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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디모데전서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딤전5:25)

1. 성경 (딤전5:21 ~25)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 (21)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 (22)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23)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따르나니 (24)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25) 
 
2. 묵상 (Calvin선생주석)
"21. 하나님과~~~~~~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바울이 이처럼 엄숙하게 호소하는 것은 이것이 더없이 신중한 의미를 지니는 문제일 뿐 아니라, 또 한 더없이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부당한 호의를 제시하지 않거나, 의심 을 받지 않거나, 불리한 소문의 영향을 받지 않거나, 과도하게 엄격하지 않은 채 모든 사건에 있어서 손에 쥐어진 문제만 곰곰이 생각할 정도로 전적으 로 부당하게 판단을 내리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도 없다. 오직 개인적인 문 제점에 무관심할 때만 우리는 공평한 판단에 도달할 수 있다. 우리는 디모 데에 대한 이 경고를 통해서 모든 목사들이 경고를 받고 있다는 점을, 그 리고 디모데는 이것을 통해서 제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종종 괴롭히는 모 든 사악한 욕망으로부터 보호받는다는 점을 명심하도록 하자. 그는 이렇 게 함으로써 디모데를 하나님의 어전에 세워놓고 그로 하여금 그가 아주 양 심적인 배려를 통해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곧 그가 이 일을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수행하고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한다 는 점을 깨닫게 한다. 하나님을 언급한 다음에 그는 또한 그리스도를 덧붙 이는 것은 아버지께서 모두를 상대로 판단을 내릴 권세를 그리스도에게 주 셨으며, 우리 모두가 어느 날 드러나게 될 곳이 바로 그리스도 앞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 다음에 천사들을 덧붙이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심판 관이기 때문이 아니라 경솔, 무모함, 사리추구 또는 그릇된 믿음에 대한 앞 으로의 증인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구경꾼으로서 참석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교회를 보살피는 임무를 맡고 있는 자들이다. 사실 교회 통 치가 하나님과 천사들 보는 앞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경솔 이나 태만을 바로잡지 않는 자는 우매하다기보다는 악독하며, 돌보다 더 굳 은 마음을 가진 자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런 엄숙한 호사가 덧붙여질 때 우리는 더욱더 두려워하고 염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가 천사들을 선택 받은 자들로 부르는 것은 버림받은 천사들로부터 구별할 뿐 아니라 그들의 탁월성으로, 곧 그들의 증거가 우리의 보다 깊은 경외를 자극하도록 하려는 뜻에서이다.
 
"편견 수없이~~~~~" ; Πρбкριμα(프로크리마)란 글자 그대로 편견, 곧 사전에 이 루어진 판단을 뜻한다. 그러나 이것의 의미는 우리가 아직 충분히 살피지 못한 문제에 대해서 성급하게 판단을 내릴 때 드러내는 과도한 졸속이거나, 또 다른 사람들보다 그들을 더 좋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을 지나치게 존 경하거나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데서 드러나는 부당한 편애이므로 재판관의 결정에 있어서 이것은 언제나 좋지 않다. 따라서 바울이 여기서 정죄하고 있는 것은 신중한 관심 부족이거나 아니면 사람 차별이다. .이쪽으로나 저 쪽으로 치우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다음의 내용도 마찬가지이다. 재판 관의 임무를 수행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편파성에 대한 사방으로부터 쏟아 지는 공격을 피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은 제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22.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  그는(디모데가 교악의를 경계하고 그리스도의 종들이 그들에게 계속[퍼부어지는:이기적인[요청을|들어주지 않 을 때 그들에게 끊임없이 제기되는 무수한 비난을 피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 음에 틀림없다. 그리스도의 종들이 가흑하다느니 악의적이라느니, 그들이 자신의 장점을 자랑하며  스스로  덤벼드는 자들을 당장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는 잔인하다고 비난과 항의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세대에서 이 모든 것을 충분히 체험하고 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사려깊고 신중할 것과 과도한 열성에 .휩쓸리는 일이 없도록 경고하고 있는데,  이것은 디모데가 그런 권면을 필요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바울이 디모데를 괴롭힐지도 모를 타인들을그의 권위로  억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손을 얹는 것은 임명을 .뜻한다. 그는 상징을 사용해서, 그것의 내용을 표현하면서 충분히 심사를 거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함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인데도. 단지:그가 꽤 만족스러운 행동을 한두가지 보여주었다는 마음에서 그런 사람을 임명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이런 종류의 성급한 욕망을 저지하는 것이 분별력 있고 진지한 감독의 임무이니, 이것은 바울이 여기서 디모데에게 당부하는 그대로이다.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지 말고(다른 사람의죄악에 참여하는자가 되지 말고)" ;  그의 의미는 부당한 임명 행위에 동의하는 감독은 그것을 성급하게 선동한 사람들과 동일한 죄책을 스스로에게 가져오는셈이라는 것이다. 혹자는 이것을 만약에 그가 부적격자들을 받아들일 경우그들이 후에 범하는 잘못이 무엇이든 자신도 그 비난에, 아니 최소한 일부에 말려들 것이다 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더 간단한 설명; 곧, 비록 다른사람들은 여기에 '졸속하게 덤벼들더라도 네가 그들의 죄책을 분담하지 않으려면 그들과 어울리지 말아라' 하는 설명을 따르고자 한다. 우리의 판단이 건전하다 해도 우리가 남들의 우매와 바보짓에 휩쓸리는 경우는 허다하다.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 ; 나는 이것 역시 동일한 주제와 관련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곧 만약에 다른 사람들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거든 거기에 동의하고 인정함으로써 그것에 감염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만약에 네가 그들이 스스로를 더럽히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너만이라도 그들의 뜻에서 홀가분하게 벗어나야 하며 그 결과 네 자신을 정결하게 지키도록 하거라' 하는 말이나 같은 뜻이다. 혹 어떤 사람이 보다 일반적인 설명을 선 택하고자 한다면 그는 얼마든지 자신의 견해를 따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의 해석이 문맥에 더 잘 어울린다고 본다.
 
"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 ; 이 발언 때문에 사상의 흐름이 중단된다고 해서 바울이 이것을 쓰지 않은 것으로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지적했듯이 바울은 이 말하는 내용의 순서나 배열에 있어서 항상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그가 아무런 순서에 구애 받지 않고 서로 다른 주제에 대한 발언을 뒤섞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전혀 생소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또 본래 가장자리에 적혀 있던 간단한 사항이 그대로 옮겨 쓰는 사람의 잘못으로 여기에 쓰이게 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바울에게 경우에 따라서 서로 다른 주제를 뒤섞는 습관이 있다는 나의 이야기를 명심한다면 이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의 내용은 디모데가 자신의 건강을 생각해서 술을 조금 마시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결코 그가 물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 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이것을 일반 음료로 사용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것이 동사, υδροπоτεεν(휘드로포테인)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는 왜 그 에게 단순하게 술을 마시라 고 권하지 않는가? 그는 약간의' 술이라는 말로써 무절제를 경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디모데같은 사 람에게는 전혀 그런 염려가 필요없었다. 나는 이것이 이렇게 이야기되고 있 는 것은 이런 이야기를 해두지 않을 경우 사람에게 술을 마실 것을 권하 는 이것은 무슨 철학인가 ? 이렇게 해도 우리가 하늘에 오를 수 있단 말인 가?' 하는 식으로 그의 충고를 거침없이 반박하고 나서는 악한 사람들의 중상모략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뜻에서인 것으로 설명한다. 이상과 같은 야 유에 대처하는 뜻에서 바울은 그가 오직 필요한 경우에만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그는 온건을 충고하고 있다.

 

여기서 명백 한 점은 디모데가 얼마나 그의 생활 -방식에 있어서 검소하고 (엄격했던지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까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가 이렇게 행동한 동기는 그의 야심이나 미신 때문이 아니었음에 틀림없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고량진미나 호사와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주님의 일에 더욱더 준비를 잘 갖추는 뜻에서 그의 일상 식품 가운데의 일부까지라도 사 양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천성적인 성향 때문이 아니라 절제에 대한 자신의 열성에서 삼갔던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물을 마시 지 말라고 해야 할 사람은 매우 적은 대신 술을 취하지 않게(soberly) 마시 라는 제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 여기서 명백한 점은 우리가 올바르게 행동하고자 할 때라도 우리에게 중용(moderation) 을 가르쳐줄 지혜의 영이신 주님께 간구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디모데의 의도는 물론 옳았지만, 그러나 그가 성령에 의해서 꾸지람을 받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의 과도한 절제생활이 잘못이었다는 점을 배우게 된다. 그와 동시에 우리가 먹고 마시는 데 있어서 절도를 지켜 야 당연하지만, 각자는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 아 있는 동안 하나님과 우리 이웃에게 유익하고 소용이 되도록 하는 뜻에서 자신의 건강을 보살펴야 한다는 일반적인 원칙이 선언되고 있다. 만약에 과격한 금욕으로 인해서 질병이 오거나 그것을 조장할 경우 비난의 대상이 된다면 미신은 얼마나 더 피해야 하는지 모른다. 꼭 필요한 경우에 소량의 고기를 맛보기보다는 차라리 죽겠다고 덤비는 카르투지오(Carthusians) 수도승들의 고집에 대해서 우리는 무슨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인가? 소 박하고 검소한 사람들이 과도한 금욕으로 자신들의 건강을 해치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면, 탐욕스럽게 마구 먹는 데 자신의 힘을 낭비하는 무절 제한 사람들은 결코 중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단순한 권고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짐승과 마찬가지로 먹이만 빼앗아 먹으려 고 발버둥친다.
 
"24.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 ; 교회의 신실한 사역자들에게 있어서 악을 바로잡을 길은 도무지 생각할 수 없으며, 그들이 다 알고 있는 사 악한 위선자들을 용납할 수밖에 없게 되고, 해충과 같은 많은 사람들을 교 회로부터 제외하기는 고사하고 은밀한 술책으로 그들의 독이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되는 경우보다 더 가슴아픈 일도 없다. 그러므로 바울은 언젠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때 그들이 공적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디모데를 위로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디모데에게 인내할 것을 확증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그가 하나님의 지혜 속에서 정해 놓으신 올바른 시간을 침착하게 기다려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선하고 거룩한 목사들을 또 몹시 괴 롭히는 비천한 행동이 있으니, 그것은 그들이 여러 임무를 양심적으로 수행 했는데도 수많은 부당한 비평을 받아 격분하게 되며, 많은 악의에 짓눌리 며, 칭찬을 받을 만한 행동 대신 비난을 받는 꼴을 보는 경우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오직 뒤에 가서야 밝히 드러날 선행이 더러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합당한 칭찬이 인간들의 배은망덕 때문에, 말하자면 땅 속에 묻혀버린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시간이 되어 드러날 때까지 평온하 게 참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이러한 질고에 대한 처방을 제시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지 않다. 흔히 있는 일이지만 우리는 부적격자들이 술책을 써서 살며시 들어오거나 올바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역자 들을 선발하는 데 있어서 실수를 범한다. 아니면 우리 스스로는 올바른 판 단을 내리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판단을 받아들이게 할 수 없어서 최 선의 사람들이라도 우리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배척되고 말며, 대신에 악한 사람들이 몰래 파고들거나 아니면 자신들 스스로 뻔뻔스럽게 들어오 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될 때 교회의 상태와 우리 자신의 상 황은 필연적으로 크나큰 불안에 직면하게 된다. 바울은 이러한 과오의 원인 을 제거하기 위해서, 아니면 최소한 완화하기 위해서 끈질긴 노력을 기울 이고 있다. 그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도 있다. 곧 당장 바로 잡 아질 수 없는 문제들은 참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개선할 수 있는 시기가 무르익을 때까지 고통을 당하며 한숨지을 수밖에 없으며, 질병이 굶아 터질 때까지 거기에 손을 대서는 안된다. 그리고 덕이 그것의 응분의 보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계시의 완전한 시기를 기다리며, 세상의 우 매를 참으면서 동이 터올 때까지 흑암 속에서 침착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 다 라는 식이다. 이처럼 그의 일반적인 의미를 간략하게 설명했으므로 이제 나는 이 귀절의 말을 살펴보고자 한다. "어떤 사람들의 죄는 먼저 밝히 드러나"라는 말에는 죄가 일찌기 발견되 고, 말하자면 시간 전에 사람들이 알게 된다는 뜻이 있다. 그는 '그 죄가 심 판으로 달려가고 있다, 또는 재촉하고 있다' 는 말로써 동일한 내용을 다르 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보는 대로 온 세상은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지만 제멋대로 질주하면서 스스로 정죄를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일이 일어 날 때마다 우리는 버림받은 자들이 파멸을 향해 달음박질하게 되는 것은 하 나님의 섭리의 은밀한 충동이 작용하고¡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명심하도록 하자
 
"어떤 사람들의 죄는~~~~~그 뒤를 좇나니." ;  에라스무스의 '어떤 사람들은 죄들이 그 뒤를 좇는다' 는 식의 번역을 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이 헬라어 구문상으로는 더잘 맞을지 모르나 의미상으로 볼 때는 거기에 '엔' 이라는 전치사가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는데, 그 까닭은 격의 변화때문에 대조가 깨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사람들의 죄는 심판을 향 해 재촉하는 것으로 이야기한 다음에 그 반대의 경우, 곧 다른 사람들의 죄 는 좀더 서서히 드러난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어떤 격을 사용하 .바라는 것보 사람들의 라는 소유격 대신에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라는 여 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의미는 비록 어떤 사람들의 죄는 우리가 다 더 오래 감취어지며 늦게야 드러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영원히 숨겨진 채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때가 있을 것이다. 에라스무스의 ;번역을, 따르 더라도 그 의미는 동일할 수밖에 없으니, 곧 하나님의 재앙이 재촉하지 않아도 그것이 천천히 뒤에 따르고 있다 ,라는 내용이다.
 
"25. 이와 같이 선행도~~~~~" ; 이것은 때때로 경건과 그밖의 덕이 재빨리, 그리고 시기 적절하게 인간들의 칭송을 얻음으로써 선한 사람들이 존경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설령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께서는 순진무후와 정직이 영원히 압제 받는 것을 허용치는 않으실 것이다. 그들이 종종 중상모략적인 비난의 구름에 가리워 희미하게 되기도 하지만, 마침내 약속은 성취될 것이다 (단 12:3, 마13:43).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새벽별처럼 빛나게 하실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인내하는 침착한 정신이 필요한 것은 인간으로서 우리의 지식의 한계를 넘지 말고 항상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하나님의 대권을 횡령하는 자들이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