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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요한복음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요5:17)

1. 성경 (요5:10 ~18)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0)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11)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2)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3)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14)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15)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16)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7)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18).

 

2. 묵상 (Calvin선생 주석을 요약함)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 ;안식일은 모든 사람에 의하여 준수되어야 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 사람을 정당하게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말한 변명이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하자 그들 자신이 오류를 범하기 시작한다. 안식일에 짐을 지는 것은 율법을 범하는 것이었다 (렘17:21~2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의 어깨에 짐을 지워 주셨고 그의 권위로 그를 밀어 주셨다. 그러므로 이러한 예에서 우리는 성급한 판단을 경계하고 각 행동의 원인이 충분히 알려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가차 없이 정되되어 마땅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분별없이 많은 말이 오르내리기 때문에 우리의 질문과 결정은 건전하고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당시의 유대인들이 범한 오류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특별한 표적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과 ‘말씀으로 무장된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을 들을 때까지 그들의 판단을 미루지 아니하였다’는 점이다.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 그리스도께서는 분명 그와 같이 위대한 기적의 영광이 헛되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주님은 자기가 표적의 주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도 전에 그 표적이 널리 알려지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외모와 관계없이 그 사실 자체를 판단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하여 잠시 뒤로 물러 나셨다. 이로서 우리는 사람의 믿음 때문에 병이 나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사람은 병 고침을 받은 후에도 자기를 고쳐준 의원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에 그는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그리고 이것은 믿음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해진 것처럼 보인다. 나 자신으로서는  그 사람 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의 동작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문맥상으로 보아 그에게 확고한 교리나 분명한 빛이 없었음이 분명하다.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인자하심에 대한 기억이 사람들의 마음에서 사라지도록 잠시 자신을 숨긴 것이 아님을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주님께서는 자의에 따라 공중석상에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다만 그 표적이 먼저 알려지고 난 후에 자신이 그 이적을 행한 장본인임을 알리려고 의도했을 뿐이다. 우리는 여기서 아주 유용한 교훈을 얻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보라 내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고 말씀하실 때, 그는 우리가 감사할 줄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선물을 함부로 남용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평생토록 구세주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그가 나음을 입었음을 그에게 상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를 구속한 목적과 하나님의 은사의 목적은 우리를 전적으로 주님께 허신 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 우리의 완악함을 길들이기 위하여 채찍을 잡으신다.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 계속 우리를 억압한다면 우리의 완악함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루기 힘든 말이나 노새와 같을 뿐만 아니라 길들이지 않은 야생동물과도 같다. 이는 그 사람의 영혼이 모든 죄로부터 완전히 씻음을 받지 않았음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악의 뿌리는 우리 속에 너무나 깊이 박혀 있어서 하루 이틀 동안에 이를 뿌리뽑을 수는 없는 것이다. 영혼의 병을 치유하는 것도 단기 치료로 쉽게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 이 성구는 그가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격분하여 날뛸 염려가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의도는 선하였다. 그 이유는 그가 자기를 고쳐준 그리스도에게 마땅히 영광을 돌려드리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범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주님은 하나님의 일을 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쉬는 날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닮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은 세상의 혼동된 일에서 손을 멈추고 하늘에 속한 안식을 추구 할 때 하나님을 닮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안식은 활동의 정지가 아니고 잔잔한 평안의 상태를 동반하는 본질적인 완성이다. 창세기 2장 2절은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묵상하면서 보내도록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일한다 하시매” ; 그의 모든 행위와 말씀의 이면에는 자기가 구원의 주인임을 나타내려는 목적이 있었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 이 성구는 비록 온 세상이 우리를 비난하여 물리치려 한다 할지라도, 악인의 분노에 굴복할 것이 아니라 필요한 떼는 하나님의 진리를 변호해야 한다고 우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렘17:21~2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며(21)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어떤 일이라도 하지 말고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함 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22)”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