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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주석/여호수아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

1. 성경 (수6:22 ~ 27)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라 하매 (22) 정탐한 젊은이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의 부모와 그의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의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의 진영 밖에 두고 (23) 무리가 그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불로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24)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25)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26)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 (27) 

 

2. 묵상 (Calvin선생주석)

"22.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  여호수아의  약속 이행에 대한 신의와 그의 전반적인 정직성이 이 염려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전 성읍이 저주 아래 놓여 있었던 만큼 여기서 한 가족에게 예외를 두는 것은 모순되어 보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유한한 인간이 하나님의 결정을 멋대로 변경할 수 없지 않느냐고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라합이 그녀의 처벌로부터의 면제를 두고 협상울 한 것은 성령의 암시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나는 여호수아가 그녀를 살려둔 것은 분별력있고 현명한 일을 한 것이라는 결론을 짓는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 정탐원들은 당시 이 도시의 완전 파멸에 대한 선언이 있기 전에 이 약속을 맺었으므로 그들은 서로 모순된 약속을 한 것이 아니다. 물론 모든 민족들이 파괴될 예정이었다는 점을 그들이 알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자기 동족을 자발적으로 포기한 이 한 여인을 상대로 얼마든지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에 훨씬 더 쉬운 해결책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의 명령에 따라 그들이 공격하는 모든 백성들에게 사면의 소망을 베풀면서 항복 할 것을 권고했지만 눈이 먼 민족들이 이렇게 제안 된 평화를 오만하게 거절 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모두를 파멸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모두가 마음이 굳어져 멸망을 받았지만 라합이 특별한 권리에 따라 여기서 제외된 것은 다들 멸망하는 가운데서 그녀를 안전하게 피할 수 있게 하려는 뜻에서였다. 그러므로 자발적으로 교회로 넘어온 한 여자가 이처럼 일찍이 구출 받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여호수아의 판단은 현명하였다. 라합의 부친과 그 가족의 경우는 물론 달랐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그들의 이전 상태를 포기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라합이 그들의 안전을 위해 작성한 조항을 그들의 신속한 순종으로 확증한 것이나 다름 없다. 더우기 우리는 여호수아의 본에서 배울 점이 있는데 그것은 고의적으로 이 약속을 파괴하지 않는 것만 가지고는 우리의 결백을 충분히 입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충실하게 이 약속을 실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호수아는 라합에게 딸린 손님들을 구출할 것을 허용할 뿐 아니라,  첫 공격시 그녀에게 어떠한 해도 입히지 말라는 점을 당부할 정도로 용의 주도하다. 그리고 그는 정탐원들이 그들의 임무를 보다 더 충실하게 수행하도록 하는 뜻에서 그들이 맹세하면서 약속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23. 정탐한 소년들이~~~~~" ; 하나님은 이처럼 구원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안전하기를 원하셨음이 들림없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롯의 두 사위 못지 않게 거만하고 모욕적으로 이것을 거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전 밖에 따로 위치함으로써 그들의 이전 생활을 포기하라는 엄격한 지시를 받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에게 유리한 재안이었다. 그들을 바로 받아들여 무분별하게 백성들과 섞이게 했더라면 자신들이 불결하다는 생각을 도무지 않았을 것이요,그와 같은 생활을 계속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의 불결이 양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다른 장소에 구별되자 그들온 전지하게 개종하도록 강요하는 수치심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물론 이들을 그처럼 따로 구별한 것은 군중 가운데서 누가 그들을 과격하게 대하지 않을까 하는 영려때문에 안전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 오히려 그들울 한적한 곳으로 따로 받아들였다면 더 쉽게 공격을 받았을지도 모르며 거기 대한 처벌도 받지 않았겠지만 이들은 모두에게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음에 틀림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불결을 그들 앞에 눈에 보이게 드러낸 것은 그들이 더러운 동안에 성급하게 거룩한 모임에 끼어 들지 말고 이 초보적인 훈련에 익숙해진 다음 그들의 생활방식을 바꾸도록 하려는 뜻이 그들온 백성들 가운대 섞여 사는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들의 불결을 제거 받은 다음에 마치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과 나름 없이 동일한 빛 가운데 안내를 받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그들이 그들의 과거의 불결을 고백한 뒤에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섞이는 것이 허용 되었다는 뜻이다. 이 허용으로 말미암아 라합은 그 녀의 신앙에 대한 더 없이 고상한 열매를 하나 얻었다. 

 

"26.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  그러므로 이 맹세는 단 하루 동안만 효력을 발휘하기로 된 것이 아니라 이 도시는 오직 신의 능력에 의해서 점령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만대의 후손에게 경고할 목적으로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폐허와 잔해가 일종의 기념비로서 그대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을 원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 도시의 재건은 이 기적을 말소하 는 것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장소의 황폐한 모습을 통해서 신의 능력과 은총에 대한 기억이 후손들에게 생생하게 남아 있도록 하는 뜻에서 여호수아는 이 무너진 도시를 다시 세우려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기필코 무서운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점을 선언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이 타고나는 무감각이 어느 정도이든지 신의 은총을 망각 속에 파묻지 않게 하려면 여러가지 자극의 도움을 필요로 할 정도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백성들 앞에 신의 역사를 휘황찬란하게 보여주는 이 장면 그들의 배은망덕에 대한 일종의 간접적인 책망과 같았다. 

 

이 저주의 핵심은 만약에 어떤 사람이 혹시라도 여리고성을 재건하려 한다면 그는 무자비하고 슬픈 결과를 통해서 저주받고 가증스러운 일을 시도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자기 장자를 가지고 기초를 놓는다는 것은 자기 아들을 돌 틈바구니 밑에서 깔려 죽고 거기 묻히계 내던전다는 말이나 다름 없다. 둘째 아들을 가지고 성문을 세운다는  것도 아들을 희생하지 않고서는 세워질 수 없는 것을 설계한다는 말과 갈다. 따라서 이런 미친 시도를 하려는 자는 자신의 자손을 통해서 정죄받고 있다. 여호수아는 자의에 따라 이 저주를 퍼부은 것이 아니라 그는 단지 천재 (天災)의 선포자였을 뿐이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백성 가운대 엄숙하게 표현된 이 무서운 저주를 무서워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신성 모독죄를 범하는 사람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더 가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합시대에 (왕상 16 : 34) 있었던 일인데 벧엘시민인 히엘이라는 자가 일어나 이 문제에 있어서 공공연하게 하나님에게 맞서는 것을 감행한 일이 있다. 그러나 성경 역사는 이와 동시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입을 통해서 선포하신 저주가 무효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요컨데 히엘은 새로운 여리고의 기초를 놓고 그의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으며 성문을 세워 놓고 그의 둘째 스굽을 잃었으며 이 자손의 파멸을 통해서 ( 誌 6 ) 그는 하나님의 뜻에 저항하고 그의 명령에 반대하는 일의 결과가 무엇이라는 교훈을 터득하게 되었다.

 

 

[莊6; 옛날 도시 바로 그자리에 대한 히엘의 건축 연대는, 일반 연대기에 의하면 여호수아가 이 저주를 선언한지 520 년후다. 하지만 또 다른 여리고성은 그보다 훨씬 이전의 시기에 세워졌지만 실제 과거의 그 장소는 아니었던 것 갈다.이 장소는 그 저주의 기억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에 아마 피했을 것이고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세워졌을 것이다. 여호수아 18 장 21 절에 보면  멀지 않은 곳에 고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에 대해서 확실히 말할 수 없는 것은 거기에는 실제 거주지가 아니라 단지 지명으로서의 뜻만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종려나무 성읍"이란 일반적으로 여리고를 두고 하는 말인 것은 사실이지만 에글론이 점령한 "종려나무 성읍"이 재건된 여리고였는가 하는 문제 역시 절대적으로 정확한 예기일수는 없다(삿3:14) 그러나 히엘 이전 최소한 1백년 전의 여리고성의 존재는 다윗의 사신들이 암몬 왕에게서 모욕을 받은 뒤  "여리고에서 머물다가 오라"(삼하10:5)는 그들에 대한 지시에서 명백하게 입증된다. 그 뒤에 이어진 히엘의 신성모독적인 성읍예기를 간략하게 검토해 보는 것도 윺익할 줄 안다. 이 건축에 대한 처벌은 그것을 처음 세운 사람을 통해서 다 부과되었다는 듯이 저주는 철회된 것으로 보였며 약 20 년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곳은 선지자들의 학교로 선정되었을 뿐 아니라 (왕하 2:5) 엘리사의 그곳 물에 대한 기적적인 정절을 통해서 그곳은 주거 지역으 로서의 또 다른 훌륭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왕하 2: 1-9-22) . 그곳 주민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면서 예루살렘 성벽을 건설하는 데 도움을 베푼 것으로 지목되어 있다(느 3:2) . 후에 여리고는 시리아 장군 바키데스(Bacchides)에 의해 강화되었으나, 아니 그에 의해서 기존 요새에 다른 건물이 들어 섰으나(마카비 상 9:50), 헤롯대왕 시기까지는 별로 중요한 취급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이 헤롯은 이곳을 정복하고 약탈한 뒤에 그것을 더 웅대하게 재건했으며 그 자리에 화려한 궁전을 세워 거기서 주로 살다가 거기서 마침내 죽었다. 이곳은 또한 그의 아들 아켈라오가 좋아 하던 곳이기도 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곳에 직접 오셨을 뿐 아니라 그의 기적적인 역사를 그곳에서 드러내시기까지 하심으로 이곳을 영화롭게 하셨다. 로마제국 후기에 그곳이 팔레스틴의 주요 도시 가운데 하나로 취급되었던 것 같다. 이 제국의 하체와 더불어 밀어닥친 전반적인 파괴는 이곳의 최종적인 파멸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으며 이 자리에는 이제 겨우 2--3 백명이 사는 리하(Riha)라는 초라한 촌락이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