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0장 26절에는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는 질문에 주님은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그것을 어떻게 읽느냐?"라고 물으신다. 오늘을 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성경을 어떻게 읽고 있을까?
사도요한은 요한복음 20장에서 베드로와 사도요한이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가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요20:1~8) 먼저 도착한 사도요한은 베드로보다 먼저 무덤에 이르른다. 그런 후 무덤안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밖에서 무덤안을 구부려 살피고 있음을 사도요한은 증거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공관복음에는 상세히 기록하고 있지 않다. 오직 누가복음 24장 12절에 빈무덤으로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 뿐이다.
1) 사도요한이 베드로를 배려하여 무덤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메튜헨리목사는 그의 주석에서 "사도요한은 베드로처럼 무덤안에 들어갈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며 베드로는 담대하게 무덤에 들어가서 자세히 살폈다고 언급했다. 대한 성서공회 주석에는 먼저 도착한 사도요한이 베드로에게 무덤에 먼저 들어 가도록 배려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칼빈선생은 그의 주석에서 기록하기를 사도요한의 이런 기술은 "신앙의 발전의 단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주석하고 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을 듣고 ==> 보고==> 자세히 살피고===> 믿음 을 설명하고 있다 고 칼빈선생은 주석한다.
필자는 칼빈선생의 주석이 맞다고 생각된다.
요한복음 20장 1절로 18절은 당시에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려고 로마의 정부는 물론이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요구했던 교회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시체 도난설을 퍼트린 것에 대한 명확한 논증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명료성과 정확한 증거로 막달라 마리아를 Close up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요한은 공관복음에 기록된 성경을 보고 자신의 불신앙도 자책하고 있는데 그 증거거 20장 9절로 보아야 한다. 주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지 못한채로 여전히 믿지 못했다가 아니라 주님이 부활하신 것은 눈으로 보고 믿었으나 주께서 하신 말씀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메튜핸리목사처럼 사도들의 저마다 은사의 차이로 해석하는 것과 대한성서공회의 베드로를 배려하여 사도요한이 무덤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라 판단된다. 신구약 66권을 통전적으로 보고 해석해야하며 무리한 가정과 추정은 금물이다. 사도요한은 공관복음에 언급되지 않은 주님의 부활을 분명하게 증거하려는 목적이 있었음을 전후 문맥으로 알수 있다. 20장 19절 이하를 보면 이를 뒷받침해 준다. 도마가 고백한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를 사도요한은 증거하므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한 것이다.
2) 부활의 주님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하신 말씀
먼저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라고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누가복음 24장 4절로 7절을 보면 주님의 부활로 인하여 울 필요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감성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한데서 비롯된 것임을 성경은 기록한것이고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 왜 부활 승청하셔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것임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둘째 "나를 붙들지말라"고 말씀하셨다.
왜 부활의 주께서 제자들에게는 부활의 육체를 만지게 허락하셨음에도 막달라마리아등의 여자들에게는 허락하지 않았을까? 제자들에게는 의심을 제거하는 정도의 만짐은 허락하셨으나 여인들은 그리스도의 육체적 임재에만 관심이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셨다(칼빈). 더우기 부활의 완성은 하나님아버지께로 올라가셔서 승귀를 하여야 완성되며 보혜사 성령으로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함을 말씀하신것으로 이해된다.
셋째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하나님아버지'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스도안에 머물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 그리스도안에 머물지 않는자는 농부이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잘리워지는 가지에 불과함을 알아야 한다.
3) 결언
부활의 증인으로서 막달라 마리아, 부활의 증인으로서 사도요한, 사도베드로를 요한복음 20장은 증거하고 있다. 오늘을 살며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대속의 은총을 얼마나 믿고 있으며 실제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사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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