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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빌립보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빌3:15)

1. 성경 (빌3:12 ~ 21)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2)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3)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4)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5)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16)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17)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8)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19)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0)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21)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12.  내가 이민 얻었다. 함도 아니요." ;  바울이 여기서 의도하고 있는 것은 자기가 오직 그리스도만을 생각하고 다른 것을 알려 하거나, 다른 것을 바라거나, 다른 것을 생각하려는 일은 전혀 없음을 빌립보 교인들에게 확신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장애물들을 버렸다고 하는 그가 아직까지도 그 바라는 바를 얻지 못하여 계속해서 바라고 이루기를 위해서 힘쓰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중요한 말이다. 아직까지 자기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보다 더 필요한 말이 또 어디 있겠는가 ?  그런데 바울은 무엇을 아직도 얻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임을 받으면 그 즉시로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요 에베소:2 : 6 말씀과 같이 소망 중에 이미 하늘에 앉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우리의 구원은 소망 중에 바라는 것이므로 그것을 받으리라는 것은 참으로 분명하지만 아직까지는 그것을 소유하는 기쁨을 누릴 수는 없다고, 본다.

 

동시에 바울은 여기서 또 다른 문제, 즉 믿음이 장성하는 것과 앞에서 말한 고난의 장성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바울은 자기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또, 힘써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아직도 여기에 이르지 못했다고 덧붙인다. 무엇 때문일까 ?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전적으로 참여할 때에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만끽하고 그를 완전히 알게 된다.러므로 바울은 자신의 예를 들어서 우리가 전진해야 할 것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란 매우 힘드는 것이므로 오직 이것만을 위해 힘쓴다 할지라도 우리가 살아있는 한에는 완전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한 것이다.그러므로 이 귀절은 바울의 교리를 전혀 파괴하지 않을 뿐더러 그가 의도했던 것을 바로 이해하게 되면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충실하게 감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동시에 우리는 바울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한 놀라운 교훈을 함에 있어서 겸손하게 진행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 ; 바울은 이 구절에서 자기가 지닌 모든 미덕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우리가 이 귀절을 읽을 때 잡힌 바 그것이라고 하든지 잡힌 범위 안에서 라고 하는지 그들 의미는 서로 같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울은 자기가 그리스도를 붙잡도록 그리스도께 잡힌 자였다. 즉 그는 그리스도의 감화와 인도하심에서 졀코 제외된 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바울이 공개적인 선택으로 그리스도를 붙잡았다고 보는 것이 더욱 그 뜻을 분명히 밝혀주는 것으로 본다.
 
"13.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  바울은 여기서 자기의 구원의 확실성에 대 한 의문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아직까지로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는 앞에서 말했던 것을 반복하면서 자기의 부르심의 목적을 아직 이루지 못했으므로 아직도 계속해서 그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고 말한다.  바울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이 한 가지 것 만을 생각한다고 말함으로써 이 문제를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다. 바울은 이제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서 우리가 달려갈 길을 선으로 구별지어 제한해 놓으신 경주장에다 비교한다.

 

그 이유는

첫째로 경주자가 결승점을 향해서 달려가지 않는다면 출발점을 떠나는 것이 아무런 유익이 안됨을 볼 때 우리는 죽을 때까지 우리의 부르심의 길을 달려가야만 할 것이요. 우리가 추구하던 것을얻을 때까지 결코 중단해서는 안되기 때문이요.

 

둘째로 경주자에게는 그 나아갈 길이 선으로 구획이 되어 있어서 방향을 잡지 못해 목표가 없이 헤매지 않고 결승점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게 하는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선이 구별되어 있어서 우리의 나아가는 방향을 빗나가지 않게 되며 하나님은우리가 목표없이 방황하도록 버려두시지 않기 때문이다.

 

세째로 경주자는부담이 없어야 하고 어뗘한 방해에도 달리기를 중단하지 않고 갖은 어려움을 극복해 가면서 자기의 경주를 계속해야 하는 것과 같이,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나 마음이 거룩하지 못한 곳으로 돌아서지 않도록 조심하여서 모든 어지러운 것들에서 자유롭게 되어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드러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것들을 바울은 한 가지 비유: 속에서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자기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한다고 말할 때에는 오락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부지런히 근면하게 힘쓴다는 것을 표현코자 한 것이다. 푯대를 향해서 좇아간다고 한 것은 그의 나아가는 길에 방황함이 없다는 의미아다. 누구든지 의와 구원을 얻는데 대한 교황주의자들의 가르침이 냄새나는 배설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다. 
 
"만일 무슨 일에." ;  바울은 동일한 방법을 사용해서 빌립보 교인들을 겸손하게도 하고 아름다운 소망을 가지도록 일깨워 주기도 하기 위해서, 그들의 무식함을 자랑하지 말고 동시헤 선한 용기를 가지라고 권면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를 기다려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진리를 거스리는 장애물이 얼마나 큰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가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교훈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 방법이 바울은 만일에 우리가 바라는 것을 아직 얻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계시에로 나아가야 할 것을 간접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바울은 우리가 점차적으로 나아가야 할 것을 말하여 줌으로써 전도에 좌절하는 일이 없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다. 바울은 자기와는 차이가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그들이 아직까지 무엇을 알지 못하고 있는지를 나타내 보여주려고 할 때에 동시에 앞에서 언급한 모든 장애물들을 초월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바울은 말하기를 "주께서 한 날에 너회에게 내가 말한 모든 것들이 참 지식과 올바른 삶의 완전한 규범임을 보이시리라 고 한다. 자기 교훈의 합리성과 진실성을 분명하게 확신하는 자가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이러한 말은 할 수가 없다.봉우리는 이 귀절을 통해서 만일 우리와 전혀 한 마음이 되기를 주저하는 자가 있다면 우리는 아직 연약한 형제들의 무지함을 견디면서 그들의 부족은 용서해야 한다는 것도 배우도록 하자. 바울은 자기의 교훈을 확신하고 있었지만 아직 이 경지에 이르지 못한 자들이 점차 깨닫게 되도록 시간을 허락해 주면서 그들을 계속 형제들로 여기기를 그치지 않았다. 다만 바울은 그들이 자기들의 무지함을 떠벌이지 않도록 주의할 뿐이었다. 라틴어에서는 완료형 revelavit를 사용하고 있는데 나는 이것이 모호하고 불합리하기 때문에 반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 헬라어 사본상에도 역시 절'구분에 차이가 있다. 어떤 사본은 두개의 완전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두개의 절로 구분하면 에라스무스가 말한 의미와 같을 것이다. 나는 달리 생각하는데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기를 본받으라고 권면함으로써 그들이 자기와 같은 결승점에 도달하고, 같은 것을 생각하고, 같은 법도대로 행하도록 했다 고 본다.  왜냐하면 바울을 본받아 신실한 생활을 하는 것이 거룩하고 경건한 것으로 일치하기에 용이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진정한 완전이 무엇인지를 아직 알지 못하는 자들이 자기를 본받음으로 진정한 완전에 도달하기를 바랐다. 즉 순전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깨달으며, 곧 그들의 생각이 그리스도께 복종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바울을 본받는 것 안에 순전한 열심, 주님을 두려워 함, 겸손, 자지 잔신의 포기, 양순, 사랑. 하나가 되고자 하는 열망과 같은 모든 미덕이 포함되어 있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모두가 함께 자기를 본 받는 자 되라고 분부한 것은 모두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기를 본받아서 완전에 달하는 목표란 같은 것을 생각하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라고 한 것을 주의하라.  바울의 교훈중에 제일 우선한 것은 교인들이 조화를 이룰 것과 스스로를 확립케 해 주는 규율이었다." 
 
"17.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서 자기의 본을 받아 자신을 순결하게 하기를 작정하고 닮기를 원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 방법을 통해서 모든 욕망의  의심은 사라지고 스스로 다른 사람과 경쟁을 피하게 된다. 동시에 바울 일이 빌립보 교인들 모두가 분별없이 흉내 내는 일이 없도록 보다 분명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18.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 . 바울은 글을 써서 보냄으로 자기가 이전에 빌립보 교인들에게 말했던 것들을 기억나게 하기를 위해서 힘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여러 번 그들에게 주의시킨 것이  오직 선한 의도였음을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 그의 눈물도 역시 자기가 사람들을 시기하거나 증오함에서 또는 누구를 욕하기 위해서나 화가 치밀어서 그 렇게 한 것이 아니고, 그러한 페스트같은 독소로 말미암아 교회가 비참하게 파괴되지 않게 하려는 거룩한 열심에서 하였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악하고 무익한 자들로 인하여 목회자의 위치가 점령당함을 볼 때에 충격을 받고 한숨을 짓게 될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의 눈물은 우리가 교회의 평안을 위해서 간절한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대상을 살펴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바울은 공연하게 교리가 뿌리채 혼들리기를 바라고 있는 자들에게 공개적으로 대적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배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복음의 사깃군들과 방탕한 자들을 말하고 있다. 자기 자신의 유익, 능력을 짓밟는 공개적으로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목회의 능력을 악화시키고 때로는 대적하는 자들보다도 더 많은 해를 끼치는 자들이 바로 이러한 자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경우가 생길 때마다. 그들을 골라내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우리의 단호한 태도로써 그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그만한 탄식을 하도록 하자!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바울이 보여준 예를 통해서 볼 때 정당하다고 할 수 없는 것으로써 우리를 대항하지 못하도록 하자:
 
"여러 사람들이~~~~~~ 행하느니라" ; . 나는 이 귀절이 많은 사람들이 땅의 것 들을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는 단순한 진술이라고 본다. 즉 하나님의 나라의 권세를 깨닫지 못하고 땅의 것에 집착하고 있는 자들이 많이 있다는 의 미이다. 바울은 이러한 사람들을 구별해낼 수 있는 표식을 말해준다 우리가 이것들을 이용하면 쉽게 시험해 볼 수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땅의 것들이란 진정한 거룩을 잊게 하는 세상의 의식적이고 외부적인 요소들을 의미한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이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지 않은 자가 오직 세상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 즉 육적인 행위를 가리킨다고 본다. 이것은 그 다음 귀절을 보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바울은 이런 자들 이란 오직 자기의 영광과 안일,그리고 유익만을 원하고 교회를 부홍케 하 는 데는 게을리하고 있다고 책망한다. 우리를 대항하지 못하도록 하자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 ;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를 구속의 모든 신비로 설명한다. 이들이 이유로 드는 것은 본문이 말하고 있는 자들은 율법을 전파함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얻는 축복을 받지 못하게 한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십자가를 피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위험에 처할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이웃으로 간주되고 있는 동안에는 오히려 복음에 가장 나쁜 원수였었다고 하는 보다 일반적인 뜻으로 본다. 왜냐하면 바울은 모든 복음의 전파를 십자가라는 말로 의미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바울은 다른 곳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고후 5:17:) 고 말하고 있을 것이다.
 
"19.  저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 . 바울은 여기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더욱 스스로 근신하여 그러한 자들의 파멸에 빠져들지 말아야 할 것을, 그 위험성에 놀라, 멸게하는 방법을 사용해서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무익한 것들을 보여준다거나 여러가지 말로 나타내는 것은 종종 일순간이나마 우리의 순수한 눈을 뜨게 하여서 그리스도의 가장 좋은 종으로까지 만들어 주기도 하므로 사도는 큰 신념을 가지고 교인들이 이제 가지게 된 영광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바꾸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저희의 신은 배요~~~~" ;  바울은 그들이 할례와 다른 의식들을 주장하는 것이  율법에 대한 열심 때문에 그렇게 행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므로즐겁고 귀찮은 일이 없이 살기를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바울 그리고 바울과 같은 자들에 대해서 심한 분노로 불 붙고 있다는 것과 또 이 분노를 끓고 있는 것과는 또  다른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가 준수하게 선포되어질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의 안일함과 유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분노를 달래려고 부패한 요소들을 가지고 복음을 변절시킨 것이다.
 
"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 이 말씀은 모든 헛된 모양들을 다 뒤집어 놓고 복음의 사역자들이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을 제시하여 준 다음 그리고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서 땅 위의 것에만 붙어 있고 하늘로 오르지 못하는 그들의 모든 대상물들을 간접적으로 바난하고 있다. - 바울은 하나님의 영적인 나라 밖에는 아무것도 값있는 것이 없다고 하는 데 이는 신자들이 이 세상에서도 천국생활을 이끌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의 의도는 그들은 땅에 있을 생각을 하는 자라 그러므로 하늘에 모인 자들은 그들과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 살 동안 불신자들과 더불어 섞여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쭉정이는 알곡보다 주님의 창고에서 더욱 확실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이 땅위의 생활에 있어서 일반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으므로 우리에게도 역시 먹을 것과 마실 것 그리고 다른 일용품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이나 생활은 하늘에서 거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세상을 속히 지나가야 하기 때문이요,  또 한 가지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살 수 있도록 세상에 대해서는 죽고 주님에 대해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귀절이 가장 위로를 주는 말씀이라는 것은 누구도 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로서는~~~~" ;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것을 우리 그리스도와 가지는 연합을 근거로 증명한다. 왜냐하면 구성원들이 자기들의 머리 되신 주님과 떨어지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붙잡기를 원한다면 그는 하늘에 계신 분이므로 우리의 마음도 이 세상 밖에 거해야 한다는 것은 필연적이다.  더우기 우리의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도 역시 있는 것이다(마 6: 21). 우리의 축복과 영광이 되시는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도 그와 함께 높은 곳에 거하도록 하자, 이런 이유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구원하는 자 라고 표현했다. 구원은 어디에서 우리에게 오는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구주로서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의 일들 취하는 것은 합당치가 않다. 우리의 영혼이 하늘에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볼 때 구원하는 자라는 말은 문맥에 잘 어울린다. 왜냐하면 오직 이곳으로부터만 구원의 소망이 우리에게 비춰오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심이 악한 자들에게는 두려움이 될 것이므로 그들의 마음은 하늘에서부터 돌이켜 다른 곳을 향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가 심관주로 오실 것을 알고 있으므로 할 수만 있다면 가능한 그를 멀리 떠나려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오심이 자기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알고 기다리는 경건한 자들에게는 바울의 이 말씀은 그들에게 가장 감미로운 위로가 될 것이다. 또한 이 말씀은 이 말을 들을 때 두려워 떠는 자는 불신자라는 분명한 증표를 보여주기도 한다. 로마서 8장을 참조하라.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헛된 욕망을 따라간다고 할지라도 신자들은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만족하라고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귀절에서 이 땅에 일들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데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배운다 이제 이 귀절은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갇혀 있거나 어느 한 구석에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몸은 어느 곳에나 있으며 하늘과 땅에 충만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마치 하늘 위로 더 이상 기어오르려고 하는 것이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인 것처럼 그리스도를 한 장소나 상태에 국한시키고 이곳 저곳으로 걸어다나는 자로 보는 것  즉 그리스도를 이 땅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도 역시 육적인 생각으로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끌어내리려고 하는 어리석고도 파괴적인 미친 짓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위로 쳐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게 될 것이다. 
 
"21. 역사로~~~~" ;  부활만큼 믿어지지 않고 또 육적인 생각과 상반되는 것은 없기 때문에 바울은 모든 의심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눈을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에로 인도한다. 왜냐하면 불 신앙이란 우리의 보잘것없는 이해력으로 사물 그 자체를 판단해 보려는 것에서 생겨나기 때 문이다. 바울은 단순히 능력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효적인 역사, 즉,  행동 가운데서 나타나는 능력을 말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만물을 무에서부터 만들어내신 하나님은 땅이나 바다. 그리고 다른 요소들을 그들의 본래 위치로 다시 돌아가도록 명하실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는 우리의 마음에 즉시로 부활에 대한 영적 통찰력에 이르기까지 확고한 소망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중요하게 깨달아야 할 것은 죽은 자를 일으키는 권세와 능력 즉 하나님 자신의 기쁘신 뜻에 따라 모든 것을 행하시는 권세와 능력을 그리스도의 품격에 돌렸다는 것과 이로써 그의 신적 엄위를 밝히 드러냈다는 것이다. 더우기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지음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것들은 창조주에게만 속하여 있으므로 따라서 만물이 그에게 속하여 있기 때문이다
 
"변케 하시리라" ;  바울은 이 말을 통해서 빌립보 교인들이 자기들의 마음을 높여 하늘을 바라보고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권면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니고 있는 이 몸은 영원한 처소가 아니고 얼마되지 않아 아무것도 없이 없어져버릴 연약한 성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도 많은 불행과 수많은 질병,  이 몸을 온전히 악하고 추한 것이라고 부를 만 도 하다. 그러면 이 몸이 회복될 소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하늘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부분이 다 전심으로 바라는 것은 하늘을 사모하는 것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는 동안에도 죽을 수밖에 없는 현재 우리 몸의 나약함을 보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하게 될 때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영광스러운 모습이 될 것이다. 만일 제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변형된 모습을 잠간 보여주신 것을 계속해서 간직하지 못했다면 우리의 몸이 그 완성으로 간주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우리는 우리의 택함받은 증거를 만족하게 여기자 우리가 하늘의 일들을 즐거워하면 우리는 우리의 기업의 풍성 함을 깨닫게 되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