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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요3:29)

1. 성경 (요3:22 ~ 30)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22)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23)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24)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25)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26)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7)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28)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29)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30)

 

2. 묵상

유월절에 그리스도를 찾아온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통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말씀과 함께 하나님의 대속의 은총에 대하여 말씀을 하신 것을 사도 요한은 증거 한 이후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세례를 베푸심과 세례 요한의 세례를 베푼 것을 그리고 요한의 제자들이 한 유대인과 정결 예식에 대한 변론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왜 성령께서 사도 요한으로 하여금 이 기사를 기록하게 하셨을까?

 

이 본문은 오늘의 지상교회의 교역자들이 교회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유대인은 전통적으로 그들이 갖고 있는 정결 예식이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과 세례요한이 베푸는 세례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들도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논쟁을 하는 경솔한 모습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또한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세례 요한에게 예수님의 세례 베푸시는 것에 대하여 경계심을 드러낸다. 

 

이에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서 주신 바가 아니면 그 이상 높아지거나 낮아질 수 없음을 27절에서 제자들에게 답한다. 신랑이 신랑의 친구들을 들러리로 초청하는 것은 신부를 친구들에게 양보하기 위함이 아니라 신랑의 결혼식을 영예롭게 하기 위함인 것 같이 세례 요한의 역할은 마치 신랑이 초청한 들러리와도 같이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이말씀은 오늘의 교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교회를 맡은 사역자는 교회를 약화시키고 정복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고 교회를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여야 함을 제일의 사명임을 깨달아야 한다. 마치 세례 요한처럼~~

 

그러나 오늘의 나의 조국 대한민국의 지상교회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낸다는 미명 하에 교역자 자신의 이름을 내는 것을 많이 보게 되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낸 하나님의 사자였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에 맞게 온전히 청종했다.  오늘의 지상교회를 맡은 교역자는 세례 요한처럼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내주 하시는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서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해야 한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