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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요한복음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5:22)

1. 성경 (요 5:19 ~ 24)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19)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20)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1)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2)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2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4)

 

2. 묵상 (Calvin선생의 주석을 요약한 것임)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들의 비난과 고소를 벗어나려고 어떤 변명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비난하는 내용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나섰음을 보개 된다. 첫째로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의 트집을 잡고 있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하나님께로 돌리려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정면으로 대항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함이었다. 이 말씀이 정통파 신부들과 아리우스파 사이에 여러 가지로 공방의 대상이 되었었다. 아리우스파는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보다 못하다고 유추했다. 그러나 신부들은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로 말미암았으나 행동의 잠재적 능력마저 박탈당한 것은 아님을 알게 하기 위하여 위격의 구분만이 암시되어 있을 뿐이라고 반대했다. 그러나 이들 양측이 모두 그릇된 견해를 내세웠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신성 여부는 따지고 있지 않으며 우리가 곧 듣게 될 말씀은 전혀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을 지칭해서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다만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속주가 되시기 위하여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그대로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시선을 보내자.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에게서 인간의 성품 이상의 것을 보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므로 그 사랑이 넘치는 샘에서 흐르는 물과 같이 우리에게 흘러 오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택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 사랑이 아버지께서 그의 손을 빌어 모든 일을 행하시는 이유라고 보여주고 있다. 이 말씀은 상호 의사소통을 암시하는 것처럼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치 이렇게 말씀하신 것과 같다. “아버지께서 그의 마음과 그의 능력을 내 위에 부으셨다. 이는 나의 하는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게 하려 함이다. 그리고 사람이 나를 떠나서는 어떠한 하나님의 일도 발견하지 못하게 하려고 아버지께서는 그의 모든 능력을 내 위에 부으신 것이다” 사실 그리스도를 떠나서 하나님의 능력을 찾는 것은 헛된 짓이다.

 

“그 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자기가 병자를 고침으로 보여준 이적은 아버지께서 그에게 명한 일 중에 제일 큰일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 아버지께서 죽은 자를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 여기서 주님은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직분의 성격이 어떤 것인가를 종합하고 있다. 비록 주님이 한 가지 양상만을 지적해서 말씀한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주님께서 생명의 주인이 되신다는 일반적인 교리이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 주님께서는 이제 아버지께서 아들의 인격을 통하여 세상을 다스리시고 아들의 손으로 그의 권능을 행사하신다는 일반적인 진리를 더욱 분명히 표현하고 있다. 아버지께서 나라를 아들에게 맡기셔서 아들의 뜻을 따라 하늘과 땅을 다스리도록 하셨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통치권을 아들에게 넘겨주고 할 일 없이 하늘에서 쉬고 계시다는 것도 아주 우스운 말처럼 들린다. 대답은 용이하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인간에 동시에 관계되는 말씀이다.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천지의 주와 만왕의 왕으로 임명했을 때 아버지 안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친히 아들 안에 계시고 아들 안에서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지각이 하나님에게까지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형상으로 우리 눈앞에 나타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인격을 통하여 자신을 가까이 보여 주심으로 우리의 약점을 보충해 주시는데 하늘의 비밀을 헛되이 추구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 이 귀절은 내가 위에서 말한 내용을 충분히 확인시켜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통하여 다스리고 자기 자신은 할 일 없는 왕처럼 하늘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능력을 아들 안에 나타내시고 스스로 그리스도 안에 계시하신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신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는가? 이 말씀은 분명히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알려지고 예배를 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 ; 이 말씀은 아무도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방법이 어떤 외적인 의식이나 사소한 예식에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을 공경하는 방법과 길을 기술하고 있다. 복음의 가르침은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을 다스리는 그의 홀과도 같은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믿는 자들을 아들에게 맡기셨다. 이와 같은 정의는 특별히 유의할 가치가 있다. 기독교인으로 거짓되게 고백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심지어 그리스도의 적대적인 원수라고 할 수 있는 로마교 교도들까지도 자기들이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주제넘은 자랑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서 우리가 그의 복음에 순종하는 것 이상으로 달리 자기를 공경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또 “영생을 얻었고”라고 할 때 순종의 열매를 추천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더욱 자진해서 순종함으로 영생을 누리게 하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진지한 예배와 우리를 생명으로 회복시키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말씀을 들음으로 영생을 얻는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가 말하고 있는 대로 듣는것은 믿음을 뜻한다. 그러나 믿음은 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복음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바를 항상 묵상해야 할 것이다.   

 

을 알지 못하고 그가 전에 가르쳤던 대로 죽은 자를 살리려고 세상에 임하셨다고만 말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