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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사도행전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행14:3)

1. 성경 (행 14:1 ~ 10)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1)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2)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3)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4)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5)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6)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7)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8)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9)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10)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14장 개요" ; 13 장에 서 누가는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들을 향한 그들의 사명을 어떻게 시작하고 있는가를 말했다. 그러나 그들이 안디옥에서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고집이 세고 악한 어떤 사람들 때문에 그들의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버려야 했던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들의 출발은 불행하고 불운했던 것처럼 보 인다. 그러나 그들이 한 곳에서 아무리 거친 대접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 세계에, 특히 사단의 방해 앞에서도 자기들의 사역을 실행하기 위하여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실을 깊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가르치기 위하여 준비했을 뿐만 아니라 싸움을 위하여 무장하고 출발하여 다툼이 있는 중에서도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주처없이 계속 나아가고 있음을 본다. 하나님의 모든 선지자들과 일꾼들에게 확실하게 적용되는, 예레미야가 한 말이 있다.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램 I : 19)그들이 이용하여 어디로 이끌려 가든지 그들은 한결같은 결의를 갖고 있었다. 이는 누가가 계속 전하고 있는 내용과 같이 그들이 한번의 싸움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전쟁을 위해서도 대비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누가는 우선 그들이 이고니온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조용하고 쉴 만한 어떤 은신처를 찾지 않고, 마치 아무런 괴로움도 당하지 않았던 것처럼, 회당으로 들어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헬라어로 ‘함께' 혹은 ‘동시 에 ' 를 의 미 하는 "카타 토 아우도" 라는 말을 나는 바울과 바나바에게 적용하지 않고 유대인들에게 적용시킨다. 그러므로 나는 그 두 사람이 함께 들어갔다고 해석하지 않고 그들이 규칙적이고 정해전 모임의 시간에 그 무리를 따라 들어갔다고 해석한다.  이 사실로부터 우리는 그들이 두 세 사람들을 상대로 은밀하계 말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서 말했으며 그들의 적개심을 피하거나 위험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확신과 열심, 그리고 열의를 보여주고 있었음을 알수가 있다.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 누가가 앞에서도 바울과 바나바 속에 있었던 성령의 능력을 지적했던 것같이 지금 그는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좋은 성과에 대하여 하나님의 또 다론 은혜를 찬양하고 있다. 그들이 했던 한 번의 설교는 결과가 커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부터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낳게. 했기 때문이다. 한 두 명이나 몇 사람만 믿었더라도 그들은 그 정도의 노력에 대한 그 보상을 기쁘지 않은 것으로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짧은 시간 안에 그들의 가르침으로부터 그처럼 많은 열매를 거두게 하셔서 그들을 크계 격려하셨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믿음을 갖게 된 것은 그들의 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에 의한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은 이 사실로부터 자기들이 하나님의 펴신 판에 의하여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었으며 이런 사실온 그들에게 확신을 크게 더하여 주었다.

 

"2 그러나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 이제 새로운 핍박이 그들에 게 임하고 있으니 유대인들로부터 임한 것이었다. 아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의 마음에 불을 붙이는 불길과 같았다. 유대인들이 그들에게 저항하기 위하여 불길처럼 이방인들을 선동하지 않았더라떤 이방인들은 아무런 관심도 없이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듣고만 있었을 것이다. '카코一사이' 라는 말을 나는 여기서 ‘악한 마음에 물들게 하다' 혹은 ‘다른 사람을 손상하도록 충동하다’ 라고 해석 한다. '형제들'이란 말을 누가는 모든 경건한 자들, 다시 말하면, 복음을 받아들이자 마자 분화를 일으키고 마치 그 성의 평화를 깨뜨리며 공중의 질서를 소동하게 하기 위하여 일어난 어떤 해로운 무리나 되는 것처럼 괴로움을 겪었던 사람들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바울과 바나바를 가리킨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를 크게 반대하 지는 않겠다.

 

"3 오래 있어~~~~~"  ;  여기서 누가는 바울과 바나바가 어떤 사람들의 반대를 당하자 곧 그 성을 떠나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 그들이 ‘담대히' 행동했다고 말했을 때 누가는 그들이 두려워할 만한 이유를 갖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이 사실을 볼 때 우리는 그들이 다론 곳으로 옮겨 가도록 폭력에 의한 강요를 당하기까지 대담했으며, 특히 강한 정신으로 온갖 위험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에 피 큐리 오―' (주님께 근거 하여 )라는 말은, 그들이 주님의 연고로 용감하게 행동했다’ 혹은 ‘그들은 주님의 은혜에 의존하여 용기를 얻었다'고 좀 다르게 설명될 수가 있다. 나는 그들이 자기들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도움을 얻어 주님 안에서 자신있고 담대하계 행동했다는 일반적인 해석을 따른다. 누가는 계속해서 그들이 주 안에서 어떻게 용기를 얻고 있었는가를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심으로써 그들의 가르침을 인정하고 계심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주님은 자기들과 함께 계시고 주님의 손이 자기들을 돕기 위하여 가까이 계심을 알았을 때 그들은 격려를 받고 활기있는 자들이 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을 주시하면서도 누가는 다른 사실도 물리치고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주님은· 언제나 다론 여러 방법으로 그들을 격려하고 든든하게 세위 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는 기적에 관하여 특별히 말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이 기적들을 통하여 주님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능력을 공개적으로 나 타내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바울과 바나바 역시 주님께서 기적을 나타내심으로써 자기들의 가르침이 무시를 당하지 않게 해 주었을 때 큰 확신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기적으로 복음을 중거해 주셨다고 본문이 전하는 말씀을 눈여겨 보자. 이 말씀은 기적을 참되게 사용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기적이 나타나게 되는 첫째의 목적온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기적을 나쁘고 그릇되게 해석하는 자들이 되기가 쉬우므로 하나님은 이 기적이 악하게 사용되거나 그롯되지 않게 하시려고 자기의 말씀과 분리시켜 이를 허락하지 아니 하신다. 만일 기적이 어느 경우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나타난다면, 첫째로 이는 희귀한 경우이며, 둘째로 이런 경우에 나타난 기적의 결과는 극히 보잘 것이 없다. 대개의 경우에 하나님은 이 기적들을 통하여 자기를 세상에 알리시기 위하여 혹은· 그저 꾸밈없는 자신의 위엄 가운데서라기보다는 그의 말씀과 관련하여 이를 행하신다. 그러므로 여기서 누가는 어떤 혼란스러운 신앙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게 하고 바울의 가르침을 통하여 그들이 순수하게 하나님을 섬기게 되도록 기적이 복음을 확실하게 증명해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 교황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게 행동하는가를 쉽게 알 수가 있다. 그들은 기적만을 내세울 뿐 그 기적을 통하여 세상이 하나님을 공경하게 하지 않고 복음을 귀히 여기게 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에 의한 기적온 복음을 충분히 그리고 순전히 권위있게 해주는 외에 다른 목적을 갖고 있지 않다는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된다. 이제 우리는 복음이 우리가 죽은 자들에게 빌고 우상에게 향을 피우며 그 리스도의 은혜를 이른바 성자들이라는 자들에게 넘겨주며 순례를 하게하고 예배에 이교적인 행위를 하도록 명하고 있는지 혹은 그렇지 않는지를 알아야 하겠다. 이와 같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는 결코 찾아 볼 수가 없다. 복음 안에 이같은 미신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보다 더 복음에 일치되지 않은 일도 없다.

   그러므로 교황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복음을 공격하게 되는 조건들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온 복음을 돕는 일이 아니다. 주님께서 자기 종들의 손에 의하여 기적이 나타나도록 하셨다는 누가의 말 온 우리 가 말하고자 하는 의 도에 어 긋나지 않는다. 이 말로 누가는 일꾼들 이 단지 자기들은 주님께 순종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기적을 일으 키는 주인은 그들의 손과 행동을 사용하시는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미리 알리고 있다. 그러므로 바르게 말하면, 기적은 바울이나 바나바에 의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역을 통하여 자기의 영광이 희미하계 되는 것을 원하지 아니 하시는 방법을 따라 사람듈을 롱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복음율 더욱 사망하계 하려고 여기서 누가가 복음에 관하 여 설명하고 있는 내용을 눈여겨 보자. 복음을 ‘은해의 말씀'이타고 부름에 있어서 누가는 그 복음이 우리에게 극히 감미로운 것이 되게 하고 있다.

  왜 냐하면 이 복음 안에서 구원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복음은 우리 앞에 저주만을 보여주는 율법과 대조를 이루고 있음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화해시키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용서해 주기를 원하고 계심을 증거하기 위하여 이 복음 안에서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고 계심을 명심하자. 그렇다고 해서 이 복음이 버림을 당한 자들에게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고후 2 : 16)가 되지 못하게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 버림을 당한 자들은 자키들이 처지르는 못된 행위로 복음이 가전 이 성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 문이 다. '표적 과 기 사’ 에 관해 서 는 우리 가 제 2 장에 서 말한 것 을 읽 도록 하자.

 

"4. 무리가 나뉘어~~~~~~~"   ; 이제 큰 불행이 잇따라 생기고 있다. 그 성안의 사람들이 두 무리로 나뉘고 마침내 바울과 바나바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으킨 폭동에 의하여 다른 곳으로 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무리가 나뉘어전 이유를 찾는다면, 불일치를 일으킨다는 사실보다 복음에 맞지 않는 일도 없겠지만 그 이유가 복음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온 분명하다. 사람들의 못된 행위는 모두를 연합시키기 위한 중이 되어야 할 복음이 잠시 후에 보여 지는 것과 같은 소란을 일으키는 이유가 되게 했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분열이 생길 때에 우리는 언제나 그 분열을 일으키는 자들로 보여지는 사람들을 정죄하기 전에 그것에 대한 책망을 받아야 할 자가 누구인가를 지혜롭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서 우리는 한 성이 둘로 나뉘어 그 한 부분이 그리스도께로 인도되고 있음을 듣는다.

    하나님의 성령은 바울과 바나바를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칭찬하시려고 이 사실을 선언하고 계신다. 복음이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하나님께로 이끌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악한 자들이 그 복음을 거스려 소란을 일으키는 경우에, 복음이 악한 비평을 받게 되지 않도록 우리는 오늘에도 당시와 동일한 규범율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사람들이 서로 갈라서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한 덩어리가 되어 하나님께로부터 떠나면 저주를 받는 것이므로 하나님께로부터 떠나서 세상과 화목하는 것보다는 소수에 속해서라도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떠나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백배나 더 낫다. 

 

"5 절"  ;  그리스도의 거룩한 전사(戰士)들이 얼마나 오래 버티어 나가고 있는 지 주목하여 보자. 그들은 원수들이 한 번 방해 한다고 해서 도망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망이 절정에 이르고 돌로 침을 당할 위험이 위협해 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더 이상 머무르려고 고집하지 않고, 참을성을 가지고 목숨을 잃지 않도록 하라고 충성된 사람들에게 경고하신 그리 스도의 말씀을 기억 하면서 그들은 원수의 사나운 분노를 피했다. 죽음을 향하여 경솔하계 뛰어들지 않기 위하여 그들이 피하기는 했으나 그들이 계속하여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이 위험을 두려 워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누가는 그들이 다른 곳에서도 복음을 전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원수들에게 죽음을 당하기 위하여 한사코 그들의 손 안으로 달려 들어 가지 않고, 자기가 맡은 일을 그만두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요청하실 때 두려워서 순종하지 못하는 자들이 되지 아니하며, 필요하다면 그들의 사역을 완성하면서 죽음까지라도 기꺼이 맞이하는 행위는 두려움에 대한 바른 모습이다.

 

 "8 루스드라에~~~~~한 사람이 있어~~~~"  ; 누가는 사도들이 행한 많은 기적 들 중에 하나일 것 이 타고 생 각되 는 이 한 가지 기 적 을 전해 주고 있 다. 그는 이 한 가지 기적만을 말해주고 있는데 이는 기억될 만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생겼든지 우리는 곧 보게 될 것이다. 자기 어머니의 모태에서 나 올때부터 앉온뱅이가되어 한번 도철어 본적이 없는 사람이 바울의 말에 의 해서 급히 고침을 받고 활기가 없던 그의 두 다리에 움직일 수있고달릴 수 있는 능력이 들어가서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뛰었다고 말했을 때 누가는 하 나님의 능력을 극히 분명하계 보여 주었던 그 형편을 설명하고 있다.

 

"9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 . 잠시 후에 누가가 칭 찬하고 있는 그 믿 음이 바울의 가르침 윤 봉하여 생 겨 나고 있 음을 우리 가 알게 하려 고 그가 말 씀에 귀롤 기울이고 있었음을 먼저 말해 주고 있다. 바울이 하는 말을 듣는 순간에 그는 고침을 받고자 하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고침을 받게 될 것을 미리 약속해 주었는지는 의문이 생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복 음 안에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고 계지지만 우리가 당장 얻고자 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기대하라고 명령하지 아니 하시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자 한다. 그가 나음을 얻은 것온 그의 안에 계신 성령의 특이하고 특별한 역사였다. 그리고 이는, 다른 한편으로, 바울이 그의 안에 있었던 믿음울 보았을 때 바울 안에 계셨던 동일하신 성령님의 역사였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 들이면서도 그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병을 고 칭받지 못하는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앉은뱅이에 케는 자기 은혜에 대한 증거를 보여 주시고자 뜻을 정하셨기 때문에 이 사 람의 마음을 미리부터 준비시키셨으며 그가 이 새로운 체험을 갖도록 해 주 셨다. 그러므로 이는 누구에게나 꽁통으로 적용되는 규범이 되어서는 안된 다. 왜냐하면 이 앉은뱅이는 자신이 낫게 될 것을 믿었지만 치료의 온사륜 받기 위한 준비는 그만율· 위한 독특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나 동일하게 자녀가 되는 영을 받는다. 그러나 이저울 일으키 는 이 특별한 믿음은 대부분의 하나님의 자녀들이 갖는 믿음이 아니다.

 

"바울이 주목하여~~~~~"  ; 우리는 사람의 얼굴 표정이란 믿을 수없고 그것이 우 리를 잘 속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얼굴 표정을 보고 그 사람의 믿음을 확실히 인정할 수가 없으며 하나님만이 그 사람의 믿음울 증명하신 다.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것처럼, 그 앉은행이의 믿음은· 성령의 은밀한 영감을 통하여 바움에게 보.여겼다. 성령은 사도들이 이져올· 행하도록 하신 안내자이며 교사이셨기 때문이다. ~

 

"10 큰 소리로 가로되~~~~~"  ; 극히 믿을 만한 여러 엣 사본에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말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사도들이 모 든 기적을 일으킹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존귀하계 하고자 애쓰고 있 었음을 확실히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이 말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인쇄된 사본들 중에서는 일반적으로 읽을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나는 누가가 그 렇게 기록했을 것으로 여간다. 그. 앉은행이가 뛰어 일어났다고 말하는 누가 의 설명은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타 그가 그처럼 두서없이 순종했던 것은 그가 주님에 의하여 바르게 준비되어 그의 발이 활 기가 없었을 때 그는 이미 영적으로 걷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가 신속하 게 일어선 사실온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 두드러지게 보여 주었다. 그러나 바운은 이 급변화가 그 무리들에게 더욱 감동이 고조되도록 위하여 일부러 큰 소리로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