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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디모데전서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딤전5:3)

1. 성경 (딤전 5:1 ~ 16)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1)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2)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3)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4)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5)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6)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7)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8)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가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 (9)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10)젊은 과부는 올리지 말지니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 가고자 함이니 (11)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 (12)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 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13)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14)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15)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가 짐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 주게 하려 함이라 (16)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1.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 그는 이제 디모데에게 잘못을 교정하는 면에 온순함과 중용을 추천하고 있다. 교정이란 언제나 거기에 씁쓸함이 따 르는 약이요, 비위에 거슬리는 것이다. 더우기 디모데는 청년이었으므로, 그에게 있어서의 가혹성이란 그것이 어느 정도 완화되지 않았더라면 참을 수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나이 많은 사람들을 꾸짖지 말고 자기 부모들에게 하듯 할 것을 명하고 있으며, 실제로 더 부드러운 표현으 로 그들을 권하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 지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들에 대해서는 매서운 격정보다는 유순함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가 디모데에게 나이든 사람들이 벌을 받지도 않고 교정을 받지 않은 대로 죄를 짓도록 내 버려두거나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어도 좋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 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가 의도하는 것은 그들의 나 이를 감안해서 그들이 보다더 참을성 있게 권면에 응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 대해서도 중용을 보여줄 것을 원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초에는 언제나 기름이 섞이지 않으면 안되지만 거 기에 단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나이든 분들에 대해서는 존경을 표해야 하고 동년배들에게는 형제적 온순함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는 목사들에게 그들의 직무가 요구하는 것만 곰곰이 생각하도록 가르치는 것 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개인의 연령에 특별한 관심을 베풀 것을 가르치고 있 는데, 그 이유는 동일한 치료가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대 위의 배우들도 예절을 지키는데 더구나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목사들에게서는 당연히 그것이 무시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도록 하자.
 
"2. 늙은~~~~~~일절 깨끗함으로~~~~~~" ;  이 귀절은 보다 젊은 여자들과 관련되 는 것으로, 그 까닭은 그들 연령에서는 어떠한 미심쩍은 일이든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울은 디모데에게 젊은 남자들에 대해서는 제멋대 로, 곧 무리하게 행동하는 것을 금하지 않고(이것은 그런 금지가 불필요했 기 때문이다) 다만 악의적인 사람들에게 비평의 구실을 하나라도 잡히는 일 이 없도록 하라는 당부로 그치고 있다. 그런 의도에서 그는 그들 상호간의 모든 거래와 대화에 정숙함과 단정함을 요구함으로써 그가 젊은 사람들과 좀더 자유롭게 교제하되 아무런 불리한 평판을 듣는 일이 없게 하고 있다.
 
"3. 과부를 경대하라." ;  이 귀절에서 말하는 존경이란 웃사람에 대한 복 종이 아니라 감독들이 고대 교회에서 과부에 대해 가졌던 특별한 관심을 뜻 한다. 과부들은 교회의 보호 아래 있었으며, 공동 기금으로 부양을 받았었 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네 자신과 집사들의 보호받을 과부들을 선발하는 데 있어서 너는 누가 실제로 과부들인가' 하는 점을 곰곰이 생각해야 마땅 하다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이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에 보다더 상 세하게 설명하겠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왜 바울이 정말로 혼자이 며 자녀들이 없는 자가 아니면 과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그런 환경에서라야 그들이 전적으로 교회에 헌신했으 며, 그 결과 모든 가정상의 걱정에서 벗어나 모든 장애물을 제거받을 수 있 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이 이미 다른 종류의 임무에 얽매여 있는 가족 이 딸린 ,어머니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금지한 것은 옳다. 그들을 참 과부 라고 부름으로써 그는 박탈당하다, 또는 결핍되다는 뜻의 동사인 '케-루스다이' 에서 유래한 헬라어를 빗대어 말하고 있다.
 
"4. 만일 어떤 과부에게" ;  이 귀절은 여러 방법으로 설명되고 있다. 문제 의 모호성은 둘째 소절이 과부들과 자녀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데서 시작된다. 물론 여기에 나오는 동사, 배우다는 복수이고, 과부라는 단어 는 단수이다. 그러나 과부라는 단어를 여전히 이 동사의 주어로 볼 수 있는 것은 주어가 개인이 아니라 어느 계층을 지칭할 때는 흔히 그 동사의 수() 가 바뀌기 때문이다. 이것을 과부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자들은 이 귀절을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가정을 충실하게 다스림으로써 그들이 어른에 계서 받은 훌륭한 양육을 자녀에게 갚으라' 하는 식으로 설명한다. 바로 크 리소스톰을 비롯한 몇 사람의 견해이다. 하지만 이것을 보다 단순하게 자녀 나 손자들을 주어로 보고자 하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그는 그들의 과부된 어머니나 할머니께는 그들의 충성스러운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는 점 을 깨닫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에게 효성으로 보답하는 것(divriπeλαpria- 안티펠라르기아)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은 없으며, 따라서 그것은 교 회에서 제외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그 짐을 부담하기 전에 자녀 들이 그의 임무를 다하도록 해야 한다. 이상이 다른 주석가들의 견해이다. 그러나 나는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문맥에 대한 나의 해석의 적합성을 살 펴보기 바란다. 곧 그들로 하여금 가정에서 경건한 태도로 행동하는 법을 배우게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즉 그들이 가정에서 식구들에 대한 경건한 여러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스스로 하나님에의 예배를 위한 단련을 쌓는 훌륭 한 준비과정이 될 '것이라는 말과 같다. 바울은 자연의 권리 그 자체가 종교 라는 이름 아래서 침해되는 것을 보고 있었으므로 이런 '잘못을 교정하는 뜻 에서 그는 과부들이 가정적인 견습을 통해서 하나님 예배에 대한 훈련을 쌓 아야 또한다는 점을 지시하고 있다.

 

거의 모든 주석가들은 ευσεεν(유세베인) 이라는 동사를 거기에 대격이 따르고 있다 해서 능동적인 의미로 보지만, 헬라어에서는 전치사가 들어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생략하는 것이 보통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그것이 최종적인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들의 어리석고 하찮은 열광주의 때문에 그들의 자연스러운 인간적인 정이 억제되지 않도록 하려면, 인간으로서의 효성(human piety)을 일구어감으로 써 하나님 예배에 대한 훈련을 쌓아야 한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이 귀 철과도 일치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과부들은 자신의 어른들에게 빚지 고 있는 것을 그의 자손을 키우는 일을 통해서 갚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  자기 부모에게 배은망덕한 것 이 보편적으로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일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정이 그것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에 대한 정이 제 2의 경건(the second degree of godliness)이라는 점은 보편적이요, 자연스러운 확신일 뿐 아니라 황새들 도 그들의 본을 통해서 우리에게 감사를 가르쳐주고 있다. 이것이 αντιπελαργα(안티펠라르기아)라는 단어의 어원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명하신 것으로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아무도 이것이 오직 인간적인 (확신에만 그 기원을 두는 것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이다 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5. 참과부로서 외로운 자" ;  여기서 그는 실제적인 과부들이란 자녀가 없이 홀로 있는 자들이라고 설명함으로써 그의 의미를 앞에서보다 더 명백 하게 하고 있다. 그는 그런 자들이라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는 것으 로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그들 모두가 이 일을 한다거나 그들만이 이 일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보는 대로 자식이 없고 아무 친척이 없으면서도 그들의 마음과 생활에 있어서 오만하며 수치심이 없고 아주 불 경건한 과부들도 많이 있는가 하면, 읍, 야곱, 다윗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이 자녀가 많아도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끊임없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 다. 이 소망이 없다면 자녀가 많은 것이 저주스럽겠지만 성경에서는 이것을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으로 여긴다.
 
그러나 바울은 과부들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으로 이야기하면서 고린 도 전서 7장 32절의 의미로 이야기하고 있다. 곧 거기서 그는 결혼하지 않 은 자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에만 전념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의 정이 결혼한 사람들과는 달리 갈라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들이 세상에서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그들에게는 하나님 에 대한 일편단심의 헌신(singleminded devotion)을 훼방할 것이 전무하다 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그들에 대한 천거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도움과 다른 모든 피난처가 그들에게 부족할 경우 교회가 도움의 손길을 뻗 치는 것이 교회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식이 없고 쓸쓸한 과부의 곤경은 목사의 도움을 간청하는 셈이다.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  그가 과부들을 천거하는 두번째 이 유는 그들이 계속적으로 기도에 전념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그들은 교회의 비용에서 도움과 생계유지를 받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이 두 특 성을 통해서 그는 또한 가치 있는 자들과 가치 없는 자들을 구별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사람들에게서 아무 도움을 '예상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 만 의지하는 자들과 기도에 전념하기 위해서 다른 관심과 임무를 포기한 자 들만 받아들이라는 지시나 다름없다. 그밖의 다른 사람들은 자격이 없거나 교회에 유익하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기도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다른 관심 사가 없어야 하는데 부족하다. 사실 여 지만, 우리는 어떤 T, -가사를 돌보드라 분주한 자들은 자유와 한가한 시간이 기서 우리 모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 사람에게 '기도하기 위해서 다른 관심사에서 물러나고 자 유롭게 될 것을 요청하기 전에 각자의 생활 여건이 그에게 부과하고 있는 요구사항을 곰곰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바울이 과부들에게 칭찬하는 내용을 누가는 바누엘의 딸 안나에게서 발견 되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눅2:36), 이 동일한 내용이 모두에게 가 능할 수 없는 것은 각자의 생활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안나를 모방하 는 것이 아니라 우스팡스럽게 만드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제단에서 제단 로 쏘다니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대낮까지 탄식이나 늘어놓고 투덜 는 어리석은 여자들이다. 그들은 이것을 구실로 삼아 그들의 모든 가정의 이무를 벗어버리고는, 만약 집에 돌아오면 모든 것이 자기들 취향대로 정돈 되지 않았을 경우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온 집안 식구들을 괴롭히고 어 떤 경우에는 주먹질까지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밤낮으로 기도할 수 있는 흐로 대 의 한가함이 과부들과 자식 없는 자들의 특권인 것은 그들이 가정을 다스리는 데 지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일들로부터 구속을 받지 않고 자유롭기 때문 이라는 점을 명심하도록 하자.
 
결코 이 귀절은 한가한 생활 때문에 자신들의 중얼댐이나 목소리를 파는 수도사나 수녀들의 편을 지지하지 않는다. 과거에 열광주의자들(Euchites) 또는 .구결승들(Psallians)이 그런 사람들이었는데, 로마의 수도사나 사제들 도 다를 바 없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열광주의자들은 지속적인 기도에 의해서 그들이 스스로를 경건하고 거룩하게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지 만, 수도사들은 힘을 덜 들이고도 다른 사람들까지 거룩하게 통할 수 있는 것 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바울의 마음에는 전혀 이런 생각이 없으며, 그가 뜻하고 있는 것은 ,방해할 ,것이 전무한 상태에 있는 과부들이라야 훨씬 더 자유롭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뿐이다.
 
"6.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여자는)~~~~~~" ;  지금까지 참된 과부에 대 해서 |묘사했으므로 여기서는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사람들과 대조하고 있다. 그가 여기서 사용하는 σπαταλωσα(스파탈로-사)는 고삐를 풀고 편안하 고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따라서 내가 보기에 오바울은 과 부 신분을 이런 식으로 남용함으로써 결혼의 멍에와 온갖 생활의 불편을 벗 어버린 나머지 쾌락적이며 태만한 생활을 하는 자들을 비평하고 있는 것 같 다. 우리가 보는 대로 자신의 자유, 편의에만 관심을 가지며 너무 경솔하 게 행동하는 자들이 많다. 바울은 이런 여자를 가리켜 '살아 있으나 죽은 자 로 부르고 있다. 주석가들 중에는 이것이 이런 여자의 불신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 쓸모 없는 무용지물인 경우를 가리켜 죽었다고 쓰는 것이 더 적절한 의미라고 .생 각한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우리의 행동이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 이외 에 무슨 목적이 있겠는가? 아니면 그 반대로 우리는 '살아 있다'는 단어를 중요시할 수도 있다. 안이한 삶을 원하는 자들은 언제나 인생이란 살아가 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잘 살아가기 위한 것이다'라는 속담을 인용하기 마련 이다. 이렇게 되면 그 의미는 '만약에 그들이 좋아하는 것만을 행하며, 오 직 안이와 쾌락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행복하게 여기며 살 가치가 있는 생이 라고 생각한다면, 나로서는 그들이 죽은 자라고 지적하겠다 라는 뜻이 된 다. 이것은 너무 재간을 부리는 해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터이므로 나는 그 해석을 따르지 않은 채 지나가는 말로 이것을 언급하고 싶었을 따 름이다. 여기서 확실한 것은 바울이 쓸모없는 여자들을 가리켜 죽은 자들이 라고 부름으로써 태만을 정죄하고 있다는 점이다. 
 
"7.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 이것은 그가 디모데에게 통할 일만_당부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이런 종류의 오류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꾸준히 권면해야 한다는 뜻이다. 목사의 임무란 사악하고 이기적인 습관으 로 무모하게 행동하는 자들에게 대항할 뿐 아니라 그의 가르침과 지속적인 권면을 통해서 최대한의 힘을 기울여 그 모든 위험으로부터 경계하고 감시 하는 것이다. 그들을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기까지는 목사는 그들을 분별 있고 사려깊게 다스리지 않으면 안된다. 아니, [무가치한 여자들이 이끌어내 지거나, 스스로를 들이미는 일이 없도록, 교회에 미리 특명고해 두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또 바울이 이런 종류의 교훈을 하는 것은 이것의 효용성 때문이니, 다시 말해서 흔한 교훈이라 해서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 것이 선하고 완전한 생활을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나 다름없 다. 하나님의 학교에서 배우는 것 가운데 거룩하고 완전한 '생활에 대한 연구보다 더 세밀하게 배워야 할 것은 따로 없다. 한 마디로 이 윤리적인 교 훈은 분명하지도 않고 아무 실용성도 없는 기묘한 착상들보다 훨씬 더 중요 하다. 이것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 르게 함과 의로 공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 16) 라는 말씀 그대로이다.
 
"8. 누구든지 자기 친족~~~~~돌아보지 아니하면~~~" ; 에라스무스는 이것을 그 성이 여성이라는 듯이 어떤 여자든지 아니하면 하는 직으로 번역하 고 있지만, 내게는 이것을 일반적인 '발언으로 보는 것이 더 가능한 견해인 것 같다. 바울이 아주 특수한 주제를 다루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의 논리를 일 반적인 원칙에 기초하며 특수한 결론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교의를 이끌 어내는 '것은 그의 습관이다. 그리고[이 발언은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적용 되어야 더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자신들의 결육, 특별히 자기 식구들을 보살피지 않는 자들을 가리켜 믿음을 배반한 자 들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이처럼 모든 인간의 .감정을 제쳐놓는 사람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전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로 하 여금 하나님의 자녀들로 만드는 신앙은 우리를 결코 야수의 수준 이하로 격 하시킬 수 없다.

 

그러한 몰인정은 하나님에 대한 공공연한 멸시이며, 신앙 의 부정이다. 바울은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신의 식구를 소홀히 하는 자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 인 것으로 이야기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데 성장할수록 그만큼 그에게는 핑계가 줄어들기 마 련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뚜렷한 빛에 대해서 눈을 조감아버리는 자들은 불신 자들보다 더 악독하다. 둘째로, 이것이 자연 자체가 가르치는 임무인 것 은 그것이 στортαι φvouxai(스톨가이 뛰시카이), 즉 자연스러운 정이기 때 문이다. 그리고. 불신자들이 자연의 안내에 따라서 자기 식구들을 사랑한다 면 전혀 [그런 감정으로 j동요받지 [않는 사람들을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겠 는가 ?3그들은 [그들의 금수성(brutality)에 있어서 |불경건한 자들을 ,능가하 는」것이 ,아닌가? 흑자는 불신자들 사회에도 잔인하고 야수적인 부모들이 많지 않느냐고 질문할는지 (모르나 거기에 대한 설명은 요간단하다.

 

왜냐하면 바울은 여기서 천성의 안내에 따라서 자신들의 자손에-대해서 관심을 갖 는 .부모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든 여기서 이 탈하는 사람은 [아주 부자연스러운 사람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왜,사도는 어떤 사람 자신의 자녀들보다 그의 권속의 요청을 앞세우고 있는 가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그가 .말하는그의, 권속과 특별히 자신의 자녀들'이라는 두 표현 속에 자녀와 손자들이 포함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비록 자녀들이 입양에 의해서 포기되거나, 결 혼에 의해서 남의 식구로 넘어가거나,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부모의 집을 떠났다 하더라도 천성의 주장은 결코 전적으로 폐지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맡겨두신 보다 어린 자들을 다스리는 어른들의 의무는 결코 통째 제거되지 않는 법이다. 아직 집에 남아 있는 자녀에 대한 임무는 더욱더 크다. 곧 그 들의 부모가 그들을 보살피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혈족이요, 그들 밑에 있는 권속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9.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 ;  그는 다시 한 번 어떤 과부들을 교회가 받아들여 보살펴야 하는가를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앞에서보다 더 명 백하고 상세하다. 먼저 그는 그들이 60세 이상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 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공공비용으로 생계를 유지했던만큼 그 들이 그 나이가 되지 않고서는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더 [강력한 이유는 아직도 그들에게 재혼할 |가능성이 남아 있었는데도 그들 이 교회 봉사에 전념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받아 들이는 조건은 교회가 그들의 곤경을 도와주고 그들 편에서는 :그들의 건강 이 허락하는 한, 가련한 자들에 대한 사역에 종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들과 교회 사이에는 상호 의무가 있었다.

 

아직 '인생의 '혈기왕성한 시기에 있는 사람들이 남에게 부담이 되는 것도 옳지 못했지만, 그들에게는 마음을 바꾸어 재혼하고 싶게 될 염려도 있었다. 바로 이 두 가지 이유에서 그는 60세 미만의 여자들은 받아들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 여자가 60세가 넘으면, 특별히 그녀가 평생 한 남편만 설겨왔다면 재혼에 대한 위험은 완전히 사라졌다. (한 여자가 [그 나이에 사단하도록 한 남편으로 만족하고 있었다는[사 실은 그녀의 전제와 정숙에 [대한 일종의 보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 것은 그가 두번째 결혼을 찬성하지 않는다거나 재혼한 사람들에게 나인을 찍기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 그는 더 젊은 과부들에게는 결혼할 것을 격려 하고 있지만 남편을 필요로 하는 여자들에게 강요된 정숙을 부과하는 것을 아주 '신중하게 피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다음에 다시 언급하고 있다.
 
"10.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  뒤이어지는 특징은 과부들이 모두 존 귀하고 근면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확실히 하려는 뜻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틀림없이 과부들 사회가 존귀하고 높은 평판을 받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 기에 바울은 하거 생활 동안에 탁월한 평판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만을 그들 에게 일반아들이기를 원하고 있다. 이 사회는 한가하게 지내거나 게으름피우 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자들이 노쇠해서 명예롭게 은퇴할 때까지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그러한 직무를 수행할 준 비를 갖추도록 하는 뜻에서 그 직무에 속하는 여러 임무, 곧 자녀 양육의 수고와 근런, 손님 접대, 가난한 자들 돕기, 그리고 다른 자선 사업 등에 있 어서 오랜 체험을 가지고 있기를 그는 바라고 있다. 플로슈트드나는 불임 여성들은 [오직 그들에게 자녀를 : 낳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모두 거 절해야 하느냐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울은 여기서 자식이 없는 상태 가 아니라 자신들의 자녀 양육의 수고를 기피함으로써 남에 대한 임무 역시 전혀 무관심한 쾌락을 사랑하는 어머니들의 무책임성을 정죄한다고 대답하 겠다.그와 동시에 그는 이러한 제안을 [마다하지 않은 경건한 부인들이 그 들의 명예로운 보상으로 노년기에 교회의 품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고 있 다.
 
"발을 씻기며~~~~" ;  여기서 성도들에게 통상적으로 비바치는 모든 봉사에 대한 비유법적 발표현으로서, 형제의 발을 씻어주는 것은 당시의 습관이었다. [이러 한 임무는 별 [의미가 없고 거의 천박스러운 것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따라 서[그는 이것을 뽑내지 않고도 부지런한 여자들의 특성으로 언급하고 있다. 다음으로 언급되는 것은 후덕함과 관계되는 것인데, 그는 이것을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는 자'라는 식의 보다 일반적인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요컨대 는 여기서 {친절한 행위에 대해서 대해서{언급하고ⅸ다.
 
"11.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  이것은 그들을 교회에서 추방한다거나 어 떤 수치를 당하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지금까지 언급하고 있는 이 명 예로운 과부들의 단()에서 그들이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하나님의 영이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시면서, 그 나이가 못되면 결혼하지 않은 상태가 위험하기 때문에 60세 미만의 여자는 아무도 이 단에 들어올 자격이 없는 것으로 규정해 놓으셨다면, 후대에 아직 정력이 왕성한 청춘기의 여자들에게 영속적인 독신의 원칙을 부과한 것은 얼마나 몰염치한 짓인지 모르겠다. 거 듭 말하지만 바울은 여자들이 무절제의 위험을 벗어나 그 허약한 노년기에 달하기 전에는 결혼을 억제하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 후대에 그들은 처녀들 이 수도원에 들어가는 연령을 40세로 낮추고, 그 다음에는 30세로 낮추고, 마침내는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고 모두를 거침없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과부들보다 남편을 가져본 일이 없는 처녀가 더 절제하기 쉬운 것으 로 다그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이 여기서 경계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경계하도록 당부하는 위험을 피하는 데 성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직 젊고 결혼하는 것이 더 좋은 소녀들에게 몇을 놓는 것은 무모하고 잔인한 짓이 다.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 그리스도에게 배반적인 음욕이 일 때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부정한 여자들이란 자신들의 (부름받은 상태를 망 각하고 경거망동에 빠지는 자들이다. 그들은 스스로 온건하게 억제하면서 존귀한 부인들(matrons)에게 어울리게 행동해야 옳다. 따라서 보다더 호 사스럽고 보다 덜 규제된 생활 방식은 스스로를 충실하겠노라고 맹세한 그 리스도에게 배반적인 부정( wantonness)함과 맞먹는다. 바울은 이러한 예를 많이 보아왔기에, 거기에 대한 대비책으로서 언제라도 결혼할 욕망을 품게 할 연령층의 여자는 아무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규정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 제도 아래서 진행되고 있는 수녀들의 강압적인 독신은 얼마 나 가증스러운 악인지 모른다. 이 독신주의가 고의적으로 밀어젖히지 않는 장벽이 어디 있는가? 따라서 언뜻 보기에는 그것이 용납될 만한 것으로 보 였을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들은 수없이 무시무시한 체험을 통해서 깨달은 바가 있어야 했으며, 바울의 충고를 따라야 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그렇 게 하기는 고사하고 날마다 자신들의 외고집으로 더욱더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고 있을 뿐이다. 비단 수녀들뿐 아니라 그들은 사제들과 수도사들에 게까지 동일한 영구적인 독신을 지키도록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수치스러
 
운 정욕이 그들 사회에 [횡포를 부리고 있어서 스스로를 정숙하게 지키는사 람은 열의 하나도 [찾기 어렵다. 수도원에서는 보통 간통을 가장 작은 음악으 로로 여긴다.: [그들이 만약에 마음을 돌려 바울을 통해서 j말씀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한다면 당장에, 그가 처방으로 내놓는. 이 대책에 따라야 할 것이지만, [그들의 교만은 너무도 뻔뻔스러운 것이라서 그들에게 이 조점을 지 적해 주는 모든 사람들을 광포한 박해에 조처하고 있다: 흑자는? 그리스도에 계 배반적인 .이라는 말을 결혼하다'와 '관련시키기도 한다. [어떻게 '보든 의 미상의 차이는 없지만 나는 먼저 언급된 번역을 취하는 바이다.
 
"12. 심판을 받느니라." ;  그이것을 『비난을 받는다' 는 의미로 [보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여기에서 더 심각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곧 바울이 .영원한죽 음에 대한 정죄로 그들을 두렵게 위하고 있는 [것으로 일본다. 이것은 그들을 그 리스도와 연합시키기로 된 이 탁월한 반열(order)이 대신에 그들의 정죄의 원인이 되고고 말았다는 말로써 .그들을 비난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거기 에 대한 이이유가 」나오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 자신이 세례받을 때 받아들 인 기독교 신앙을 완전히 배척하기 때문이다. 귀절을 다른 의미, [곧!크 들이 평생 동안에 결혼하지 않고 살 것을 약속했을 것으므로, '결혼함으로 써 그들이 교회에게 했던 보장을 배반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사람 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설명이다. 이런 경우에 그들의 첫번 신앙 에 대해서 언급할 필요가 무엇인가?

 

따라서 바울은 그들을 더욱더 가혹하 l 게 책망하면서, 그들이 약속한 생활 방식에서 이탈함으로써 '그리스도와 교 회에게 수치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사악한 반역으로 그들의 첫 신앙을 파기 해 버렸다는 사실을 들어 그들의 과오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있다. 어떤 사 람이 온건의 한계를 일단 넘어설 경우 그녀는 계속해서 (온갖 수치스러운 치 욕에 말려들기 마련이다. 그는 .경건한 자들의 때문에 너무도 수치스러웠던 그 들의 망동과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던 정욕을 들어 |그들을 꾸짖고 있다.이 러한 죄악에 이끌려 그들은 더욱더 '수치스러운 일에 빠져들고 마침내 기독 교를 배척하게 되었다. 이 설명은 지극히 적절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유익 을 끼쳐보겠다던 그들의 욕망이 오히려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경계기가 되고 말다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노릇인가?

 

교황주의자들은 이 '귀절에서 .영구적인 독신의 서원에 대한 지지를 발견 하려 하는데, .이것 또한 터무니없는 것이다. 과부들에게서 명백한 말로 약 속을 .받아내는 것이 습관이었다고 가정한다 하더라도 이것이 그들의 경우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약속하는 의도를 곰곰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과부들이 결혼하지 않고 남아 있기로 약 속한 이유는 그들이 결혼했을 경우보다 더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남편과 교회에 동시에 헌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 나 교황주의자들은 독신 그 자체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만한 먹이라는 듯 야 그것을 두고 서원한다. 다음으로 이 과부들은 자신들이 더 아상 결혼 할 수 없는 나이에 결혼에 대한 자신들의 자유를 포기했다: 다시 발해서 그 들은 최소한 60세가 되어야 했으며, 한 번의 결혼으로 만족하고 자신들의 정 숙에 대한 증거를 보여주어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 로마 가톨릭 사회에서는 그 나이 이전에, :아니 청춘의 연기가 결정에 달해 있을 때 독신의 서원을 하고 있다. (우리는 두 가지 이유에서 이 (횡포스러운 독신 원칙을 부정한다. 첫째는 그들이 그것에 의해서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공로가 있는 것처럼 꾸며대기 때문이요, 둘째는 그들의 무모한 서원으로 그들이 영혼을 파멸 로 내던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둘 가운데 어느. 잘못도 이 귀절에서 묘 사되고 있는 고대 제도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마치 결혼한 상태가 하 나님께 덜 기쁨이 된다는 식으로 되는 대로 절제의 서원을 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들이 선발되어 일하게 되는 직무가 그것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 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행동할 수 있었지만, 결혼한 다는 것이 터무니없고 시기가 적절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결혼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서 이 과부들과 수녀들의 차이란 여선 지자 안나와 베스타 신전의 처녀 클라우디아(Claudia)와 같았다.
 
"13.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   여자에게 있어서 가정을 지킨다는 것 보다 더 어울리는 일도 없다. 그러므로 고대인들 사회에서는 거북이가 한 가 정의 훌륭하고 영예로운 어머니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정반대의 악으로 고 통당하는 여자들도 많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쏘다니는 자유보다 더 즐거운 것이 없으니, 특별히 그들이 가정에서 할 일이 없거나 가사에서 풀려날 때 더욱 그렇다. 그리고 또한 이 과부들은 그들이 맡고 있 는 공적 지위에 대한 존경 때문에 쉽게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이 기회는 교회가 친절하게 그들에게 허용한 것이지만 그들은 이것을 태만을 위해 악용했으며, 다음에는 흔히 이 태만은 수다를 낳는 호기심으로 발전 해 나갔다. "꼬치꼬치 캐는 사람을 피하라,그는 언제고 [너무 많은 말을 늘어놓는다"라는 호레이스의 경구()는 참으로 지당한 말이다.

 

플루타아크는 꼬치꼬치 캐는 사람은 전혀 믿지 말라. 그들은 무엇이든 그듣는/대 로 내뱉지 않고서는 후련해 하지 않는 자들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특별히 천성적으로 수다스러우며 비밀을 지키지 못하는 여자들에게 있어서 사실이다. 따라서 바울이 보태만,호기심, 그리고 수다를 함께 묶는 것은 당 연하다. 
 
"14.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가서~~~~~" ;  건방진 사람들은 바울의 이 교훈을 비웃는다. 이미 무르익은 욕망에 대해서 더 이상 격려할 필요가 뭐람, 모든 과부들에게 즉각 결혼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 단 말인가 라는 식으로 그들은 말한다. 공광신자들은 결혼에 대한 이 :가르침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을 그리스도의 사도에게 아주 부적절한 것으로 것을 감안할 때 건전한 판단을 가진 사람들은 바울이 여기서 가르치고 있는 것이 전적으로 유익하고 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할 것이다. 한편 과부 의 신분이란 많은 사람들에게 방종에 대한 더 큰 기회를 제공하며, 다른 한 편으로는 성화가 독신(그것도 마치 천사적인 완전이라도 되는 (듯이)으로 이 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며, 결혼이 육신의 오염내를 피운다는 식으로 그것을 전적으로 정죄하거나 멸시하는위선적인 기만자들이 언제고 밀려오기 마련이 다수남녀를 불문하고 자신들의 부름을 곰곰이 생각하는 자들은 극소수이다. 

 

아내를 다스리는 것이 헤아릴 수 없이 귀찮다 해서 짐을 자발적으로 모르며, 여자는 여자대로 얼마나 이 지는 남자를 찾아보기가 얼마나 드문지 멍에에 복종하는 것을 꺼려하는지 모른다. 이처럼 바울은 젊은 여자들에게 결혼할 것을 명하여 그들을 부부간의 쾌락으로 초청하거나 그들에게 자녀 들을 낳을 것을 -당부함으로써 그들이 정욕에 빠지라고 격려하고 있는 것 정숙한 결혼을 할 것과 :그렇게 대합으로써 결혼생활에 이 아니라, ⑬그들에게 따르는 여러 (부담에 응할 것을 충고하고 있다. 그가 특별히 이렇게 하는 것 은 교과부들의 동반열에서 그들을 배척하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수치스러운 것으로 보이지 않게 출하려는 뜻에서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가정을 보살핀다. 해도 과부로 남아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생활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는 이야기이다.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미신적인 공상을 아예 무시 해 버리시며, 우리들이 자신의 성향에 따라서 질질 끌려다니는 것보다 우리 가 그의 소명을 받아들이는 순종을 무엇보다도 연구하게 여기시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으로 달랠 경우 과부들은 상처를 받는 것으로 불평할 수 없게 되 며, 존귀한 자들로부터 제외된 것을 언잖게 생각하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해 서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있으므로 결혼한 상태에서라고 결코 주님께 기쁨이 덜 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자녀를 낳는다'는는 한 마디로 자식 .양육에 따르는 어려움을 종합하고 있으 며, 가정을 다스린다 는 말 .속에 가정주부로서의 모든 임무를 포함시키고 있다.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 . 남편이란 자기 아 내의 보호자요, 따라서 과부 신분은 많은 음흉한 혐의를 받기 마련이다. 복 음의 원수들을 공격하려고 무장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 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한창 청춘기에 있는 과부가 악인들이 그녀에 계서 중상모략을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신중하게 행동한다는 것은 아주 어 려운 노릇이다. 따라서 그들이 실제로 험담가들의 입을 봉하는 뜻에서 원가 덕이 되는 일을 하려면 혐의를 덜 받는 생활 상태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 여기서 나는 이것을 어떤 한 여자의 개인적인 원수들이 아니라 복음 의 공동 적들과 관계되는 것으로 보는데, 그 까닭은 바울이 일반적으로 말 하고 있다.
 
"15. 이미 사단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  제아무리 거룩한 것이라 할 지라도 인간의 사악성 때문에 거기서 어떤 부작용(some ill)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본질적인 것들은 항상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 안되는데, 이것 은 그 결과가 어떻든 하늘이 무너진다 할지라도 마찬가지 이야기이다. 그러 나 현재의 경우에서처럼 우리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어떤 경우에 있어서나 우리가 자유자재로 선택할 수 있는 경험에 비추어서만 현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입장이다. 아직 젊은 여자들이 과부 의 서열에 끼는 문제는 결코 필수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체험은 그것이 위 험스럽고 해로운 관습(practice)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따라서 바울이 장차 여기에 대하여 경계를 펌으로써 전혀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그리고 바울이 만약에 몇몇 여자들의 결점을 보고 그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일반적인 원칙을 제시할 정도였다면:오 늘날 교황주의자들이 조금이라도 덕스러운-것에 관심이 있을진대, 이 독신 이라는 불결한관습을 얼마든지 폐기할 수 있는 그러나 그들은 단 하나의 .매듭이라도 풀 생각은 고사하고 수백만의 영혼들을 불경건하고 악 마적인 원칙의 잔인한 쇠고랑 속에 옮아매고 있다. .여기서 그들의 야만적 인 잔인성과 바울의 거룩한 열성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드러나는지 모른다 사단에게 이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어느 인간도 사단을 따라가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에게서 털끝만큼도 빗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말해서 사단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는 모든 자들의 주(lord)이다. 따라서 우리는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차치명적인가 하는 점을 경고받고 있으니, 그 까닭은 우리가 그렇게 될 경우 하나님의 자녀 대신 사 단의 노예가 되며 .그리스도의 통치에서 벗어나, 사단의 아귀에 놓여지기 때 문이다.
 
"16. 만일 믿는 여자에게~~~~" ; 개인들은 대개 전체 교회에 짐을 내던져 버리기를 좋아하므로 그들에게 이것을 경계하라고 무렷하게 명하고 있다. 그 가 자신들과 관련되는 :과부들을 보살피지 않으면 (안되는 신자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불신자들과의 관계를 끊어버린 과부들의 경우, 그들이 교회의 보호를 받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의 것을 아 끼면서 교회의 비용에 부담시키는 것이 ,나쁘다면, 우리는 여기서 일단 교회 에 바쳐진 것을 기만과 강탈로 п더럽히는 자들의 신성모독이 얼마나 .악독한 것인가 하는 점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