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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주석/여호수아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수5:14)

1. 성경 (수 5:1 ~ 15)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1)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2)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3)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4)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5)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6)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7)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8)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9)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10)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11)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12)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13)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14)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15)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1 .· 요단 서편의……" ;  그들이 하나님의 무서운 능력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었지만 그 재앙에 대한 처방책을 구하겠다는 생각은 그들에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은 계략과 용기면에서 다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간담이 녹았지만 그들의 오만은 전과 다름없이 완고하였다. 다른데서 보아 왔지만 불신자들온 공포에 사로 잡히게. 될 경우 하나님과의 씨름을 그치지 않으며 쓰러지면서도 하늘을 향해 몹쑬 욕을 내뱉는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경고의 역할을 했어야 마땅한 공포는 그들을 곤두박질하게 재촉하는 것 이상의 작용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늘로부터 오는 공포에 사로잡히게 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였다. 곧 더 수월한 승리를 가져오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그들이, 이미 당황해서 풍지박산이 된 적을 상대하게 되었다는 것을 보고 담력을 얻도록 하려는 뜻에서였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의 연약성을 돌보신 것은 , 곧  손수 그들의 장애물을 제거해 주산 것이나 다름없게 해 주신 것은 그들이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더없이 게으르고 겁 많은 백성이라는 점을 이미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핵심을 말하자면 투쟁이 시작되기 전에 이 기적의 소문이 불어넣은 공포로 말미암아 이미 적은 참패를 당했다는 말이다.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 ; 할례가 그처럼 오랫동안 등한시되어 왔다는 점은 참으로 이상해 보인다. 아니 거의 가증스럽다. 특별히 날마다 보통 이상의 권면을 받고 있던 자들이기에 신앙의 단련에 도움이 되는 행위들을 마땅히 실천했어야 할 그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할례는그들에게 자유를 준 입양에 대한 상징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꿍꿍거리며 독재생활을 당하던 시대에도 항상 그들의 자녀들에게 할례를 베풀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아는 대로 하나님께서는 어느 신생아든 여드레를 넘기지 말라고 엄하게 경고하셨다. 이것을 애굽에서 소홀히 했더라면 당시 하나님의 언약이 어느 면에서 무효화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들의 경솔에 대한 구실이 성립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언약을 성취하는 진실성이 더없이 광채를 발하고 있는 당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증거하지 않는데 대해서 무슨 변명을 제기할 수 있었겠는가? 

 

여기서 주석가들이 제시하는 변명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항상 무장을 갖추고 있었으며 언제 이동해야 할지 항상 불확실했다는 점을 나는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이 사실에서 그들에게 단 하루의 여유도 없었으며 진영을 당장 옮겨야 할 판국에 핏덩어리에게 할례를 베푼다는 것은 가혹한 처사였을 것이라는 추론을 내리는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그 어느 것도 할례받지 않은 사람은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는 아브라함과의 약속(창 17:14)을 주제넘게 멸시할 정도로 중요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할례받는 데 있어서 생명의 위협이 따랐다면 여기에 대처하는 최선의 유일한 방법은 틀림없이 그 자신의 명령이 유아들에게 치명적인 것이 되는 것을 허용치 않았을 하나님의 아버지로서의 섭리를 신뢰하는 것이어야 했다. 그러 나 설령 유아들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해도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 당연했음은 그들을 교회로 받아들인 언약의 날인이 백명의 생명보다 더 귀 했기 때문이다. 모세 역시 그가 다른 동기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러한 비겁한 절차를 묵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우기 이 문제는 확실치 않지만, 나는 그들이 애굽 출발  첫날부터 자녀들에게 할례 베푸는 것을 중단한 것이 아니라 후에 자신들의 사막의 길을 걷게되면서부터였던  것으로 추측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과실과 이에 대한 처벌이 동시에 명백하게 표현되고 있는 셈이다.  요컨대 성경은 할례가 갱신된 것은부단한 장소의 변경 때문에 그것이 과거에 불가능했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약속된 기업을 받지 . 않겠다고 끊어져 나간 저 배도자, 조상들이 소멸되기까지는 40년이라는 세월이흘러야했기 때문인 것으로 말하고 있다.

 

여 기 에 나오는 이유를 명심 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거절했던 온 세대가 멸절하기까지 이스라엘 자손은 광야를 방황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온 기간에 걸쳐 할례가 폐지되었는데. ;그것은 일종의 저주 또는 배척의 상징이었다는 추론을 내릴 수 있다. 물론 죄없는 자들이 이 벌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을 통해서 조상들을 벌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후손들이 이방인이나 속된 사람들과 전혀 다른 점이 없도록 내버려두었기에 그들에게서  자신들이 받아 마땅한 벌을 똑똑히 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모순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먼저 그들은 저주받았지만 그들의 후손은 곧 은총으로.받아들여졌으며 .다음으로  그들에게도 사죄의 소망은 남아 있었다. 특별히 그들은 그들이 속된 민족들과 구별된 다는 근거에서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던 다른 성례가 그들에게서 박탈되지 않았다. 여호와께서는 물론 그들을 배척하시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자비롭게 나올 것을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멸망할 때까지 그들의 후손에게 저주의 상징을 남겨 두시는 것은 유일한 채찍이었다.  요컨대  하나님께서는 그의 은총의 보증을 당분간만 철회하시어 그들이 죽기까지 열쇠를 채워 놓으셨다. 그러므로 이 처벌을 후에 태어난 자손들에게 하는·것은 적당한 일이 아니었지만 거기에는 동시에 보류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할례가 속되게 되지 않도록 하는 뜻에서 명백히 연기 하셨지만  그것을 갱신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서 유월절을 무할례인체  축하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다른 반론을 재기할 사람이 있겠지만 관례대로 하면·그것이 그렇다는 점을 나는 인정한다· 요컨대 하나님 예배 의식의 첫 철차를 밟은 자들을.제외하고는 아무도유월절 식사와 다른 재사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이것이 오늘날 성만찬이 세례를 통해서 교회에 받아들여진사람들에게만 허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 나 여호와께서는 당분간 일상 원칙을 변경하셔서 할례를 박탈한 그들에게 다론 예식에는 참여하도록 하실 수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당시 백성들은 한가지 면에서는 완전히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뜻에서 적절 한 도움을 받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자기 아들에게 ,마음 상한 아버지가 당장 내쫓아 버 리기 위해서 주먹을 휘두르려 하면서도 다른 손으로는 그 를 붙잡는 것과 마찬가지다. 곧 '그에게_위협과 주먹으로 겁울 주려 하면서 도 그와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아버지와 같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에게서 입양에 대한 특별한 보증은 박탈하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서 다른 예식을 박탈하는 것을 아쉬워했던 것 같다. 여기서 그들의 애굽 출발 이후 도중에서 한 건의 할례 지행도. 없었다는 점이 i명백하게 ·기 록 되·어 있지는 않느냐고 반문음 제기할:수도 있다.

 

여기에 대해 나는 이렇게 대 답한다. 곧 간략을 기.하는 뜻에서 모든 사항이 정확하계·.기록되고 있지 는 않지만 문맥을 살펴 볼페 반란 이후 출생자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할 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는-;{J을 알 수- 있다고 그들 대신에 그들의 아 들들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베풀었다는 말씀이 바로 이 뜻이다. 곧 이 때 새로운 백성이 장조되어 악한 반역자들의 대를 이온 셈이나 마찬가지다. 더우기 하나님께서 이 백성이 온 사방으로- 원수들의 포위를'받고있 는.상황에 처하계 될 때까지 그-들에게 할례를 베풀지 않기로 작정하셨다 는 사실온 비 감하고도 가혹한 시련이었다· 요난강을 건너기 전에 ,· 주민들 을 정복해버렸던 바산 땅에서 이 의식을 시행했더라면 훨씬 1안전하고· 편 리했을 것이다.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적들의 듬바구니에 끼어 그들의 횡포 에꼼짝할 수 없게 되기까지 그냥 기다리고만 계시는대 이것온 마치 그가 고의적으로 그들을 죽음에 내맡기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요컨대 그들은 모두들 상처 때문에 맥을 못추고 거의 아무런 저항없이 피바다를 이루고 말았을 것임에 블립없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예를(창34장) 세겜 거민들 에게 할례를 베풀고 그곳에 들어가 쉽게 약탈한 야곱의 두 아들에게서 볼 주 있다. 하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아파 드러누워 있는 판국에 이 웃, 민족들이 그들을 공격해서 그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한다는 것은-얼마나 쉬웠겠는가!

 

그러므로 이것은 앞서 말한대로.  아주 가혹한 시련이었으며 여기에 응한 그들의 신속성은 크게 칭찬을 받아-마땅하다. 하지만 이 장소를  신의 지혜에 따라 일부러  이곳에 정한 것은 그들에게 더욱 더 순종하게 하려는 뜻에서였던 것 같다. 그와 똑같은 명령이 요단강 저편에서 시달되었더라면 그들은 낙담하게 되고 거기서 오는 지연 때문에 본토에 들어가는 것을, 꺼 려 했을지도 모를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곧 하나님의 손에 의해 직접 이끌린 것이나 다름없는 행복한 전조를 통해서 땅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이 한 가지 장애물의 제거를 통해서 성공적인 전쟁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이 마당에서 그들이 그처럼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약속된 땅을 눈 앞에 .둔 그들이었던만큼 ‘그들은 그들의 무할례 때 문에 이 거룩한 땅이 더렵혀지지 않게 하려면 하나님께 다시 성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했을 것이다.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   여기 애굽의 수치가 이야기되는 것은 무할례가 그들을 애굽 사람들이나 다름 없게 만든다는. 다시 말해서 속되고 낙인 찍힌 백성과 같이 만든다는 뜻에서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곧, 이것은. 그들이 이 표적으로 새롭게 .도장을 받을 경우 그들은 다시 하나님의 특수한 소유가.되어 불결한 이]방 민족들과 구별된다는 말씀과 같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이것을 적극적으로, 곧 그들이 더 이상 애굽인들에게 멸시를 받지 않을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그들을 속여 왔다는  해석이다. 이것은 터무니 없는 이야기인만큼 나는 서슴없이 배척하는 바이다. .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그들이 더 이상 그 나라의 신들을 예배한다는 거짓 전가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보다 나는 그들을 짓누르고 있던 견딜 수 없는 혐의를 벗어났다는 뜻으로 본다: 지금까지 그들이 살아왔던 정부의 왕을 반역하고 멍에를 벗어버렸다는 소문은 창피한 것이었다. 더우기. 그들은 하나님께서 부당한 독재에 ·대한 복수자 라는 점을 공공연하게 밝혔던 만큼 그들이 그들의 행동을 위장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구실로 내세운다는 핀찬을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이 · 애굽에  내려가기 전에 그들의 몸에 날인 받은 신령한 선택의 상칭인 할례를 통해서 이 수치를 씻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도망자 취급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따라서 옛날 언약의 갱신은 그들이 합법적인 권위에 도전한 반역자들도 아니요, 그들 스스로 무모하게 달려 나온 사람들도 아니요, 오직 오래 전부터 그들을·특별히 보호하시던 하나님께서 그들의 자유를 회복하셨다는 점을 명백하게 나타냈다·

 

이곳 지명의 의미는,이 수치가 제거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음경의 표피가 둥글기 때문에 끊어낸 표피를 본따서 길갈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저버리고 전혀 불필요한 허구를 쫓는 자들이다. 이 장소를 굴러감이라 칭한것은  하나님께서 거기서 부당하게 그들에게 따라다녔던 수치를 굴려 보냈디 때문이라는 것은 아주 명백한 사실이다. 요세푸스는 ‘ 자유 '를 여기서 예기하는데 쓸데없는 소리요 이것은 그가 법률지식과 히브리어를 모르고 있었다는 말밖에 안된다. 

 

"10. 이스라엘 자손들이~~~ 유월절을 지켰고" ;  여기에는 유월절이 정규적인 날짜에 지켜지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귀절에서 이 시행이 특이한 것이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기에 그들은 할례와 마찬가지로  이것이 40년동안 중단되었다는 결론을 내리는데 그것은 할례 받지 않은 사람이 성스러운 잔치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이 견해를 확증하는 뜻에서 그들은 성경에 제 2년 초 이후 유월절을 지켰다는 기사가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최근에 영원히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이(출 12: 42 ) 갑자기 무시되었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 같다· 요컨대,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 세대에 걸쳐서 지켜야 할 법인 것으로 그들에게 지적되었다. 그런데 만대에 걸쳐 그 그 시행하도록 규정된 이 관례가 단 2년 만에 무효화된다는 것은 얼마나 모순된 일이겠는가 !

 

  그러나 할례가 없었기 때문에 그 예식이 더럽혀지는것을 막는 뜻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것을 지킬 수 없었을 것임에  틀림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곧  이것의 창시초에,할례받지 않온 사람은 아무도 이것을 먹지 말라는 규정이 ·정해져 있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대해서 나는 이미 답변한 바 있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이 율법에서 자유를 얻은 것은(注1) 하나의 특권이었다. 신령한 권위에 따라 율법이 정한 형식의 일부가 폐기 되지않는 한 그들은 계속해서 제사를 드리고 다른 의식적인 예배 행사를 지켰음에 틀림없다. 물론 부정한 사람은 성전 뜰에  들어 갈 수 없었지만·이스라겔 자손들은 할례를 받지 않은 그대로 거기서 제사를 드리고 그렇게 함으로 유월절 양을 잡는 것과· 동등한 일을.시행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율 법의 원칙대로라면 불법적인 일을 행하는 것이 묵인되고 있었다. 모세는 두 번째 유월절 잔치를 언급하고 있는데(민9장) 이것은 다른-목적 때문이다.  곧 그것은 지적하지 않으면 연말에 그 성스러운 잔치를 준수하려 들지 않을 백성들의 무관심과 태만을 간접적으로 책망하는 뜻에서 언급 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비록 하나님께서 만대에 걸쳐 그들의 구원을 해 마다 기념하라고 선포하셨지만 그들은 그 한해가 지나기도. 전에 모든 것을 까마득히 잊고 그 임무를 행하려 들지 않았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들이 자발적으로 충분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을 새로 지적 받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이 귀절은 유월절 시행 이후에 중단되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것이 매년마다 준수 되었지않나 하는 추측을 낳게 한다. 곧 이것은 연말에 가서 이것을 지키라고 당부하신 것은 장차 그것을 정성스럽게 지킬 것이요, 한번 주어진 명령에서 이탈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뜻에서 말씀하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託2)

 

"11.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  그들이 당시 처음으로 밀가루 빵을 먹기 시작했는가 하는 문제는 아주 명확하지 않다. 그들이 거한 땅은 개간하지 않아도 비옥한 땅이었다. 최소한 두 임금의 영토에서는 주민들에게 풍족한 곡식이 있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기서 발견한 이 곡식을 그냥 썩게 내버려 두어 쓰레기로 삼았을리는 만무하다. 물론 그들이 먹은 고기는 제사 지내고 남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밀가루 빵을 완전히 안 먹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들의 기존 음식을 포기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열 지파 가운대 한 지파에게 할당된 지역에서 전체 열 지파에게 충분한 식물(食物)이 생산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모세가 두 지파 만에게만 그 땅을 내어 주어 살도록 한 것은 옳은 계산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아직 열 두 지파에게는 충분한 음식이 없었다. 이것은 특별히 그 땅이 전쟁에 의해서 피폐되었고 마음 놓고 천막을 떠날 수 없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충분히 경작에 관심을 쏟을 수 없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따라서 더 풍요한 공급이 있기까지는 만나가 있어서 그들을 먹일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가나안 땅에서 일어났던 일이요, 그때 그들은 정상적인 음식을 다시 먹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왜 그것을 그날까지 연기했는가 하는 문제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의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곡식을 모으는 데 팔요한 며칠간의 여유가 팔요했으며 안식을 범하지 않는 뜻에서 빵을 굽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축이 가능할 뿐이다. 그러나 비록 이 안식도 중요했지만 전에 거두어 둔 밀을 하루에 모두 빻아 빵을 구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그들은 서둘렀던것 같다.  이것이야 어떻든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필요한 만큼의 공급을 허용하셨다. 갑작스레 순간적으로 사라진 만나는 하나님의 친절을 더 입증한 셈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여기서 이 만나가 구름 속에서 쏟아져 나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섭리에 따라 내려진 일시적인 양식이었다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더욱 분명한 것은 이것을 전 년도의 소출로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대해서 더 이상 이견을 제시할 수 없는 것은 아직 영글지도 않는 당해년도의 소출을 가지고 그렇게 바삐 서두를 수는 없었으며 그렇게 많은 무리를 위해서 그만한 양을 모으려면 한 달가지고는 어림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왜 주석가들이 이처럼 명백한 문제에 대해 그렇게 고민하는지 그 이 유를 모르겠다.

 

"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에~~~~" ; 여호수와는 바로 이 환상으로 인하여 힘을 얻게 되었다· 요컨대 비록 여기서 우리는 놀랄 만한 환상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되는데, 그는 날마다 자신의 직무를 한결같이 수행하고 있었지만 또 다름 격려를 더하는 것은 전혀 무용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천사는 오로지 그의 개인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전체 백성의 확신을 위해서 나타났다. 아니 여호와께서는 먼 장래를 내다 보시며 후손에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그의 자비에 대한 보다 강력한 중거를 제공하시고자 하셨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손으로 거룩한 땅에 심겨지게 되었다고 큰 소리치지만 이 모든 기적을 통해서 전심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신하로서 거기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여간해서 인정 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환상은 제시된 신의 자비를 확고하게 했다는 뜻에서 만대에 걸쳐 유익을 끼칠 것임에 틀림없다.

 

그가·눈을 들어 올렸다는 기록은 이 환상의 확실성을 확증하는대 도움이 된다. 곧 그의 지각은 뭔지 무슨 불분명한 환영때문에 어지럽게 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처음 이 광경은 무서움을 불러 일으켰을 것임에 틀림없다.  요컨대 여호수아는 그 때 공적인 장소에서 떠나 기도하기 위하여 혼자였거나 아니면 그 도시를 정찰하기 위해 혼자 갔을 가능성이 짙다. 나는 ·후자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싶은 생각이다. 곧 그는 어려운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는 뜻에서 어디서부터 공격을 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살피기 위하여 혼자 떨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고 싶다. 그리고 그는 혼자 그 환상을 .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에게 수행원들이 따르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도중에 원수를 만 날 경우에는 싸울 각오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상대로 말하듯이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상대가 천사라는 점을 대답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말을 주고받은 상대를 사람으로 알고 있다가 점점 천사로 깨닫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질문은.이 환상에 대해 더 신빙성을 준다. 그와 동시에 이 말에는 상대가 보통 천사가 아니라 특별한 천사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요컨대 그는 자신을 여호와의 군대의 대장으로 소개하고 있는대 이것은 단지 그의 선민에 대해서 만이 아니라 천사들 세계에서도 역시 대장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는 용어다. 하지만 전자의 견해가 더 정확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비상한 성격의 것을 드러내지 않고 그가 전에 모세에게 하셨던 것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대로 모세가 이 온총을 다른 무엇보다 더 귀하게 여긴 것은 하나님께서 거기서 공개적이고 친근한 방법으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를 구별없이 하나의 천사라고 부르면서도 영원한 하나님의 명칭으로 구별하고 있다.

 

이 사실에 대해서 유능한 중인인 바울은 분명히 그 상대가 그리스도였다는 점을 선언하고 있다.(고전 10 : 4)  그리고 모세 자신도 중보자의 신분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을 요컨대 하나님께서는 송아지 사건 이후(출 32:37), 그가 더 이 상 이 백성의 지도자가 되지 않겠다는 점을 선언하시면서 그와 동시에 그의 천사들 가운대 한 천사를 보넬 것을 약속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한 명이란 전체 천사단 가운데 일원(託3)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대해서 모세가 진지하게 그러지 말아 주십사·하고 애원하는 것은 중보자가 제거 될 경우 하나님께서 자비롭게 나오신다는 소망을 도무지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세에게 자주 나타났던 교회의 대장이요 머리가 여기서 나타나서 힘을 주었다는 것은 신의 은총에 대한 특별한 보장이었다 . 그리고 사실 신의 입양은 중보자의 손길이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서는 결코 확증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14.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 물론 이 부정온 그가 이스라엘 사람도 가나안 사람도 아니 라는 말이요, 따라서 그가 유한한 인간이 아니라는 부정이나 마찬가지지만 그것을 둘째 부분에 대한 대답 곧 여호수아가 그에게 원수 중의 한 명인가 하고 물은데 대한 대답으로 보는 것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사소한 문재요 핵심은 그가 여호와의 군대로 추켜 세우는 선민을 주도하기 위해 오셨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자신을 하나님과 구별되게 제시하는 데서 그의 위격상(位格上) 차이가 암시 되고 있지만 , 본질의 통일성은 파괴되지 않고 있다.  이미 지적한 대로 모세오경에서는여호와(託4.)의 명칭이 자주 우두머리 천사에게 사용되고 있는데, 그는 두 말할 것 없이 하나님의 독생자시다. 그는 진실로 바로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는 중보자의 신분에서 하나님 밑에 있다. 여기서 나는 이 주제에 관한 옛 선배들의 견해를  곧, 그라스도께서 옛날에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나신 것은 후에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셔서 보여주신 신비에 대한 전조였다는 접을 쾌히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당시에 성육신하셨던 것으로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첫째, 성겅 어느 곳에고 충만한 시기가 차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는 기록이 없으며 , 둘째,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인간인 이상 다윗의 자손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에스겔서에 이야기로 나타나 있듯이(겔 1장) 이것은 다만 인간의 형상 뿐이었다. 그것이 본질격인 몸이었는가 아니면 외형적인 형상이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길게 논할 필요가 없는 것은 이 견해에 대한 어느 한 견해만 고집하는 것이 옳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託5).

 

이제 남온 문제는 여호와의 군대대장께서 지금까지 그에게 위탁된 백성을 저버린 일이 없으며 얼마 전까지만해도 요난강 도강을 통해서 그의 임재에 대한 비길 수 없는 전시를 허락하였는데  어찌하여 이제 온 것으로 말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그러나 우리에게 체험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멀리있어 보이는 그의 체험을 실제로 우리가 체험할 경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다’ 라는 표현은 성경에 자주  나오는 관용 어구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가 곧 있을 전투에 대한 그의 도움을 제공하면서 이 전쟁이 행복한 결말로 끝 날 것이 라는 점을 그의 오심으로 약속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여호수아가 드린 경배만 가지고는 그를 분명히 그리스도로 알고 그에게 신의 영광을 돌렸는가 하는 문제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명령을 주시렵니까"  하는질문으로 그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속하는 능력과 권위를 그에게 돌리고 있다.

 

"15.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 이 환상에 또 다론. 성결성을 가미하는 뜻에서 이 위대한 천사는 존경과 경외의 상칭으로 여호수아에게 신을 벗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모세는(출3 : 5) 동일한 명령이 시내산에서 자 기에게 있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의 영광을 제 시하신 것도 바로니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기에 야곱은 자기가 하나님을 더 가깝게 안 곳은 무서문 장소요 하늘 문인 하나님의 집이라는 점을 외 차고 있다(창 26장 17절).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님온 그의 거룩한 종에 게 그의 신발을 벗으라고 명령하심으로써 이 의식을 통해 자신의 임재의 실제성을 입증하고 있으며 그 환상에 대한 의의를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멘 발 그 자체가 하나님 예베에 무슨 특별한 가치를 부여한다는 뜻이 아니 라 이러한 종류의 도움을 동해서 인간들의 연약성이 도움을 받아 그들로 하여금 더욱 더 분발해서 존경을 표하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우기 하 나님께서는 그가 나타나시는 곳을 자신의 임재로 거룩하게 하고 있는데 여 기서 , 거룩한 당이 라는 표현은 어떤 면에서 볼 때 하나님이 자기 · 자신의 거처와 자신의 순수한예배의 ,자리로 선택하셨던 가나안 땅의 닥월성에 대 한 추천장인지도 모론다. 그러7.J에 여러 귀절에 보면 이 땅을 가리켜 • 그 의 안식 .으로 부르고 있다 (시 95:11, 132:11). 본귀철 마지막에 보면 여호수아는 그의 순송에 대한 칭찬을 받고 있는데 이것은 후'손으로 하여금 그의 본을 보고 그 땅에서 순수한 신앙심을 함양하게 하려는 뜻이다.따라 서 가나안 땅을 다론.모든 나라에 비해 극찬하는 데는 일종의 대조법이 암 시 되어 있는 것 같다(託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