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alvin선생주석/로마서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롬12:20)

1. 성경 (롬 12:14~21)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4)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5)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6)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7)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8)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19)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0)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21)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14. 너희를 핍박하는 자틀 축복하라~~~~” : 단도직입적으로 독자에게 부탁하지만 하나하나의 교훈에 대한 정확한 순서블 찾느라 너무 고민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보다는 거룩한 생활에 전념하도록 권하는 간략한 교훈 몇 가지가 여기서 주어지는 것으로 만족하도록 하자. 이 교훈둘은 본 장의 처음에.사도가 규정한 원착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는 곧 이어서 우리가 해를 입었을 경우 복수를 경계하라는 교훈을 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더욱 더 어려운 행동을 요청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원수들에게 아무런 재앙도 기원하지 말고 오히려 그들에게 온갖 번영울 기원하며·하나님께서, 그들이 제 아무리 우리를 무례하게 괴롭힌다 하더라도그들에게 번영을 허락하실 것을 기도해야 옳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이 온유르 실천하기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만큼 더 집요하게 우리는 그것을 항해 매진해야 옳다. 주님께서는 우라의 순종을 필요로 하지 않는 명령을.내리시는 법이 없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들이 불경건한 자들과 세상의 자녀들로부터 구별되기을 바라는 이 성격이 우리에게 부족할 경우 우리에게는 아무런 핑계가 허용되지 않는다. 물론 나는 이것이 어려운 문제요 인간의 본성에 아주 위배된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제 아무리 힘겨운 일이라도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정복 불 가능한 것은 없는만큼, 우리가 이 성격을 위해 기도하는 일만 소홀히 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그것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이 교훈을 다 성취할 정도로 주님의 법에 있어서 진전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래도 부분적으로라도 이 진로를추구하지 않거나 그 반대의 일을 하려는 의지를 날마다 저항하려고 씨름하지 않는 자는 아무도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허풍을 떨 수 없으며 그리스도인의 명칭을 자랑할 수 없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이것은·우리가 해를  입었을 때 복수을 포기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운제다.

횡포한 일로부터 손이 깨끗하거나 해를 끼치려는 욕망에 이끌리지 않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들온 여전히 그들의 원수들에게 다른 면에서 파멸이나 손해가 떨어지는 것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설령 그들이 그들에게 아무런 악을 원하지 않을 정도로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상처들 입힌 사람에게 선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백에 한 명도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 런 수치심도 느끼지 않은 채 욕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의 손이 해를 끼치는 것울 억제할 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씁쓸한 감정까지 억눌러 주시고 있다.

아니 그뿐 아니라 당신께서는 우리들이 부당하게 우리에게 해르 끼치다가 스스로 파멸한 사람들의 안녕을 들보기를 원하시고 있다. 에라스무스는 ‘유로게인’이라는 동사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는데 그는 이것이 저주와 욕의 반대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두 경우에 있어서 다 바울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내에 대한 증인이 되셔서 우리가 우리의 분노의 감정을 우리의 기도로 달랠 뿐 아니라 그들의 용서를 위해 기도함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서 파멸 하지만 우리로서는 원수들에게. 대한 우리의 -술품을 표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1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세번째로 바울은 일반적인 진리, 곧 신자들은 상호간에 정을 주고 받아야 하며 각자의 재산을 모두가 공통적으로 나눠야 하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는 먼저 우리의 책임을 열거하며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줄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줄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야 한다. 참 사랑이란 각자가 자기 형제의 술품을 괴퍅하게 또는 원치않는다는 뜻으로 멀리서 바라보기 보다는 그와 함께 괴로와하는 편을 택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러므로 우리는 최대한으로 상호간에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 하며, 어떤 상황이 되건 곧 상대방이 역경에 처할 때 그와 함께 슬퍼하는 일이건 그가 번영 할 때 즐거위하는 일이건, 상대방의 감정을 우리의 것으로 해야 한다. 형제의 행복을 기쁨으로 환영하지 않는 것은 시기의 표시요,그의 불행을 보고 슬퍼하지 않는 것은 물인정이다. 그러므로 온갖 마음의 상태에 일치하려면 서로 동정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자.

“16. 스스로 지혜있는 체 말라~~~” ; 사도의 말을 히브리어로 읽으면 이 비교가 더욱 더 의미가 깊고 적절하게 드러 나는데. 곧  “높은 것들을 심사 숙고하지 말아라"이다. 이 표현을 통해서 그는 그리스도인이란 모름지기 남들보다 뛰어나기를 바라거나 우월한 감정을 가질 것이 아니라 신중성과 온순성을 길러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뛰어 남다는 것은 바로 이런 점에서이지 교만이나 형제들에 대한 멸시에 있어서가 아니다. 이것이 앞서 언급된 바울의 얘기와 적절한 명령인 것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추어 올리고 보다 더 높은 진로를 갈망하며 스스로를 더 높은 위치에 올려 놓는 것보다 그가 언급한 연합을 더 쉽게 깨뜨리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비교를 완결짓는 뜻에서 낮은 이라는 단어를 중성으로 취급한다. 그러므로 도량이 크다는 미명 속에 숨어 있는 마음의 온갖 야심과 우쭐 댐이 여기서 정죄 받고 있다. 신자들의 으뜸가는 덕은 절제  곧 남에게서 명예를 탈취해 버리기보다는 남에게 항상 명예를 바치시기를 택하는 순종(submission)이다.

바울의 다론 지적은 이것과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우리 자신의 지혜에 대한 높은 평가보다 더 마음을 추켜 세우는 것도 없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가 이것을 제쳐 총고, 남에게 귀들 기울이며, 그들의 권고에 굴복하기를 바라고 있다. 에라스무스는 ‘프로니무스’를 ‘오만한’  으로 번역하지만 이것은 억지요 무의미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바울은 아무런 강조를 하지 않으면서 동일한 단어르 두번씩이나 반복하는 샘이 될 것이다. 오만을 치료하는 가장 적절한 처방온 우리 자신의 지혜를 과대평가하지 않는 데 있다.

“17.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 ; 이 교훈과 다음에 곧 이어 지는 교훈 사이에는 거의 차이가 없는대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다음에 나 오는 복수에 그가 여 기서 다루는 .종류의 보웅보다 며 큰 뜻이 담겨 있다는 것 뿐이다. 우리가 가해전 상처와 동등한 처벌을 그대로 받아내지 않는다 하머라도, 우리에게 아무런 혜택을 입히지 않는 자들을 물찬절하게〈대할경 우, 우리는 악을 악으로 갚는 샘이다. 우리는 대개 각 개인이 우리 자신에 대해서 베풀 수 있는 혜택, 아니면 최소한 우리가 혜택을r'받아넬 수 있는 상대방의 능력 을 평가하기 마련이며 거 기에 따라서 우리는 이미 우리 에게 신세를 끼친 자들에게,.아니면 어떤 호의를 예상할 수 있는 자들에게` 우 리의 봉사를 베풀게 된다.다시 말해서 우리가 도움을 팔요로 할 때 어떤 사 람이 그것을 부정했을 경우, 피장파장으로, 그가 곤경에 빠질 때 그에게서 받온 바 이상의 것을 베풀지 않게 되는 것이다. 명백한 복수심이 개재되지 않지만우리가 악을 악으로 갚는 농일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선한 일을 도모하라(駐 5 )” ;  나는 에라스무스의 “그러므로, 준비하라"는 번역을 만족스러운 것으로 여기지만 그것을 칙역하는 편을 택하고 있다• 모든 사람온 정도 이상으로 자신의 혜택에 집착하고 손해를 피하려고 안 간 힘을 쓰고 있는만큼, 바울은 다른 차원에서의 관심과 수의를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요점은, 우리가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정직성에 의해서 덕을 입도록 끊임없는:관십을 가져야 옳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순전무후 한 양심을 가져야 마땅한 것처럼, 우리는 또한 사람들 앞에서 명예로운 평 판을 가지는대 있어서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의 선행 을 통해서 영화롭게 되는 것이 합당하다면 인간들이 우리에게서 칭송할 만한 것을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할 경우 당신께서는 그만큼의 영광을 상실 하는 샘이다 •.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흐려질 뿐 아니라 당신께서 모독을 받게 되는 것온 우매한 자들이 복음에 불명예를·돌리려는7 목적으로 우리가 저지르는 모든 최악을 들춰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 앞에서 명예로운 것들을 생각하라” 는' 당부를 받 을 때 우리는 또한 이 명령의 의도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인 간들로 하여금 우리를 칭송하게 하려는 뜻에서가 아.니다. 이미 그리스도 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선행에 대한 중인으로서 모든 인간들을 제외하고 오로지 하나님만을 받아들일 것을 당부하시면서 우리에게 이러한 마음을 품지 말것을 엄히 경계하신 바 있다• 이 계명의 의도는 인간들이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들어 올리고 당신에게 찬양을 들립으로써 우리의 모법이 그들에게 의를 추구하도록 져려하며, 마지막으로 그들로 하여금 우리 자 신의 생활에서 그들을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이끄는 아름답고 상쾌한 항 기를 맛보게 하려는 데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략을 받 을 경우, 우리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명예로운 것들을 생각하는 것"을 중 단굽庄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략을 받을 때 .. 속이는자 같으나 감 되다” 는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다(고후 6 : 8).

“l8. 할 수 있거든 너회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 ...” ; 만인의 사랑을 받 을 정도로 마음의 평화와 생활방식이 정돈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우리가 여기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며 서 결코 혼한 은사가 아니다• 없논 공평함 뿐 아니라 최상의 경양과 선한 성품을 부여받아 의롭고 선한 사람들의 마음을 살 뿐 아니라 불경건한 자들의 마음을 바꿔  놓는 단계에 까지 도달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두 가지를 경고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되겠다. 혼히 있는 일이지만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한 답시고 아무에게서도 미움을 사지 않는 방향에서 사람들의 호의를 사려해서는 안된다. 산뜻한 품행과 마음의 평정 때문에 만인의 칭송을 받지만 복음 때문에 가장 가까운 천척들에게서 일망정 미움을 사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두번째 경고는 착한 성품을 가진다면서 굴종의 단계에 까지 빠진 나머지 평화를 보존한답시고 사람들이 최악에까지 고분 고분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모든 사람들과 항상 평화를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노릇인 만큼 그는 두 가지 예외적인 문구,  “할 수 있거든"_과 "너희들의 역량에 따라서"(駐 6)라는 표현을 덧붙이고 있다. 우리는 경건과 사랑이 요구하는 임무에 입각해서 이 예외를결정함으로써 이 두 원인 가운대 한 가지나 두 가지 모두의 압력을 받기 전에는 평화를 해치는 일이 없어야겠다. 종종 필요할 경우 우라가 단호하게 싸울 준비만 갖추어져 있다면, 할 수 있는 한 많이 참으며, 잘못을 용 서하며, 평화를 소중하계 여기는 뜻에서 율법의 엄격성을 자발적으로 면제하는 것이 적합하다. 그리스도의 군인들은 사단의 지배를 받고 있는 세상과 지속적인 평화를 가질 수 없다.

“19.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  그가 여기서 바로 잡고 있는 악은. 앞 에서 지적되었듯이, 그가 방금 언급한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다. 그러나 양자는 동일한 원천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 원천이란 우리로 하여금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무자비하게 만들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하 게 만드는 호의와 생태적인 -교만이 다. 그러므로 이 병페가 거 의 모든 사 람들에게서, 그들이 더 없이 하찮온 상처를 받을지라도 양갚음에 대한 욕 망으로 불타는만큼, 그는 여기서 우리에게 ·우리가 제 아문리 가혹한 상처 들 받는다 하어라도, 스스로 복수하려 들지 말고 그 복수를 수님께 일임 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그리고 일단 이러한 무절제한 감정에 사로잡힌 사 람들온 쉽게 재갈이 물려지지 않기 때문에 그는 우리를 ‘사랑하는' 자라는 설득력있는 표현으로 부르면서 우리를 제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교훈의 내용은 우리가II전노하심에 맡겨야'하기 때문에 우 리에게 가해전 상처에 대해서 앙갚음을하려 들지 말아야한다는 것이다.

진노에 자리를 비켜준다는 것은 주님에게 심판의 능력을 위임한다는 것이다.복수를 시도하는 자들온 당신에게서 이 능력을 박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임무를 횡령하는 것이 부당하다면 우리는 마찬가지로 앙갚음을 그대로 받아넬 수도없으니『그것을그렇게·함으로써 우리가-이 임무를 당신의 것으로만 보류하고 있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취하는 샘이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 에 바울의 말에는 당신의 도움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 는 자들은 하나님께 서 그들을 옹호해 주실 것 이요,  반면에 당신의 재앙을 선취하는 자들에게는 당신의 로움에 대한 여지가 전무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r 바울온 여기서:우리가 우리 손으로복수하는 것 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 이 그러한 욕망의 유혹을.받는 것까지· 금하고'있다. 그러므로·여기서 .. 공 사간의 양갚음에 대해서 구별을 짓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악한 마음과 복수하려는 마음으로 위정자의,·도움을 청하는 것은스스스로 복수할 길을 찾 는 것과 마찬가지로 변명흰할수 없는 것이다. 사실.·, 곧이어서 알겠지만, 우 리는 하나님께 우리를 위해 복수해 주십사하고 항상 간청만 해서는 안된 다. 우리의 청원이 성령의 순결한 열성이 아니라·우리 자신의 개인 감정 에서 나오는 것이 라면 우리는 하나님 을 우리 의 재판관으로가 아니 라 우리 의 타락한 욕망의 종으로 삼는 '샘 이다• I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구출에 대한 올바론 시기를 감을성 있게-기다라 면서 그동안 우리를 현재 괴롭히고 있는 자들이 회개하고 우리의 찬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할 때만 우리는 '전노하심에 맡기는' 자들이 되는 것이 다.

“기록되었으되 원수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 ; 바울은 신명 기 32장 _35 절에 나오는 모세의 노래에서 자신의 중거를. 찾고 있는대 거기서 주께서’ 는 당신이 당신의 원수들을 복수할 것 을 선언하고 있다• 하나님 의 원수들 이란 아무 이유 없이 당신의 종들을 압박하는 모든 자들이다 ... 너희에게 손을 .대는 자는”이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화고 있다 ... 나의 눈동자에 손을 대는 자라” 하고. 그러므로 우리에게는':l1l로움을 받을 이유가없는대도우 리를 괴롭히는 자들이 벌을 받지 않고그냥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요, 악 인들의 해악을 감는다 해서 그것을 며 받거나,거기에 우리 자신을 내맡기 는 것 이 아니 라는 위 로로 만족하도록 하자.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원수들에게니복수해 주십사 하고 기도 하지 말아야 하며 그들의 회심을 위해서 기도하며.그 결과다그들이 우리의 친구가 되도록 해야하지만, 그래도 그들이 계속 그들의, 사악을 고집할경 우 그들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모든 자들이 당하는 것을 받고야 말 것이다. 하지만 바울온 본 문맥을 인용하되 우리가상처를 받는 순간A분노의 감정 으로 불타는 것 이 옳다거 나, 하나님께서 우리 의 상처를 우리 육신의 충동 에 비례해서 복수해 주실 것을 요청하는 것이 옳다는 식으로 인용하는 것 은 아니다. 그는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책임을 횡령하지 않으려면 복수 를 그대로 받아 내는 것이우리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에게 가르쳐 수 고 있다. 다음으로 그의 망에는 악인들이 우리가 우리의 고통을 감을성있 게 견디는 모습을 보고 더욱 며 포악하게 나올 것으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내용이 담겨 있는대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공연히 재앙을 받아 내는 임무 를 스스로 부담하고 있는 것 이 아니 기 때문이다.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 그는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복수하거 나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교훈을 참으로 성 취 할 수 있는가 하 는 점을 보여 수고 있다. 곧 우리는 우리에게 부당한 행위를 한 사람들에 대해서 손해를 끼치는 일을 삼갈 뿐 아니라 그들에게 선을 행해야 하는것 이다. 우리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지 못하는 것온 일종 의 간접적인 보복 행위다 ... 먹고 마시는 것”이라는 표현을 우리는 온갖 종 류의 친절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우리의 능력에 따라서 어느 문 재든, 우리의 원수가 우리의 재물, 충고 또는 노력을 필요로 할 경우, 문제에 도움을 베풀어야 한다 •• 원수’란 표현을 써서 그는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 대해서 적대감을 품고 있는 자들을뜻 한다. 그 사람들의 육체적 곤경을 도와야 마땅하다면 그들에게 악을 저주 합으로써 그들의 구원에 반대하는 것은 며욱 우리의 할 일이못된다•

“그리함으로 네가 숯볼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 바울이 우리들이 우 리 원수둘을 정중하게 대우하는 데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을 보여 주는 것은 공연히 시간과 수고를 낭비하는 문재에 적극적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혹 자는 `숯불'을, 우리들이 무가치한 자들을 친잘하게 대하고, 그가 우리 손 에서 당연히 받아야할 것과 정반대로 행동할 경우, 우리 원수의 머리에 쌓 여지는 파멸로 이해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그의 최책을 두 곱절로 늘이는 셈이 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우리 원수가 자신이 그처럽 친절한 대우 를 받게되는 것을 볼 때 마음이 꿀려 우리를 도로 사랑하게 된다는 뜻으로 본다• 나는 보다 간단한 견해를 취한다‘ 그의 마음은 다음 두 가지 중 한 방법으로 갈라질 것인대, 하나는 그가 천절을 통해서 부드러워지거 나, 아 니면 아무것도 그를 달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다 하더라도 그는 그의 양 심의 중거로 찔립과;고문을 받을 것이요, 그의 양십온 그것이 우리의 친철 로 압도되고 있다는 점 을 느낄 것이다.  

“21. 악에게 지지 말고……” ;이 문장은 확증하는 형식으로 쓰여전 것 갈 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전반적인 씨름은 사악을 상대로·-하는 것이다. 만 약에 우리가 보복하려 든다면 우리는 우리가 그것 에게 패배했다는· 정을 인 정하고 들어 가는 샘이다. 그러 나 우리가 악을 선으로 갚을 경우 우리는 바 로 그런 행동을 동해서 우리 마음의 불굴의 지조를 보여 주는 샘이다• 그 리고 사실 이것은 더 없이 영광스러 운 승리요.그것 에 대한 보상온 상상으 로만 가능한 것 이 아니 라 수님께서 그들이 바라던 것' 이상으로 그들의 인 내에 더 큰 성공을 허용하실 때 실제로 체험하는 그대로다. 그러 나 악을 악으로 극복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아마 그의 원수에게 해를 끼치는 면 에 있어서는 그를 능가할지는 몰라도 결국 그것이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 게 될 것인대 그 이유는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그는 악마의 전루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