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 (딛2:1~8)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여 (1)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하게 하고 (2)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3)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4)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5)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되 (6)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7)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8)
2. 묵상 (Calvin선생주석)
"1. 오직 너는~~~~ 말하여" ; 그는 꾸며 낸 이야기를 물리치는 방법으로서, 디도가 덕을 세우는 일에 전념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꾸며 낸 이야기는 확고한 가르침 앞에서 사라지고 말지만, '건전한 교훈'은 경건을 북돋아 주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건전한 교훈에 적합한 말을 하라는 것은 디도가 계속해서 가르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한 두번 언급하는 것만 가지고는 충분치 못하다. 바울은 디도가 하루 이틀 가르치고 그만 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목사의 직책을 지닌 그인 만큼 가르치는 일에 종사할 것을 원하고 있다.
의를 가리켜 건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 효과 면에서 말이다. 이것은 어리석은 자들이 아무 쓸모 없는 질문에 정력을 허비한다는 그의 말과 대조를 이루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서 건전한 교훈이란 실제로 영혼을 먹여 살리는 완전한 교훈을 두고하는 말이다. 따라서 그는 엄숙한 칙령과 같은 한마디의 말로서 이미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에서 그랬듯이 경건을 증진시키기 보다는 허영을 조장하는 데에 도움이 될 뿐인 모든 궤변을 교회에서 추방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건전한 교의를 두가지로 구별하고 있다. 그 하나는 그리스도에게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어 우리로 하여금 어디에서 구원을 찾아야 할 것인가를 알게하는 것이요, 다른 한가지는 우리의 .생활이 하나님 경외와 순진 무결함에 단련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신앙과 관련된 전자가 더욱 중요한 것이요, 따라서 더욱 힘주어 강조해야 마땅하지만 바울은 디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순서를 마땅히 따르지 않고 있다. 그는 이미 거기에 숙달하고 있는 사람을 상대로 편지하고 있는 만큼 신앙의 문제를 마치 초심자나 미숙한 사람에게 하듯 낱낱이 글자 그대로 말한다면 그에게 모욕이 될것이다.
물론 그는 디도라는 사람을 통해서 그레데 전 교회를 가르치고 있지만 그는 디도의 지혜를 얕보지 않는 예의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이 권고를 이처럼 장황하게 계속하고 있는 것은 무익한 질문에 물이 들어버린 사람들일수록 거룩하고 올바른 생활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방황하는 호기심을 억제하는 데는 그들이 마땅히 전념해야 할 임무를 기억시켜 주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도 없다.
"2.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 그는 그의 독자들의 필요에 더 적절히 부응하는 뜻에서 특수한 임무를 들어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은 그들의 수준에 맞추는 의미에서 뿐 아니라 그의 요점을 각 개인에게 역설하는 의미에서이다. 일반적인 가르침이란 효과가 적지만 몇가지 예를 들어가며 각자의 소명을 이야기 해 줄때는 각자가 주님께서 자신에게 꼭 성취해야 할 임무를 주셨다는 것을 깨닫기 마련이다. 우리는 여기서 어떤 확고한 방법을 찾으려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바울의 의도는 경건한 교사들이 마땅히 다루어야 할 문제를 간략하게 지적해 보여 주는 것이지 그것을 상세하게 토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그는 늙은 남자를 언급하고 있다. 그들에게 절제를 요구하는 것은 폭음이 노년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범하기 쉬운 과오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언급하는 '경건' (위엄-새번역)이란 절제있는 생활 습관에서 오는 것이다. 늙어서 젊은 사람들 처럼 정욕에 빠지는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것도 없으며 그의 무절제는 젊은이들의 파렴치를 조장할 뿐이기 때문이다. 노년 생활에는 마땅히 젊은이들의 존경을 사는 으젓한 위엄이 (σеμν brns 셈노테-스)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그가 뒤이어 언급하는 '근신'이 따르기 마련이다.
"믿음과~~~~에 온전케 하고" ; 그가 영혼의 건전성을 강조하는 데는 노년기의 질병을 암암리에 비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여러가지 말할 수 없지만 내가 보기에 그런-점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물론 이 점 길게 논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믿음금좌 에 대해 랑, 인내'라는 세가지 면에서 요약하는 것은 아주 잘하는 일이다.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한다. 믿음이 없이는 기도나 어떤 경건한 행위도 모두 허사에 그치고 말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계명의 둘째 돌판의 모든 사항이 포함되며 그 다음에 이 양자에 조미료로서 인내가 필요하다. 인내 없는 믿 음은 오래 갈 수 없다. 이 인내의 뒷바침이 없다면 하루에도 무가치한 행동 과 괴팍한 성질 등 이런 저런 일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사랑의 행동과 인 연을 끊게 하는, 아니 그것을 행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부지기수이다.
"з.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 우리가 흔히 젊은이들처럼 경박스런 복장 올 하거나 무슨 이상한 옷차림을 한 늙은 여자들 치고 제대로 절제있는 중 용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찾아 볼 수 없다. 바울은 이 두가지 잘못을 경계 하면서 예절과 신앙에 적합한 중용을 택할 것을 권하고 있다. 더 간단히 말 하자면 그들의 복장에서 그들이 거룩하고 경건하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서 참소하고 많은 술의 종이" 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수다스 러움은 여자들에게 있어서 병폐요 나이가 많아지면 그 현상이 악화되는 것이 상례이다. 더우기 이들은 모든 사랑의 평판을 깔아 뭉개는 험담가로 전락하게 되고 만다. 이들의 중상 모략은 마치 햇불과 같아서 무수한 집을 불사르고 도 남는다. 또 술에 빠진 나머지 정숙과 위엄을 망각하고 형편 없이 놀아나 는 사람도 많다.
그들의 임무가 무엇인가를 확신시켜 주는 의미에서 그는 그들 자신들의 정중하고 모범된 생활을 통해서 젊은 여자들을 가르치지 않을 때는 그들 자신의 건전한 생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는 그들의 생활로 젊은 사람들에게 근신의 생활을 가르치라는 점을 나타내 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젊음의 열정에 도취되어 정신 없이 나가게 되고 말기 때문이다.
"4.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 나는 바울이 여기서 나이 든 여자가 젊 은 여자에게 마땅히 가르쳐야 하는 교훈을 취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지 않는 다. 문맥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바울이 계속하는 임무는 나이 든 여자들에게도 해당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σωфρονξωωσι, σωфρоναs e pac (소-프로니조-시, 소-프로나스 에이나이)라는 문장은 부적당하게 될 것이 기 때문이다. 물론 나이 든 여자들에게 그들의 임무를 상기시켜 줌으로써 그는 동시에 젊은 여자들에게 그들이 따라야 할 본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그는 동시에 양자를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는 여자들이 부부애와 자식들에 대한 애정으로 방탕한 보연애를 삼가고, 자신들의 권속 을 절도있게 다스리기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그는 여자들에게 밖으로 나다 니는 것을 삼가고 정절을 지키는 가운데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당부하고 있 는데, 이것은 다른 일에 뛰어난 여자들일수록 그것을 핑계 삼아 남편에게 거 만하고 불순종하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5.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 이 말은 불신 남편 을 두고 있는 여자들에게 하는 권고이다. 곧 불신 남편들이 그들의 아내의 비 행을 보고 복음을 평가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베드로 전서 3 장 1절의 베드로의 말에서 확증되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보남편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이것이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단지, 이 생활의 엄격성을 필수적인 것으로 강조하는 가운데 그들의 잘못 때문에 복음 이 욕을 먹지 않도록 하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본 귀절 의 나머지 귀절은 디모데 전서 5장에 대한 설명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6. 젊은 남자들을 권면하여~~~~" ; 젊은 이들에 대한 교훈은 :절제 () 한가지로 그치고 있는데 절제란, 플라톤의 말대로, ,사람의 온 마음을 바로 잡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그들로 하여금 이성()에 순종하며 방정하 게 행동하도록 하라"는 말과 같다.
"7. 범사에 네 자신으로~~~~~~ 보여" ; 감독의 생활에서 마치 거울과 같이`.가 르침의 능력과 위엄이 드러나 비추지 않는다면 가르침만으로는 권위를 지니 기 어렵다. 따라서 그는 이 교사에게 그의 조생도들이 일본받을 ()이 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다음에 이어지는 것은 원본의 모호성 때문에 의미가 애매하다. '먼저 그는 교훈의라는 말 다음에 곧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 을 대격으로 덧붙이고 있다. 다른 모든 주석은 무시하고 나에게 가장 적합해 '보이는 것을 제시하 겠다. 먼저 나는 이 말을 너의 교훈에 적합한 선행의로 연결한다. 왜냐하 면 그는 디도에게 그의 가르침에 적합한 선행에 '대한 열성을 강조하도록 명 령한 뒤에 이 가르침에 부합하는 선행이 그의 생활로 나타나기를 원하고 있 기 때문이다. 안에 (in)라는 전치사는 선행의 적합성을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다음에 이어지는 것은 애매하지 않다. 바울은 디도의 생 활이 그의 가르침을 드러내도록 정직하고 정중하게 나올 것 을 당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8. 책망할 것이 없는" ; 이것은 디도 자신에게 해당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의 말에 해당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전자를 택한다. 그렇게 되면 다 수식하는 것이 되는데 이것이 올바른 헬라어 문장 른 대격 명사는 이것을 그리고 건전한 말에 있어서 이다. 따라서 그 의미는, 자신을 위엄, 정직, 홈 없는 사람으로 입증하는 뜻에서 "라는 뜻이 될 것이다.
"바른 말" ; 이란 일상 생활과 개인적인 대화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전도에 일치하 하면 여기서의 그의 관심은 디도가 그의 언행에 있어서 그의 공적인 교훈으로 취급하는 것은 터무니 없 는 생활을 하는 것인 만큼 이것을 는 노릇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디도에게 순수한 말만 할 것을 당부 하고 있다.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 물론 그리스도인에게는 다른 목적도 많 지만 불경건한 자들의 입을 틀어 막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는데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우리를 중상하는 기회를 허용치 않기 위해서이다. 그들이 우리 의 생활에서 잡고 늘어지는 단점을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와 그의 가르침 에 대해서 악용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잘못 때문에 하나님의 거 룩한 이름이 모독을 받게 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우리 자신이 원수들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들의 중상을 피하는데에 신경 을 쓰게 되며 따라서 그들의 악의가 우리로 하여금 선행에 대한 마음을 북 돋아 주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