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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요한복음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요6:51)

1. 성경 (요6:41 ~ 51)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41) 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4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43)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44)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45)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46)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7)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8)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49)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0)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51)

 

2. 묵상 (Calvin선생의 주석 요약본임)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워 종의 형태를 취하셨기 때문에 영광의 주를 멸시한다면 우리는 아주 악랄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종의 형체로 취하신 것은 오히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보여 주는 것이며 그의 놀라운 은혜에 대한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령한 위엄은 그 갖가지 광채를 발하지 못할 정도로 육신의 낮고 천한 외모 속에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다만 무지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그의 영광을 볼 만한 눈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도 매일 두 가지 면에서 죄를 범하고 있다.

 

첫째로, 우리가 다만 육신적인 눈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뛰어난 양상을 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장애가 된다. 우리는 우리의 죄로 가득찬 안목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가르침을 왜곡시킨다. 따라서 우리는 거짓된 해석자가 되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여러가지 허위와 거짓된 것을 붙잡음으로써 복음을 혐오하기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세상은 고으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배척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수군거림이 믿음이 있고 교회를 대표한다고 자부하던 유대인들 사이에서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우리 위치로 내려 오실 때 경건한 마음으로 그를 영접하도록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오실 수록 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그에게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너릐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 주님은 마치 다음과 같이 말씀하심과 같다 ‘내 가르침에는 너희 감정을 상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너희는 버려진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이 너희의 병든 영혼을 자극하는 것이다. 너희는 복음에 대한 취향을 잃었기 때문에 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 그리스도께서는 비록 복음의 가르침이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이 전파된다 하여도 그것이 모든 사람에 의해서 깨달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마음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선물인 것이다.  한마디로 줄여서 말하자면, ‘많은 사람이 복음에서 뒤로 물러선다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으로 예비시켜 주지 않는다면 자기 스스로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마치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 것처럼 자원하는 사람만 이끌림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된 것이다. 사람이 기꺼이 하나님을 따를 때 그것은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결과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도록 그 마음을 감동시킨 것이다.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 즉” ; 내적인 마음의 깨우침을 말한다.이사야서 54장 13절과 예레미야서 31장 34절을 인용한 것임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 믿지 아니하는 자는 모두 버리운 자로서 멸망에 넘겨진 자라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모든 자녀와 생명을 유업으로 받은 자들을 그의 제자로 삼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그리스도께서 앞서 사람이 이끌리지 아니하면  믿을 수 없다고 언급하신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성령이 역사하시는 은혜에 이끌리면 사람은 반드시 믿게 된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꺼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른다면 그것은 은혜를 인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을 인간에게 나타내는 직분은 자기에게만 속한 직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  앞의 문장을 설명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진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에 우리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거울로 보듯 또는 살아 있는 형상을 보듯이 보기 시작한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 주님께서 전에 자기를 우리의 영혼을 살찌게 하는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지만 이제 그 말씀을 더 잘 설명하기 위해 이 떡과 옛날 만나를 다시 한 번 대조시키고 있다.

 

”나는 하늘로 내려온 산 떡이니” ; 주님은 같은 것을 자주 반복하고 있다.

 

”나의 줄 떡은” ; 주님께서 말하고 있는 생명을 부여하는 이 숨은 능력은 신의 성품을 가리키는 것으로 주님은 이제 두번째 단계로 와서 이 생명이 자기 살 속에 거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저 살 속에 담아 우리 앞에 나타내셨다는 것은 그의 뜻이 아닐 수 없다 전에는 살 속에 죽음의 자료 밖에는 없었는데 이제 주님의 살 속에 영원한 생명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생명을 베풀어 주셨다. 그는 우리를 그의 나라의 비밀로 끌어 올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우리를 구름 위로 불러 생명을 누리게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 땅 위에다 생명을 베풀어 주셨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살은 생명을 줄 수 없다. 그리고 그 살은 죽을 수 밖에 없으며 지금도 살 그 자체는 죽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영혼에 생명을 공급하는 것은 전혀 살의 소관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은 생명의 원천이 되는 것처럼 주님의 살은 그의 신성 안에 본래부터거하는 생명을 우리에게 부어주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것은 ‘생명을 준다’, ‘살려 준다’고 불리우는 것이다. 다른데서 빌린 생명을 우리에게 교통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삶의 이유, 즉 의를 고려한다면 이것은 전혀 모호한 이야기가 아닌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