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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요4:9)

1. 성경 (요4:1 ~9)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1)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2)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3)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4)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5)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6)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7)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8)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9)

 

2. 묵상

사도 요한은 유대땅에서 세례를 베풂을 세례 요한의 세례 베풂과 공동 성역을 기록한 이후 그리스도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다른 복음서에서 누락된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의 기사를 기록하기 위하여 왜 사마리아를 향하셨는지를 4장 1절로부터 기록한다.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주님이 들으신 후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는 여정은 주님께 악한 생각을 품고 있는 그들을 아셨기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역을 위하여 갈릴리로 가시려 했음을 사도 요한은 기록한 것으로 이해된다. 주님은 이스라엘의 잃은 양을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노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의 십자가의 사역 이후 부활로 인하여 복음의 문이 열리기까지 잃어버린 양을 모으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님에게 주신 책무였기에 주님은 갈릴리로 가시기를 원하셨다. 

 

주님의 여정을 기록하는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세례에 대하여 기록함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받는 세례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공한다. 주님은 그의 성령에 의하여 내적으로 우리에게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시며 제자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게 하심은 세례는 세례를 베푸는 사람의 인격에 달린 것이 아니라 ‘세례의 주’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목사에게 세례를 받든지 그리스도께서 친히 손을 내밀러 우리에게 세례를 베푸신 것과 똑같음을 사도 요한은 기록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사역자의 악덕이나 인격과는 무관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5절에서 소개되는 “수가라 하는 동네”는 세겜의 엣날 이름이다. 사도 요한의 생존 시에는 아마도 세겜이 수가라고 불리어진 듯하다. 이를 뒷받침 하려는 사도 요한은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주님은 그의 여정 중에 사마리아를 가로질러 가시던 중에 목이 말라 갈증을 느껴서 수가성으 우물가에 앉으사 갈증을 해소하기를 원하셨다. 마침 물을 길러 오는 한 여인과 대화를 시작하시면서 눈에 보이는 물과 영적인 물과의 차이를 말씀하시려 하신다. 

 

그러나 그 여인은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라고 반문하며 거절한다. 이는 당시의 유대인들이 사마리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사도 요한은 기록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외래 민족들과의 피가 섞인 찌꺼기와 도 같은 존재로 여겼으며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더럽혔던 폐역한 이들과 멸시의 대상이었다. 그런 사마리아를 주님은 가로질러 가시는 여정이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그의 본 성대로 말하고 있으며 누구나 사람은 존경받기를 원하는 존재임을 생각할 때 그의 태도가 이상 할 것은 없다. 자신의 악덕과 악행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는 고질적인 병이 인간에게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이런 고질적인 것을 제거해 주시지 않으시면 인간은 교만에서 벗어날 수가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오늘의 본문에서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수가성의 우물가의 여인은 메시아를 만났다고 고백하는 사람임을 성경은 보여준다. 당시의 유대인들의 거짓된 열성은 이유를 불문하고 사마리아인들을 멸시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았다. 죄로 얼룩진 인간은 바로 볼 수 없음을 깨닳아 내주 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 마음의 눈을 밝히사 믿음의 세계를 보로보는 은혜 주실 것을 간구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