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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주석/여호수아

여호수아서 10장

1. 성경 (여호수아10:1 ~ 43)

그 때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빼앗아 진멸하되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또 기브온 주민이 이스라엘과 화친하여 그 중에 있다 함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듣고 (1)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 (2)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헤브론 왕 호함과 야르뭇 왕 비람과 라기스왕 야비아와 에글론 왕 드빌에게 보내어 이르되 (3) 내게로 올라와 나를 도우라 우리가 기브온을 치자 이는 기브온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화친하였음이니라 하매 (4)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들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이 함께 모여 자기들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올라와 기브온에 대진하고 싸우니라 (5) 기브온 사람들이 길갈 진영에 사람을 보내어 여호수아에게 전하되 당신의 종들 돕기를 더디게 하지 마시고 속히 우리에게 올라와 우리를 구하소서 산지에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왕들이 다 모여 우리를 치나이다 하매 (6)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용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올라가니라 (7)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 그들 중에서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 (8)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밤새도록 올라가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니 (9)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여호수아가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살륙하고 벧 호론에 올라가는 비탈에서 추격하여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니라 (10)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 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 덩이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더라 (11)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 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12)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3)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14)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길갈 진영으로 돌아왔더라 (15) 그 다섯 왕들이 도망하여 막게다의 굴에 숨었더니 (16) 어떤 사람이 여호수아에게 고하여 이르되 막게다의 굴에 그 다섯 왕들이 숨은 것을 발견하였나이다 하니 (17)여호수아가 이르되 굴 어귀에 큰 돌을 굴려 막고 사람을 그 곁에 두어 그들을 지키게 하고 (18) 너희는 지체하지 말고 너희 대적의 뒤를 따라가 그 후군을 쳐서 그들이 자기들의 성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하고 (19)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크게 살륙하여 거의 멸하였고 그 남은 몇 사람은 견고한 성들로 들어간 고로 (20) 모든 백성이 평안히 막게다 진영으로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렀더니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 (21)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르되 굴 어귀를 열고 그 굴에서 그 다섯 왕들을 내게로 끌어내라 하매 (22) 그들이 그대로 하여 그 다섯 왕들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왕과 에글론 왕을 굴에서 그에게로 끌어내니라 (23) 그 왕들을 여호수아에게로 끌어내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자기와 함께 갔던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 하매 그들이 가까이 가서 그들의 목을 밟으매 (24)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너희가 맞서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고 (25)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죽여 다섯 나무에 매달고 저녁까지 나무에 달린 채로 두었다가 (26) 해 질 때에 여호수아가 명령하매 그들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들이 숨었던 굴 안에 던지고 굴 어귀를 큰돌로 막았더니 오늘까지 그대로 있더라 (27) 그 날에 여호수아가 막게다를 취하고 칼날로 그 성읍과 왕을 쳐서 그 성읍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바치고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막게다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더라 (28)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막게다에서 립나로 나아가서 립나와 싸우매 (29) 여호와께서 또 그 성읍과 그 왕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지라 칼날로 그 성읍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쳐서 멸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그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더라 (30) 여호수아가 또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립나에서 라기스로 나아가서 대진하고 싸우더니 (31) 여호와께서 라기스를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신지라 이튿날에 그 성읍을 점령하고 칼날로 그것과 그 안의 모든 사람을 쳐서 멸하였으니 립나에 행한 것과 같았더라 (32) 그 때에 게셀 왕 호람이 라기스를 도우려고 올라오므로 여호수아가 그와 그의 백성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33)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라기스에서 에글론으로 나아가서 대진하고 싸워 (34) 그 날에 그 성읍을 취하고 칼날로 그것을 쳐서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당일에 진멸하여 바쳤으니 라기스에 행한 것과 같았더라 (35) 여호수아가 또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에글론에서 헤브론으로 올라가서 싸워 (36) 그 성읍을 점령하고 그것과 그 왕과 그 속한 성읍들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그 성읍들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바친 것이 에글론에 행한 것과 같았더라 (37)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돌아와서 드빌에 이르러 싸워 (38) 그 성읍과 그 왕과 그 속한 성읍들을 점령하고 칼날로 그 성읍을 쳐서 그 안의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바치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드빌과 그 왕에게 행한 것이 헤브론에 행한 것과 같았으며 립나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더라 (39)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그 온 땅 곧 산지와 네겝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 모든 왕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호흡이 있는 모든 자는 다 진멸하여 바쳤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 (40) 여호수아가 또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사까지와 온 고센 땅을 기브온에 이르기까지 치매 (41)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으므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들과 그들의 땅을 단번에 빼앗으니라 (42)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길갈 진영으로 돌아왔더라 (43) 

 

2. 묵상 (Calvin선생주석)
"1. 여호수아가 아이를 취하여~~~~~~" ; 그는 앞에서 산악지대와 평야에 살던 왕들의 음모에 대해서 간략하계 언급한 바 있지만, 여기서는 그 내용을 더욱 더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는 그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공동전선율 펴려고 동맹을 맺었다는 점만 언급하고 나서 갑자기 기브온 족속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앞에서 일반적인 왕들에 대해서 언급하던 점을 여기서는 오직 한 왕에게만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도니세덱 혼자만 겁을 집어먹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다른 모든 왕들을 선동했고,   이스라엘 백성을 상대로 전쟁을 펴는 데 있어서 주모자와 지휘자 역할을 했 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은 동사의 복수형을 통해서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 곧 아도니세덱이 들었을 때 그들이 크게 두려워했다 (칼빈사역) 는 표현이다. 여기서 보건대 왕들 모두가 한 마음을 가지고 았었지만 그 가운데는 두려워서 뒷전으로 물러난 왕들도 있었으며 한편 더 권력이 세거나 더 위험에 직면한 왕이 다른 네 왕들에게 무장하도록 권한 것(駐2) 같다.

 

본 장의 서두에는 이 다섯 왕들이 이스라엘에 대항하고 그들 모두가 위협을 느끼고 있던 전복을 피하기 위해 어떻게 동맹을 맺었는가 하는 점이 다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그 사이에 기브온 사람들이 굴복했던 만큼 그들은 먼저 기브온을 상대로 무기를 들었는데, 이것은 그들을 반역자로 처벌함으로 써 모든 인근 국가들에게 본보기를 삼을 뿐 아니라 이미 무기력하게 된 적군에게 공포를 줌으로써 자 군대의 사기를 돋구려는 뜻에서였다. 그러므로 노들은 사신올 보내어 불화를 일으키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통로를 제공한 기브온 사람들을 공격하기로 다짐했다. 물론 그들이 이들과 전쟁을 펴는 데 있어서는 이웃 나라와의 동맹을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고 이방인들에게 동조함으로 온 지역을 쑥밭으로 만들게 한 자들의 비겁함을 처벌한다는 그럴듯한 구실이 있었다. 그리고 기브온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동정을 사서 구출받지 않았던들. 자신들의 간계가 얼마나 무용한 것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점을 체험했다. 한편 여호와께서 이들 기브온 사람들이 위험에 말려들게 내버려 두신 것은 그들이 두번씩이나  구출 받음으로써 더욱 더 자발적이고 온순히 굴복하게  하려는 뜻에서였다.

 

"6. 기브온 사람들이~~~~~~ 여호수아에게 전언하되~~~~~" ; 이야기의 순서가 도치되고 있다. 그 까닭은  기브온 민족들이 포위될 때까지 기다린 것이 아니라 군대가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보는 순간 자신들이 미움을 받고 있다는 점을 잘 아는지라· 그들의 첫 공격 목표가 바로 자신들이라는 점을 깨닫고서 서둘러서 여호수아의 보호를 청하고 있기 때문이다(駐3):  한 번 살려준 사람들을 배척한다는 것은 옳지 못하고 불법적일 뿐 아니라 비인도적이다. 아니 그들은 어디까지나 계약에 따라서. 복종한 사람들인 만큼 얼마든지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보호 받을 권리가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이 자신들을 보호하고 있던 이스라엘에게 도움을 간청하고, 또 그들의 행복을 인정해 준 여호수아 편에서는 서슴지  않고 그들을 방어함이 옳다는 판단을 내린 것은 양쪽 모두에게 정당했다.  물론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속임수를 썼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거짓이 탄로나자 자백하면서 참작할 만한 상황을 말함으로 그들은 용서를 받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기브온 민족들을 패망하게 내버려두지 않은 것은 공평과 의무감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호수아가 즉각적으로 그 청에 응하고 지체 없이 증원군을 보낸 것은 여전히 칭찬 받을 만하다. 그가 밥새 행군한 것으로 기록되어있는데, 아마 자기 자신의 전체 민족이 위기에 처했다 하더라도 이보다 더 신속하게 행동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방 민족들 역시 동일한 진실성을 항상 보였던들 자신들이 피해를 본 다음에 앙갚음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제 때에 자신들의 동맹을 후원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9절)라는 용어는 마치 여호수아가  단, 하룻밤 사이에 사흘길의 여행을 마치고 다음 날 아침에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이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그가 신속하게 서둘렀기 때문에 다음날까지 출발을 연기 하지 않았다는 것이 다(社 4).

 

이스라엘 군대가 아이성이나 그 근방에 있는 진영에서 출발했지만그들이 기브온 경계선에 들어선 것은 제3일째 되는날이었다. 그들이 그 당시 전투대형을 갖추고 행군했기때문에 서서히 진행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여호수아가 기브온 족을 도와 달라는 청을 받은 것은 상당히 떨어져 있는 곳에서였다. 우리가 앞에서 본 대로 길갈은 요단강을 건너자마자 처음 도착한 성읍이요; 그러므로 여리고부다 더 먼 거리에 있었다. 혹 여호수아가 그 온 성읍을 항복시킨 후 돌아가게 됨으로 정복지역을 텅 비워두게 되어 결국 적들이 다시 새 힘을 가지고 공격해 오도록 한 것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나 여기에 대해서 나는 그 당시 원수가 다시 정복하러 오거나 큰 위험과 어려움을 예상하면서 원정해 올 것을 두려워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대답하겠다.

 

추측컨대 일단의 부대가 여리고를 공격하기 위해 선발되었을 때 여자들 어린이들 및 싸우기에 부적당한자들은 후미진 곳에 남아 있으면서 요단 저편을 할당받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의 보호를 받았던 것 같다. 어린 꼬마들이나 아기들과 젖먹이들이 딸린 여자들을 데리고 전쟁터에 나갈 이유가 어디 있었겠는가?  원수의 반격이 있을 때 어떻게 그많은 대중과양떼 및 가축을 먹여 살릴 음식이나 물을 공급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여호수아와 그의 군대가 당분간 처 자식들과 쉬면서 기운을 차리고, 또 전쟁터에서 몰수한 노략물을 보관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천막으로 되돌아왔던 것으로 결론짓는다.

 

"8.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 여호와께서 이러한 행 군이 있을 것을 예상하시고 여호수아가 아무런 대책 없이 있을 때 자신의 말씀을 통해서 무장시킴으로써 그를 길갈로부터 이끌어내신 것인지, 아니면  그가 출발 준비를 다 마친 다음에 다만.그에게 확신을 주신 것인지는 확실 하지 않다. 나에게는 여호수아가·부닥을·받자마자'하나님과성상의하지 않고 당장 무모하게 출발한 것 이 아니 타,·.' 마침 내 그의 뜻을 안 다음에 야 담대 하 고 신속하계 무장한 것으로'보는 것이 다가능한 일로보인다. 최근에 너무 경솔한 행동 때문에 꾸중들은 일을 .생각한다면.이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고 무손 일을 시작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여 호와께서는 불쌍한 기브온 민족들을‘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그들에게 자기 백성의 도움을 베풀도록 허락하고 있다 .

 

여호수아에게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북돋아주시는 것은 그들을 돕도록 하 려는 뜻에서이다. 곧 하나님께서는 명령보다는 약속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 금 임무를 더 강력하계 수행하게 하시기 마련이다 .. '.여기 한 사람에게 약속 되어 있는 것은 사실 모두에게 속한 것이지만, 그러나 여호수아의 위선을 높여주기 위해 특별히 그의 이름으로 내려지고있어서 후에 그로 하여금 자 신의 군대에게 그것을 증거하게 하고 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무분별하게 하늘에서 칙접:오합지졸의 사람들을:상대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단지 탁월한 종들과 사역받은 선지자들에게만 그런'.영예를·허락하고 있다. 

 

여기서 더우기 주목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약속을 핑계삼아 늑장을 부린 것이 아니라 성공적인 결과를 확답받은 다음에:.더욱 다열정적이 되었다는점이다; 자신들의 신앙을 겉으로 드러내면서 자랑하 다가 방십하고서 나태하거나 게으르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 여호수아는 승 리가 자기’ 손에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그것을·.쟁취하려고 신속하게 전쟁 터로 달려가고 있다. 성공적인 결과가 계시된 것은 자신의 발길을 더디게 하거나 더 부주의하게 만들려는(뜻에서가 아니라, 더욱더 열정적으로 분발 하계 하려는 뜻에서라는 접을 찰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는 적을 기습할 수 있었다. 

 

"10.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멜 앞에사 패하게 하시므로~~~~" ; 맨 처음 도륙에서 여호와께서는자신의 백성의 칼을 사용함으로써 능력을 발휘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해서 일하실 때마다 어떤 것도 그의 영광을 훼손하지 못하고 모든 공로가 그에게로 되돌아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협력을 사용하실 경우 그들을 조력 부대로 블러들이거나 그들에게서 조금이라도 무엇울 빌어오든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고개만 한 번 끄덕임으로써무엇이든 기꺼이 성취할 수 있는 분이 인간들을 도구로써 사용하시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손과 뜻에 따라 지배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시려는 뜻에서이다. 마찬가지로 그 원수가 하나님에 의해서 일망타진되어 박살났다고 말하는 것이나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두 가지 다 진리인데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군대를 도구로 사용해서 그들을 박살냈기 때문이다.

 

원수가 우박으로 멸망 받은 두번째 도륙에서는 하나님의 섭리가 더욱 더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칼에 맞아 죽은 사람보다 우박으로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는 말이 분명히 밝혀지고 있는데, 이것은 그 승리가 틀림없이 하늘에서 주어진 것이라는 점이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것이 흔히 폭풍우와 함께 떨어지는 그런 보통 우박이 아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먼저 그것이 보통 우박이었더라면 갑자기 죽는 사람보다 흩어지거나 도망가는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요,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내리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 군인들 머리에도 그 일부가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한 쪽 군대만 따로 피해를 입고 다론 한 쪽 군대는 조금도 다치지 않고 살아 남아 조력부대와 합치는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부터 싸우고 계시다는 점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부터 커다란 돌 같은 우박을 굴려내리셨다는 표현 역시 같은 취지에서 언급된 것이다. 곧 그 우박이 ,굉장한 힘으로 떨어졌으며 그 크기가 보통 우박과 같지 않았다는 뜻이다. 일반 전투에서도 갑자기 폭풍이 일어나서 한편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경우 사람들은 그때마다 하늘이 도우신 것으로 여기고 있다.  삼라만상의 지원을 받는 자여, 하늘의 총애가  그대의 것이 구려 ! (駐5)라는것  역시 같은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실려있는 기사는 더욱 더 특이한 기적에 대한 것으로서 여기서 하나님의 전지전능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12.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 이것은 직역이고 이것을 '여호와 앞에서’ 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신앙심의 지시에 따라 하나님께 간청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신앙의 미덕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며, 곧이어 여호수아가 태양에게 말을 건 것으로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앞 귀절은 기도나 서원을 뜻하고 다음 귀절은 자신의 기도가 응답 받은 데 대한 확신의 표현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사전에 허락을 받지도 않고 태양에게  정지 명령을 내린다는 것은 주제넘고 오만한 일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그는 먼저 하나님과 상의하고 그에게 문의하며, 응답을 받은 다음에야 담대하게 태양을 상대로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있는 것을 명령하고 있다. 

 

믿음의 명령이라면 산과 바다도 움직인다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신앙의 능력과 특권도 바로 이런 것이다(마17':20; 눅17.6)  경건한 사람들이 자신의 공허를 느끼면 느낄수록 하나님께서는 그만큼 더 관대하게 자신의 능력을 허용하시며 신앙이 말과 일치할 때면 그 말을 통해서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 보여주신다. 한 마디로 신앙은 그것의 기초가 되는 말씀으로부터 명령의 확신을 빌어오는 샘이다. 같은 방법으로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하늘을 열고 닫았는가 하면 거기서비을 끌어오기도 했다. 이와 갈이 그리스도께서도 그의 제자들에게 천지 만물을 굴복시키는 하늘의 권세를 주셨다. 

 

하지만 누구든지 자기 멋대로 그런 명령울 내리는 일이 없도록·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옳게 지시받기 전에는 태양의 진로를 방해하거나 지연시키려 하지 않았다. 물론 그가 하나님을 상대로 말했다는 기록만 가지고는 하나님의 종이 기도를 올리는 데 있어서 지녀야 할 겸손과 복종의 자세가 ·충분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지만 여기에 여호수아가 자신의 소원을 들어 주실것을 하나님께 간청했으며, 자신의 청이 허락되자 유사 이래로 믿어지지 않는·기적을 멋 있고 당당하게 해낸 선구자가 되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만약에 그가 자신의 사명을 철저하게 의식하지 않았더라면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처럼 자신 있게 태양에게 명령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던들 그는 비 천하고 수치스러운 만용을 드러낸 자로 지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주저하지 않고 입을 열어 태양과 달을 상대로 자연의 영원한 법칙에서 벗어나라는 말을 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자신이 부여받은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두고 그들에게 엄명을 내린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서도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교회에 대한 특벌한 호위를 밝게 보여주고있다·  하나님께서 태양을 날마다 들게 하심으로 낮과 밤을 갈라 놓으시며 항상 저 거대한 천체를 쉬임없이 빠르게 돌게하사 인간에게  바비를 베푸시는 것과 마찬가지르 이스라엘의 원수들이 멸절될 때까지· 당분간 태양을 정지시키는것을 기뻐하셨 던 것이다(託6)

 

"13.  태양이 머물고~~~~" ;  태양이 어떻게 기브온에 머물러 있었는가 하고 쓸데없는 질문을던지는사람이 있는가,하면 그것을 어리석계 실명하는 사람 도 있다(誌7).-~ 사실 여호수아는 태양울 교묘하계 어떤 특별한 지겁.에심서도 록 함으로써 하지(夏至) 때 전두가 벌어졌던 것처럼 위장한’것,이 아니타 눈 으로 보아서 태양이 아얄론 지역으로 향하자' 바로 그 자리에 서,2있을3것을, 바꿔 말하자면 소위 지평선 위에 머물러 있을 것을 명령하고’ 있다.-간단히 말해서 이미서쪽으로 기울고있던 태양이 지지 않게 된3것이다(駐8). ·.·I) 나는 그 시간이 몇 시간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벌 관십이 없다;·:·밥새도록 대낮이 계속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당시 여사가]남아 있었다면꺼 기에는 틀림없이 이 위대한 기적이 송축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의--~J빙 성이 의십받는 일이없도록 하는 뜻에서 이 책의 처자는 그것이 다른곳에 서도 언급되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물론 그가 인용하고 있는 작품은 분실되고 없으며, 학자들은 야살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의견의 일치를l보지 못하고 있다. 이 명칭이 모세를 뜻하는` 것으로 보는·자들은 여기서 일반적 인 예언에 대해서 주어지는 예와 연관시키려 든다. 하지만 모제가~01 명칭 을 선민에게 적용하고 있는·접을 볼 때, 이, 책을 `그들의 역사적 사건에 대 한 설명서로 보는 것이 보다더 타당하다. 나로서는 그것울 어떤,역한 역사위 저자로 보기보다는 하나님이나 이스라엘로 이해하고 있다(駐9). 

 

"14. 이같은 날은~~~~~없었나니~~~~~" ; 이사야서와 다론 성경 역사책에보면 후에 히스기야 왕에 대한 호의의 표시로서 태양의 진로가 바뀌어전 것으로 되어 있다(사38:5rv8). 다시 말해서 그에게 생명이 15 년 아칙 더1 연장되 ','었다는 점을 확신시켜주기 위해처 태양의 그림자 각도가 10도 뒤로 물러나 게 된 적이 있다.-그러므로 그와 같은 일이 후에 다른 사람에게 허용되었다 는 점이 전적으로 부정되고 있는 것이 야니라,:i 기적이 둑목한 것으로 칭 송되고 있을 분이다. 혹자는 JJOto(샤마)를l•'순종했다’로 번역하지만 이 번 역은 너무 귀에 거슬리므로 나는 이것을 거철한다; 왜냐하면 물론 시편에도 I'| 여 호와께 서 자기 종들의 소망대 로 행 동하신다는' 말이 나오며 이 말은 순종 한다는 뜻이나 다름없지만, 하나님께 종속적인 임무를 부여하는 것 갈은 것 온 어느 것이든 퍼하는 것이 더욱 좋기〕대문이다(tt10). 그러무로 그 기적 의 탁월성이 전무후무한 것으로 칭송되고 있을,분이다. 이 귀절의 하반부는 여호수아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의 찬철과 겸손분만 아니라 자기 ·민족 을 위해 싸우신 것으로 일컬어질 만큼 아버지로서의 사랑이 칭송되고 있다.

 

"15. 여호수아가~~~~~~돌아왔더라" ;  이 구1절이 여기에 삽입된 것은적철하 지 못하다(証12). 왜냐하면 곧이어 전투의 결과가 덧붙여지고 있으며, 전쟁 후에 있기 마련인 왕들에 대한 처벌이 부과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막게다에서 진을 친이야기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시간의 순서를 무시하고 맨 처음에 나왔던 길갈에의 귀환이 반복되고 있다.  따라서 왕들의 주와 은폐에 대한 설명은 이전의 전투와 관계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호수아는 전쟁이 한창 불꽃을 튀고 있을 때 이 왕들이 어느 굴 속에 숨어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었지만 그 당시 당장 이들을 잡으러 가면 다른 군인들이 도주할 우려 가 있었던만큼 현명하게 그 동굴 입구를 큰 돌로 차단하고 거기에 파수꾼을 세위둘 것을 명령한 다음에 후에 적절한 때에 가서 이들을 그 감옥에서 꺼내 죽이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또한 우리는 적군의 수가 아주 많았던것으로 짐작할 수있는데, 그 까닭은 아무리 이스라엘 군대가 그들의 뒤를 바싹  따르면서 태양의 도움을 받아가며 도륙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새화된 성으로 도망가는 자들을 막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군대를 도우셨다는 사실은 그들이 만나는 적군을 모두 마음대로 죽이되 피곤할 때까지 하고, 또한 안전하계 되돌아 왔다는 점에 의해 여실히 입증되고 있다. 아무도 감히 혀를 놀려대는 자가 없었다는 표현에는 이스라엘 군대가 무혈승리를 거두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고, 이는 마치 그들이 싸우러 나간 것이 아니라 그저 찔러 죽이러 나간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과 같다.

 

"18. 여호수아가 가로되 굴 어귀에 큰 돌을 굴려 막고~~~~~" ; 여호수아는 적군이 일망타전 되었기 때문에 마음놓고 왕들에게 처벌을 내릴 수 있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항상 하나님의 명령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바로 이 명령이 아니었더라면 왕둘의 목을 짓밟고 그들의 시체를 나무에 달아 놓는 것처럼 뻔뻔스럽고 야만적인 잔학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 왕들은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얼마 전에 성스런 위엄과 왕위에 오르게 된 자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처형하도록 명령하시지 않았던들 이스라엘 군대가 그들의 수치를 마냥 기뻐한 것은 인정에 어굿나는 일이 되고 말았운 것이다. .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기뿐 뜻이었으므로-우리로서는 그의 결정에 복종해야할 것이요,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렇게 잔인할 수가 있을까 하는 주제 넘는 질문을 던져서는 안된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앞에서도 암시한 바 있지만 다음 사항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첫째, 대소를 막론하고 모조리 죽여야 했던 것은 그들의 죄악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절정에 달했으며 왕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죄가 많았기에 더 ·무서운 벌을 받아 마땅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이 왕들을 그릇된 허식적인 관대함으로 용서할 마음이 다분히 있었기 때문에 바로 이 왕둘을·가차없이 임격하게 처단함으로써 본을 보여주는 것은 아주 적절한 일이었다. 모조리 죽여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으며 히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이들을 처형하는 임무를 부여하셨던 것이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 사형 집행을 강력히 촉구하지  않으셨더라면 그들은 여러가지 핑계를 얼마든지 내세워 용서해 주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제멋대로 하나님의 권위를 깥보며 베푸는 자비는.가증스러운 것이다(駐 14).

 

따라서 존귀한 ·왕까지 아끼지 않는 판국인 만큼 오합지졸의 속된 무리에 대해서 인정을 베푼다는구실은 완전히 배제되고 마는 셈이다. 이러한 예를 통해서 여호와께서는 그가 얼마나 자신의 택한 백성에 대해서 지대한·관심을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왕들을발로 짓밟고.  그들이 마치 무슨 좀도둑이라도 되는 돗이 그들의 영광을 깔아 뭉개도록 허용하신 것은 매우 보기 드문 일이었다. 이것은 "그 안에는 하나님의 존영이요 그 수중에는 두 날을 가진 칼이로다.  이것으로 열방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저희 왕들은 사슬로, 저희 귀인은 철 고랑으로 결박하고 기록한 판단대로 저희에게 시행알지루:다. 이런 영광온 그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 (시149 : 6~9)라고 기록된 말씀 그대로이 다. 이 끔찍한 광겅은 또한 이스라엘 백정들에게  두려운 마음을 불러 일으켜 다시는 그처럼 호되게 처벌 당하는 민족들을 본받아 무서운 죄악을 따르는 일이 없도록 하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따라서 모세의 책에서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경고를 계속 보게 된다. 곧 너희들은 하나납께서 너희들보다 먼저 있던 가나안 땅 민족들을 어떻게 처벌하셨는가를 다 보아서.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악한 행동을 본받아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 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는 경고이다; 한 마더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훌 더욱 더 거룩하계 숭배하도록 하기 위해서 모든 오염을 재거해 주셨으며, 그곳 거주민들이 극도로 사악했던만큼 그들에 대한 자신의 저주를 비상한 방법으로 드러내셨던 것이다. 

 

"25. 여호수아가 군장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며~~~~" ; 여호수아는 다섯 왕울 통해서 아직 정복되지 않은 모든 다른 민족들에 대한 개선가를 부르고 있다. 곧 그는 아직정복되지 않고 남아있는 자들이 실제로 자기들 발밑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백성에게 자신을 갖도록 권면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전체 백성들이 몇 사람을 발로 밟아 죽임으로써 얼마나 사기충천했던지 나머지 모든 민족들이 이미 전복된 것처럼 멸시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또한 우리는 우리에게 장래에 대한 확신을 갖게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보다 더 밝게 드러나는 점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왕들을 매달아 놓은 것은 이미 죽은 그들에게 더 심한 벌을 주려는 뜻에서가 아니라 수치를 주려는 뜻에서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재앙에 대한 이런 기념비적인 행동이 만천하에 공꽁연하게 드러나는 것은 유익한 일이었다. 그리고 다론 민족들을 절망으로 격노시키거나 미치게 만들어 그들이 오만불손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위를 거스름으로써 자멸을 재촉하게 하는 데에 또한 하나님의 의도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막게다는 자신의 군대를 이끌지도 않았지만동일한 수치를 당하고 있으며 성벽 안에 조용히 남아 있던 그의 전체 백성도 마찬가지였다(駐15). 추축컨대  그들도 어떤 적대적인 행동을 했겠지만 그보다 더 특별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두에계 동일한 심판을 내리셨기 때문이다. 왜 임금들의 시체를 굴 속에 내버려 두었는가 하는 점은 다론 곳에서 설명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모든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심판대에 서실 때 하나님 앞에서 모든 세속적인 광채가 어떻게 사라지며,특출해 보이던 자들의 영광이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서 더없는 치욕거리로 뒤바뀌고 마는가 하는 점을 마치 거울로 보여주듯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29. 여호수아가~~~~~립나로 나아가서~~~~" ; 여기에 적군의 성읍을 탈취하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는데,여기서도 속도를 생각한다면 야전에서 못지않게 하나님의 능력이 놀랍게 드러났다. 왜냐하면 야전에서 성읍으로 기겁하여 도망한 자들이라 할지라도 두려움이 사라졌을 때 다시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託16). 다시 말해서 성읍 수비대의 숫자가 점점 증가했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짧은 시간에 여호수아가 모든 성읍을 취하고 보다 작은성읍들을 장악했울때 하나님의 임재는 의외라기보다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성과를 통해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다시말해서 그들이 공격을 받을 때 성문만 잠갔다 하더라도 여호수아로서는 성벽을 올라갈 사다리나 무너지게 할 대포를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포위할 때마다 상당한 힘이 들고 그만큼 시간이 지연되었을것이다.  그러므로  그날 이 성을 공격하고 그 다음 날에 그 성읍을 차지했는데, 이 지속적이며 수월하고도 급속한 승리는 분명히 인간적인 힘을 능가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본 장의 끝에 가서 하나님의 선하심이 뚜렷하게 칭송되는 것은 공연한 이유에서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수아가 그  많은 왕들을 단번에 정복해서 소름끼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편에 서서 싸위주셨기 때문이다. 사실 선령 그가 시찰만 했더라도 하나님께서 여러 장애물울 제거함으로써 통로를 열어주시지  않았더라면 그처럼 재빠르게  이 성에서 저 성으로 이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틀림없이 성과를 거둘 것으로 자신하고서 남의 군대를 도운답시고 원정 온 게셀 왕은 조금도 힘쓰지 않았는 데 갑자기 일망타전되며 그가 이스라엘의 행군에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다는 점은 이 기적을 더욱 더 돋보이게 하고 있다. 성 안에서 칼에 찔려 죽은 자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실제로 다른 사람들을 처벌하시는 동안만 연기해 준 형벌을 후에 기어코 받는 자들의 꼴이 어떤 것인가를 거울로 보 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허용된 집행유예를 두고 뽐내지만 그들의 상태는 당장 끌려가 처형을 받는 것보다 못하다 (託17). 언뜻 보기에는 전쟁터에서 쓰러지는 것이 더없이  지독한 재난으로 보이기 때문에 도망쳐 나와 자신들의 성벽 안으로 피신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더욱 더 가공스러웠다.

 

 자신들의 처자식이 자기들 눈앞에서 침승들처럼 학살당하는가 하면 자신들도 단칼에 쓰러지는 것보다 훨씬 더 치욕적이었다. 따라서 버림받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가끔 허용해 주시는 짧은 여가를 시기할 팔요가 전혀 없는 것은 그들이 안전을 기대하는 순간 갑작스런 파멸이 그들에게 밀어닥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살전5:3). 그와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심판 시행을 늦추신다 해서 하나님의 인내를 비난하지 말고 우리들이 모든 위험으로부터 구출받거나 탈출 수단이 저절로 그 모습을 우리에게 드러넬 경우 자기 만족에 빠지기보다는 다음과 갈은 한 광주리에 있는 처음 익은 듯한 무화과(駐18)는 최소한 어느 정도 맛이 있었지만 다론 광주리의 무화과는 너무 시어서 먹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40.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온 땅~~~~~~진멸하였으니~~~~~" ; 여기서 다시 하 나님의 권위가 개입되고 있는 것온 여호수아가 잔인하다는 인상을 제거하려 는 뜻에 서 이 다. 자기 혼자서 여 자들과 어 린이 들을 구벌하지 않고 무분별한 학살을 갑행했더라면 그어떠한 변명으로도 국악무도한 찬인성을 섣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찬인성온 금수들의 수준에서 맵도.는 야만족 들이 저지론 그 어떠한 만행보다 더 지독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둘 소스라치게 놀랄 일들을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으로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 옳았다. 관용을 큰 덕 가운데 하나로 칭송하는 것은 옳지만 이때 관용은 손해를 입고서 개인적으로 피를 흘려도 정당한 경우에:전노를~참는·자들의' 관 용을 두고 하는 말이다• I그러나·하나님께서 t자기 백성위一칼을: 들어 아모리 족속을 전멸하기로 정하신 이상 여호수아로서는 그의 명령에·순종할c: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그 어떠한 입이나 마음도' 여기에 대해서 감히 정죄할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이 무기를 버리고 고분고분하게 나오면서 살려 달라고 애원했지만 여호수아가 듣지 않고 닥치는 대로· 찔러 ·죽였다는 ,말만 듣는다면 제아무리 온건한 사람이라도:순간의 홍붑분을 느끼겠지만,_·하나님께 서 ,그렇게 명령하셨다는 말을 듣고 나면.법죄자들에게 벌을 내리는 사람을 욕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에 대해서 욕할 이유가·전혀\없게 되고 말 것이다. 물론 우리가{보기에도 최소한.어린` 아이들과 많은여자들 역시 아무런 죄가 없었지만 하늘의 심판대란 우리의 법칙밑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십하도록 하자 아니 푸른 나무가 이처럼 불에 타는 것을 볼 때 마른 나무인 우리는 더 무서운 십판이 내릴 것을 두려워하자. 그리고 누구도 자신을 엄밀히 반성하다 보면 수백번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것이다. 하물며 어머니 뱃속에서 갓나온 젖먹이를 죽이는 여호와께 그만한 이유가 없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저주받은 한 종족의 전 자손을 똑같이 멸망으로 처벌하셨으니 공평하지 못하다고 쓸데없이 투덜대거나 소란을 피우는것이 우리의 할 일이겠는가? 하지만 토기장이에게는 자신의 그릇에 대해서, 아니 자신의 진흙에 대해서 절대적인 권력을 지니고 있다(at 19)

 

멘 마지막 귀철(誌20)은우리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내용, 곧 전체 백성의 고정된 진지가 길갈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전쟁터에 나간 군인들이 그리로 되돌아 온 것은 당분간 휴식을 취하고 전리품을 안전하게 보관하려는 뜻에서였다는 점을 확증해 주고 있다. 각 지파가 제비를 뽑아서 영구적인 땅을 할당받기 전에는 너무 멀리 흩어쳐 있는 것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