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 (고전 3:10 ~ 15)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0)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1)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2)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3)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4)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15)
2. 묵상 (Calvin 선생 주석)
"10. 은혜틀 따라" ; 사도 바울은 언제나 하나님께 속한 영광의 극히 적은 부분일지라도 자신의 것으로 도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크게 주의를 시키고 있다. 그는 자신이 일개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고, 아무것도 자신의 것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겸손하게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동안, 그는 자신들을 스스로 그럴듯한 존재들이라고생각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모호하게 한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의 교만을 간접적으로 책망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심지어 그들이 그렇게도 심취(心醉)하고 있는 공허한 허식 속에는, 성령의 은혜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암시하고 있다. 바울 자신에 관하여, 그는 그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어떤 경멸에도 참으로 그는 관계하지 않고 있다.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 . 이것은 가장 적절한 은유이며, 그러므로 우리가 이재 조금 후에 살펴보는 것처럼, 성경에서 자주 인용되고 있다. 여기서는 참으로. 사도 바울이 많은 확신과 확증으로 자신의 신실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악한 자들이 멸시하는 면전에서 뿐만 아니라, 이미 그의 가르침을 경멸하기 시작한, 교만한 고린도교회 교인들 앞에서도 확증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를 더욱 넘어뜨릴수록 그는 더욱 일어나며, 그리고 그가 가장 높은 강단에 올라선 것처럼, 그는 기초를 놓는데 있어서,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제일가는 건축가이며, 또 지혜롭게 그의 직무를 다 수행하고, ·갈은 방법으로 그 직무를 다른 사람에게 전승하며, 기초에 있어서 모범으로 그 일을 수행하면서 상부 공사를 완성한다고 선포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멸시하고 있음을 본 그의 교훈을 천거하기 위한 것임에 유의하고 또 두번째로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기를 원하면서 새로운 종류의 교훈을 열망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교만을 꺾기 위하여 이런 일들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의하도록 하자. 그러므로 그는 그들이 하나님의 건물에 있어서 어떤 어리석음도 범하여서는 안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는 그들이 두 가지 일을 하여서는 안 된다고 금하고 있는데, 그 하나는 다른 기초를 세우지 말 것이요, 또 다른 하나는 기초없이 상부공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11. 이 닦아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틀 닦아 둘 자가 없으니……" ; 이 문장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1) 그리스도는 한 분이시며, 또 오직 그리스도 만이 교회의 기초가 되신다. (2) 그리고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바울의 교훈에 의하여 그리스도에게 적절하게 기초를 두고 있다. 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 이 실기한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기 때문에, 그들이 그리스도에게로만 돌아 오는 것이 팔요하다. 바울이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기본적인 건축가로 알려져야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며, 그의 가르침으로부터 그들은 그리스도 자신을 버리지 않고서는 떠날 수가 없게 된다. 간단히 요약하면, 교회는 분명히 그리스도 위에만 그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래서 바울은 이 점에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 가운데, 그의 직무를 매우 성실하게 수행하였으므로 그의 사역은 더 비할 것이없었다. 이것은 그의 후임으로 오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들이 가르치는 데 있어서 이렇게 수고를 하고, 또 사도 바울이 이루어놓은 기초를 유지하지 않는 어떤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한다.
이 사실로부터 우리는, 사람들이 참된 사역자들을 따를 때, 그들의 교훈에 자신들을 순응시키는 문제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으며, 또 그둘이 뭔가 새로운 것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하기 위하여 선한 기원을 추구하게 된다는 확실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그들이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성실하게 일하지 않고, 오히려 파괴자가 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세로운 종류의 교훈을 가지고 순수한 교리에 잘 기초를 두고 있는 믿는 사람들을 그들이 어느 곳에 서야 할지 모르게 하며, 이리 저리로 방황하게 하여 혼란에 빠뜨리는 것 이상 더 파괴적인 일이 또 있겠는가? 한편 타도하여서는 안 되는 것으로 금지되어 있는 기본적인 교리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한분이시고, 교회의 유일하신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경같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도용하고, 또 하나님의 절대적인 진리를 뿌리째 뽑아 버리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가 어떻게 적절하게 그리스도위에 건축되어 있는가, 곧, 그리스도만이 홀로 의(義)요, 속죄주이시며, 또 성화(聖化)와 지혜, 칭의, 그리고 정결케 하시는 이, 한마디로 삶과 영광이 되시는가, 혹은 더 간단히 말하자만그리스도께서 그의 직무와 그의 덕이 제1장 마지막에 나타난 그런 방법으로 이해되고 있는지와 사실을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데 의와 성화, 그리고 구원이 추구하고 있는 곳 어디서나, 만일 그리스도가 적절하게 알려지지 않고, 단순히 구세주의 이름만이 주어졌다면, 그리스도는 그기초로서 배척을 받고. 대신에 가짜 기초석들이 대신되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 교도들이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벗겨버리고, 그를 빈 이름만으르 남겨두었을 때 바로 그들이 그 좋은 예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에게 기초를 두지 않고 그를 멀리 떠난 자들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기반이며, 또 구원과 영생의 단 한분이고 유일하신 근원이 되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그리고 그가 우리의 모든 축복의 기초가 되시기 때문에, 만일 그가 그런 분으로 알려지지 않는다면, 그리스도는 그 기초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기초가 건물의 일부이듯이 구원의 교훈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오직 일부일 뿐이신지 혹은 창설자일 뿐이신지 하는 질문이 제기 될 수 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오로지 시작을 하는 것 뿐이며, 또 그리스도와의 아무런 관계도 없이 완성올 보게 될 것이며 그리고 참으로 사도 바울도 그렇게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나의 대답은 그것은 바울의 의미하는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지 않다면 바울 자신이 골로새서 2장 3절에서,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고 말한 것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배운' (엔 4 : 20) 사람은 이미 모든 하늘나라의 교훈으로 충만한 사람이다.
그러나 바울의 사역은 건물의 가장 높은 지붕을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마음 속에 불러 일으켜 주기 보다는, 고란도교회 교인들을 확립하는 일에 관심을 기을이며, 여기서 그가 이미 하였던 일, 곧 순결하시고 단 한 분이신 그리스도를 설교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이유로 그가 이미 한일을 생각하면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기초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러나 이것은 그가 건물의 나머지 부분에서 그리스도를 제외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아니다. 한마디로, 바울 사도는 다른 종류의 가르침도 그리스도의 지식과 대조를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그리스도와 다른 사역자들 사이의 관계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위에 세우면." ; 그는 은유법을 사용하고 있다. 만일 전체적인 상부(上部) 공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기초를 놓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금으로 다져놓은 기초 위에 값싼 재료들로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므로, 그것은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의 터 아래 매장시키는 악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그는 ‘금이나 은'' 그리고 .'보석'의 '교훈으로써 그리스도를 방어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기초와의 조화에서 상부 구조를 의미하고 있다. 더구나 이 교훈이 그리스도 아닌 다른 근원에서 끌어온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며, 오히려 그 건물이 완성될 때까지, 우리가 계속 그리스도를 가르쳐야 할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물이 이루어져가는 순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그래서 출발이 일반적인 교리로 시작되어 그 기초와 같은, 더 본질적인 중요한 점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 후에 책망이나 권고 등이 뒤따르게 되고, 인내와 강인함, 발전 등이 오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바울의 의도에 대한 충분한 일치가 있었으므로 다른 한편, 나무나 풀, 짚으로 묘사되어 온 그 가르침은 기초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귀결이 나온다. 말하자면 그 가르침은 인간에게서 날조되어 나온 것이며,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우리를 압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인간의 날조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한 선포에 의하여 이록되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바로 무엇이나 건축하는 데 있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평하는 방법이다. 이런 범주 안에서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구원 문제에 대한 것보다 인간의 허영이나 어리석은 욕망을 만족시키는 추상적인 문제들이 들어 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으로 비록 그것이 일시적으로는 숨겨져 있을지라도 각 자의 사역의 특색이 분명히 나타날 것임을 알게 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곧 ‘악한 사역자들이 참으로 속임수를 쓰는 일들이 지금 일어날 수 있으며,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사역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신실하게, 혹은 거짓되게 일하고 있는가를 지금 당장은 분벌할 수 없다. 그러나 말하자면, 지금은 어둠 속에 묻혀 있는 것이 마지막에는 빛 속에서 그 정체를 드러낼 것이다. 현재 사람의 눈에 찬란하계 보이는 것이 하나님의 면전에서 타도를 당하고, 일고(一考)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13.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 벌게이트(Vulgate) 성경에는 ‘하나님의 날' 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설명을·하기 위하여 소유격을 첨가한 것이므로 마찬가지이다. 그 의미는 그것을 추가하지 않아도 아주 적절하다. '그날' 이라는 기술(記述)은 어두움과 몽롱함이 사라지고, 진리가 빛으로 드러나는 때를 적절하게 나타낸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역을 거짓 가면으로 수행하는 사람이나, 또는 자신의 책임을 충실하게 감당하는 성실한 사람들이 항상 숨겨져 있을 수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그가, 혹암이 항상 그 위세를 부리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에 빛이 찬란하게 비추고 만물이, 그 빛 가운데서 드러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꽈 같다.
나는 그날이 인간의 날이 아닌, 하나님의 날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단순하게 ‘그날' 이라고 읽는다면, 그 은유는 더 당신을 기쁘게 하여 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참된 종은 항상 악한 사역자들과 아주 분명하게 구벌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며, 선악이 밤의 장막에 묻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밤은 결코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야망은 소경이며, 인간의 칭송에 연연하는 것도, 세상의 .박수갈채를 원하는 것도 모두가 맹인의 짓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때가 오면, 이 모든 어두음을 다 몰아내신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항상 선한 양심의 결실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 점에 ·유의하도록 하자. 그리고 또 그가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마음으로 악한 판단을 무시하고 있는 점에 유의하자, 사도 바울은 먼처,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인간의 찬사를 받으려는 야망에서 벗어나 건전한 판단의 표준에 이르기를 일깨워 주고 있으며, 또 둘째로, 그 자신의 사역의 신실성을 확립하기를 권고하고 있다.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 그 교훈에 대하여 은유적인 언어로써 말하면서, 사도 바울은 그 교훈이 불로써 시험되고 있다고 실제적인 방법을 묘사하며 역시 은유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교로써 나타난 이 두 가지 다른 부분들온 서로 모순이 없다. 그래서 여기서 불은 그· 교훈이 과연 금같은 것인가, 아니면 마른 곡식 그루터기 같은 것인가를 시험하는 하나님의 성령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교훈은 그것이 이 불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것은 더욱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한편 인간의 마음 속에서 나온 것은, 곡식 그루터기가 불속에서 타버리는 것처럼 곧 소멸되고 말 것이다. 그가 설명하는 ‘그날'에 대한 암시가 또 하나 있는 것 갈다. 그것은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 ‘그 때에는 어두운 밤과 같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마음 속에 숨겨진 아주 무익한 야망과 같은 그런 것들이 태양의 찬란한 광채 아래서 밝히 드러날 것이다. 그보다도 더욱 그 때에는 이주 강력한 열이 나타나서, 더러운 것을 말리우고 정화시킬 뿐 아니라, 불완전한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인간의 예리한 판단력을 가졌다고 생각할지라도, 그 예리함은 표면을 제대로 뚫지도 못하여 이것은 일반적으로 표면만큼의 깊이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날, 곧 만물이 그날의 광명으로 뿐만 아니라, 맹렬한 불꽃으로 그 만물의 본질이 시험을 받을 바로 그 날에 대하여 호소하고 있다.
"14. 민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 사도 바울은 인간의 평가에 기대를 걸고, 만일 사람들이 자신을 영접하는 것으로 만족을 누리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임을 밝히고 있다. 왜냐하면 공력(功力)은 그것이 하나님의 날을 잘 견딘 후에라야 칭찬과 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참된 사역자들은 그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다 (상에 대하여서는 나의 〈기독교 강요〉 3.18을 참조하시라). 그는 ‘그대로 있으면' 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그 교리들이 마치 고착되지 않은 것처럼 날아다니거나 그보다 조금 나은 상태로는, 그들이 심각한 시험에 직면할 때까지 물 거품처럼 잠간동안 반짝거리고 말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이 사실로부터 우리는 세상의 모든 박수갈채는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곧 그들의 허무성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15. 누구든지 공력이 볼타면" ; 그것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갈다. 곧 ‘인간은 탁월한 건축자에게 평가를 받을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인간의 평 가에 우쭙거리게 하여서는 안 된다. 곧 날이 밝아오면,-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는 모든 인간의 공력은 완전히 소멸되고 말 것이다. ' 그러므로 이것은 모든 사역자들이 평가를 받는 표준이 된다. 어떤사람들은 이것을 ‘교훈을 나타내는것'으로설명하며, 그래서 '제-미우스다이' 가 '멸망한다’는 것이며 그외 다른 뜻이 아니라고 생가 한다. 그들이 언급한 후에 따르는 것은 그 기초를 지지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데멜리오스, 기초 라는 헬라어가 남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그들은 전체 문맥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 귀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 자신의 교훈을 시험에 예속시키지 않고 다른 것에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기초에 대한 언급은 적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각 사람의 공력이 불로 시험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때 그는 일반적인 서술을 벗어나서는 안되는 한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에 대하여서만 말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미 첫번째로 그는 자신들의 공력이 인정을 받는 훌륭한 건축사들에게 주어지는 상에 대하여 약속을 하였다. 그러므로 두번째로 그와는 대조적인 것이 아주 적절하다. 곧 풀이니, 나무, 그리고 짚을 혼합한 자들은 그들이 바라는 상을 받기에 적합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 사도 바울은 여기서, 언제나 기초를 유지하고 있으나, 건초와 금을 혼합하고, 마른 풀을 은과, 그리고 나무를 보석들과 혼합하는 그런 사람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들이 물론 그리스도 안에서 건축하기는 하되 , 그러나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인간적인 견해를 불어넣어 주기도 하고, 혹은 무지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의 완전한 순수성에서 약간 빗나가 곁길로 가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과거의 많은 성도들, 곧 시프리언(Cyprian), 암브로스(Ambrose), 어거스틴(Augustine)과 그외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였다. 만일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은 오늘날 우리와 아주 가까운 시대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다. 곧· 그레고리(Gregory)와 버나드(Bernard), 그리고 그외의 사람들이 그런데, 그들의 목적이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서 건축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러나 때때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서 건축하는 올바른 건축 방법에서 빗나갔다.
사도 바울은 이런 사람들도 구원 받을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만일 하나님이 그들의 무지를 일소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그들을 정결케 하신다면, 이것이 바로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갈으리라’는 귀철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 자신이 이런 사람들의 구원의 소망을 탈취 하지는 않는다. 만일 그들이 자신이 행한 사역의 실패를 솔찍이 인정하고, 또 금이 용광로에서 정련되듯이,‘하나님의 자비가 그들을 정결케 하신다면 더구나, 하나님께서 때때로 그의 백성들을 고난으로 연단하실지라도, 나는 여기서 ‘불'을 성령의 시험으로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법으로 그의 백성들의 무지를 고치시고 또 제거하시며,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임시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된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십자가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의 해석이 .. 모든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들을 만족시키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우리는 여기서, 이 귀철을 연옥설을 내세우는 논증으로 퍼고있는、가톨릭 교도들에 대하여 분명한 해답을 제시하도록 결론을 내려야겠다. 그들의 주장은 하나님께 용서를 받은 죄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하여. 이 불속을 통과 하여야 한다는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드리기 위하여 그들은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이 주신 형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주장하는 형벌에 대하여 또 그 형벌로부터 해방되는 수 없이 많은 그들의 논쟁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나 사실상, 이 불을 통과하여야 할 사람들이 과연 누구냐고 나는 묻는다. 바울 사도는 사역자들에 대해서만 아주 결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런데 가톨릭에서는 '그러나, 동일한 생각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인간이 아닌, 하나님께서만이 최상의 심판자가 되실 것이다 ! .그러나 그들에게 이것을 허용 한다 할지라도, 역시 그들은 어린애갈이 불이라는 단어 하나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가? 그렇지만 불의 목적은 소멸되고 말 풀이나 짚을 태우고., 금과 은을 연단하는데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이 교리가 연옥불에 의하여 분리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으로부터 전리가 허위와 얼마나 다론 것 인가를 배운 사람은 누구인가? 또 인간의 공력(功力)이 빛 가운데서 밝게 드러날 그 날이 언제 올 것인가? 그것은 세상의 기원과 함께 시작되었고, 또 세상의 끝날까지 계속될 것인가? 만일 짚이나건초, `금, 온이 그것들이 함께결합된 것처럼, 온유적으로사용되었다면, 즉 만일 불이 은유적으로 사 용되지 않은 다른 귀철들 사이에서 어떤 류의 일치가 일어날 것인가? 그런 쓸데없는 사소한 일에 대하여 더 이상 생각하지 말도록 하자. 왜냐하면 그 둘의 모순이 우리로 하여급 우리의 현실을 웅시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 그 러므로 나는 사도 바울의 참 뜻은 이미 분명히 밝혀졌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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