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 (고전13:1 ~ 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1)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2)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3)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내가 또한 저)일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주 1)." ; 나는 그 장의 그런 무의미한 분리를 바꾸지 않을 수 없었고, 특히 그것을· 적절하게 다른 어떤 방법으로 분리 설명할 수 없었으므로 이렇게 13장 초두에서 설명한다. 13장 초두에서 그 다음에 나타나는 내용과 그렇게 잘 어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참으로 직절한 이 문장을 억지로 잘라서 12장 끌머리에 붙임으로써·거기서 얻어지는 유익이 무엇인가? 그것은 이 성경을 복사한 필생(筆生)들의 과오로 일어난 것 같다 .. 그 문제는 이 정도로 해두고 바울이 다른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데 특별한 관심울 기울여야 한다고 가르친 후, 이제 그는 더 큰 가치를 가진 어떤 것, 곧 모든 일은 사랑의 법칙의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가장 탁월한 방법은 사랑이 우리의 모든 행동을 다스리는 바로 그곳에 있다. 그리고 참으로 모든 덕(鶴)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단언함으로써 즉각 그는 시작하고 있다.
아무리 그 행위가 놀랍고 탁월한 것일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그 행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바울 이 여기서 가르치는 것은 그가 다른 곳에서 주장한, 곧 사랑은 ‘경계의 목적’(딤전1:5)이 되며, ‘온전하게 매는 띠(골3:14)라고 하였으며 또한 그는 사람들의 거룩함을 전적으로 사랑에 그 기초를 두었고, 하나님께서 율법에서 두번째로 중요시한 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는 그의 주장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행위가 사랑에서 출발한 것인가 아닌가의 척도에 따라 판단을 받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놀라운 은사들이 사랑과 관계가 있을 때에 비로소 그 참된 가치를 가진 것이라는 사실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못 된다.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 바울은 그 자체로서는 분명히 탁월한 은사이지만, 그것이 사랑과 연합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도 않으시며,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웅변으로 시작한다.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라는 말에서 그는 뭔가 놀랄 만하거나 혹은 진귀한 것에 대한 표현으로 과장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각각 다른 종류의 방언에 대한 언급으로써 정확한 해석을 하고 싶다. 모든 사물의 가치 기준을 그것이 나타내 주는 명성에 두며 또한 그것이 산출하는 결과에 두지 않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방언을 할 수 있는 능력에 큰 역점을 두고 있다. 바울은 '여러분은 모든 사람들의 언어 뿐만 아니라, 천사들의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하자면, 만일 당신에게 사랑이 없다면, 딩신을 악기인 심벌즈 이상으로 더 높게 생각하리라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2. 내 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아무 것도 이니요." ; 바울은 그가 무엇보다도 이 예언의 은사를 높게 평가하였지만, 만일 그것에 사랑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무것도 아니라고 그 가치를 축소시키고 있다. 모든 비밀을 아는 것은 설명의 방법으로서 예언에 부가되는 것갈이 보인다. 그러나 지식이 곧 그 뒤에 나오고 있으며, 또한 그 앞의 문맥에서 지식에 대한 언급을 분리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비밀을 아는 것이 여기서 지혜대신으로 사용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것에 대하여 교리적이 되지 않으려고 하는 한, 나는 아직도 그 견해에 많은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 있는 믿음은 특벌한 종류로서, ‘산을 옮길 만한'이라는 말이 덧붙여져서 더욱 분명하여졌다. 그러므로궤변가들은 이 귀절을 믿음의 능력으로부터 제거하려고 잘못해석하는데 그들의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그러므로, '믿음'이라는 말이 의미에 많은 차이들이 있는 낱말이라는 사실에서 볼 때, 분별력 있는 독자라면 그 낱말이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의미에 주의하게 될 것이다. 이제 바울은 그의 자신의 해설자이다 (이미 내가 말 한 대로). 왜냐하면 그는 여기서 믿음을 이적에 대한 것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크리소스톰이 '정조와 기적에 대한 믿음’으로·부르고 있는 것이며, 또한 우리가 '특별한 믿음'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인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그의 전체로 보지 않고 다만 기적을 행하는 그의 능력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유다의 경우처럼, 성화되지도 않은 채 사람들이 때때로 이것을 갖게 되는 이유이다.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 이것을 그 말 자체로만 생각한다면, 분명히 최상의 칭찬을 받을 만하다. 그러나 남에게 거저 주는 행위가 종종 이기주의적인데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참된 아량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 수 있다. 또다시, 관대한. 사람이 때로는 사랑의 다른 면에서는 부족을 나타내며(관대한 느낌이 다만 사람의 한 요소일지라도), 다른 면에서는 매우 칭찬 받을 만하며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훌륭한 것으로써 칭찬의 대상이 될만한 일이라도 사랑이 그 속에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 바울이 여기서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장하며 최상의 것인인 순교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의문이다. 사람이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주저하지 않고 생명을 바칠 수 있는, 꺾을 수 없는 확신에 찬 성품보다 더 놀라운.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만일 그 속에 사랑이 없다면 하나님은 또한 이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실 것 이다. 동시에 그가 언급하고.있는 형벌의 종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일반적으로 가하여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교회를 파멀시키려는 당시의 폭군들이 미쳐서 블을 질러 기독교를 멸망시키려 했던 네로를 제외하고는 모두 불보다는 칼로 그리스도인들을 멸망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성령께서 바울의 중재를 통하여 박해가 곧 오리라는 사실을 예언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우발적이었다. 이 귀절의 요점은, 사랑만이 우리의 행위를 지배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은사를 바르게 사용하는 유일한 안내자인 까닭에, 하나님은 사람이 아무리 훌륭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일지라도 그 속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셨다; 아름답게 보이는 모든 덕스러운 행위도 사랑이 없으면 단순한 걸치장일 뿐이요, 공허한 음향일 뿐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겉모양 뿐이며 비열한 행위일 뿐이다. 그러므로 가톨릭교도들은 이 귀절에서 믿음보다는 이 사랑을 더 높게 평가하는 정당성을 우리에게 부여한다는 추리를 이끌어 낸다. 그러나 그것을 다음에 논박하겠다. 우선 다음 귀절들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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