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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요한복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요4:48)

1. 성경 (요4:46 ~ 54)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6)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8)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49)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0)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51)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2)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53)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54)

 

2. 묵상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 에라스므스는 달리 생각하지만 이것은 정확한 번역이다. 물론 나는 오늘날 공작이니 백작이니 하는 사람들이 군소 임금으로 취급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갈릴리의 구조로 볼때 그러한 서열에 해당하는 사람이 가버나움에 살리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나는 그가 헤롯궁에서 일하는 헤롯왕의 신하라고 생각한다. 그가 가이사로부터 보냄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렇다 할 증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이러한 왕의 신하를 위하여 이적을 행하심은 더욱 두드러진 것이기에 직접적으로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 그리스도께 도움을 청한 것을 보면 그에게 어느 정도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증거해 주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셨을 때에 그의 무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의 무지는 그리스도께서 육체적으로 임재하심으로 행하시는 이적에 그리스도의 능력을 국한시키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왜 이 사람에게 더 심하게 대우하셨는가? 거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음에 틀림없다. 아마 그리스도께서는 한 사람보다 그 민족 전체를 보셨던 것 같다. 주님의 가르침을 멸시함을 아셨고, 사람들은 온통 표적과 기사만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지나치게 터무니 없이 표적에 마음을 빼앗길뿐 그리스도의 은혜나 영생의 약속이나 성령의 숨은 능력 같은 것에는 별로 마음을 쓰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 오소서” ; 이 성구는 그리스도께서 마치 그를 거절하고 그의 기도를 듣지 아니하실 것처럼 그를 책망하신 것이 아님을 유츄할 수 있다. 주님은 주님의 책망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람이 참진리로 나아가지 못하게 그를 가로막고 있는 잘못을 시정하려고 그를 책망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 중에 왜곡되거나 피상적인 것은 시정되거나 제거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엄한 책망에도 그 신하는 불평하지 않고 겸손히 침묵을 지킨다. 그의 아들을 위해서~~~. 우리는 역경에 의해 낮아지고 우리의 교만과 거만을 억지로 굽히게 되기까지 놀라우리만큼 조바심이 심하고 걱정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 이 성구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약한 믿음이라도 존귀하게 보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그가 원했던 것을 다 들어주시지 않았지만 그가 구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셨다는 사실에 유의할 가치가 있다.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 그리스도의 능력을 충분히 인정 할만큼 존귀히 여긴 것은 아니지만 적은 약속이 그의 마음에 새로운 믿음을 불어 넣었고 그는 자기 아들의 생명이 그리스도의 말씀 하나에 달려 있다고 믿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당연히 이와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자기와 그의 온집이 다 믿으니라” ; 율법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란 사람으로써 믿음을 맛 본 상태의 그는 더 이상 자기 아들의 생명에 관계해서만 믿는 그런 믿음이 아닌 특별한 믿음임을 본문은 보여준다. 그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공개적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선언했다는 의미에서 다른 방향으로 믿기 시작했다. 

[이상은 Calvin선생의 주석을 요약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