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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디도서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딛1:16)

1. 성경 (딛1:10~16)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할례파 가운데 특히 그러하니 (10)그들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도다 (11)그레데인 중의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하니 (12)이 증언이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는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 (13)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15)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16) 
 
2. 묵상 (Calvin선생주석)
"10: 복종치 아니하고~~~~자가 많은 중" ;  어디서든지 지켜야 하는 일반적인 원칙을 지적함으로써 디도로 하여금 그것에 유념하도록 대한 다음에 그는 무엇보다 급한 행동을 취해야.할 점을 설명하고 있다. 곧 디도로 하여금 수많 은 고집불통의 사람들,헛되고 이쓸데[1없는 얘기로 배가 부른자들, 그리고 수많은 사기군들과 씨름하도록 경고하는 가운데, 이런 세력을 물리칠 수 있 는 자질과 무장을 갖춘 사람들을 인지도자로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자녀들도 위험에 [직면해 있을 때는 경성하기 (마련인데 사단이 의 모든 세력을 동원해서 우리에게 덤벼들고 있는데도 모든 것이 명화로운 것처럼 거짓된 안전 속에서 잠들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더 없는 수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복종치 아니하는 사람들인  (규칙을 좇지 않는 사람들), 이것을 벌케이트 경은 '순종하지 않는' 으로 에라스므스는 '통어할 수 없는'으로 번역한다. 바울은 규율을 지킬 수 없어하는 가운데 순종의 멍에를 내던지는 사람들을 뜻 한다. '헛된 말을 하는 사람들'이란 거짓된 교의를 만들어내는 자들이 아니라 아무데도 쓸모없는 괴상한 것 이외에는 발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나머지 기 만적인 허풍에 빠진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Maracoloria(마타이올로가 아)는 유용하고 확고한 가르침의 반대요 따라서 들여기에는 허풍 이외의 알맹
 
이가 없을 수 밖에 없으니, 왜냐하면그들의 말은 경건이나 하나님 경외에 이바지하는 것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오늘날도로마 가톨릭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장황한 신학이다. 바울은 동일한 .사람을 두고 "속이는 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을 다른 종류의 .악행자로 볼 수도 있지만 나는 그가 동일 한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런 허튼 알맹이의 교사 들은 사람의 마음에 마술을 시절다시피 해서 끌어당기는 나머지 그들로' 하여' 금 건전한 교훈은 더욱 이상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특별히 유대인들 가운데서 많이 발견된다고 이야기하는 것 은 그런 재앙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 이다. 우리는 교회 전체에 큰큰 해독이 되는 문제에 있어서 개인은 혹평하지 말 자는 사람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수-없다. 그리고 유대 민족이 더욱'더해야 독스러운 것은 성스러운 교현통을[가지고다른 모든주민족보다 우월하다고 주장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울이 유대인들을 더욱 더 신랄하게 꾸짖는 이유이다. 곧 그들에게서 더 이상 해독을 까치는 기회를 :탈취하려는 뜻에서이다.
 
"11.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  훌륭한 목사란 항상 경계하 가운데 있어야지 침묵하므로 악하고 해로운 교리가 잠입해 나오는 것을 -허용하거나 악 인들을 그냥 내버려두어 그런 교리를 확대하게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독은 고집불통이며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의 입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일수록 ,논쟁에서 패배할 경우 잠잠하지 않으며 공개적으로 반박을 :반을수록 더욱 더 무례하게-나오기 때 문이다. 그들의 ,악의에 불이 ¡붙을수록 그들은 완전히 수치심을 상실하게 되 고 만다. 나의 대답은 이것이다. 곧 그들이 하나님으말씀의 검으로 얻어맞고 진리의 능력에 의해 :수치를 당했으면 교회는 이들에게 침묵할 것을 명령할 수 있다. 그래도 반기를 들 경우에는 믿는 자들과의 교제를 끊어 해독을 끼 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하는 (말은 그 들이 소란을 피우는 것을 그치지 않더라도 그들의 .헛된, 이야기를 ,반박하라 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특정죄받는 사람은 .그가 제 오아무리 잡담을 계속한다 해도, 더 이상 또한 말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 ;  단 한 사람의 신앙이 전복될 위험에 있다 해도,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된 단 하나의 영혼이 파멸될 위험에처 해 있다 해도, 목사는 즉각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자신을 무장해야 마땅하다. 하물며 온 집들이 전복되는 마당에서랴! :그는 온 집들이,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치기, 때문에 전복되고 만다는 점을 우리에게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건전한 교훈에서 머리카락 하 나의 차이라도 보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알 수 있다. 그는 많은 사람 들의 산앙을 그무너뜨리는 그 교훈이 공공연하게 불경스러웠다고 말하고 있지 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인간들을 건전한 교훈에서 빗나가게 하는 온갖 종류의 타락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육신은 너무도 약 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지 타락할 가능성이 많으며 그 결과는 사단이 그 의 종들을 시켜 경건한 교사들이 힘들여 세워 놓은 것을 재빨리, 그리고 쉽 게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는 이 악의 근원을 제시하고 있는데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하는 말이 그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교사들 속에 있는 이 전염병이 얼마 나 큰 것인가를 경고해 주고 있다. 그들이 이득에 맛을 들이가 시작하면 그 들은 필경 대중의 인기를 끄는 데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은 재빨리 순수한 교의를 타락시키는 결과를 낳고 만다.
 
"12.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  이것은 그레데인이었던 에피메니데스(Epimenides)를 두고 하는 말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들 중에 한 사람', 그들 중에 한 선지자 라는 말은 크가 그레데 출신이라는 뜻 이기 때문이다. 왜 이 사람을 가리켜 선지자라고 부르는가 하는 점은 명확 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바울이 여기서 인용하는 책명이 πepi Xp7σμων(페리 크레스우몬→), 즉, <신탁에 관하여>라는 책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가 하면 바울은 하나님의 종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백성에게 적합한 선 지자라는 뜻에서 냉소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헬라어에서는 시인들을 가리켜 자주 선지자라 부르고 라틴어에서는 선각자 (vates)라고 부르는 만큼 나는 이것을 단지 교사라는 뜻으로 보겠다.

 

그들 을 이렇게 부르는 것은 그들이 항상 신적이요 신적인 영감에 의해 감동을 받는 것(Betov κα: €νθονσιαστικбν 및데이온 카이 엔드-시아스티콘)으로' 여 겨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디마투스(Adimatus)는 플라톤의 <공화국> 제 2 권에서 시인들을 가리켜 신들의 아들들'이라고 부르면서 그들이 그들의 선 지자들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은 일상적인 의미 에서의 선각자로 이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에피메니데스가 고 향 사람들을 가리켜 거짓말장이라고 부른 것은 그들에게 쥬피터의 무덤이 있다는 그들의 허풍과 관련된 말이지만 그가 어떤 계기로 이런 말을 했는가 하는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이 시인은 이것을 옛날 사고전에 서 '취하고 있으므로 사도는 그것을 일종의 격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 의 헬라어를 번역한다면, 그레데 사람은 :거짓말만 하고 게으른 대식가요 항상 악한 집승이라는 점이 판명될 :것이다"라는 뜻이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세속 작가들의 인용을 지금하는 것은 미신적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모든 진리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만큼 어떤 불경건한 사람이 진실 한 것을 말했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므로 그것을 거절해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안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온다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이 문제제에 관 위한 방향으로 모든 것을 사용하는 데 νёous(프로스 루-스 네우-스)라 해서 .독자들은 버어질(Basil)의 πpos τουS 참고하기 바란다. 거기에 보면 이방 작가들에게서 젊은이들이 도 는 논문을 움받을 수 있는 점이 설명되어 있다.


"13. 이 증거는 참되도다" ; 이 증거가 제 아무리 무가치하다 해도 바울이 이 시인의 진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레데인들이 실제로 악했다는 점을 의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는 제 아무리 가혹하다 다뤄야 할 사람들이라도 더 없이 온화하게 이야기 하는 바울이 그럴 만한 최선의 이유가 없었더라면 여기서 그레데인을 상대로 그처럼 가혹하게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으름뱅이요, 포식가이며,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짐승들이라는 표현보다 더 가혹한 것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악은 몇몇 개인을 상대로 꾸짖는 것이 아니고 민족 전체가 그 속에서 정죄되고 있다. 그렇게 악명 높은 사람들을 불러 맨 먼저 복음에 참여하게 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놀라우며 이 세상에서도 살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하늘의 은혜를 베푸시는 그 사랑이 또 얼마나 귀한 것인가 바로 이런 나라, 곧 지옥의 심장부와 같은 곳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자리를 잡은 가운데, 물론 그곳의 악한 습관에 전염되기도 했지만, 확장되어 나갔던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교회 밖의 사람들만을 욕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한 사람들을 분명히 꼬집어 이야기하고 있다. 이 가증스러운 악이 이미 뿌리를 박은 가운데 사방으로 펴지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바울은 전체 민족의 위신을 생각치 않고 혹평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그들 가운데서 치유의 소망이 있는 자들을 치료하려는 뜻에서이다.
 
"그러므로 네가 저희를 업히 꾸짖으라" ;  감독에게 필요한 지혜와 재 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는 가르치는 방법을 백성들의 성격과 습 관에 .적응하는 능력이다. 그는 목이 곧고 반항적인 사람들을 다룰 때 온순 하고 말 잘 듣는 사람들에게 하는 동일한 방법을 써서는 안된다. 후자에게는 그들의 유순함에 맞는 온순한 면을 보여주고 전자의 완고함에 대해서는 가 혹하게 교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단단한 매듭을 풀려면 그만큼 단단한 힘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왜 디도가 그레데인들을 꾸짖는 데 있어서 그처럼 가혹하게 나와야 했던가를 지적한 바 있다. 곧 그들은 악한 짐승들 이기 때문이다.
 
"저희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케 하고~~~" ;  여기서 온전함이라는 말은 앞서 언급된 병폐와 대조를 이루는 말인지, 아니면 그저 온전한 믿음에 거하라는 말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본인은 후자를 택하겠다. 그들은 이미 여러 가지 잘 못으로 뒤범벅이된 상태요 더욱 더 타락할 위기에 놓여 있는 만큼 그는 그들 이 엄격하게 글자 그대로 건전한 믿음의 테두리 안에 머물기를 바라고 있다. 다음으로 그는 건전한 믿음이란 허탄한 이야기로 물들지 않은 믿음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 위험을 경계하는 의미에서 그는 처방책을 설명하고 있으니 곧 꾸며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는 것이다. 그 이 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말씀에 집착한 나머지 헛된 이야기가 들어 설 틈을 주지 않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일단 하나님의 진리가 들어서면 거기에 반대되는 것은 모두 매력을 잃게 되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게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을 온전하게 고수하려면 우리의 생각을 견제하는 가운데 이상한 날조물에 휘말려 들지 않도록 해야 마땅하다. 왜냐 하면 사람이 꾸며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곧장 신앙의 순수성 을 상실하고 말기 때문이다.
 
"14.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 ;  그는 모든 쓸데 없는 허구, 또는 실없는 소리를 가리켜 이렇게 부르고 있다. (뒤에 따라 나오는 '사람들의 명령'도 동일한 의미이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의 순수한 가르침으로 만족하지 않 고거기에 자신들의 터무니없는 소리를 뒤셔는 자들을 가리켜 진리의 원수들 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인간적인 고안에서 유래하는 것은 모두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는 특별히 이 잘못을 유대인들에 게 돌리고 있는데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한다는 핑계로 미신적인 의 식을 끌어들이는 자들이다.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일생에 걸쳐서 속아 산 것 올 이해하고 과거의 :생활 태도를 배척하지만 진정한 종교적 배경에서 자란 유대인들은 그들이 습관에 젖은 여러 가지 의식을 우직하게 변호하는가 하 면 율법이 폐기되었다는 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은 모든 교회들을 소란하게 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복음이 '어느 한 곳에서 시작 되면 이들은 줄기차게 여기에 자신들의 누룩을 뒤섞어 「순수성을 말살하 고 [말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이들이 건전한 교의 에서 떠나지말 것을 :당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앞에 닥친 악을 지적해 보여 중으로써 그것을 경계하도록 하고 있다.
 
"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 그는 터무니없는 가르침 가운데 하나를 들어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세가 그의시대 사람들을 위해 규정한 음식과 정결 예식에 대한 구별을 아직도 필수적인 것으로 고집하고 있었으며 거의 모든 성결이 이것을 준수하는 데 있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데서 이것이 교회에 얼마나 해독스러운가 하는 문제를 설명한 바 있다. 먼저 인간의 마음에 속박의 올무를 놓는 셈이요, 둘째 이런 미신의 속박을 받고 있던 사람은 자신들의 눈에 휘장을 드리우는 셈이요,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순수한 지식에 진전을 보지 못하게 되고 만다. 어떤 이방인이 이 생소한 '멍에'를 메지 않겠다고 나서면 유대인들은 그것이 신앙의 제일 계명인 양 기어이 그것을 우겨댔다. 따라서 바울이 복음의 그러한 타락자들을 상대로 반박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귀절에서 그는 그들의 잘못을 반박하고 있을 뿐 아니라 특정한 음식과 그런 비슷한 문제를 삼가는 데서 무슨 혜택을 받으려고 발버둥치는 그들의 허영을 그는 재치있게 비웃고 있다.
 
본문의 상반절에서 그는 신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불결한 것이 없다는 말로써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주장하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그는 하나님에게 가치있는 내면적인 청결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거짓 .사도들을 간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리스도인은 율법의 의식과 관계없이 깨끗하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의 무지를 꾸짖고 있다. 결과적으로 마음의 정직을 소홀히 하고 쓸데 없는 관습에 얽매이는 그들의 위선을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취급하고 있는 주제는 육신의 건강이 아니라 마음의 평화인 만큼 그의 요점은 율법 시대에 통용되었던 구별은 이제 폐기 되었다는 것이다. 동일한 이유에서 볼때 이런 하찮은 문제를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에 부담을 주는 자들은 옳지 못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지 한 세대 만을 위한 가르침이 아니라 어떤 새로운 법으로도 대치할 수 없는 성령의 영 원한 선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귀절을 특정한 때에 고기를 못먹게 하는 교황의 전횡적인 법에 대해서 적용하는 것은 아주 적절하다고 보겠다. 물론 이들이 여기에 대해서 변호하는 구질 구질한 설명에 대해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고기를 불결한 것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그것을 금하는 것이 아니고-모든 음식은 그 자체로서는 깨끗하고 정결하다고 그들은 주장하기도 한다 고기를 절제하는 것은 육신의 정욕을 억제하기 위해서라고 이야기 한다. 이것은 마치 주님께서는 돼지가 불결하기 때문에 그 고기도 먹지말라 고 말씀하셨다는 식이다. 율법시대의 조상들마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그 자체로서는 깨끗한 것으로 여겼지만 그들이 그것을 불결한 것으로 취급한 것은 하나님의 계명이 그것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도는 모든 것을 사용해도 이제 마음에 꺼리는 것이 없다는 의미에서 모든 것을 깨끗하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법을 가지고 인간의 마음이 그것을 금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강요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 하신 자유를 신자들에게서 악하게 박탈하는 처사다.
 
"더럽고~~~~ 하는 자들에게는" ;  이 하반절은 그런 교사들의 쓸데 없는 어리석은 경고를 아예 무시하고 있다. 그는 그들이 특정한 음식에 대해서 불결을 주장할 수없는 것은 그들 손에 깨끗하게 남아 있는 것이 전무하기 때문이 라고 말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그들은 이미 더러워져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깨끗한 것에 손을 댐으로써 그것을 더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더러운 자들이라는 말 뒤에 곧 이어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는데 이것은 또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아니라 앞의 말을 설명하는 의미에서 덧붙여진 말이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믿음을 떠난 청결이란 있을 수 없으므로 불신자들은 모두 불결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그들 자 신이 불결하고 세상 모든 것이 그들에게 불결하지 않은 것이 없으므로 무슨 법이나 규례를 정해 놓아 보았자 그들이 원하는 정결을 얻을리 만무하다.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  그는 여기서 모든 인간 생활에 퍼져있는 모든 불결의 근원을 지적해 보여주고 있다. 마음이 청결하게 되지 않으면, 그들의 행위가 제 아무리 사람들 앞에서는 휘황찬란해 보이고 향기롭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그 모든 행위의 추잡한 냄새와 더러움으로 하나님의 역겨움을 살 뿐이다. 여호와께서는 마음을 보시며(삼상 16: 7), 그의 눈은 진리를 향하고 있기(렘 5 : 3) 때문이다. 여기서 마음이란 이해력을, 양심은 마음의 의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곧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그의 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성실한 의향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점이 하나요, 다른 하나는 불신의 오염은 어찌나 강력하던지 불신자 뿐 아니라 그가 손대는 것까지도 모조리 더럽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 문제에 대 해서는 학개 2장을 참고하기 바란다. 같은 방법으로 바울도 다른 곳에서 모 든 것은 말씀에 의해서 우리에게 깨끗하게 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인간은 무엇이든 믿음으로 하나님의 손에서 받기 전에는 아무 것도 깨끗히 게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16.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  여기서 그는 이 사람들이 사소한 규례는 끈질기게 고집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핵심은 겁없이 멸시하는 위선자로 취급하고 있는데 당연하다. 그들은 공공연하게 죄악을 범함으로써 하나님을 모독하는 거기에 그들의 무모함을 입증해 보여 주고 있다. 바울의 의미는 이것이다. 곧 이들은 한 가지 음식은 삼가지만 다른 면에서는 굴레벗은 망아지처럼 억제할 줄 모르는 자들이요 그들의 생활 양식은 모두가 불결하고 사악할 뿐이라서 그들의 온 생애에 걸쳐 실오라기만한 덕도 찾아 볼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들을 가리켜 βδеλυкτουs (브델뤼크투→ 스 ; 가증하다)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온 신경을 쏟는 그들의 거짓 성결을 빗대어하는 말 같다. 그들은 더럽고 가증한 일을 중단하지 않고 있는 만큼 그들이 얻는 것은 전무하다는 것이 바울의 주장이다. 이들을 가리켜 '복종치 아니하는 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율법의 핵심적인 요구사항을 무시하는 가운데 외형적인 의식에 대해서 그처럼 은 정성을 쏟는 위선자들처럼 교만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αδοκιμονs(아도키무-스 ; 버림받은 자)라는 단어를 적극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편리하다. 곧 사소한 일에 있어서는 현명한 교사로 행세하고자 하지만 선한 행위에 있어서는 이해력과 판단력을 상실한 자들로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