 참회와 본문중에 나타난 이 실예와는 어떤 관련이 있단 말인가? 첫째로 믿는 자들은 자기들이 신앙으로돌아오기 전에 사단에 의하여 얼마나 비참하게 속아 왔는가를 고백하고 공중 앞에서 모법자가 된다. 이와 반대로 고황의 법으로는 모든 행위와 말과 생각을 일일이 고해야 한다. 우리는 그 사람들이' 단번에 고백했음을 읽고 있다. 그러나 교황의 법은 그 고백을 최소한 매 년 반복하도록 명하고 있다. 그 사람들은 자말 껴으로 나아왔었다. 그러나 교황은 모든 사람들을 의무적으로 구속한다. 누 카는 ‘모두'가 아니라 ‘많이’ 왔었다고 말하고 있으나교황의 법으로는예외 가 없다. 그 사람들은 믿는 이들의 모임 앞에서 스스로 겸손했다. 교황의 명 령은 대단히 다르다. 죄인은자기네 사제의 귀에 은밀하게 속삭인다. 그들이 자기들의 속임수를 옳은 것으로 증명하기 위하여 얼마나교묘하계 성경을 각 색하고 있는지 보타.

 

"19.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 누가는 마술과 그것의 속임수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대체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도 좋아하고 있는 볼풍 없고 소용없는 그것의 공부에 관해서도 말하고 있다. 누가는 헬라 사람들 이 그 안에 어떤 견실한 유용성을 갖고 있지 않는 그 무엇을 설명하는 말  '페리에르가'를 쓰고 있으나 사람들은 황폐한 마음과 노력으로 그것 들을 여러가지 우회적 방법을 통하여 다른 것들로 전환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을 이른바 사법적 점성술이라고 부르며 우매한 사람들이 스스로 고안해내는 미래에 대한 점 (占)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과 다른 사람듈이 차후에 그릇되게 행동하게 될 수단을 없애기 위하여 그들의 책을 불태웠다. 그리고 극히 값이 많았음에도 그 책들을 포기했던 그 사실로써 그들은 자기들의 경건이 얼마나 열정적이었는가를 극히 분명하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누가가 잠시 전에 설명한 고백은 구술상의 고백이며, 지금 이것은, 내가 이렇게 표현해도 된다면, 행동적인 고백이다. 마지막으로, 헬라인들은, aprupwv(아르구리온)이란 말도 온갖 종류의 돈을 의미하므로 누가가 세스 터 스(sesterce)를 의 미 하는지 데 나리 (denarii ; 誌11)를 의 미 하는지 분명 치 않 다.

  그러나 그 신실한 자들이 부를 단호히 버리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리려 고 누가가 그 금액을 언급하고 있음이 분명하므로 나는 누가가 데나리나 그 보나 더 높은 단위의 금전을 의미하고 있음을 의십하지 않는다 오만 데나 리 (注12)는 프랑스 돈으로 리 브라(livre)가 된다. 힘이 있어 흥왕하여 점이 있어’를 의미하는 Kara Kparo~(카타 크라토스) 라는 표현은 하나님 의 말씀이 보통으로 진전되 지 않았음을 암시 한다. 마치 누가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처럼 널리 퍼지게 되니 희귀하고 보통때 보다 더욱 눈에 띄는 효력이 나타나고 있었다고 말한 것과 같다. 나는 ‘홍왕하여'라는 말이 사람들의 수를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누가는 그 가르침이 널리 선전되어 매일 새로운 제자들이 모여들므로써 교회는 자라나고 있었다 고 말한 것 과 같다. 그러 나 나는 ‘그 말씀온 확고해 졌더라' (E:13)는 말씀온 개인에게 적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복음에의 순종 과 경건에 있어서 더욱 더 진전되어 그들의 믿음은 깊이 뿌리를내렸다는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