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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요한복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6:35)

1. 성경 (요 6:28 ~40)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29)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30)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3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32)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3)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5)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6)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7)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8)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39)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40)

 

2. 묵상 (Calvin선생의 주석 요약본임)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 그리스도께서는 현세의 안락함보다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추구하도록 권고했으며, 그리고 다른 곳에서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들은 땅의 일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묻지 않는 사람들은 일의 종류를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부분적으로 실수를 범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무엇이든지 신령한 생활을 위해서 필요한 것을 아들의 손에 의해서 우리에게 냐려 주신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첫째로 그들은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를 물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언급할 때, 그들은 방향 없이 방황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그들의 무지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들은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책망할 자격이 없다는 듯이 거만스럽게 그리스도께 불평을 늘어놓고 있다. “당신은 우리가 영생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왜 우리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일을 우리에게 하라고 말하십니가?” 라고~~~.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고 인정하시는 일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 사람들은 일에 대하여 물었지만 그리스도는 그들을 한가지 일, 즉 믿음으로 유도하고 있다. 이 말씀에서 주님은 사람이 무슨 일이든 믿음이 없이 행하는 것은 쓸데없는 헛된 일이며 반면에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은 믿는 것 한가지 뿐이기 때문에 믿음 하나면 족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믿음과 인간의 염려와 노력이 암시적으로 비교되어 있다. 주님은 마치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믿음이 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함으로써 헛되이 분주하기만 했다. 그들은 목적지까지 꾸준히 코스를 따라 뛰지 않고 코스를 벗어나 무조건 달리기만 했던 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말씀으로써 사람이 비록 평생 동안 노력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그들의 생애를 지배하지 않는다면 헛된 일에 분주할 뿐인 것이다. 이 말씀에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릇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만들어 주시는 것을 가르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고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은 사랑이나 다른 신령한 행위를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믿음 그 자체 안에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믿음에 의하여 그리스도를 소유하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에 믿음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일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상상했던 분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이 이미 보았던 표적을 모두 잊어버린 것이 틀림없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세상적인 행복에 대한 희망을 약속했다면 그들은 계속해서 주님을 찬양했을 것이며, 틀림없이 그를 하나의 선지자와 메시아로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환영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들을 너무나 육신에 빠져 있다고 책망했기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주님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처음에는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흠을 덮어 주시는 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은 열심히 복음을 붙들었고 증거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육체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고 하자,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고 복음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묻고 있다. 결국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요구대로 응하지 않고 그는 이제 그들의 선생된 자리를 중지하게 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 그들은 그리스도의 질책에 대항하여 만나를 가리켜 하늘에서 내려준 떡이라고 영광스러운 이름을 만나에 붙여 줌으러써 맞섰다. 그러나 성령께서 하나님이 돼지 떼를 먹이듯이 그의 백성을 먹이시고 더 이상 귀한 것을 그들에게 주지  아니함과 같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금 베풀어 주시는 영혼의 신령한 양식을 악하게 거절할 때 그들에겐 핑계할 것이 없는 것이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 만나는 육신적 양식인데 하늘의 떡이라고 불리웠다. 참으로 하늘에서 내려준 떡으로 간주되어야 할 떡은 영혼에 신령한 양분을 공급해 주는 떡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서 하늘과 세상을 대조해서 말씀하고 있다. 이 성구에서 진리는 다른 곳에서와 같이 숫자로 비교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참 생명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생명으로 인해서 인간은 다른 짐승과 다른 것이며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으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 “하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떡이다 만나에는 그런 요소가 전혀 없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주님은 그가 모세가 했던 것보다 사람에게 훨씬 더 좋은 것으로 먹이기 위해 아버지께서 자기를 보내신 것이라고 하였던 말씀을 재 확인하고 있다.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 그리스도의 독단적인 자만심을 송사하기 위하여 빈정대는 투로 그들은 말하고 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그들이 경멸하는 투로 요구했던 그 떡이 그들 앞에 있다는 것을 주님은 그들에게 알려 주고 있다. 그리고 나서 주님은 그들을 책망하고 있다. 첫째로, ‘우리가 생명을 어디에서 구해야 할 것인가?’ 에  대한 것이고, 둘째로, ‘우리가 그 생명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는가’ 에 대한 말씀이다.  이 성구가 우리에게 주는 단순한 교훈은 ‘우리 영혼이 소위 내재적인 능력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그리스도로부터 공급받는다’는 사실이다.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 이제 주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라고 말하며 먹이는 방법을 밝히고 있다. 왜냐하면 믿지 않는 자들은 항상 텅 빈채로 남아 있으므로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떡이 되신다는 것은 그들에게 아무런 효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주린 상태로 우리를 채워 달라고 구하면서 나아갈 때에 우리의 떡이 되어 주신다. 그리스도에게 나아가는 것과 믿는 것은 여기서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 누구든지 그리스도께로부터 생명을 얻기 위하여 그에게 나아가는 자는 아무 것도 부족을 느끼지 않을 것이요 생명 보전에 필요한 모든 것으로 완전히 충족된다는 것익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 주님께서는 이제 그들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선물을 악의적으로 거절한데 대하여 그들을 꾸짖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 줄 알면서 이를 거절하는 자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 주님께서는 그들의 믿지 아니함이 그의 교훈을 약화시키지 못하도록 그들의 완악한 원인은 그들이 버림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양무리 밖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주님께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라고 말씀하실 때, 우리는 모든 사람이 다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다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성령의 효능으로 그의 택한 자 속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들 중 아무도 실족하지 않는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주신다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서는 자기가 택한 자들을 거듭나게 하셔서 복음을 순종하도록 내게 주신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 이 말씀은 경건한 자들에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에게 나아가를 수 있는 분명한 길이 있다는 것을 확신시키고, 또 그들이 주님의 신실하심과 보호하심에 자신을 맡기는 즉시 친절히 그들을 영접해 주신다는 뜻에서 믿는 자들을 위로하시기 위하여 부언한 것이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이는 우리가 헛되이 그리스도를 찾지 않는다는 내용의 말씀을 재확인해 주는 말씀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일로써 믿음에 의하여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것임을 보여 주시며 또 그의 아들을 정하여 우리의 구원의 감독자를 삼으시는것이다. 그러나 아들의 유일한 목적은 그의 아버지의 명령을 이루는 것이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 ; 여기에서 우리는 복음의 가르침에서 유익을 얻지 못하는 모든 이는 버리운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에 실족되어 많은 사람이 멸망에 이르는 것을 보더라도 절망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사람들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복음은 언제나 택한 자들을 구원으로 모아 들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 다시 말해서 “나로부터 취하여 감을 당하거나 멸망당하는 것을 허락치 않겠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에서 주님은 자기가 우리의 구원을 그저 하루 이틀 동안 지켜주는 분이 아니요 끝까지 우리를 보전해 주시고 말하자면 처음 출발 때부터 끝나는 때부터 끝나는 지점까지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약속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마지막 부활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 하나님의 선택 그 자체는 감추어진 비밀이다. 주님께서는 그가 우리를 영화롭게 하는 부름에 의해서 이를 나타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