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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요한복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요10:1)

1. 성경 (요 10:1 ~ 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1)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2)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3)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4)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5)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6)

 

2. 묵상 (Calvin선생의 주석요약본)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목자라고 자부하고 있는 서기관과 제사장들을 상대로 말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가르침을 그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목자라는 칭호를 그들로부터 제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믿는자의 수가 적은 것도 그의 가르침의 권위를 약화시킬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교회 내에서 자기 위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모두 목자나 양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올바른 목자와 잘못된 목자를 구분하고 참된 양과 거짓된 양을 구별하자. 그 기준은 그리스도께서 침히 모든 것의 목표와 시작과 끝이 되느냐 하는데 있다. 이 경고는 어느 시대에나 매우 유익한 것이었다. 이러한 경고는 오늘날 특히 필요하다. 이리가 목자의 탈을 쓰고 돌아다니는 것보다 교회에 더 파괴적인 질병은 없다. 우리는 타락한 이스라엘인이나 사생자가 교회의 자녀로 행세하며 믿는 성도들을 이기고 승리할 때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가를 알고 있다. 거의 모든 세계를 통하여 교회는 이 두가지 악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어왔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원수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성전이 채워지고 있는 것을 보는 것보다 무지한 자와 연약한 자들에게 더 경종이 되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교회의 목자들이 신랄하게 저항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이해시키기가 더욱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짓된 가르침에 의하여 오류에 빠지고 있는 때에 사람들은 각각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또 기다린다. 그래서 스스로 바른 길을 찾아 들어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스스로 자의에 따라 자신을 이리와 강도에게 내맡기기를 원치 않는다면, 우리는 특별히 거짓 목자나 양에게 속지 않도록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교회”라는 명칭은 존귀한 것이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교회가 더욱 존귀히 여김을 받는만큼 참된 교회와 거짓 교회의 차이를 살피는 데에 우리는 더욱 더 조심과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여기서 목자라는 칭호를 가지고 자격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목자로 간주해서는 안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의 교회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시지만 우리의 교회도 이런 점에서 다를 것이 없다. 우리도 또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목적을 깊이 생각하므로 연약한 양심의 소유자들이 목자의 자리에 앉아 교회를 다스리며 복음을 대적하고 반대하는 것을 볼 때 놀라거나 실망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크리스찬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경청하는 동료 크리스찬이 별로 없다고 하며 믿음에서 이탈해서는 안될 것이다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 내 의견에는 이 비유의 각 부분을 매우 상세히 음미하지 않는 사람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모으는 양의 우리에 비유하고 있으며 자기 자신을 문에다 비교하고 있다는 일반적인 견해로 만족하도록 하자.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 들어가는 유일한 입구가 되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곧 바로 인도하는 목자만이 선한 목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을 그리스도에게만 내맡기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우리에 들어와 그의 양떼로 여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자기 선생으로 멸시하지 않는 사람은 교회가 무엇이며 경청해야 할 목자가 누구인가에 대하여 많은 사람을 당황하게 하거나 망설임을 갖지 않을 것이다. 소위 목사라는 사람들이 만일 우리를 그리스도로부터 멀리 유인하려 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이 절도나 강도인 것처럼 그들로부터 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복음의 순수한 신앙에 화합하지 않는 어떠한 단체나 모임에도 가입하거나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겠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믿지 않는 무리에게서 분리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또 불경건한 제사장에 지배되거나 교만하고 허황된 이름에 사로잡히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고 권면하시는 것이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열고~~~” ; 어떤 사람이 여기서 문지기는 하나님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한다면 이를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심지어 목자를 인정하는 데에 있어서 하나님의 판단과 사람의 거짓된 의견을 직접적으로 대조시키고 있는것 같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세상에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칭찬하고 기꺼이 높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정사와 권세를 잡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양떼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사람들만을 인정하시고 승인한다." 주님께서는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불러 인도하여 낸다고 말씀하실 때, 나는 그것을 믿음의 상호 동조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자와 선생은 같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연합되어 있어 선생이 앞서 가면 제자가 따라가기 마련이다. 어떤 이는 이것이 목자가 각 양에 대하여 가져야 할 밀접한 이해와 정도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러한 해석은 약간 의미가 악하다고 생각한다.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 주님은 그들의 말보다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하시는 말씀을 사람들이 경청하기를 바라고 계신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한 분만이 신실한 목자로서 그의 양떼를 다스리신다고 하는 예외적인 사실에 우리는 유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양들이 따라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양들이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따라 목자와 강도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리와 사람의 거짓된 의견을 구분할 수 있는 분별의 영으로서 택한 자들은 이 분별의 영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양떼 가운데는 첫째 진리에 대한 지식이 있고, 그 다음으로 순종하기를 원하는 간절한 소원이 있다. 따라서 이들은 진리가 어떤 것인지를 알 뿐만 아니라 충심으로 그 진리를 받아들인다. 주님께서는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순복하고 따를 뿐만 아니라 낯선 사람의 음성에는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누가 그들에게 소리를 지른다고 해서 흩어지는 일도 없기 때문에 믿음의 순종을 칭찬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셨으나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지혜를 교만스럽게 내세워 그리스도의 빛을 거절했다. 아주 분명한 일에 대하여 그들은 둔했기 때문이다.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의 헬라어 번역을 칼빈은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저희는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