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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디모데전서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딤전4:12)

1. 성경 (딤전 4:11 ~ 16)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11)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12)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13)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14)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5)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16) 
 
2. 묵상 (Calvin선생주석)
"11.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  이 말씀은 그의 가르침이 아무도, 설령 그것을 날마다 듣는다 하더라도 지겹게 여겨서는 안될 성질의 것이란 말이다. 가르쳐야 할 것은 이밖에도 많지만 그가 이것들을 강조하는 것은 그것을 중요한 것으로 믿고 있으며, 따라서 간략하게 지나치는 것이 옳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다고 볼 수 없고 오히려 날마다 반복할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무엇이 가장 근본적인가를 곰곰이 살피며 그것을 묵상하는 것이 현명한 목사의 임무이다. 그리고 이것은 계속 반복되어야 마땅한 것으로서 즐거운 마음으로 듣고, 또한 하나님께 속한 모든 듣는 자들에게는 결코 지겹게 느껴질 수 없다.
 
"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꼭 디모데만이 아니라 그밖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곧 그들이 디모데가 다른 면, 즉 그리스도의 사역자로서 행동을 바르게 가지는 한, 연령 때문에 그가 받아 마땅한 존경을 그에게 돌리지 않는 것을 그는 원치 않고 있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디모데에게 그가 연령상으로 부족한 점을 그의 행동의 진지성으로 보충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데, 이것은 침착한 몸가짐을 통해서 많은 존경을 삼음으로써 까딱 잘못했다가는 멸시의 대상이 되기 쉬운 네 연소함 때문에 결코 네 권위가 감소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 하는 말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우리는 디모데가 많은 목사들 가운데서 탁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아직 어리다 (young)는 점을 알게 되면, 사람의 가치를 나이 숫자로 따지는 것이 헛 일이라는 점을 보게 된다.
 
다음으로 그는 그들에게 참된 구별이란 홀장이나 반지, 예복이나 기타 어린이들 장난감같은 외형적인 장식이 아니라 건전한 가르침과 거룩한 생활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지적해 주고 있다. '말과 생활 방법'이란 언행과 그의 전체적인 생활을 뜻한다. 다음으로 언급되고 있는 덕은 경건한 행동의 내용으로서 사랑, 영, 믿음, 그리고 '정절'이 나오고 있다. 영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나는 그가 하나님에 대한 열성을 뜻하는 것으로 보지만, .그것이 보다. 일반적인 의미로 해석되는 것도 반대하지는 않는다. '정절'은 정욕의 반대가 아니라 생활의 철저한 순결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존경할 까닭은 전 혀 없고 무지, 불결한 생활의 본보기, 경솔, 그리고 다른 잘못을 통해서 멸시의 대상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아무런 영예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불평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것인가를 영예를 얻는 유일한 길은 우리를 멸시로부터 방어해 줄 뛰어난 덕에 의한 것 뿐이다.
 
"13. 내가 이를 때까지~~~~~" ;  그는 디모데가 얼마나 부지런한가를 잘,알고 있으면서도 그에게 끈질기계 성경을)읽을것을 추천하고 있다. 목사들이 먼 저 배우는 자세를 갖추지 않고서야 어떻게 .남들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 극 리고 그처럼 위대한 사람도 하루하루진전을  보도록 힘쓰라는,'권면을 받는 데 하물며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충고가 필요하겠는가?[성령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들의 직무를 수행하는 법을 배우려고 밤낮으로 탐구하지 않는 자들의 나태에 화가 있을지어다 사용자신이 도착할 것이라는.말은 그의 권면 에 무게를 더해 주고, 있다. 다사 말해서 바울은 자신이 곧 도착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으므로 디모데가 잠시 동안이라도 빈둥거리지-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우리도 우리의 전체 ,생활에 [대한 계획을 짜는 데, 있어서, 얼마나 더 관심을 가져야겠는가 그뿐 아니라 한가하게;읽는것을,충분한 것으로 여 기는 일이 없도록 하는 뜻에서 그는 그가 읽는 것을 또한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며, 마치 여기서, 그가 배운:바를:남들에게 전달하는 법을 배울 것을 충고하고 있다는 듯이 가르침과 권면에 집착할것을: 당부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순서를 주목해야겠는데, 그는 가르침과 권면 사이전에 읽는 것 을 말하는 까닭은 성서가 모든 지혜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사들은 그의 양떼들 앞에 제시할 모든 것을 거기서 찾아내는 것이 옳다.
 
"14. 네 속에 있는 은사~~~~조심없이 말며" ;  그는 디모데에게 교회 건설을 위해 부여받은 은총을 사용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증대를 가져오도록 하는 뜻에서 인간에게 베푸신 재능이 상실되거나 땅 속에 쓸모 없이 묻혀버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어떤 은사를 '소홀히 하는 것은 그것 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솔과 게으름에서 비롯되며, 보따라서 사용 부족은 그것 을 녹슬게 하고 못 쓰게 만든다. 따라서 우리 각자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능력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그것을 충분히 활용해야겠다. 그는 이 은총이 예언을 통해서' 그에게 주어진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 다. 이것은 이미 지적했듯이 성령께서 계시를 통해서 디모데를 목사의 위치 로 받아들여 주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일상적인 방법에 따라서 인간들 의 판단으로 선발된 것이 아니라 먼저 성령에 의해서 지목되었던 것이다.
 
그는 또한 이 은사가 안수받을 때' 주어진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것은 사역과 함께 그것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은사들이 그에게 허용되었다는 뜻이다. 안수를 통해서 사역자들을 선택하는 것은 사도들의 통상적인 습관 이었다. 나는 이미 이 의식의 기원과 의미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한 바 있 으며, 나머지는 <기독교 강요>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귀절에서 장 로회를 집합적인 의미에서 장로단(the college of the presbyters)으로 보는 자들의 견해가 내 생각으로는 옳다. 물론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할 때 또 다른 설명, 곧 그것을 한 직분의 명칭의 뜻으로 보는 견해에 나 역시 동 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안수라는 의식으로써 그가 지칭하는 것은 장로직 분으로의 임명 행위요, 따라서 그의 의미는 디모데가 선지자들의 음성에 의 해서 이 사역으로 부름을 받고 엄숙한 의식에 의해서 거기에 임명됨과 동시 에 성령에 의해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은총을 부여받았다는 것 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안수에 의해서 상징으로 보여준 성별이 성령에 의해서 효과를 발휘하게 하셨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 의식 이 공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5.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  교회를 충실하게 설기는 데 있어서 어 려움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더 진지하게 목사는 자신의 능력을 거기에 쏟아야 하며, 그것도 잠시 동안만이 .아니라 지침이 없는 불굴의 인내를 다 하는 가운데 그렇게 해야 옳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일에는 무기력이나 게으름의 여지가 전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그것이 더 없이 큰 정성과 억척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  그의 의미는 그가 그를 통해서 교회가 더욱더 건축되고 교화()를 받으며, 그의 수고에 맞는 결과가 나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 하루 만에 타나도록 하는 방향으로 열심히 날마다 ,발전을 보도록 힘쓰지 않으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는 관계되는 것으로 보지 안되었다. 흑자는 이것이 디모데의 개인적인 발전과 만, 그러나 나는 그것이 그의 사역의 효과를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모든 사람에게(in all)~~~~~~" ; 이 귀절은 남성일 수도 중성일 수도 있다. 따라 서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가능하다. 곧 모든 남자들이 그의 수고에서 나 오는 발전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의미가 크 하나요, 다른 하나는 모든 면과 모든 방향에 있어서 발전이 나타나도록' 하는 의미가 그것이다. 나는 후자 를 택한다.
 
"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  좋은 목사란 두 가지 면, 곧 열심히 가르치는 일과 자신의 정직성을 지키는 면에 있어서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가 거룩한 생활에 계속적으로 열심히 가르치는 일을 덧붙이지 않는다면, 자신의 생활을 모든 영예로운 것으로 바로잡으며 나쁜 본을 보여 주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가르침 역시 거기에 일치하는 생활의 정직성과 성결성이 따르지 않는다면 가르침 자체만으로는 아무 가치 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개인적으로 자기 자신과 교회의 전반적인 유익과 관련되는 그의 가르침에 관심을 갖도록 권면하는 것은 당 연한 일이다. 다시 한 번 그는 그에게 한결같음을 천거함으로써 그가 결코 지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까닭은 우리가 확고부동하게 저지하지 않을 경우 우리를 정도에서 벗어나게 할 사건들이 무수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을 행함으로~~~" ;  목사들의 열성이 크게 증대되는 것은 자신의 구원 과 백성의 구원이 자신들의 임무에 대한 진지하고 적극적인 헌신에 달려 있다는 점을 지적받을 때이다. 그리고 확고한 교화를 담고 있는 가르침에는 통상적으로 화려한 겉치레가 따르지 않으므로 바울은 그에게 유익한 것으로 만족할 것을 충고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영광을 추구하는 자들은 자신의 야심으로 살며 재치를 두고 으스대지만 너는 네 자신과 네 백성들 의 구원에만 오직 헌신하는 것으로 만족하라' 하는 말이나 다름없다. 이 것은 전체 교회에 적용되는 충고이니, 영혼에 생명을 찾아주며 건전하게 지켜주는 단순성을 지루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바울이 교회를 구원하 는 일이 디모데에게 있는 것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 가 없으니,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 얻어진 자들은 모두 구원을 받고 있으며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모여지는 것은 복음 전파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사의 불성실과 소홀함이 교회에게 치명적이듯이 그것의 구원이 그의 신실성과 근면성의 덕으로 돌려지는 것도 정당하다. 물론 구원하는 쪽은 오 직 하나님뿐이요, 그의 영광 가운데 제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인간에게 양도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는 데 인간들의 수고를 이용하신다 해서 그의 .영광이 조금이라도 감소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우리의 구원은 그것이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나오며 그의 능력에 의 해서만 효과를 발휘하며 결과적으로 하나님만이 그것의 유일한 주인공이라 는 점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들의 사역을 배 제하거나 이 사역이 구원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바울이 다른 곳에서 말하고 있듯이 교회의 안녕이 의존하는 것은 이 사역이기 때문이다(입4:11).
 
이 사역 자체는 물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사람들을 좋은 목사로 만들며, 그들을 그의 영으로 인도하며, 그들의 일에 축복하셔서 그것이 헛되지 않게 하는 분이다. 만약에 선한 목사의 이런 방법을 통해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구원 된다면, 악하고 무관심한 자들은 그들의 파멸이 그들 위에 세워진 자의 탓 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 까닭은 그의 양떼의 구원이 목사의 면 류관이듯이, 파멸하는 모든 자들은 무관심한 목사들의 손에 있을 것이기 때 문이다. 목사가 자신에게 맡겨진 직무를 충실하게 행함으로써 그의 소명을 다할 경우 자신을 구원하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는데, 이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겔 33 18)라는 말씀으로 주께서 에스겔에게 경고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심판을 피할 뿐 아니라, 신자들이 그 들의 구원의 과정을 끝까지 인내할 경우 구원을 얻는 것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 방식에 대해서는 (빌립보서 제 2장 주석에서 언급한 바 있다(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