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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요한복음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요6:20)

1. 성경 (요6:16 ~21)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16)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17)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18)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19)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20)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21)

 

2. 묵상 (Calvin선생의 주석 요약본임)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무리가 다 흩어질 때까지 물러나 계시기를 원하셨다. 우리는 대중의 소요를 진정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고 있다. 그들이 의도했던 것을 공개적으로 실행에 옮기려 했다면 그 소문이 곧 퍼져서 나중에는 그 오점을 주님에게서 지워버리기가 어렵게 되었을 것이다. 반면에 다른 복음서 기자가 기록하고 있듯이 주님께서는 기도하는 중에 그때의 시간을 보내셨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무리들의 격정적인 요구를 시정해 주시도록 기도하셨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바다 위로 걸으셔서 호수를 건너신 것은 제자들의 믿음을 강건케 해 주셨다. 이것은 다음날 무리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능력으로 오셨음을 쉽게 알 수 있게 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을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 한가운데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릇된 판단이다. 그 이유는 이 이적이 행해졌다고 말하는 누가는 베세다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그 베세다는 가버나움과 같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폴리니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 지역의 갈릴리 바다의 폭은 10Km쯤이며 길이는 20Km가 넘는것으로 기록하고 있고 사도 요한은 십여 리쯤이라고 기록한 것을 종합해 보면 제자들은 목적지를 향해 간 것이 아니라 이리 저리로 몰려다녔다고 추정한다. 어쨌든 복음서 기자는 제자들이 위험에 봉착해서 근심하고 있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다는 것을 알려 주려 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잔잔하고 평탄한 항해를 하는데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이와 같이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은 이상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종종 그의 백성을 심각한 위험 가운데 몰아넣으심으로 그들이 곤경에서 구원을 받는 중에 주님을 더 잘 그리고 더 가까이 알아볼 수 있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 하거늘” ; 다른 복음서 기자들은 제자들이 두려워한 원인을 유령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유령이 우리 앞에 출현했을 때 경악과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마치 거울을 비쳐 주 듯한 말씀이 없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지식이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시는 신성 앞에서 우리의 상상은 그리스도 대신에 자신의 상상에 빠져들게 되고 곧 자신을 위한 우상으로 만들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그의 음성에서 본질적인 지식을 얻게 되고 기쁨과 평안이 우리 마음에 비취게 된다.

 

그리고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신 말씀은 매우 무게가 있는 말씀이다. 이러한 말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존전에서 확신 가운데 평안과 안정을 유지할 근거가 있음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제자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다. 그 이유는 요한복음 18장 6절의 말씀처럼 같은 말씀을 듣고도 ‘땅에 엎드러진 악한 무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경우의 차이는 주님께서는 잃어 버진 자와 불신자의 심판을 위하여 보냄을 받은 재판관이 되신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