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alvin선생주석/빌립보서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빌4:17)

1. 성경 (빌4:8~23)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8)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9)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0)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1)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2)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3)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4)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5)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6)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8)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19)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20)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21)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22)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23)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8.  종말로," ;  이제 생의 전반적인 분야와 관계된 일반적인 권면을 한다.

 

첫째로 바울이 명하는 것은 "참되라"는 것인데 양심의 총화와 그 열매를 의미한다.

둘째는 "경건하라" 것이다. '토 셈논' 은 모든 세속적인 불결을 버리고 우리의 소명에 따라 값있게 걸어가는 덕을 가리킨다.

세째로 '옳으며"라는 것은 사람 상호간에 교제를 가질 때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거 나 속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네째로 "정결하며" 라는 것은 생활의 각 분야에서 순결할 것을 말 한다. 그러나 바울은 이 모든 것들을 사랑하게 되도 록 이것들이 주님께 합당한 것들이라면 힘쓰는 일이 없다거나 칭찬을 받을 만한 정도에 이르지 않는다면 모두가 충분치 못할 것으로 알았다. 나는 '프로스피레 카이 유폐-마' 란 말을 이러한 의미로 해 석한다.

 

"무슨 기림이 있든지" ;  이 말은 어떤 칭찬할 만한 것을 말한다. 도덕이 부패한 가운데서는 판단력이 매우 굳어져서 종종 비난해야 할 만한 것을 칭찬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 한 분만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든지 영광을 돌리는 것을 금하고 있으므로 사람들 가운데서라면 참 칭찬이라 할지라도 바랄 만한 것이 못된다(고전 1 : 31 ).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아름다운 행동을 통해서 칭찬이나 찬송 받기를 힘쓰라고 하거나 산람들의 관단을 따라서 자기들의 생활을 조절하라고 하지 않고, 스스로 칭찬을 받을 만한 아름다운 생활을 하여서 악한 자들과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조롱하고 비난하고 있다. 할지라도 오히려 그들의 아름다운 생활을 칭찬하도록 하라고 말하고, 있다.

 

헬라어 '로기제스타이'가 라틴어 '코키타레'로 사용되었는데 이 의미는 "생각하다' 이다. 생각이 우선하고 행위는 그 다음에 따라 나온다.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 , 바울은 여러 말들을 나열하여서 그 말의 간결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이것은 너회 가운데 나의 교훈이요. 가르침이요. 나의 말하는 바이었다"는 뜻이다. 반면에 위선자들은 단지 의식만 주장 했었다. 자기들이 철저히 받아들였고 감화를 입었던 거룩한 교훈을 포기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본 바를" ;  바울이 전한 바 교훈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그가 단지 입으로만 전한 것이 아니고, 그의 생활로써 전했기 때문에, 그 생활의 방정함으로 인해서 그의 가르침이 권위를 얻게 되었다는 점이다. 반울은 입으로만 아니라 자기의 생활로 덕을 보연 교인들의 지도자와 스승이 됨 으로써 그의 권면에 권위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 , 바울은 하나님의 평강에 댄해서 이미 말을 했다. 여기서는 평강의 창조자가 되시는 바로 그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함으로써 자기가 말했던 것을 더욱 확고하게 다지고 있다. 바울은 그들에게 만약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을 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사 범사가 잘 되고 형통케 하여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 :라고 말한 바 있다.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  바울은 이제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자기 마음의 감사를 말한다. 그들은 마치 우리의 수고가 멸시를 당하거나 그 필요성을 깨닫지 못할 때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하지 않고, 구제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들은 에바브로디도 편에 바울에게 그의 쓸 것을 보냈다. 바울은 그들의 선물이 자기에게 만족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그들이 자기를 돌봐줄 수고를 아끼지 않을 만한 새로운 용기를 얻었음을 기억했다고 하고 있다. 바울은 겨울 동안에는 감추어져 있었으나 봄에 싹이 나기 시작하는 나무에다가 그들의 '속에 감추어져 있던 힙'을 비유했다. 그러나 그들이 과거헤 무관심했던 것을 꾸짖는 것으로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수정하고 누그러뜨리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의 전에는 자기에게 관심이 있었으나 시대적인 형편이 즉각 자기에게 친절을 베풀만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이러한 외면적인 환경을 나무라고 있다. 나는 '에프 호'란 귀절이 바울의 인격을 지적하는 것이라 '본다. 왜냐하면 이것은 매우 제한된 의미를 가치고 있으며, 또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바울이 사용한 문맥에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 이것은 그의 영이 무기력 하고 역경으로 좌절되었다고 추측할 만한 생각들을 미리 앞질러서 바로잡는 두번째의 경우이다. 바울의 지조와 관용이 그를 생활의 표준으로 삼고 있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알리어진다는 사실은 매우 중대한 일이었다. 따라서 위로를 받게 되어서 앞으로도 궁굅함을 인내함 으로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만족을  바울은 그들의 선물로 누리는 사람은 결코 가난한 자라고 생각할 수 없으므로 여기 말한 궁굅은 성격을 가리키는 것이다.
 
"내가 어떠한 형편에든지" ; . 이 말은 내 형편이 어떻든지 나는 그 형편에 만족한다는 뜻이다. 이는 무엇 때문인가? 성도들은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물질의 풍성함을 만족하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만족을 누린다. 이들은 매사를 하나님의 뜻으로 관단하고, 자기들의 생활을 하나님의 섭리와 그가 선하게 여 기시는 대로 지배를 받도록 힘쓴다.
 
"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 .바울은 행운에 처할 줄도 불행에 처할 줄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대조를 보여주고 있다. 행복은 마음을 정도 이상 부풀게 하고, 반면에 불행은 기가 꺾이게 한다. 바울은 이러한 두 가지 잘못된 형편에서 자유롭게 되었다고 한다. 바울이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라고  한 것은 인내로 비천을 견디어내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페리슈에인' 이란 말을 두번 사용 했는데,  첫번째는 남보다 더 나아지다(to excel)의 의미로,  두번째는 풍성해지다(to abound) 의 의미로 사용하여 서로 대조를 이루어 놓았다. 현재의 풍성함을 어떻게 적당하고 적절하게 사용할 것인지를 아는 사람은, 감사할 줄도 알고 주께서 기억하실 때에는 모든 것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의 능력에 따라 형제들에게 나누어 줄 뿐만 아니라 교만해지지도 않음으로써 존귀히 되는 것과 풍부에 처하는 것을 배우는 자가 된다.   

 

이것은 매우 뛰어나고 진귀한 덕이요: 가난을 견디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바울이 가졌던 지식을 간구하도록 하자: 또한 가난을 견디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자기들의 재물을 빼앗겼을 때 슬퍼하거나 무거운 짐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하자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바울은 매우 큰 자랑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교만이나 어리석은 자랑으로 사람을 높여주는 경우와는 다르다. 바울은 자기가 이러한 꿋꿋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그리스도로 인한 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 의미는 다음과 : 같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요. 내 자신의 힙 으로가 아니라, 이는 그리스도가 내게 능력을 공급하여 주심이라.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연약함을 깨달아 오직 그의 능력만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어서 무적의 사람으로 만드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울이 모든 것이라고 한 것은 자기의 소명에 속한 것들의 범주에 속한 것들만을 의미한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가~~~~ 잘 하였도다" ; . 어는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양쪽에 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바울의 행동은 얼마나 신중하고 조심성이 있는가!  바울은 자기의 확고 부동함을 당당히 말함으로써 빌립보 교인들이 그는 궁굅으로 인한 고생 때문에 넘어졌다는 생가을 갖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바울은 이제 자신의 너무 강한 말로 인해서 교인들의 친절을 경시하는 인상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바울은 무자비함이나 완고함을 나타내려 함이나 교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동시에 바울은 다른 어떤 그리스도의 종이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그를 도와주기를 지체하지 말라는 것도 가르쳐준다.
 
"15. 너희도 알거니와" ; , 바울은 가끔 빌립보 교인들에게서 무엇인가를 받았으므로 나는 이 귀절이 그 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다른 교회들도 자기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었다면 바울은 매우 탐욕적인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의 깨꿋함을 보여줌으로 그들을 칭찬하여 주고, 또한 그들을 칭찬함으로써 다른 교회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고 있다. 바울이 보여준 예를 통해서 보는 대로 우리는 받는 일에 너무 치중하여서 다른 사람이 우리를 온당치 못하게 여기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바울이 "너희도 알거니와"라고 한 것은 "내가 다른 증거들을 찾을 필요가 없다. 이는 너희 자신들도 아는 바이기 때문이다 라는 의미이다. 바울이 이 말을 한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해 야 할 일을 다하고 있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종종 그 일에 ( 돕는 일) 더욱 너그럽게 되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너그러운 마음씨는 다른 사람들의 비판을 능가하는 것이다.
 
"주고 받는 내 일에" ; . 바울은 금전 문제에 받는 것과 소비하는 것 두 분야가 있다고 말한다. 이 둘은 서로 평행을 이루어야 한다. 이 성질이 바울과 교회들과의 사이에서 설명되고 있다. 바울은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한편 교회들은 바울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공급할 책임을 가지고 있었다. 바울은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너회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 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고전 9 : 11 ) 그러므로 다른 교회들이 바울의 쓸 것을 공급하였다. 할지라도 그것은 무료로 거저 주는 것이 아니고 다른 교회들도 바울에게 복음으로 빚을 지고 있었으므로 단순히 자기들이 빚진 것을 갚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다른 교회들이 자기를 위해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교회들이 힘이 미치지 못한다고 하면서 사도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이 얼마나 비열한 짓인가? 무슨 근거로 이렇게 배은 망덕할 수 있는가 !  이와는 반대로 큰 친절과 관용을 가지고 그들의 몰인정한 처사를 견디고 더 이상 날카롭게 꾸짖지 않는 이 거룩한 사람의 유순함이 얼마나 위대한가 !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 . 바울은 또다시 지나친 탐욕을 가진 자라는 좋지 못한 평판을 듣기를 거절함으로써 교인들로 하여금 자기들만이 모든 것을 행하고 있다거나 자기들의 친절을 바울이 악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바울은 자기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교인들에게 유익할 것을 구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는 내가 너희에게서 받은 정도 만큼 너희도 받게 된다. 이는 지출은 그만큼의 수입이 되기 때문이다. 이 말의 의미는 재정 문제에 있어서 상호 교환이나 균형의 의미와 같은 것으 로 해석해야 한다..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 . 바울은 내게는 모든 것 이 있다고 하는 말을 통해서 자기가 풍부한 것을 더욱 분명하게 나타내면서, 교인들의 선물이 뚜렷한 증거라고 칭찬하고 있다. 교인들이 바울에게 보낸 것은 그에게 적당한 분량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바울은 그 적당한 분량을 싫증 날 만큼 풍부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그 선물에 놀라운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제물이요. 좋은 냄새를 풍기는 향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나님께 서 우리의 행위를 보실 때에, 그리고 우리 가운데서 아름다운 향기로 기뻐하시고자 할 때에 우리의 친절한 행위가 거룩한 제물로써 바쳐치는 보다 더 나은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

 

이와 같은 뜻으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회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 이니라"(마25 - 40 )하셨다.  그러나 제물로 비유한 것은 이보다 더 중요한 강조점이 있다. 즉 -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의 실천이 단순히 사람들 사이에서만 행해질 문제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 적이고도 거룩한 예배가 된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제물을 참으로 만족해 하신다는 사실을 히브리서에서 읽을 수가 있다(히 13 : 16 ). 그러나 우리의 게으름은 너무도 슬픈 일이다. 하나님께서 제사장의 영광을 가지시고 우리에게 그토록 친절하게 찾아오시어서 우리의 손에 제물을 놓아 주시기까지 하지만 우리의 게으른 손은 거룩한 직무를 버리고 세속적인 데에만 사용될 뿐 아니라 가장 더럽고 부패한 일에 악하게 낭비되고 있다.

 

우리의 물질로 마련한 제물이 있어야 할 제단은 너무도 빈약하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가난하다. 이러한 곳에 물질을 사용하기를 게을리하는 자들은 온갖 사치와 기름진 음식, 별난 장식품, 아름다운 집에다 자기의 물질을 탕진하고 있는 것이다.
 
"19.. 내 하나님이~~~채우시리라" ; . 어떤 사람들은 기구법으로 보고 impleat 로 읽어서 "그에게 채워주옵소서"라고 한다.그러나 나는 이렇게 읽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종에게 보여준 모든 친절은 하나님께 직접 행한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주님의 밭에다 참되게 씨를 뿌리는 자요, 또한 여기에서 확실하고 풍성한 수확이 기대되는 자들이다. 바울은 이러한 자들의 보상이 단지 내세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현세에서도 기대가 되어진다고 약속하였다. 따라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뜻은  "너희가 가난하게 된다고 생각지 말라.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이다 " 라는 것이다.
 
"영광 가운데" ; . 이 말은 '영광스럽게 라는 부사로 생각해야 하는데 그 뜻은 가장 좋은 것으로 혹은 '말할 나위없이 좋은 것으로 이다. 그런데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을 추가하여서 우리가 행한 모든 것들 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것이 되려면 그 이름 안에서 행하여야 할 것을 말해준다.
 
"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 이 귀절은 바울이 편지를 끝맺을 때 사용한 일반적인 감사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바울에게 보여준 선물에 대해서 특별히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자기에게 베풀어준 도움을 생각할 때에 이 때문에 교인들에게 자기가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알았고 이러한 도움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그들이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2.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 . 바울은 이 문안에서 모든 일반적인 성도들, 즉 모든 로마교회를 말한 후에 특별히 그와 가깝게 지냈던  무리인 네로의 집 사람 중 몇 명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것은 주의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모든 죄와 불의를 가라앉게 하는 복음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특별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더욱 놀라운 것은 궁정에서 거룩함이 미친다는 것은 지극하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세네카 (Seneca)  여기에서 말하는 다른 사람들 속에 속한다고 추측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근거가 없는 억측이다. 세네카가 기독교인이었다는 증거는 가장 사소한 것이라도 도무지 찾아 볼 수가 없다. 또한 그는 가이사의 집에 속한 자가 아니라 원로원 의원이었고 집정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