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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고린도전서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고전3:21)

1. 성경 (고전 3:16 ~ 23)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6)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17)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8)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19)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20)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1)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2)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23)

2. 묵상 (Calvin 선생 주석)
"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선생들에게 그들의 임무에 대한 충고를 한·다음에, 바울 사도는 이제 시선을 제자들에게 돌려서 역시 그들이 자신을 살펴보도록 하고 있다. 그는 선생들에게  '너희들은 하나님의 집의 건축가들이다' 라고 말하였다:·그리고 이제 그는 사람들에게, ‘너희들은 하나님의 성전이다. 어떻게든지 너희들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너희들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여기서 의미하는 바는 그들이 사람들의 손에 의하여 자신을 더럽히지 않는 것임을 뜻하고 있다.  참으로 그는 이렇게 말하면사 그들에게 진귀한 영예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또한 그는 그들이 그들 자신의 죄악을 더욱 분명히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을 위한 성전으로 성별하여 주셨으며, 동시에 그들을 하나님의 성전지기로 입명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을 양도함으로써 하나님의 신뢰를 배반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각 사람을 모두 각각 하나님의 성전으로 부르시는 것이다. 믿는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산 돌이다. 그러나 때로는 개개인이 각각 하나님의 성전으로 볼리어진다. 조금 뒷 부분에서 사도 바울은, 다른 목적을 위하여 동일한 사상을 다시 내세우고 있다. 뒷부분에 나타나는 귀절에서는 사도 바울이 순결에 대하여 취급하고 있지만, 그러나 여기서는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순종함으로 그들의 믿음을 끝까지 지켜 나가라고 격려하고 있다. 질문법을 사용하는 것은 더욱 크게 강조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들을 증인들로 부름으로써, 그는 그들이 잘 알고 있는 것에 대하여 그가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하나님의 성령이~~~~" ;· 앞으로 이것은 하나님의 성전인 이유이다. 그러므로 ‘파'는  ‘때문에'로 읽어야한다. 예를들면, 그것은 시인이, ‘너희가 그것을 들었고, 그것은 보도되었다’라고 말한 것과 아주 공통된다:  바울사도는,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으로 너희 안에 거하심으로 너희들은 하나님의 성전들이다. 그러므로 어떤 부정한 것도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될 수 없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 귀절에서 우리는 거룩한 성령의 신성(神性)을 확증하는 분명한 증거를 갖게 된다. 만일 하나님께서 피조적인 존재이거느나, 혹은 단순히 우리에게 주어진 그 무엇에 불과하다면, 그는우리 안에 거하심으론써,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만들수는 없는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연합하시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묶여지는지의 방법, 즉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을 우리 안에 부어주시는 그 방법을 깨닫게 된다. 
 
"17. 누구든지 하니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 사도 바울은 중대한 경고를 덧붙이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전은 가장 신성하여야 하므로, 누구든지 그 성전은 더럽히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밀고 들어가서 교회 안에서 군림하게 될 때에, 그런 부류의 반역에 대하여 지금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순결한 교훈에 헌신하게 되는 그런 민음이 ‘영적 순결' 이라고 불리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믿음은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고 순결한 경외로 섬기게 한다.  우리가 인간의 혼성으로 전염되게 되는 순간, 하나님의 성전은 오염으로 더럽혀지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시라고 선포하신 믿음의 회생이 피조물인 사물에게로 돌아가게 되고 말기 때문아다.
 
"18. 아무도 자기를 속이자말라… " ;  여기서 바울은 그의 '손가락으로 근심의 뿌리를 지적하고 있는데, 모든 손상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데서 기원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지혜를 내세우면서 잘뭇된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 것을 강력하게 충고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들 자신의 지식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속이고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선생들처럽 그 교훈을 말하고 있다고 내게는 생각된다.  듣는 사람들은 이 야망에 찬 사람들에게 더 호감을 갖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들은 맛에 대하여 너무 까다로 왔기 때문에, 그 결과 그들에게는 단순한 복음이 우유와 ·물에 불과할 뿐이었다.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고자 하는 선생들은 보이기 위한 것만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두가지를 모두 경고하였다.  즉 '너희들 중의 누구도 자신의 지혜를 스스로 자랑 하려고 하지 말라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세상에서어리석은 자가 될것이다' .그것을 다른 방법으로 나타내면 ‘지혜의 명성으로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되면, 그는 자신을 제어하고 가난하게 되며 , 자신의 눈에 어리석은 자가 된다’ 는 것과 같다. 더구나, 이렇게 말함으로써 사도 바울은 본래 타고난 지혜나 혹은 오랫동안의 경험으로 얻은 지혜 모두를 다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다만 우리가 그 지혜를 하나님께 예속시켜서 우리의 모든 지혜가 그의 말씀으로부터 기원되게  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미련한 자가 된다거나, 혹은 우리 눈앞에 미련한 자가  된다는 것은, 즉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게 보이는것을 삼아들이는 것보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께 의뢰하기를 기뻐하고, 또 하나님께서 교훈하시는 것을 두려움과 경외심으로 받아들이는 때를 말한다.
 
'이 세상에서’라는 귀절의 의미는, ‘세상의 이론이나 생각에 따르면'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세상,지혜인데 즉 우리가 자신을 모든 일에 대하여 상의할 동일한 대상으로 생각하고, 또 우리 자신을 다스리며, 우리의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만일 우리가 자신 이외의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또 자신 이외의 다른 분이 우리를 인도할 팔요성을 갖지 않으며, 매사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한편,.'이 세상에서 미련한 자'는·자신의 지혜를 부인하는 사람이며, 마치 소경인 것처럼,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은 또한 자신에 대한 부족함을 확신하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며, 하나님의 지혜에 기초를 두고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기쁨으로 하나님께 배우는 사람이다. 우리의 지혜는- 이런 방법으로 소멸되고,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생애를 지배하게 되며, 우리 자신의 지식은 텅비게 되어서 다만 하나님의 지혜로 우리가 충만하게 되어야한다. ‘이 세상에서’는 첫번째 귀절이나 혹은 둘째 귀절 중의 그 어느 하나에도 연합될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의미는 거의 비슷하므로 독자들은 자신이 좋으실 대로 하시면 된다’
 
"19.  이 세상 지혜는" ;  이것은 반대로 시작하는 논증이다. 하나의 확증은 다른 하나의 파멸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께는 어리석은 것이 되며,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서 지혜로와질 수 있는 것은 세상에서 어리석은 것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세상의 지혜가 무엇을 의미 하는가에 대하여 바울 사도의 언급에서 깨달았다. 자연적인 시력은 하나님의 주신 은사이다. 예술가들은 본래 추구하는 사람들이고, 모든 훈련에 의하여 얻어지는 지혜 역시 하나님의 은사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들은 모두 어떤 한정된 제한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늘나라에 침투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완전히 예속되기까지는 모두 아무 소용도 없고. 또 쓸데 없는 것으로 생각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일 그것들이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것으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아주 해로운 독충이 되고 말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그 세상적인 지혜가 스스로 무엇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 한다면 그것은 가장 유해한 장애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에 의하면, 이 세상 지혜는 그것 자체가. 절대적인 지배자인 것처럼 잘못 생각되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를 받거나, 또 그 말씀으로 겸손하여지기를 거절하며,  하나님에게 완전히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배운 것 이외의 것은-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며, 자신의 지혜를 버리고,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따르 게 될 때까지는, 그가 비록 세상적인 면으로는 지혜롭다고 할지 모르나 하나님의 눈에는 어리석은 사람일 뿐이다. 
 
"기록된 바 지혜있는 자들로 하여금자기 궤홑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  바울 사도는 자신이 말한 내용을 성경 본문 두 군데를 인용하여 입증하고 있다. 그 첫 성경 본문은 욥기 5장 13절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높이 찬양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지혜 앞에서는 세상의 어떤 지혜도 감히 설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성경 문맥에서는 선지자가 간지(好智)와 간사한 술책에 대하여 말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사람의 지혜는 항상 인간이 하나님을 떠날 때 일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은 아무리 많은 인간의 지혜가 그 자체로는 지혜로울지 모르나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아주 적절하게 잘 적용하고있다.  둘째번 성경 본문은 시편 94편 11절로 여기 다윗은 하나님의 직무와 그 권위에 대하여 선포한 후, 모든 것을 가르치면서 그는 "여호와께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라고 덧붙이고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그들이 인간에게 이런 높은평가를 받는다 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무익한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확신을 넘어뜨릴 수 있는 탁월한 귀절이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한·인간이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은 전적으로 무가치한 것이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선포화시고 있기 때문이다.
 
"21.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사람보다도 더 무가치한 것은 없으며 공허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것을 의지하는 것은 얼마나 불안한가!   그러므로 그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자랑할 것' 이 없다고 말하는 앞의 문장에서 올바른 추리를 하고 있다.  거기서 우리는 모든 인간이 자랑 할만한 근거들을 어떻게 하나님이 박탈하사는가를 보게 된다. 그러나 이 결 론은·우리가 앞으로 살펴보려는 것과 갈이 앞의 논증에서 그가 가르쳤던 모든 것에 달려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만 속하므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감손하는 것을 포함하는 인간의 탁월성은 신성 모독이라고 바울은 우리에게 아주 잘 가르치고 있다.·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  바울은 선생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선생들의 유일한 직무에서 박탈되지 않아야 하는 위치와·신분에대한 언급을 덧붙이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홀로 한분이신 교회의 유일한 교사이며  그리스도만을 어떤 상황 속에서라도 우리가 경청하여야 하므로, 그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별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는 역시 마태복음 23장 8절에서 유사한 말로 친히 자신을 증거하고 있으며, 또 하나님 아버지는 다른 어떤 사람을,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마 17 : 5)는 말로써 우리에게 천거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홀로 그의 말씀으로 우리를 다스릴 권세를 가지셨으므로,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것, 곧 우리가 그들에 관한 온혜를 갖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적하신 것이지, 그들이 우리의 양심의 지령자가 되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한편으로 그들이 무용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다른 한편 그들을 그들의 위치에 두어서 그들이 자부하지 않고, 또 그리스도를 반대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현재의 귀절에 관한한 바울은 그가 죽음과 생명 등등을 추가하는 데 있어서 과장법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는 큰 것에서 적은 것으로 논증하기를 원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생명과 죽음, 그의 의 여러가지를 놓아두셨으므로, 그가 또한 인간들을 우리에게 복종케 하셨고, 그들이 하는 일을 통하여 우리를 돕도록 하였다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확실히 그들 은 오만하거나 포학하지 않다. 
 
더구나 이런 점에서 어떤 사람은 바울과 베드로가 인간이라는 것, 또 그 둘이 다른 사람들과 갈은 공동 운명으로부터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면서, 바울과 베드로의 저술들이 우리의 판단에 따른다는 사실을 문제시 할지 모른다. 나의 대답은 바울이 자신과 베드르가 최선을 다하였다고 하면서 그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인간 자신과 그 직무의 존업성, 그리고 그 성격을 구별하도록 충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인간임을 알고었는 나는 그리스도만이 나의 사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기 위하여 오직 인간으로만 나는 평가받기를 원한다’라는 말과 같다. 아직도 우리는 대체로 가장 크게 수고하는 자로부터 가장 적게 수고하는 자에 이르기 까지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들의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가르치는 것이 그리스도로부타 이끌어온 것이라고 그들이 분명히 할 때까지 그들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모두 시험을 받아야 하며 그들이 그리스도의 참 종들인 것이 나타날 때, 우리는 그들에게 순종하여야 한다.  그러나 베드로와 바울에 관한 한, 하나님은 더 충분한 증거를 주셨으며 따라서 그들의 가르침이 하나님에게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결과, 그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무엇이나 하늘의 선포로 우리 가슴에 새기면서 존경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들 속에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듣고 있다.
 
"23.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  이 예속 (그리스도의 하나님께 향한)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의 육신을 입으시고, 종의 형체와 신분을 취하시어 여러 면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기 때문이다 (빌 2 : 7, 8). 그리고 그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께 연합시키기 위하여 그는 하나님을 머리로 하여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이 이것을 덧 붙였을 때 , 그의 ·마음 속의 생각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는 우리의 충만한 행복은 우리가 최고의 선이 되시 는 하나님께 연합하는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머리로 삼으신 분 아래 우리가 함께 모일 때 실제로 유효적이 된다. 이와 비슷한 말을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하셨다.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요 14 : 28). 그리스도는 자신을 믿는 사람들이 그를 통하여 모든 축복의 근원으로 나아올 수 있는 중보자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한 머리되시는 분을 떠나는 사람들은 그런 큰 은혜를 박탈당하는 자들임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지배아래 있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소속한 사람으로서 이것이 바로 이 정리가 이 귀절의 취지에 적절하게 맞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