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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빌립보서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3:8)

1. 성경 (빌3:1 ~1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1)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2)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3)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4)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5)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6)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7)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8)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9)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0)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1) 
 
2. 묵상 (Calvin선생주석)
"1. 주 안에서 기뻐하라." ;  이것은 이제까지 말한 것의 결론이다. 사단은 매일 풍문을 퍼뜨려 교인들을 실망시키기를 그치지 않고 있었으므로 바울은 용이하게 좋은 용기를 갖도록 한다. 바울은 그들이 한번 받았던 교리에서 다시 떨어지지 않도록 이 방법으로 그들을 권면한다. '종말로 라는말은 수 많은 방해 가운데서도 거룩한 기쁨을 누리기를 계속하라는 말이다.사단이 십자가의 쓰라림으로 끊임없이 운리를 자극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을 싫어하도록 힘쓸 때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맛봄으로 모든괴로움과 슬픔과 불안과 비애를 감수하는 것은 매우 혼치 않은 미덕이다.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  여기에서부터 바울은 거짓 사도들에 대해서 말하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의 경우처럼 가볍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필요한 몇 마디만 골라서 그들을 격렬하게 논박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지 빌립보 교인들을 유혹했을 뿐이지 완전히 정복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전 분야에 결쳐 다 논할 필요가 없고 그들에게 귀를 빌려주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교인들에게 단순히 근신하여 거짓 사도들을 분별하여 막아내라고경고 한다.그런데 바울은 첫째로 그들을 '개'(dogs)라고 부른다. 이 비유는 그들이배 채우기만을 위하는 자들임과 어리석은 부르짖음으로 참된 교리를 공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말은 '불순하고 야비한 자들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자들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칠투하거나 헐뜯기 때문에 그 렇게 불리운 것이라고 하나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둘째로 바울은 그들을 '행악하는 자들 이라고 한다. 이것은 교리를 건설한다는 이명아래 모든 것을 과괴하고 진멸하기만 했다는 의미이다.록 왜냐하면 게으르게 앉아서 놀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믄공적 대변인 같은 자는 그라쿠스(Gracchus)가 했던 대로 게 으르게 앉아 있기만 했던 자가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하는 조롱을 당한다로그라쿠스는러면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답변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차명적인폭동의 주모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일하는 자들을 분별케트함으로 믿는 자들이 악한 것을 알도록 하여주고 있다. 남학연안전시 호박용 시세번째 이름은 고상한 것으로 mooovoudold(프로소노마시아) # 1') 들은자기들이 할례를 받았음을 자랑했다. 

 

바울은 그들을 교회의 단일성을 산산조각으로 갈라놓는 분리주의자들이라고 부름으로써 그들의 자랑을 흉내를 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성령께서는 자기의 사역자들을 통해서 항상 재치와 유모어를 사용하신다는 예를 본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하나님의 위엄을 가리우지 바울은 허둥지둥하고 있다. 이러한 예들은않도록선지자들에게서 셀 수 없이 찾아볼 주가 있는데 이사야가 가장 재치있는비유와 은유를 풍부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세심하게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거칫 사도들을 공격하는 바울의 열심이다. 이 >거룩한열정이 작열하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고 부수어지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라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무절제함과 과격한 말들이 열심이라는 가면 아래 스며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1   -  -  -  -  *바울이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다고 말했을 때는 자기가 빌립보 교회 교인들에게 이미 글을 쓴 일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자한 것같다. 

 

그러므로 바울은 치금 자기가 쓰는 것을 통해서 교인들과 함자주 그들에게 말했던 것들을 기억나게 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알 수가 있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과 함께 있을 때 그러한 독께 있을 때우리는 찰일소들을 막아내야 한다고 자주 말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만일 바울이 잠잠하고 있다면 넘어뜨리려는 위험한 요소들이 빌립보교인들을 위협할 것이므로 그는 이것들을 다시 반복하기를 쉬지 않는다.확실히 좋은 목회자들은 양무리를 살진 꼴로 먹여주며 자기의 양들을 다스릴 뿐만 아니라, 이리떼들이 양무리를 공격해 을 때는 쫓아 보내며 또 계속해서 경성하여 경계(하(기를 쉬지 않는다. 왜 냐하면 도적들과 강도들은항상 교회를 을해치려는 기회를 두 루음찾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목회자간 몇차혜만 용기를 내서으물리치고 아홉번째다 열번째 공격에 넘어져 버린다면무슨 변명이 있을 수 있겠는가 ?

 

바울은 또 이 렇 게 반복하는 것이 때때로 볼 수 있는 경우처럼 )까다로운것으로 여 긴다든가 불필요한 것 으로 멸시하는 것을 방지하여 주기 때문에빌립보 유익이 된다고 말한다. 왜 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신경과민에 되어톤있어서 같은 것을 두번씩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 문의 다. : 크러나 이러한 자들은 그 날 그날의 일에만 크게 짓눌려 있으므로 10 년용 후에 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교 렇지만 바울의 이 권면을 빌립보 교인들이 듣고 크게 도움을 받아 바울의 교황주의자들을 목표하고 있는 이리예들을 알아냈다면 의는 누가 그들의 헛된 교훈을 분별해내지 못하겠는가?바울이 인삼가리 고 한 것은 누구를 가리킨 말인가 ? 이? 말은 바른 관단을방해하는 자들이 아니었겠는가 ? 그리스도께서도 이와 같은 자들을 가리켜 말씀하기를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따르느니라.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나라 (요) 10:5,27) 1
 
" 3.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  우리는 아직도 그들과 대조가 되고있는데 우리는 실제를 붙잡고 있으나 그들은 상징을 붙잡고 있다. 는 것이다. 이 말은의위리는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한다'고 한 귀절과 잘 부합된다.오왜 냐하면 바울은 등육체 라는 말 속에 사람들이 그 내용이 아니라 겉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자랑을 삼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내포하고 있으며,3육체 라는 간략한 말로써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것들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와 같이 율법에 괴퍅스런 열심을 가진 자들이 그리스도로 만족하지 않고 다른 것에 영광을 돌리게 한다고 가차없이 폭로한다.바울은 한 가지 것(에 대해서 '자랑한다'는 말과누신뢰한다.는는 말을 동실에 사용한다. 왜 냐하면 시뢰는 사람의 의기를 돋우어 자랑하는 데까지 이르게 하여주기(하때문에 이 두 가지는 (서로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 ; 이 말은 우리는 참 아브라합의로써 인쳐진 언약의 후사라는 뜻이다. 왜 냐하면 참 할례란 영점인 것에 있할례의 표는 것이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며,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내저인 것이지 육신의로 볼 수 있는 것이 안닌기 때문이다 ('롬 2 29)  성령으로 봉사하며 라는 말로써 바울은 우리에게 복음 안에 머물면서하나님을 의지하고 찾으며 자기 자신을 버리교 순전한 양심을 등가지라고 한다른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거짓 사도들은 아와늰 정반대로 : 단치의식적인 봉사만을 주장하고 있다고 바울히 질채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은 하나님을 외부적인증의식을 통해서봉사할 것 을 강요한다. 왜 냐하면 그들은 율법의 의식을 행하고 있으므로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거짓된 자랑을 늘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봉사하는 참 할례를 받았다. 는내용이다. 포드으요 바랍니다. E P ( ) : 0 ( ) : 1 우릉(x   +z  1s[?드러면 여기서 어떤 자들은 진리란 세례와 성찬과 같은 성례를 배제하고있는가라고 물을 것이다. 나는 모형은 그리스모가 오심으로 폐지되었으며할례는 세례로 바뀌었다는 원리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교 생각한다. 또한이 원리에서부터 순전하고 참되게 하나님을 섬기는 길이 이제 율법적인 의식에서 차유롭게 되었으며, 신자들은 모험에서 분리된 참 할례를 받은 자들이라는 사실이 따라 나온다 2017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 , 바울은 자기의_외모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는 어리석은 말을 흉내내어 본다면자기에게도자랑할 만한 것들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 말은질로 나의 자랑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 또한 육체에 자랑할 만한 '것이 있나고 한다면 그렇다고 말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1는 의휘이다. 이 귀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이 자기를 차랑하고 있는 오만을어떻게 반박할 수 있는가를 배운다. 만일 우리에케도 그들이 자랑하는 것과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 우리를에게도 있다고 말대꾸함이 없이도 그들의 그리스도를 거스리려는 어리석은자랑을 용납하지 않게 될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우리가 가치 있는 것으로생자지 않는 것을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고, 자기들이 제일로 꼽았던 것들을 스스로 포기하게 될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다음과 같은 결론을되는데 문모든 육신의 진뢰는 혓된 것이요 웃음거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만일 무구든지 다른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뜬 출로 생각하면" ;  나는더욱 그러하리니: 바울은 자신을 그들과 같은 수준에 있는 자 중에서 하나로 생각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고들보다 자기가 더 우월하다고 한다. 이것은 바울이 그들의 탁월함을 부러워해서가 아니라 그들이의 자기의 부족함께을 낮추고 그리스도를 높이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이 피차에 우월함을 견주어 보기를 원한다면 자기가 다른 (자들보다더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 냐하면 바울은 곧 이어서 우리가 볼 수있는 대로 그들이 가진 것들은 하나도로 빠짐없이 가지고 있었을 뿐아니라 오히려 그들보다 월등히 뛰어났기 때문이다.정확히 말해서 바울은자기의 육체를주신뢰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읕자기에게 육체의 자랑할 만한 요소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줌으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교만하여져서자기를 신뢰하는 일이 없도록 한 것이다
 
"5.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  이 말의 문자적인 뜻읜 '제 8일의 할례:를 의미한다.m그러나 그 의미에는 차이가 없다 왜 냐하면 바울은 자기가율법에 정한 대로 정당한 예식을 (통해서 할례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통상적인 할례를 바울이 곧 이어서 지적한 것처럼: 다른민족과 구별되었음을 나타내는 표였으므로 자기들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흔히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같은 예식이 이방인들에게는 없었기때문이다. 이방인이 개종하게 되면 젊을 때 혹은 어른일 때 : 심지어는 도인이 되었을 경우에도 할레를 받았다 그런데 바울읜 자기가 [촌이 스라엘의족속'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바울이 자기가 '베냐민 지과'라고 한 것은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남을 말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각자그 지파에 따라서 사람을 평가하는 습관이 있었으므로 이 방법으로 자기가참 이스라엘 사람인 것을 확증하려고 한 것 같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바울 은 또 계 속 해 서 말하기를 자기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 이라고 한다.이 이름은 가장 오래된 것으로써 모세가 아브라함을 가리켜 사용한 모이름아다 창 14:13) 그러므로 요약해서 말한다면 바울은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면 야곱의 씨에서부터 나왔으므로 그는 선조들이나 조상들에 대해서 말할 만하고 또 흐려져가는 과거를 바로 세울 수가 있다는 것이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 바울은 자기 혈통의 고상함에 대해 말한 후에이제는 소위 개인적인 독특한 성품에 대해서 말한다. 바리새인들은 다른사람들보다 더 깨꿋한 생활과 교훈을 가진 자들이라는 평을 들었던 자들로잘 알려져 있다k바울은 자기가 바리새인 중의 하나였다고 말한다.월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는 바리새인이라는 이름이 그들의 분리주의 성격 때문에붙은 것이라고 하지만(5)나는 명석한 기억력의 소유자 카피토(Capito):가언젠가 한번 말했듯이 그들은 성경을 해석하는 은사를 가졌다고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이 름 을 갖게 된 것이라고 본다코왜냐하면 히브리어 whe(파라쉬) 는  해 석 을 의미하기와 때문이다.수또 어떤 자들은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를 (바리새인들')은 조상들의 해석을 그대로 지키는 자들아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전통이라는 구실아래서 모든 성경을 자기들의 생각에 따라 부패케 하였고 동시에 약간의 건전한 해석들마저도 관습으로 저하시켜    아것을 최고로 전존중해야 할 것(으로 주창했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율법으로는 이란 귀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바리새인들보다 더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리는 자들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그들이 자기들만이 하나로 뭉쳐진 하나님의 진리를 전해흥받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더우기 [요세푸스(Josephus) 는 그의 저서( Antiquities >(체민13권에서 모든 과들은 요나단이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 생겨났다고 (우리에게이 말하고 있다. 바울은 *율법*이라는 말을 오늘날의 교황들이 저자르는 바와같이 당시의 부패된 종교적 교훈을 가리키는 포괄적인을말로 자용하고 졸있다 바울은 또한 자기가 가진 열심이 능숙하지 못하고잘 배우지 못한로많은 교사들이 가진 열심과 같다.고 한다. 바울이 교회(를 [굅/박했/던 것은 둔실로 무서운 죄악이었다. 그때 바울은 율법에 대한 열정에 끓어 있었으프로그리스도와 모세를 혼합하는 것 같은 자들을 대항하지 않을 수 없었다수이것이 그가 교회를 굅박했던 이유였다. 
 
"6. 율법의 의로는~~~~~" ;  이 말이 율법의 모든 의를 의미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왜 냐하면 단지 의식적 의만을 가리킨다고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이 말씀의 의미는 보다 일반적인 것으로써 율법을 따르는 자에게요구되는 완전한 홈없는 생활을 가리킨다. 요또한드율법의 의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여지는 것이라는 의미도 으있다. /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자들에게는 이 모  든 의가 주어졌는데 무엇이 더 완전해지기를 바라는가 ?나는 바울이 여 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류의 공 통 적 인 견해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의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왜 나하면 바울은 율 법 과 (복음을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없는 율법은 다만 죽은 글자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 문제(를 분/명 히 하기 위해서 율법의 의에대한 두 가지 의미를 말하고자 한다. 첫째는 영적인 의이다.증 의으의는하나님과 이 웃'을 완전하게 사랑하는 것으로써 교리 충에는 포함되어 있으나 실재 생활 속에서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의이다.

 

둘째는 문자적인 의이다. 측 사람의 눈이로 볼 수 있는 것으로써드 위선자들의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의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앞에서는 그들의 완전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이와 같이 율법인 하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다른 하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각할 수 있는 이중의 의의를 가지그런데 바울은 사람의 관단에 따르자면 거룩하고 홈이 없는 자고 있다.이었다. 이 말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단 한 번밖에 없는 진귀한 찬사이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이 이 말을 놓아하지 않았다는 점을 유의'하도록하자 
 
"7,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 .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 자기가 얻었던 것들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헛된 자만심으로 교만하여지는 유일한 이유는 그리스토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기의 전으로 헛된 생각을 하는 것 : 교만하여 지는 것 : 오만해지는 것을드우리가 보게 되면 우리는 그리스도가 알려지지 않았다는 자실/을 확신할 수가있다. 반대로 그리스호가 나타나게 되면 그 즉시 전에는 헛된 영화로 문우리의 눈이 부셔 있었던 모든 것들이 헛된 것이다 매우 보잘것 없(는 것으로여격지게 된다.오그런데들바울은 그가 아직 소경이었을 때 외모만을 보고 취했던 모든 것들의 그 눈이 밝아졌을 때는 자기에게 해로운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왜 해 가 되는가? 그 이유는 그것들이 그리스토께 군나아감에 방해물이 되기 때 문이 다. (어우리가 그리스도께 나아가는데 이보다더 해로운 것이 또 있겠는가? 이제 바울은 첫째로 자기 자신의 의에 대해서 말한다. 왜 냐하면 우리가 자기의 의에 대해서는 벌거벗(은 것처럼('여)가고 무익한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들나아찰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바울인 자기의 의란 그리스 도를 내 쫓 는 것이기 때 문 에 야것보다 더 자기에게 핸로운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인함이라" ;  반울은 이 귀절에서 자간진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고 인유기가 계속해서 한결같은 마음을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다가 다른 것들을 잊어번린다든가 전에 가졌던 생간을 후회하게 되는 변화가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리스도를 소유하기를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들을 포기한다는 것을 말하기위해서 이 같은 마음을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  바울은 우리를 속이고 있는 모든 생각들과 대항해서 복음을 높이고 있다. 모든 것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고상해 보일 뿐이지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무엇보다도 가장 뛰어난 최고의 것이므로 이것과 비교해 볼 때 천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귀절에서 그리스도만을 아는 지식에다 최고의 가치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도록 하자,  바울은 그리스도를 내 '주' 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자기의 감정의 강도를 나타내려고 한 표현이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 . 바울은 앞에서보다 더욱 '분명하게 말한다. 이것은 선원()들에게서 택한 비유이다. 그들은 배가조난()당할 위험에 이르게 되면 모든 물건들을 배 밖으로 집어 던져 배를 가볍게 하여 안전하게 항구에 당도하는 것이다. 응구런데 바울은 오직 구리스도를 대앗기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것들을 잃는 갈을 택한다. 루드크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재산이나 명예냐가문, 그리고 외부적인 의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필연적인 것인가 함은의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주어진 것이므로 그 자체는 결고 경시할 수 없다. 나는 사도가 이러한 사물들의 자체언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성을진실로 천국은 감추인 보화와 같아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가: 가진모든 것들을 팔아버리는데크어느 누구도 주저하지 않는다.(만 -13: 46)- 구러나 사물의 실존과 그고속성은 서로 차이가 있다. 바울은 자기의> 지관와아브라함의 후손됨/을 필연적으로 포기하고 이방인이 (되었다가 다지 그리스노인이 되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교의 가문을 의지하는 것 을 포기했다고 하는 것이다. 으고러나 정숙한 본성이 부정하게 되어지고 냉철한 본성이 무절제하게 되어지며 예위바르고 분별이 있는 본성이 방탕하게 되어진다고 하는 의미는 아니다. 자기를 의롭게 보는 혓된 생각을 스스로 버리고 오하려 그것을 부고러운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믿음으로 얻는 의를 취급할 때 행위의 실존을 공격해서는 안되고 괴변주의자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그 속성을 공격해야 한다. 괴변주의자들은 생각하기를 사람은 그 속성에 의해서 정당화된다고 하고 있는 것의다.흡바울은자기의 행함을 버린 것이 아니라 차기를 교만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 사역 '속에 숨어드는 자만심을 버린 것이다하였으로   플교 재산과 명예에 대해서도 여기에 집착하고자 하는 모든 생각들을 떨어버릴 때에 주님께서 요구하신다면 언제든지 이 모든 것들을 포기할 수 있는준비를 갖추게b될것이다.또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그리스도인이9 되려면 필연적으로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직접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만약 주님께서 그렇게 되기를 원하신다면 가난을 감수하고 견딜 수 있는 준비가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그리스도 밖에서 어떤 것을엔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합당치가 못하다. 나는요그리스도만을 우인리의 영광으로 삼으려 하는 것을 방해하면서 우리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것 전체를 가리켜서 *그리스도 밖 이라고 부른다는 것 전체를 가리켜서 *그리스도 밖 이라고 부른다.  

 

"배설물로 여김은" ; 이 말은 단지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1을 지시하고 있는데 바울은 여기서 이미 앞에서 말한 것에 더욱 확대해서말하고 있다. 안전하게 피난하기 위해서 자기들의 도구들과 또 다른 것들을 바다에 던져버린 자들은 재물을 열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재물과 함께 빠치지 않기 위해서 비록 아깝고 원치 않는 일이지만 살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 파선을 피하게 되면 자기들이 던져버림으로 잃은 것들을 생각하고 후회하며 한숨을 진다. 그러나 바울은이와 정반대로 단순히 이전에 좋은 것으로 알았던 모든 것들을 포기한 것만이 아니라 배설물과 같이 고 약한 냄새를 풍기는 것으로 보았고 마지못해서 던진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크리소스톰 Chrysostom) 은 이것을 치푸라기들 이라고 했다. 그런데 문법 학자들은 coolPalov(위시바론)대신에(스쿠바론)이 사용되었는데 이 말은 개에게 던지는 것을 의미한든 것이 왜 우리에게 거치는다고 생각한다. 흐리스도에게 합당치 않는 모것이 되는가 하는 데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것은 하나님 앞에서 T볼 때 질역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우리에게 분명히 거스르는 것이요 우리들에게는 단지 헛된 상상에 불과하다 
 
"그리스도를 얻고" : 이 말씀을 통해서 바울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잃는 방법 외에는 그리스도를 얻/을 수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와 바울은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써만이 (부요하게 되어지고 하나님만이 우리의 모든 (축복이 되신다고 한다. 이미 말한 대로 모든 것들을 잃는 길을 통해서만이 우(리 는 그리스되만을 의지하는 데서 벗어나지 않게 될것이다. 그러나 만일'생 활에 흠이 없고 완전에 가까왔던 바울이 자기의 의를 버리고, 배설물로알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면 모든 악한 것들로 위장하고 그리스도와 거 스(리는 자기의 공로를 높이기에 부끄러워하지 않는 오늘날의 바리새인들에게는'무엇'을 의미하겠는가?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  여기에 사용된 동사는 수동형이다[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내가 발견되어질 것이다. 라고 풀이한다. 노그러나 고들은 그 안에 강한 의지가 들어있음을 보여주는 문)맥을 주의깊게 파악하지못하고 그 냥 지나치고 있다. 만약 수동형으로 읽는다면이그 반대의 경우 즉바울이 자기 부요함을 등에 지고 있는 것으로 비유한다면 마치 부자 상인()이 자기 재산 중 어떤 하나를 잃어버린 경우처럼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 전에 가지고 있던 것을 단자 잃어버렸다고 생각해야 되된다.그러나 그것들이 밖으로 던져졌을 때 바울은 발견되었다. 입구러무로 이 말은 나는 잃지 않으려고 앓었다'고 보는 것이 나타당하다. 동자금 coplakonal(휴리스코마이)는 수동형 어미를 취하면서도 능동형의 의미를 가지고있다.'즉 자기가 자진해서 포기했던 것을 재발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데우스 (Budaeus-) 이러한 예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나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의견을 달리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왜 냐하면 아러한 방법을 통해서 의미가 더욱 명백해지고 바울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것을 포기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들을 다시 재발견하였다는 교리가 더욱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또 의 렇게 보는 것이 얻는다'는 말과 더 잘 어울린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보잘것 없는 것이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모든 가면을 벗고 적나라하게 나아가면 우리는 아무것도(이잃는 것의 없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 때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들도 그리스도께 나아가면 실제로 얻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풍성하심이 얼마나 위대한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보다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 안에서 모든 것들을 얻고 또 발견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 믿음으로 얻은 의에 대한좋은 설명을 원한다면 그리고 고 진정한 성질을 알기로원한다면 이 귀절을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두 가지 의를 비교하고 있다.하나는 인간에 속했다고 하는데 바울은 이것을 율법에서난 의라고 0부른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로서 난 것으로 믿음으로 얻어진 것이요. 그리스도 신앙 안에 있는 것이라고 바울은 가르친다. 바울은 이 둘이 서로 대립하고 있어서 함께드있을 주가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 두 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민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얻기 위해서는 율법에서 단 의를포기하고 버려야만 한다봉 둘째로 인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요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 이 두 경우에 있어서우리는 교황주의자들과 크게 대립하고 있다고 왜냐하면 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 가 전적으로 하나님께로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사람에게서 응은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 :둘은 서로 혼합해서서로 구분이 없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이 말한고 각의에 대한 충분한 의미를 주의깊게 살펴보치 않으면 안된다./오[의바울은 믿는 차들에게는 자기의 의가 없다고 말한타오크러나 어면 행함으로 인한 의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의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바울은 행함으로 인한 의에 대한 어뗘한 경우의 여지도 남겨놓지 않는다! 바울은 행함으로 얻은 의는 율법의 의'라고 로마서 10장 5 절에서 말하고 있다.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그러므로 율법은 행함을 통해서 자람을 의롭다고 선언한다. 이 모든 것들은 의식을 제한하게 될수밖에 없다고 하는 교황주의자들의 말에서는 어면 진실성도 찾아볼 수 없다. 왜냐하면 첫째로 바울이 오직 의식을 행함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답변할 필요도 없는 넌센스이기 때문이요로 이러한 방법으로 바울은 두 가지의 의 중 하나는 사람에게 타른 하나는둘째하나님께용속한 것으로 대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는 행함의보상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선물이라고 바울은 설명한다.이처럼 바울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공로는 하나님의 은혜와 대립하고 있는것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율법은 행함을 구속하고 있는 반면에 믿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벌거벗게 하여써 옷을 이입도록 하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믿음으로 말미암은그리스토의회 의로의는 하나님께로서 나온다고 말할 때 그 이유가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의 선하심을 따라 우리를 의롭게3층하시기 때문이요: 또한 우리는 하다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의를 민음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10. 내가 그리스도와~~~~~~ 알려하여" ;  바울은 믿음의 능력과 성질을 4설명하기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곧 믿/음이요시 또한 무례함이나 무분별이 4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또 *부(활 우구속의 완성이므로 그 안에 사망의 개념까지를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고 및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지고 죽 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것을 단순히 아는 것만은 매우 보잘것 없는 것에 불과하다 ( 우리 는 교그) (죽음과 부활의 열매를 이해해야 하는데 바울은 고속효험에 대해서 강렬하게나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바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교의 (죽음과 부활의 능력이 얼마만큼 크다는 것과 이것들의 우리 속에서 얼마나험이 [되는가 하는 것을 깨달을 때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속함)을 f 받게되고,좌를 쳐부수며, 죄책에서 놓임을 받게 되며, 만족을 누리고, 사망을이기며, 의와 복된 영생의 소/망을 얻게 3되는 이 모든 '축복을 누리게 된다.
 
 "고난에 참여함을" ;  값없이 받은 의는 그리스모의 부활로 말미암아 '받은 것이요. 믿음으로 얻(는다는 말에 이어서 바울을 경건한 자의 실생활에대해서 말합으로써 자기는 실생활에 아무런 효험도 주지 못하는 죽은 믿음을 소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반울은 이러한  경건한 생활이 주님께선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자들에게서 나타난다는 것을암시하면서 거짓 사도들은 이와 반대 로 무의한 의식적 요소들만을 강조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맏음으로 모든 그리스토위 충복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자기의 전생활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따르겠다는 조건으로릉자가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알도록 하잔 * 0.00 후  총  금  금 :  금  : 우그런데 크리스도(의 주음에 참여하고(또) 죽음과 교통하는 것 은 [두비가지의미가 있다. 하나는 내적()인 것으로써 성경이 보통 육신을 죽이는것, 또는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선6 장에 서 인 문제를 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외적 ()인 것인데 겉사람을 죽이는 것 을 말한다. 이것은 십자가를 참고 견디는 것 인데 바울은 로마서 8 장에서 취급한교 있는 낸가 잘못(본) 것이 아니라면 이 귀절에서도 취급하고 있다. 왜(냐하면 크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짐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을지라도 우리가 재난과 어려움을 무릅쓰고 주를 따르게히 되는것은 그의 부활의 능력을 깨달은 이후에 가능하지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532
 
은 자의 부활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기를 우리가 살려고 하기 전에 먼저죽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한다.: 신자들은 이 땅에 머무르는동안에는 이와 같은 묵상을 계속해야 한다. 교사용액 프라오 0우리가 만일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라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나눔으로말미암은 우리의 모든 불행은 오히려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왜 냐하면이러한 고난의 길을 통해서 우리를 영원한 축복으로 인도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주와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룻할 것이요"(딤후 2 : 11-12-).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생활을 죽음에 이를 때까지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만 나타낼 수 있는 준비를 가져야 하며 : 심지어는 그리스도의 삶도 죽음의 전주곡에 불과했다고 보아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그 종족이 영원한 축복이라는 위로의 말씀에 기쁨을 가진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부활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받음으로 자기가 부활의 영광을 얻을 것이라고말하고 있다
 
"어찌하든지~~~~~" ;  이 귀절은 회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진지한노력을 일으키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렇게도 많고 극심한 방해물들을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는 말은 우리를 가볍게 시험해 보기위해서 한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