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 (행18:23~28)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23)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4)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5)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6)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7)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28)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24 유대인이." ;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야 했을 때 그의 부재로 말미암아 생기는 손실을 보충하기 위하여 아볼로가 오게 되었던 것은· 실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는 고린도인들 중에서 바울의 후계자였고 극히 훌륭하게 행동했을 뿐만 아니라 극히 충성스럽고 분투적으로 일했기 때문에, 마치 그는 특유한 동료였던 것처럼, 바울이 그를 칭찬하고 존중히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온 "나는 심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고전 3 : 6)라고 말했으며 다시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고전 4 : 6)라고 말했다. 그런데 누가는 첫째로 두 가지 설명으로 그는 칭찬하고 있다. "그는 말에 능하고 성경에 능한 자라." 그리고 두번째로 누가는 그의 열정과 신앙, 그리고 견실성을 덧붙여 칭찬할 것이다.
바울은 진실로 하나님의 나라가 말에 있음을 부인하고 있으며 자신이 말에 능하지 못했으나 여기서 누가가 칭찬하고 있는 토론에 있어서의 기술은 무시될 수 가 없다. 특별히 미사여구로써 가식적 표현을 하려고 하지 않은 경우에 더욱 그렇다. 가르치는 책임을 가전 사람은 허식이나 야심이 없이 과장된 말이나 미끈한 술책을 떠나서 의문시되고 있는 사실에 관하여 선명한 설명을 충분하게 해야 한다. 바울은 말에 능하지 못했다. 분명히 주님께서는 이 출고의 사도가 이 장점을 갖지 않기를 원하셨다. 성령의 능력이 그의 서투르고 거친 말 가운데서 더욱 환하게 빛을 내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에게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알리고 구원의 교리를 선전하는 데 충분한 말의 재능은 있었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온사들은 많고 다양한 방법을 따라 분배되고 있으므로 ---만일 바울에 관한 다음 표현이 사용될 수 있다면一바울의 언어상의 무능에도 불구하시고 하나님은 자신을 위하여 능변의 사역자 들을 택하지 아니하시는 것은 아니다. 이뿐 아니라 아볼로가 말에 능했던 것을 세속적이고 쓸데없고 무익한 것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이다. 누가는 그것이 더 큰 능력, 즉 ‘성경에 능한' 사실과 연합되고 있었다 고 말해준다. 나는 이 말씀이 그가 성경에 훌륭하고 건전하게 정통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의 능력과 효력을 잘 알고 있어서 성경으로 무장된 그논 모든 논쟁에 이기고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간주한다. 그러나 내 의견으로는 이 칭찬이 그 사람보다는 성경에 대한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성경은 진리를 지키고 사단의 전략을 물리치는 데 더욱 충분한 효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5. 그가~~~~배워." ; 이 말씀은 누가가 연이어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고 하는 말과 거의 일치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곧이어 한 이말은 고쳐하는 말로서 부가되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사실온 쉽게 서로 일치된다. 그는 복음이 가르치고 있는 바를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구원자가 세상에 나타나신 것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화해의 은총에 관하여 바르고 신실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요한의 가르침이 미치는 만큼의 복음의 기본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알기로는 요한은, 말하자면, 그리스도와 선지자들의 중간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에 관한 노래 중에 그의 부친과 천사는 말라기의 예언을.들어 그의 직임에 관하여 말했었다 (눅 1 : 16이하, 76). 분명히 요한은 앞서 와서 그리스도를 위한 길을 밝히고 있었으며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한 훌륭한 설명을 했으므로 그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갖게 되었다고 말할 수가 있다.
그리고 ‘그가 요한의 세례를 알았다’는 말은 유의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 말씀으로부터 성례전의 참된 용도가 무엇인가를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성례전은 우리가 어떤 특별한 교리를 알게 해 주거나 우리가 일단 받아들인 믿음을 확고하게 해 준다. 성례전을.가르침과 별개의 것으로 보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며 불경스러운 행위가 된다. 그러므로 성례전이 바르게 시행되게 하기 위해서는 하늘에 의한 가르침의 주요점이 그성례전들속에서 반향되어야 한다. '요한의 세례'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가는 요한의 온 사역을 이 말 속에다 모으고 있다. 왜냐하면 교리가 세례에 결속되어 있을 (Baptismo annexa est doctrina) 뿐만 아니라 교회는 세례의 기반이며 머리가 되기 때문이다. 교리가 없으면 세례는 실속이 없고 죽은 의식이 될 것이다.
"열심으로." ; 여기에 아볼로에 대한 다른 칭찬이 있다. 그는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 거룩한 열심에 불타고 있었다는 것이다. 열정이 없는 가르침은 미친 사람의 손에 쥐어전 칼이거나 냉랭하고 쓸모 없는 것 또는 못된 겉치레만될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배운 사람들 중에 어떤 자들은 태만하고 무능하며 좀더 좋지 못한 자들은 야십때문에 스스로 괴로움을 받고 있으며 가장 좋지 못한 자들은 논쟁과 논란으로 교회를 어지럽계 하고 있음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열심이 생동하고 있지 않은 가르침은 따분할 것이다. 그런데 누가가 성경에 대한 지식을 첫째로 말하고 있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성경지식이 열심에다 온건하계 하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율법에 잘못 전념한 나머지 복음을 대항하여 격노하고 있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분별없이 열을 울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교황과 그를 섭기는 자들이 경솔하게 고안해낸 어떤 견해에 의하여 충동되고 사나운 폭력에 의하여 요동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러므로 열정을 조절하기 위하여 온건하게 하는 영향력으로서의 지식을 갖자. 사실상 열정은 근면의 이유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열정을 가지고 아볼로는 부지런히 가르치는 일에 전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복음안에서 면밀하고 온전하게 가르침을 받지 못한 그가 그처럼 열십히 그리고 거리낌없이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었다면 아직 그가 알지 못하고 있는 더욱 분명하고 충실한 지식에 이른 사람들이 자기들이 가진 능력을 전부 기울여 그리스도의 나라를 진홍시키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면 자기들을 위하여 어떤 변명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누가는 그의 열심이 성령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열심은 회귀하고 특이한 은사였기 때문이다. 나는 아볼로가 자기 마음의 충동에 의하여서가 아니라 성령의 감화(莊17)에 의하여 자극되었다고 누가가 의미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26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다른 사람의 재능을 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몰두하고 있지 않다. 말에 능한 그 사람이 후에 공중 앞에 소개할 그 내용에 관하여 그들이 그에게 사적이고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있는 사실이 이를 분명케 해준다. 그들은 아볼로가 가지고 있었던 그 품위에 있어서 그만큼 훌륭하지 못했으며 아마 그들은 희중 가운데서도 존중히 여김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뿐 아니라 그만 말하고 그들은 침묵을 지키겠다는 조건 밀에서 말에 능하고 성경을 활용함에 있어서 자기들보다 더 훌륭하다고 알고 있는 그를 돕는 데 열심이다.
그리고 아볼로는 뛰어나게 겸손했다. 그는 육체적인 노동자 뿐만 아니라 여자에게서도 배우고 부족한 것을 채우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는 성경에 정통했으며 그들보다 대단히 우월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역자들로서는 결코 적합하지 않다는 인상을 그에게 주었을 것 갈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나라를 온전케 할 것에 관하여 그에게 마무리를 잘해주었다. 우리는 교황과 그를 섬기는 자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과는 다르게 당시에 여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교회의 가장 주요한 위치에 있는 한 선생이 한 여자에 의하여 가르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앞에서 말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즉 브리스길라는 자연과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질서를 파괴하지 않기 위하여 자기의 집 안에서 사적으로 그를 가르쳤다는 사실이다.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히나 ~~~~" ;. 누가는 아볼로가 아가야로 가고자 했던 이유를 명확하게 말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장의 전후 관계를 살펴볼 때 그는 자신의 이득에 끌리지 않았으며 거기에 가서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더욱 풍성한 결과를 얻으리라고 보여졌기 때문이었음을 추측할 수가 있다. 그리고 형제들이 그를 더욱 격려하고 그의 원하는 마음에 박차를 가했기 때문에 그가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고 추측한다. 그가 그곳으로 가는 것이 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었더라면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성실하게 일하여 자신들에게 유익을 주고 그 대신에 어떤 더 나은 일이 나타나지 않는한 그들이 장차 필요로 할 그를 행운을 빌면서 어떤 다론 곳으로 보낸다는 것은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나는 에베소에 있는 형제들이 아가야에 있는 형제들에게 펀지를 보낸 것으로 안 다. 그를 친절하게 영접할 뿐만 아니라 그를 가르치는 자로 받아 들이게 할 목적이었다. 우리가 증언과 찬성으로 모든 훌륭한 사람들을 추켜 세우기 위하여 애를 쓰게 될 때 이는 참으로 그들에 대한 거룩한 추천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성령의 은사들이 매장되지 않게 하기 위한 일이다.
"저가 가메~~~~" ; 이렇게 되리라는 사실은 그가 계획했던 그 여행을 떠나도록 격려했을 그 때 이전에 그에 의하여 이를 경험했던 이 형제들에 의하여 예상된 대로였다. 그가 믿는 자들에게 유익을 주었다는 누가의 말은 두 가지로 이해될 수가 있다
(1) 아볼로는 믿음의 무장을 잘 갖추고 있지 않았던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며 원수들의 고집을 무너뜨림으로써 그들을 붙들어 주었다. 왜냐하면 항복하도록 강압을 당하지 않으면 결코 항복하지 않는 싸움에 경험을 가지고 있는 원수들을 대항하는 어려운 전쟁을 지원하기 위한 무기둘을 갖는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은
(2) 아볼로는 약한 자들에게 흔히 그런 일이 생기듯이, 그들의 신앙이 원수들의 반박에 의하여 넘어지거나, 무너지지 않도록 그들을 붙들어주었다. 나는 그들이 위에서 말한 두가지 방법으로 도움을 받았다고 누가가 말하고 있다고 간주한다. 그리하여 숙련되고 경험을 가진 이 지도자를 받들고 그들은 신양의 싸움에서 승리를 얻고 있었으며 그들의 신앙은 새로운 토대 위에 확립되어 다시는 위험에 빠져들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이뿐 아니라 누가는 아볼로가 유대인들과 공공연하계 논쟁했음을 언급했을때 그곳 형제들이 그의 활동과 결의에 의해서도 도움을 받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대중(/ucem)을 회피하지 않는 것은 열정과 확신에 대한 표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의 끝부분에 있는 ‘은해로 말미암아’라는 귀절은 곧 이어 나오는 믿은 자들에게~~~'라는 귀절에 연결되고 있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가 형제들에게 주었던 도움을 가리키고 있다. 첫번째 해석은 그 설명이 어렵지 않다. 믿는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는 마치 이렇게 말한 것과 같다.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하여 믿음을 갖도록 이미 부르심을 받은 형제들은 더 좋은 어떤 것을 향하여 인도되었 다". ·,그러나 이 말이 다른 것을 가리키고 있다고 보는 견해는 더 적합한 것으로 여겨진다. 즉 아볼로는 자기가 받은 은혜를 그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그들을 도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은혜로 말미암아'라는 말은 ‘받은 바 은혜의 분량을 따라'와 같은 의미가 될 것이다.
"28.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 ; 이 사실은 성경에 능한 아볼로의 재능이 무엇을 위하여 쓰여겼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그가 성경에 능했던 그. 유능하고 효력있는 재능은 그가 원수들의 말을 이기는데 소용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말씀에는 ‘예수는 그리스도다'라는· 논쟁의 주요 제목이 간략하계 기록되어 있다. 유대인들중에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가 약속 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마리아의 아들 예수가 구원을 주시는 그리스도시라고 그들을 설득시키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므로 성경의 증거들이 마리아의 아들 안에서 성취되었음울 증명하고 이 사실로부터 그가 그리스도이심을 중거하기 위하여 아볼로가 그리스도의 직임을 논하는 것은 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귀절은 가르침을 위해서 뿐 아니라 자원하여 동의하지 않는 자들의 고집을 무너뜨리기를 위해서도 성경이 유용하다는 사실에 대한 중거가 된다. 왜냐하면 성경 속에 우리가 구원에 관하여 알아야 하는 사실들에 대한 명백한 설명이 없다면 우리들의 믿음은 충분히 튼튼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율법과 선지자들이 극히 밝은 빛을 비추었기 때문에 아볼로는 그 율법과 선지자들로부터, 마치 이 사실을 그의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처럼 에수는 그리스도이심을 명백하계 증명했다면 이에 부가된 복음은 우리가 그리스도에 관한 충분한 지식을 성경 전체에서 찾아야 함을 최소한 증명해야 할 것이 다.
그러므로 교황과 그를 섬기는 자들이 성경은 분명하지 않고 호하다고 주장하는 것온 하나님을 향한 혐오할 만한 모욕이 다. 자기 말씀 안에서 명백하고 해를 주지 않는 진리가 자명하게 나타나도록 하려는 사실 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회의 권위에 고착해야 하고 이단자들과 논쟁할 목적으로 성경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으로부터 추리해낸 성경에 대한 흠을 잡는 교황과 그를 섬기는 자들의 태도는 누가에 의하여 충분하계 논박되고 있 다. 왜냐하면 유대인들보다 더 완고한 자들은 없기 때문에 아볼로가 그들을 이기기 위하여 의존했던 그 무기는 우리가 모든 이단들울 대항하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에 대하여 우리는 불안감을 가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 성경이라는 무기는 모든 그릇된 것 들의 왕인 마귀와의 싸움에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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