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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로마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롬13:14)

1. 성경 (롬13:8 ~ 14)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8)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9)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0)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1)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2)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3)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14)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8. 아무에게든지 아무빚도 지지 말라" : 여기서 이 발언을 냉소적인 것으로 보는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에게서는 그들에게 명령된 사랑이외에 또 다른 교훈이 부담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반론을 제기하는 자들에게 대답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나는 이것을 냉소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곧 그가 사랑에 대한 율법 이외의 다른 율법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자들의 요구를 인정한것으로 보지만 내가 보는 견해는 그들의 것과 다른 의미에서이다. 

 

나는 이 대목을 단순한 의미로 보는 편을 택하는 데 그 이유는 위정자들의 권력에 관한 교훈을 사랑에 대한 율법과 관련시킴으르써. 아무도 그것을 빈약한것으로 여기는 일이 없게 하는데 바울의 의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내가 여러분들들에게 지도자들에게 순종할것을요청하면서,요구하는 것은 모든 신자들이 마땅히 사랑의 법에 따라야만 행동 해야 옳은 것이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착한 사람들이 번영하기를 바란다면 (그렇지 않는 것은 몰인정한 것이 되겠지 만), 여러분은 마땅히 법과 판단이 득세하도독 힘쓰는 가운데 백성들이 법의 보호자들에게 순종하도록 해야 할 터인데 그 이유는 이들이 우리들에게 평화를 누리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라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무정부 상태를 도입하는 것이 사랑을 침해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은 무정부상태의 즉각적인 결과란 국가 전체의 혼란이기 때문이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  바울의 의도는 율법의 모든 명령을 사랑으로 요약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사랑을 유지할 때 계명을 제대로 순종하고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사랑을 지탱하는데 도움이 되는 부담이 있다면 어느 것이든 감당할 준비를 갖추는 셈이라는 점을 깨닫게 하는 데 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우리가 위정자들에게 바쳐야 하는 순종을 두고 얘기할 때 말한 교훈을 확증하고 있다. 이 순종은 결코 사랑 가운데 가장 하찮은 부분을 차지 하는 것이 아니 다.  하지만 혹자는 여기에 피할 수 없는 난제가 하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우리 이웃을 사랑할 경우 율법이 성취 된다는 것이 바울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하나님 예배를 생략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이것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바울이 율법 전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단지 율법이, 우리 이웃에 대한 우리의 임무에 있어서, 우리에게서 요구하고 있는 임무만을 언급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우리 이웃을 사랑할 때 전체 율법이 성취된다는 말이 사실인 것은 인간들에 대한 참된 사랑이란 오직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오직 둘째 들판에 대해서 만 언급하는 것은 그의 문제가 그것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기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온 세상에 대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라는 내용이나 다름없다. 이 귀절에서 행위에 의한 칭의들 찾으려 하는 궤변가들의 반론은 들으나마나 한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인간들이 무손 일을 하고 안하고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무데서고 성취되는 것을 볼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이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는다는 우리의 말 속에는 율법 준수가 참된 의라는 점에 대한 부장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도 율법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그것을 수행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만큼, 우리는 모든 인간들이 거기서 제외되고 있으며 , 그러므로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있다는 점을 주장하는 바이다.

"9 .간음하지 말라……" ;그가 "그외에 댜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는 점을 생각할 때 이 문단으로부터는 둘째 들판에 담겨 있는 명령이 무엇인가를 알 수 없다. 그는 부모공경을 명하는 계명을 생략 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문제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요점을 무시하는 것이 어쩌면 모순으로 보일지도 모론다. 그러나 사도가 이것을 말없이 지 나치는 것은 자신의 변론을 호리게 하지 않으려는 뜻에서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내가 이점을 단언하는데 주저하는 것은 그가 입증 하려고 의도한 것은 그가 모두 밝히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모든 계명의 목적은 오로지 우리에게 사랑의 임무를 가르쳐 주는데 있는 만큼, 우리는 마땅히 모든 면에서 여기에 도달하도록 노력 해야 한다는 점을 밝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툼을 원치 않는 독자는 바울이 이런 표현을 통해서 입증하고자 하는 것이 다름이 아니라, 전체 율법의 목적은 우리에게 서로의 사랑을 일구고 가꿀 것을 격려하는데 있다는 점이라는 사실을 쉽게 인정할 것이다. 우리는 그가 말 없이 넘어가고 있는 것을 보충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것은 위정자들에 대한 순종이 평화를 소중하 여기고 형제애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결코 가장 하찮은 방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 그는 결과를 통해서 사랑이라는 단어에 이 모든 계명에 포함된 가르침이 담겨 있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참 사랑을 부여받은 자는 결코 자기 형제들을 해칠 생각을 않을 것이다.  율법 전체가 금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이웃에게 아무 해도 끼치지 말라는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바울이 현재 의도하고 있는 것과 관련되지 않으면 안된다. 위정자들이란 평화와 공평의 자신의 권리를 유지하고 모든 사람이 해를 받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 자들은 최대한의 힘을 다 기울여서 위정자들의 질서를 방어하지 않으면 안된다. 손해들 끼치려고 욕망을 드러내는 자는 성부의 원수들이다. 바울은 사랑이 율법의 성취라는 점을 두번씩이나 반복하고 있는데, 이것은 앞에서처럽 인간 사회와  관련된 율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하나님 예배를 다루는 율법의 첫째 돌판에 대한 암시가 전혀 없다.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  그는 여기서 다른 형식의 권면을 시작하고 있다. 천상적인 생활의 햇살이 동이 트면서 우리에게 비취기 시작된 만큼 우리는 여러 사람들의,시선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행동하는 습관을 따라야 마땅하다. 공중의 시선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무슨 비천하거나 불명예스런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는 것은 만약에 그들이 어떤 잘못을 저지를 경우, 숱한 증인들이 그들에게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더욱 더 모든 불결을 피해야 하는것은 우리는  항상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있으며, 의의 참 태양인 그리스도에게서 당신의 용안을 뵈라는 초청을 받고 있는 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간단히 말해서, 이 대목의 의미는 이것이다 . "다들 아다시피 이제 잠에서 깨어 나야 할 올바론 시간이 된만큼 우리 모두는 밤에 속하는 모든 것을 내던지도록 하자. 흑암 그 자체는 이제 사라지고 말았으니, 흑암의 모든 행위를 털어버리고, 낮에 행동하는 사람답게 빛의 행위에 집착하며 살도록 하자."  그 사이에 나오는 말들은 괄호로 묶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대목은 비유적이요, 따라서 각 부분의 의미를 살필 필요가 있다.  "밤" 이란 단어를 통해서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를 뜻하며, 이 무지에 사로잡혀 있는 모든 사람들은 밤에 그러듯이 방황하고 잠들어 있기 마련이다. 불신자들은 눈이 멀 뿐 아니라 우매한 두 질고 밑에서 수고하고 있다. 이 우매를 조금 뒤에서 바울온 '잠’ 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잠이란, 그 의 말대로 사망에 의한 형상이다.  "빛" 이란 단어를 통해서 그는 의의 태양인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솟아오르 시면서 사용하는 신령한 진리의 계시를 뜻하고 있다.

 

"잠에서 깨어나는 것” 이란 우라가 무장을 갖추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것을 실천할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빛의 갑옷" 이란 명예롭고 은건하며 정숙한 행위들을 뜻하는데 이것은 대게 낮에 이루어지는 것들이다.  바울의 행위보다 '갑옷’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싸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맨 처음에 나오는 "또한" 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요, 바울의 앞 이야기와 관련된다. 이것은. 라탄어의 '더우기'나 '뿐만아니라' 와 같은 의미이다. 그가 시간이 신자들에게 알려진 것으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방문의 날이 새 생활과 행동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그는 설명 형식으로 깨어야 할 "적합한 시간" ( high ·time)'.이 되었다는 점을 덧붙이고 있다. '크로노스' 가 아니라  '가이로스' 는 올바른 순간 또는 호기를 뜻한다.

 

"우리의  구원이 가까았음이니라"  ;  이 문단은 여러가지로 잘못 해석되고 있다.  '믿었다’는' 단어를 율법 시대와 관련되는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은 바울이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 전에 믿었다는 뜻으로 이야기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나는 이 해석을 조야하고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배척한다. 일반적인 진리를 교회의 한 작은 부분 에 적용하는 것은 틀림없이 모순된다.  그가 글을 쓴 대상들 가운데 있는 유대인들은 아주 극 소수였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로마인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그리고 낮과 밤에 대한 그의 비교 역시 내 견해로서는, 이 난제를 제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대목은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믿기 시작했을 때보다 이제 우리에게 더 가깝다” 라는 뜻으로 읽는 것이 옳은 것으로 보이며 그들의 신앙 이전의 시기를 두고 언급하고 있는 셈이다. 이 부사에는, 다음에서 볼 수 있듯이 특정한 의미가 없는 만큼 사도의 말은 그만큼 더 적절한 것이다.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나·" ;이것이 바로 그가 앞의 사항을 언급하게 된 동기다.  신자들이 아직 완전한 빛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가 복음에 의해서 우리에게 비취는 내세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새벽에 비교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여기서 .'낮'이란 다른 곳에서처럼 신양의 빛을 의미하자 않는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것을 접근하는 것으로만 이야기하지 않고 현재 있는 것으로, 곧 그것이 한참 비치고있는 것으로 말했을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들이 지금 복음에서 그것의 시초를 보는 천상적인 생활의 복된 광재를 뜻한다. 그가 간략하게 언급하는 내용을 요약하자면, 마치 우리가 첫 동틈올 보고서 태양의 완연한 빛이 가깝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 를 부르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마땅히 그리스도의 오심에'대해서 우리 의 관심 을 집 중해 야 한다는 것 이 다. 그가 ’밥’이 다 지난 것으로 얘기하는 것은 우리가 생명의 빛을 보지 못 하는 불신자들처럼 칠흙갈온 혹암으로 덮여있지 않기 때문이다. 부활의 소 망이 복음에 의해서 우리 눈 앞에 고정되어 있는 것 이다. 사실 우리 에게 하늘.의 영광의 밝온 광채가 가까운 것을 가르쳐 수는 신앙의 빛 은 우리를 일깨워주고 우리가 지상에 있는 동안 안이하게 지내지 봇하도록 지켜주는 것이 옳다. 하지만 우리에게 낮에와 같이 빛 가운대서 행동할 것을 권떤 하는 다음 대목에서는 며 이상 동일한 비유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비춰주고 있는 현재의 우리의 생활을 낮에 비교하고 있는 것 이다. 바울은 여러가지 방법 을 통해서 우리를 권면 하면서, 때로는 우리의 내세를 묵상하게 하고 또 때로는 하나님을`경외하 게 하고 있다. 'II ! I II

 

"13.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 ; 그는 앞에서 두 가지 이름으로 언급 하던 것을 여기서는 세 가지로, 곧 무절제, 과도, 육적인 정욕, 또한 그 것과 관련된 불결한 행동, 그리고 시 기와 분쟁으로 나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들이 육적인 사람들까지도 그들의 동료들 갚에서 법하는 것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길 정도로 해로운 것이라면 하나님의 빛 가운대서 생 활하는 우리들은 설령 우리듬이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다 하더라도, 항상 이 런 짓을 삼가는 것 이 옳다. 바울은 세째 항목에서 질투보다 분쟁 을 언급하고 있지만 그는 분쟁과 다툼이 이 근원에서 나온다는 점을 우리 에게 가르쳐주려 하고 있음에 불림없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이 우위 성을 추구할 경우 거기에는 상호간의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야심이 이 두 악의 원인이다•

 

"14.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이 비유는 사람을 장식하거 나 흉하게 만드는 면에서 성경 에 자수 사용되는 것 이다. 일간의 차림새 에서 이 양자가 다 드러 나기 마련이다. 더럽고 찢어전 의복이 사람의 품위를 손 상시킨다면 깨끗하고 아름다운 옷은 많은 존경을 받아낸다. 그리스도로 옷입는 것'온 모든 면에 있어서 당신의 영의 능력에 의해서 방어되며 따 라서 성결의 모든 임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이런 방 법을 동해서, 우리 영혼의 유일한 장식인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안에서 새 롭게 살아나는 것 이다• 바울이 우리 의 소명 의 의도를 염두에 두면서 이야 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과거 생활을 포기하고 당 신 안에서 새로운 사람둘이 된다는 이 요구사항과 함께, 입양을동해서 우 리를 당신의 독생자의 몸에 접붙여 주시 기 때문이다. 바로 이 런 이유에서 그는 또한 다론 문맥에서 신자들이 세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로 `옷 입는 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갈 3 : 업).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 우리의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전적으로 그 것을 무시 안 수 없는 것온 비독 우리 의 친교가 하늘에 있다 하더라도 그래 도 우리는 지상의 나그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체와 관련된 일들을 보살피되 오직 우리의 순례를 돕는 범위에서 국한할 것이지 그러 한 일들 때문에 우리 의 고향을 망각하는 정도까지 나가서는 안되겠다. 이 방인들까지도, 인간들의 욕망은 끝이 없지 만 자연은 소량으로 만족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육신의 욕구를 재우기를 바라는 자는 누구 를 막론하고 난봉군이 될 뿐 아니라·육욕의 깊은 늪속에 참길 수밖에 없 다. 바울온 우리의 욕망을 제지하면서 우리의 소유의 검소한, 또는 합법적 인 사용에 대한 불만이 모든 무절제의 원인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지적해수 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가 우리 육신의 팔요 사항을 공급하는 것은 당연하지 만 그것 의 욕망을 다 들어 주어서는 안된다는 점 을 원칙으로 제 시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이 세상을 사용하되 그것을 남용하 지 않게 될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