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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요한복음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요6:27)

1. 성경 (요6:22 ~ 27)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22)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께서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23)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24)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2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6)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27) 

 

2. 묵상 (Calvin선생의 주석을 요약함)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 ; 그리스도께서 갈릴리 바다를 건너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음을 생각하게 하는 상황을 사도 요한은 기록하고 있다. 배는 한 척밖에 없고,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태우지 않은 채로 배가 떠나는 것을 무리들은 본 것이다. 사도 요한은 또 배들이 후에 디베랴로부터 와서 해변에서 기다리던 무리를 태우고 가버나움으로 건너갔다고 덧붙이고 있다.

 

”배들이 주의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곳에 가까이 왔더라” ; 무리들을 먹이셨던 곳 가까이에 디베랴가 위치해 있다고 설명 할 수도 있는 성구로 조금은 모호한 점이 있다. 사도 요한이 “주의 축사하신 후”를 기록한 것은 불필요한 반복이 아니다.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기도에 의하여 몇 개 되지 않는 보리떡으로 그와 같이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에 대하여 너무나 냉담하고 나태하기 때문에 같은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 우리는 가버나움이라는 동네가 바다 건너편에 위치해 있는 동네가 아님을 밝힌 바 있다. 디베랴는 호수의 가장 넓은 부분에 위치해 있고, 그 다음에 벳세다가 있으며 가버나움은 요단강 입구에서 별로 멀지 않은 낮은 부분에 위치해 있었다. 이제 요한이 바다 건너편이라고 가버나움을 말할 때, 우리는 이 지역이 바로 반대편에 있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되겠다. 오히려 이 바다는 하구가 둥글게 휘어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끼어 있는 만으로 인해서 걸어서 가는 길은 돌아서 가는 길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일반적인 용어로 “바다 건너편”이라는 말을 기록한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 무리들의 생각 없이 몰려다니는 것을 꾸짖으신 것이다. 무리들이 표적을 생각하고 좇은 것은 사실이나 그들은 표적을 다른 목적으로 반복하여 생각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들이 표적 보다도 먹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고 그들을 꾸짖으셨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일에서 마땅히 이득을 얻어야 할 만큼 유익을 얻지 못했다고 말한 것이나 다름 없다.  유익을 얻을 수 있는 참된 방법은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함으로써 그의 가르침과 다스림에 순종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돕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했던 것은 이 세상에서 행복하고 편하게 사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로부터 그의 주된 능력을 빼앗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을 주신 자들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재 창조하고 또 아버지께서 그의 의를 옷 입혀준 성도들을 영생으로 인도하도록 보내심을 받아 사람에게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적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구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나라를 희구하지 아니하고 현재의 생활의 안락에만 마음을 쓰는 자들은 배를 채우는 데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복음에서 십자가의 쓰라림은 제외되고 육신적인 쾌락만을 가져다주는 것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환영해 마지않을 것이다. 과연 우리는 많은 이들이 보다 즐겁게 그리고 자유롭게 살기 위하여 그리스도 편에 서는 것을 보고 있다. 어떤 이들은 개인의 이득을 인하여 또 어떤 이는 두려움을 인하여 또 다른 이들은 그들이 기쁘게 해 주고 싶은 사람들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로 자처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찾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우리는 영생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말씀을 비유적으로 돌려서 새로운 생명에 관계되는 것은 무엇이나 양식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의 능력에 따라 말씀이 우리 안에 역사 할 때에 우리의 영혼이 복음으로 이 말씀을 먹고 영양을 공급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믿음이 영혼의 생명인 것처럼 믿음에 영양을 공급하고 믿음을 증진시키는 모든 것을 ㅇ야식에 비유하고 있다. 

 

“인자는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 주님은 앞의 문장을 재 확인하고 있다. 아버지께서는 이러한 목적으로 그를 인치셔서  우리에게 보내셨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여기에서 그의 영원한 본체를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맡겨진 사명이 무엇이며 우리를 향한 그의 직책이 무엇이며 그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찾고 구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