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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사도행전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행14:15)

1. 성경 (행 14:8 ~ 1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8)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9)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10)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1)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2)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3)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4)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15)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16)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17)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18)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8 루스드라에~~~~~한 사람이 있어~~~~"  ; 누가는 사도들이 행한 많은 기적 들 중에 하나일 것 이 타고 생 각되 는 이 한 가지 기 적 을 전해 주고 있 다. 그는 이 한 가지 기적만을 말해주고 있는데 이는 기억될 만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생겼든지 우리는 곧 보게 될 것이다. 자기 어머니의 모태에서 나 올때부터 앉온뱅이가되어 한번 도철어 본적이 없는 사람이 바울의 말에 의 해서 급히 고침을 받고 활기가 없던 그의 두 다리에 움직일 수있고달릴 수 있는 능력이 들어가서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뛰었다고 말했을 때 누가는 하 나님의 능력을 극히 분명하계 보여 주었던 그 형편을 설명하고 있다.

 

"9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 . 잠시 후에 누가가 칭 찬하고 있는 그 믿 음이 바울의 가르침 윤 봉하여 생 겨 나고 있 음을 우리 가 알게 하려 고 그가 말 씀에 귀롤 기울이고 있었음을 먼저 말해 주고 있다. 바울이 하는 말을 듣는 순간에 그는 고침을 받고자 하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고침을 받게 될 것을 미리 약속해 주었는지는 의문이 생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복 음 안에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고 계지지만 우리가 당장 얻고자 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기대하라고 명령하지 아니 하시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자 한다. 그가 나음을 얻은 것온 그의 안에 계신 성령의 특이하고 특별한 역사였다. 그리고 이는, 다른 한편으로, 바울이 그의 안에 있었던 믿음울 보았을 때 바울 안에 계셨던 동일하신 성령님의 역사였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 들이면서도 그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병을 고 칭받지 못하는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앉은뱅이에 케는 자기 은혜에 대한 증거를 보여 주시고자 뜻을 정하셨기 때문에 이 사 람의 마음을 미리부터 준비시키셨으며 그가 이 새로운 체험을 갖도록 해 주 셨다. 그러므로 이는 누구에게나 꽁통으로 적용되는 규범이 되어서는 안된 다. 왜냐하면 이 앉은뱅이는 자신이 낫게 될 것을 믿었지만 치료의 온사륜 받기 위한 준비는 그만율· 위한 독특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나 동일하게 자녀가 되는 영을 받는다. 그러나 이저울 일으키 는 이 특별한 믿음은 대부분의 하나님의 자녀들이 갖는 믿음이 아니다.

 

"바울이 주목하여~~~~~"  ; 우리는 사람의 얼굴 표정이란 믿을 수없고 그것이 우 리를 잘 속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얼굴 표정을 보고 그 사람의 믿음을 확실히 인정할 수가 없으며 하나님만이 그 사람의 믿음울 증명하신 다.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것처럼, 그 앉은행이의 믿음은· 성령의 은밀한 영감을 통하여 바움에게 보.여겼다. 성령은 사도들이 이져올· 행하도록 하신 안내자이며 교사이셨기 때문이다. ~

 

"10 큰 소리로 가로되~~~~~"  ; 극히 믿을 만한 여러 엣 사본에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말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사도들이 모 든 기적을 일으킹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존귀하계 하고자 애쓰고 있 었음을 확실히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이 말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인쇄된 사본들 중에서는 일반적으로 읽을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나는 누가가 그 렇게 기록했을 것으로 여간다. 그. 앉은행이가 뛰어 일어났다고 말하는 누가 의 설명은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타 그가 그처럼 두서없이 순종했던 것은 그가 주님에 의하여 바르게 준비되어 그의 발이 활 기가 없었을 때 그는 이미 영적으로 걷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가 신속하 게 일어선 사실온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 두드러지게 보여 주었다. 그러나 바운은 이 급변화가 그 무리들에게 더욱 감동이 고조되도록 위하여 일부러 큰 소리로 외쳤다.

 

"11 무리가~~~~~~~"  ; 여기에 나타나고있는 사건은 사람들이 헛된데로 기울어지기 쉬운 사실에 대한 바른 중거이다. 바울은 돌연히 그를 향하여 ‘일어나라'고 소리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설교에 대한 결론으로서 이렇게 외친 것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은, 마치 그들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한 말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처럼, 그 이적의 영광을 자기들의 우상에게로  돌렸다. 이적이 급히 나타나는 것을 보고 그 미개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어려서부터 믿어 왔던 미신 속으로 끌려 들어 갔다는 사실은 그렇게 이상하지 않다. 이같은 잘못은 어디에서나 혼한 것이며 이 잘못은 우리들 속에도 들어와 결과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들을 그릇되게 해석하는 자들이 되고 있다.

  이 사실로부터 교황이 다스리고 있는 곳에 둔하고 제 정신이 아닌 미신들이 생겨나고 있다. 분별없이 이적만을 귀중하계 여기다 보니 그들은 교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끌려가기 쉬운 우리 육신의 마음이 알고 있는대로 행동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나타내신 하나님의 능력을 그릇되게 하는 일이 없도록 더욱 조심하고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사람들의 육적 마음이 갖는 육망을 통하여 그들이 전혀 반대되는 목표로 이 꿀려 가지 않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단지 적은 수의 기적만을 일으키계 하신 사실온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떤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이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셔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우상들에게 주도록 하신다든지,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율 제쳐두고 자기들이 만든 어떤 신을 붙들며 잘못된 신앙을 궁리하는 나머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그릇되게 하도록 내 버려 두시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 . 이 생각은 옛 신화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들 신화는 진리의 어떤 요소로부터 생겨났었다. 시인들이 쓴 책에는 신들이 간혹 사람의 모습으로 땅 위에 나타난다는 허탄한 이야기가 많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허탄한 데서 생겨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경건하지 못한 사람들온 거룩한 조상들이 오래 전에 천사들에 관하여 전하여 준 것을 신화로 바꾸었던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사단이 사람듈을 어리석게 만들고 속여서 길을 잃게 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이방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순간 그들의 악한 고안에 의하여 그 내용이 변하게 된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제사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처음부터 제사를 통하여 자기의 신실한 자들을 훈련시키셨으며 외적 상징들로 자기를 향한 사랑과 의무를 가르치셨으며 자기에 대한 예배도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신앙자들이 스스로 이상한 신들을 만들어낸 이후에는 자기들의 불경스러운 숭배를 위하여 하나님을 위한 제사를 그릇되게 만들었다. 앉은뱅이에게 나타난 전에는 본 적이 없는 그 능력을 보자마자 루가오니아 사람들은 이 능력이 하니님께서 하신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 기까지 그들은 옳았다. 그러나 이옥고 그들은 잘못되었다. 전에도 늘 그러 했던 잘못을 좇아 그들은 자기들 스스로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받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울보다 바나바를 더 좋아했다. 허메가 다른 신들을 소개하는 신이라는 그들이 오래 전부터 가져왔던 유치하고 허탄한 생각을 따라서 그렇게 했던 이외에 다른 이유란 없다. 이 사실로써 우리는 경고를 받는다. 우리가 어렸을 때 잘못을 익히게 되는 것이 참으로 좋지 않다는 것이 다. 이 잘못은 우리의 정신으로부터 쉽게 뽑혀 나가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그 일을 통하여 고쳐져야 하는데 도리어 굳어지기만 하기 때문이다·

 

"13 쓰스~~~~~~ 의 제사장이~~~~~~"  ; 이 제사장이 그처럼 부지런하계 움직였던 이유를 누가는 말하고 있지 않으나 그는 욕심에 꿀렸던 것으로 짐작된다. 왜냐하면 큰 이득이 눈앞에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쓰스가 그 곳에 나타났 었다는 소문이 그 부근에 전해지기만 하면 그의 장래는 재물을 얻을 수 있는 희망으로 벅차 있었다. 쓰스는 어떤 것 보다도 루스드라의 신당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곧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미신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가득하게 되었을 때 예물을 드리는 데 있어서 비용은 아깝지 않았다. 이는 분명히 세상이 스스로 그렇게 하기 쉬운 한 가지 실례였다. 그러나 당시에 제사를 맡은 제사장들이 우리들로 하여금 그와 같이 하도록 자극을 주 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온 무리는 야심에 사로잡혀 쓰스의 이름 아래 바울에게 제사롤 드리고자 하는 욕망을 그토록 간절히 갖게 되었다. 그들의 성이 더욱 두드러진 이름과 명성을 얻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제사장들이 나와서 이득을 얻고 사람들은 분명히 그릇된 행동을 하면서 즐거워하고 있을 때 사단은 그들을 자유롭게 속이고 있었다. 

 

"14  두 사도~~~~~. 듣고~~~~"  ;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로 뛰어 들어감으로써 바울과 바나바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들의 불붙는 열심이 얼마나 컸던 가를 보여 준다.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준비하는 것을 그만두개 하려고 그들을 말로써만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위선자들도 지나친 존귀를 거절하는 때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가식으로 겸손하게 행동하여 단순한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더욱 존귀 를 주도록 충동한다. 바울과 바나바에게는 이런 것은 전혀 없었다. 그들의 말과 몸으로 보여준 태도는 루스드라의 사람들이 드리고 있었던 제사를 결코 기뻐하지 않았으며 심히 가증스러운 것으로 여겼음을 잘 보여 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사람둘의 모 독직 행위에 의하여 침범되고 욕되게 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의 종들이 격 분하계 되는 것은 거룩한 분노이다.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두번째로 보낸 펀지에서 말하고 있는(고후 11 : 2) 그 열심있는 태도를 갖지 않으면 누구도 하나님의 신실하고 성의있는 (bane fide) 종이 될 수가 없음이 분명하다. 바 울은 이 귀절에서 자기 교회를 보살피도록 주님이 세우신 사람들온 남편이 자기 아내의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열심과 관심을 갖는 것만큼 주님의 영광을 주장함에 있어서 힘있고 활발해야 한다고 쓰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존귀라도 우리가 받게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손상시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이 모독되는 일아 나타난다면 그 순간, 바울과 바나바의 경우에서 잘 보여지고 있는 것처럼 그 모독에 반대하는 열정을 보여야 할 것이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자들온 특별하게 이 열심을 가저야 한다.  그러나 가르치는 자들 뿐만 아니라 신실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더럽혀지고 그 에배가 다른 자에게로 몰아가는 것을 볼 때 격분해야 한다. 왜냐하면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시69:9)  는 말씀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쓰여전 것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 우상숭배를 몹시 싫어한다면 우리도 어떻게 그 둘이 육저인 감정들을 모두 벗어버렸음을 스스로 느끼고 있다고 생각할 수 가 있겠는가?  세상이 그들의 이름들과 인풍을 미신적인 목적을 위하여 그 롯되게 사용한다면 세상온 성도들에게 호의를 보이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세상온 심히 속고 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자기들을 숭배하는 자들에 대하여 제일 먼처 반대하고 일어날 것이며 자기들이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섭기는 것 외에 더욱 중요한 일이 없음을 세상이 알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 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존귀를 자기들이 받는 것보다 성도가 당하는 더 큰 손상도 있을 수 없으며 이러한 일은 그들 중에 누구에게 신적 속성을 돌리는 순간에 생겨난다. 바울과 바나바가 ‘‘그듈의 옷을 찢 었다”고 누가가 전해 주는 사실에 관하여, 다른 성구들을 보더라도, 이는 동양 사람들이 그 몸짓으로 큰 슴픔이나 싫어함을 나타내고자 할 때 일반적으로 행했던 관습이나 의식이었음이, 분명히 누가가 바나바를 사도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교회 안에 세우신 제 1 의 순위를 넘어서 (longius quam ad primarium ordinem) ‘사도’라는 말을 확대시키고 있다.

  이는 바울이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를 ‘사도들 중에 유명한 사람들' (men of note among the apostles ; 한글 개 역 성경에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은 사람들로 되어 있음(롬 16 : 7) ―역 자 주)로 인정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바르게 말하면 ‘복음 전하는 자들' 은 사도들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바나바는 한 사람의 동료로서 바울과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두 사람을 같온 직위의 수준에 놓고 있으며 이 경우에 있어서 ‘사도'라는 칭호는 실제로 그에게 적합하계 된다.

 

"15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  사도들은, 상황이 그 렇게 하도록 했듯이, 책망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자기들이 보내심을 받은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계속하여 한 분이신 하나님에 관하여 설교하고 이 하나님이 세상에 알려져 계시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끝으로 사도들은 그들의 마음에서 마귀의 속임수를 더욱 힘있게 뽑아 없애기 위하여 그들의 행위와 같은 그 무지는 핑계할 수 없는 것임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그들이 했던 설교의 첫 부분은 책망이었다. 하나님 대신에 육신을 지닌 사람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상식을 벗어난 행위에 대하여 사도들은 루스드라의 사람들을 정죄했다.

   그런데 사도들이 인용했던 그 이유는 요점을 들려주지 못하는 것 같이 보인다. 왜냐하면 그 이유를 들어볼 때 죽어서 인간의 불행을 떠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결론을 얻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모든 이방인들의 미신은 언급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이방인들은 이미 죽온 사람들만을 신이라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교황과 그를 따르는 자들 역시 살아있는 사람들보다는 죽은 사람 들의 뼈나 나무 혹온 돌을 섬김으로써 이방인들과 똑같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 나는 바울과 바나바가 자기들이 스스로 경험하고 있는 환경으로부터 ‘우리 역시 볼품없는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신으로 생각하여 섬기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잘못입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우상숭배를 전반적으로 생각해 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만 경건하게 온 마음을 드려야 하고, 천사든지 사람이든지 어떤 별이든지 ,피조물에게 마음을 어느 정도라도 바치는 순간 이는 불경스러운 일이 된다는 사십은 우상숭배를 정리하는 근거가 되며, 정리하고도 남을만한 이유가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우상숭배의 다른 형태에는 적용되지 않는 그것의 한 형태를 반대하기 위하여 많은 말을 하게 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자신들은 여러가지 궁핍을 피할 수 없는 육신을 가전 사람들임을 고백함으로써 바울과 바나바는 그 백성의 미친 행동을 책망하는데 합당한 이유를 갖게 된 것처럼 이 경우는 지금 우리가 논하고 있는 우상숭배 전반에 대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 는다.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 이 말씀은 반대편으로부터의 논증이다. 여 기서 사도듄은 자기들이 그 곳에 찾아온 목적이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해를 끼쳐온 미신을 없애려는 것이타는 실제와는 정반대의 이유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들이 한 말은 ‘기적이 당신들에게 감동울 주는가? 그렇다면 우리의 말을 믿으시오. 우리의 주요 사명은 지금까지 세상을 속여온 거짓되 신들을 멸하고 제거하는 것입니다’와 같은 의미였다. 그러나 이는 일반적인 교훈이었으니 현재 그들의 미친 행위를 억제할 뿐만 아니라 온갖 미신과 겅 건의 참된 규범에 반대가 되는 모든 것을 견책하는 것이었다. 의심의 여지 가 없이 사도들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생각에 따라 궁리해 낸 모든것을 헛된 것으로 공공연하계 비난하고 있다. 순전하고 단순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서 변질된 모든 신앙은 헛된 것이라는 정의(定義)는 중요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사도들은 이방인들을 향하여 설교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서는 어떤 명백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친히 해 주신 약속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예배를 받지 아니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인정하시는 예배에서 떠나는 순간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공허하고 쓸데없는 수고를 하면서 스스로 기전맥진하고 있다는 바울의 말은 옳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우월하시다는 사실을 떠나서는 신앙에 관한 진실성이나 순수성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나님에 대한 신실되고 건전한예배(pietas)는 대부분의 사람들 언격二살지행되지 않홈논뇨 왜냐하면 사람들은 옛 우상숭배를 없애기 위해 서는 노력해 왔으나 다른 면에 있어서는 동한했음이 분명하키 때문이다. 그다른 면이란 사람들이 우상을 버리고 난 다음에 자기의 신앙을 하나님께만 집 중하지 않았던 것 을 말한다. 때 로 사람들은 우상을 하나님 으로 바꿔 놓고 구-실을 내세워 옛 잘못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들은 이 행 위를 고치기 위하여 애썼어야 한다. 그리하여 갈리(Galli) 죽 여신-(女神)인 대(大) 시빌리(Cybele)의 사제돌은 독신주의를 소개했다(genuerunt). 수며 듣온순결한동정너들을 대신하계 되었고 ‘제성도,(諸聖徒;Pantagion)는 ‘제신,(諸神;Pantheon)을대신하게 되었다. 여러가지 의식들은차이가나 지도 않은 다른 것돌로 대치되었다.

   마침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들이 교 회 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성자들이라는 이름만 앞세우고 들어오기만 한다 면 이 모든 신들은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여 부패는 깨끗해지지 않고, 더러움으로 가득한 마굿간은 하나님의 건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하나 님의 이름은 불경스러움과 더러움으로 뒤섞이고 있으며 하나님마저도 더러 운 마굿간으로 모셔 듈이 고 있 다. 그러 므로 사도들은 지 나간 세 대 에 서 모르는 사이에 세상을 에워싸버린 우상숭배를 무너뜨리는 데 힘을 기울일 뿐만 아 니타, 모든 부도덕한 부도덕듈이 무너지게 된 다음에 순전한 신앙만이 번성 하도록 애쓰고 있었음을 명심하자. 천지롤 지으시고 우리는 바른 전서를 가르침에 있어서 잘 알고 있는 것 부러 말하는 것 이 필 요힙울느알프걸柱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 방 사람들에 게 설교할 그 때 부터 그들을 즉시 그리스도께로 이끌려 한다면 소용없는 일 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어떤 다른 사실부터 말하기를 시작센브그뇨뇨 그리하여 그 사실이 옳다는 인정을 받을 때 그들은 그리스 도에 게 관하여 말할 수가 있 었 다. 루스드라에 살고 있 던 사람들의 마음은 많은 신이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_있었다.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는 켈의 생각과는 만대로 세상을 만드신 한 분의 창조주를 전파하고 있다. 고 허위적인 많은 신들을 그들의 생각에서 몰아냄으로써 두번째 단계의 길이 열렸다· 그것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가르 치는 길이었다• 오늘날 교황과 그를 따르는 사람듄에 대한 우리의 논증은 좀 다르다. 그둘은 하나님의 유일성을 공언하고 성경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성경운 가지고 하나님 이 어떠한 분이시며 그가 사람듈에게 어떠한 예배를 요망하시는가를 그들에게 증거해 주어야 한다.

 

"16 지나간 세대에는"   ; 루스드라의 사람듈이 하나님께서 당지까지 알려 져 계시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으므로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의 주장 을 미 리 가로막고 모든 사람들이 어 두움 가운데 서 방황해 완으며 온 인류가 소경이 되어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의 패역한 무지갸一 사람둘이 핑계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믿지 않는 그 사람돌에게는 두 가지 큰 장애물이 있었다.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옛 풍 습과 거의 모든 나타둘이 가지고 있는 일치감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 두 가지롤 뒤엎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만일 그 과오가 수 세대동안 있어왔고 세상이 이해나 분별의 힘이 없어서 방황하여 왔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전리가 나타당 경우에 그 전리가 중대하지 않은 것으로 인정될 이유가 되지는 못한 다. 하나님의 전리는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규범이 이를 반대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사도들온 잘못되어 있는 사람들 의 수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 온 세상이 일치하계 잔못되어 있다 하더라도 너희가 바른 길에서 떠나도록 하 는 이유는 되지 않는다. 모든 백성들이 소경이 되어 있지만 하나님은 너희 에게 빛을 주고 계신다. 그러므로 모든 백성들이 지금까지 어두움 속에 참 겨 있었다 하더타도 너희의 눈온 떠야 하고 어두움 가운데 기력없는 사람들 이 되어서는 안된다.'

 

"자기의 길들을"  ;. 만일 바움이 당시까지 사람들이 하나님의 허락하심 안에 서 속아서 방황하여 왔다고만 말했다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지 않을 때 잘못을 범할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쉽게 내리계 된다. 그런데 바울 은 그 잘못둘을 ‘사람들의 길'이라고 명백하게 말하고 있다. 이 사실을 볼 때 구원의 길을 따라 나감에 있어서 인간의 마음에 있는 지해와 총명은 참 으로 효과가 있음을 명백히 알게 된다. 바울은 ‘모든 족속이 자기의 길을 걸었다. 다시 말하면, 본든 족속이 어두움과 사망 가운데서 방황했다’고 말 하고 있다. 마치 바울은 온 세상에는 참된 이성(理性)에 대한 단 한가닥의 불빛 조차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참된 경건에 대한 하나의 규범이 있다. 믿는 자들이 자기의 육、 보높력 에 대 한 신혼녀L의리흐느자신 을 하나님 께 온전히 복종시 키 는 것 이 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길'은 전에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으며 모든 시대마다 있었던 실예들은 자기는 다른 사람들보다 총명하다고 생각할지라도 하나님 의 말씀으로 깨 우침 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얼 마나 비 참하게 소경 들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시작된 바로 뒤부터 인류의 대부분은여러가지 미신과 그릇된 종교에 빠져 들어갔다.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따 라 행동 하고자하는 이외에 이와같은 일은 생겨날 수가 없지 않은가? 세상 이 홍수에 의하여 깨끗해전 것같이 보였을 때에도 세상온 즉시 같은 악으로 빠쳐 들어갔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는 것보다 더욱 치명 적인 일도 없다.

  그러나 다론 한편으로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 께 서 그도록 오랫 동안 이 세 상이 방황하도록 하신 이유를 말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공평 하고 가장 높은 법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온 자기 행위에 대 한 가장 훌륭한 이유를 갖고 계신다. 그러나 그 이유가 때로는 숨겨져 있기 때문에 우리들 편에서는 하나님의 비밀한 뜻을 받들고 기이하게 여겨야 한 다· 우리는 세상이 명망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고백해야 한더-. 그러나 하나 님께서 다론 세대보다 어떠한 세대 위에 자비를 베푸시는 이유에 대하여 하 나님은 그렇게 하시는 것이 자신에게 좋게 여겨지신다는 사실 외에 다론 이 유를 말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을 때가 차매,(갈 4:4)라고 불렀다.

  그리하여 다론 어떤 더 좋은 때를 찾지 않게 했다. 그리고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누셨으니"(l : 7) 우리의 알 바가 아니타는 제 일장에서 우리가 알아보았던 말씀을 잊 어 서 는 안된다. 그렇 게 하여 교황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홈잡고 있는 행위는 반박되고 있다. 그돌은 하나님께서 자기 교회가 그처럼 오랫동 안 잘못 가운데 있도록 내버려 두실 수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나는 묻는다. 모든 민족이 노아의 방주 이외에 다른 어떤 곳으로부터 나오게 되었는가? 그 때는 교회가 특이한 순결을 갖고 있지 않았던가? 거룩한 셈의 후손둔도 다론 사람들과 함께 타락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특별한 백성oJ_ 이스라엘 역시 오랫동안 버립을 당했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하나님께서 엣 적에 그렇게 하셨던 것 같이 자기 아들의 다스럽 아래서 소경이 되게 하는 농일한 형벌르 자기의 말씀을 경멸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온 놀랄 일 이 아니다. 

 

"17 그러나 자기를 중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 여기서 바울과 바 나바는 인효보호인그t3l_포크센브년L보긴률크다구설논L 사람들이 자기 들 스스로가 고안한 것으로 아무리 기뻐하고 있다 하머라도 최소한 자기들의 잘못을 깨닫게 될 때에는 자기들이 책망을 받아서는 안되며 하나님께서 잔 인하시다는 핑계를 내세워 그 핑계아래 숨는댜 하나님께서 멸망하고 있는 자들에대하여 그들은 구원을 받기 한 번 이타도 종을 울려줄 만한 가치도 없는 자돋이 라고 생 각하셨 을 때 잔인하셨 다는 것 이 다. 바울과 바나바논 하나님 이 자신과 자기 신성에 대한 증거를 계속하여 주시면서 자기를 숨기고 계십을 가르쳤을 때 그들은 이 진지하지 않은 주장을 미리 막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가지 사실이 어떻게 서로 조화가 되는가를 알지 않으떤 안된다. 왜냐 하떤 갚보 하나님께서 자선율 참으로 중거하신다면 하나님이 관계하시는 한 세상이 과오 중에 방황하도록 하지는 아니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 하고 있는 증거가 사람들에게서 핑계를 제하기는 하지만 이 중거는 구원을 얻게 하는 데는 충분하지 않다고 나는 대답하겠다. 왜냐하떤 "믿음으로 모 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전 줄을 우리가 아나니"(히 11 : 3)라고 말한 사도의 말은 참되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하늘과 땅을 본다고 해서 생 7 는 거 0 0 tJ 쓰을 들으으로 ex verbl audt"tu 생 기 기 때 문0 다• 그러므로 사람은 말씀이 안내하여 주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얻기 위한 지식에 이를 수 없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은스~ 말씀을 갖지 않는다 하더라도 핑계할 수 없도록 한다· 왜냐하떤 사람이 빛 율잃고 있다 하더라도L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첫 장(20절)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과 같이 자기가 스스로 갖는 악의(惡意) 때문에 소경이 되 어 있기 때문이다.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틀 내리시며 결실기틀 주시는"  ;, 처음부터 하나님 온 말씀을 롱하여 모든 인류에게 자신을 알리셨다.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 께서 그 축복을 내리지 아니하신 세대는 없었다고 말하고 이 사실온 세상이 그의 능력에 의하여 다스려지고 있음을 증거할 수가 있게 된다. 그러나 교 훈의 빛은 수 세대동안 묻혀 왔기 때문에 이를 이유로 내세워 사람둘은 하냐 l I 님께서 자연적 중거에 의해서만 나타나셨 다고 말한다. 그럴 뿐만 아니 라 사 도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의 장려 함을 적 합한 찬사로써 찬양한 것 같다. 누가가 중요한 정에 관하여 말한 것은 만족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사도들이 자연의 비밀에 관하여 철학적인 방법으로 상당히 이치를 따 지는 이야기를 하고 있 음을 이 해 하지 못한다. 왜 냐하면 그들은 교육을 받지 못한 평범한 사람둘을 향하여 말하고 있었귀 때문이다.

   그들은 교육을 받지 않은 모든 사람들이 아는 쉬운 말로 이야기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 연의 질서 안에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분명하게 나타나셨다는 원칙적인 사실을 주장하고 있었다. 땅이 비를 받아서 축축해지고 대양의 열이,생물을 자라나게 하고 풍부한 열매들이 해마다 맺게 되므로 이런 사실들을 통해서 모든 것율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계십을 분명하계 알 수가 있다. 하늘과 땅 온 스스로의 힘에 의하여 움직이지 않으며 우연히 움직이계 되지도 않기 때 문이다. 그러므로 대자연의 이 정교함은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하계 가리키 고 있으며, 세상이 영원하다고 말한 사람들온 자기들의 정신에 의한 인식을 따라서 말하지 않고 악의에 차고 야비하계 은혜를 배반하면서 하나님의 영광 을 말살하려 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그 들은 그들 스스로의 건방침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일하심에 있어서의 영광을 중거하시고 사람들이 모든 것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실 때 하나님을 알고자 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사 합들의 불경건은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목적이 아니면 해와 별들이 하늘에서 빛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 들에게 며을 수 있는 음식을 꽁급하려는 목적이 아니타면 하늘에서 비가 내 리고 땅이 그 열매를 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율 땅에 두신 목져온 사람이-마치 극장에서 그렇게 하는 것처럼―하나님의 일 올 한가하게 명상하도록 하시기 위해서가 아니타 하늘과 땅이 주는 풍요함 율 줄기면서 하나님의 온계를 찬양하도록 하심이다. 아낌없이 풍부하계 주 시는 그같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것온 비열한 행동보다 머 나쁘지 않은가? "음식 ...... 으로 ..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타"는 말씀은 단 순히 먹고 싶은 마음을 만족시킬 음식울 주신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다. ‘기쁨으로'타는 말로써 바울과 바나바는, 마치 이 귀절이 사람들은 새 힘을 얻기 위하여, 뿐만 아니라 즐거운 마음을 갖기 위하여 며율 것을 얻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 무한한 사랑 가운데서 필요한 것 이상 으로 아낌없이 주십율 의미하고 있다.

    사람들은 풍부함으로 얻는 즐거움보다는 굶주립 때문에 신음하는 일이 자주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자연의 질서에 역행하는(praeter naturae ordt"nem)것 이 라고 대답하고 싶다. 다시 말하면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최 때문에 그 손을 거두시는 경우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바울과 바나바가 전하고 있는 것과 같이 우리들이 악으 하나님은 거리낌 없이 코 법하여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먹을 관대하게 역사하실 것이기 때문 버릴 만큼 십한 걱온 없었다. 시편의 기자는 것을 주사는 하나님의 축복이 완전히 매말라 이지 않을 경우 우리는 우리 우리가 하늘의 은해롤 받아들 계 하려 고 "네 입 을 넓 계 열 타. 스스로의 잘못 때문에 굶주리계 되는 것을 알 내가 채우리타"(시 81 : 10)고 잘 말해 준다. 그러나 우리가 아-규거 야비하다 하더라도 아버저로서의 하나님의 사랑은 장 애물을 뚫고 나가서 보잘것 없는자들에게까지 임한다. 특히 온 인류는하나 님께서 자신을 아버지로 나타내신 그 은혜가 결코 중단되고 있지 않는 사실 에 대한 중인들이다.

 

"18 이렇게 말하여~~~~~~"   ; 누가는 앞에서 자도들이 말을 할 뿐만 아니타 그 무리 속으로 급히 뛰어 들어 갔다고 말했다. 여기서 누가는 그 백성의 열성 온 사도들의 열십에 의해서도 억제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사실은 · 우상숭배에 드리는 세상의 열성이 얼마나 맹목적이며 난폭한지 보여주고 있 다. 사도들이 신이타고 그들이 믿었다면 그릇된 존귀를 거철하는 사도들의 말율 믿지 아니한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우상숭배자들은 신앙이 자기 자 신의 굉장한 쾌락에 도움이 되지 아니하떤 즉시 그 신앙의 멍에를 벗어버리 고자 하는 병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은-침승들이 정욕을 따라 꿀 려가는 것처럼-사람들이 미신의 맹목적인 열정 속으로 끌려간다는 사실을 항상 우리에게 생각나게 해주고 있는데 이는 놀랄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