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 (고전 14:20~33 상)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20)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1)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22)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23)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4)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25)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6)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7)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28)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29)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30)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31)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2)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33)
2. 묵상 (Calvin 선생 주석)
"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하나님께서 그의 뜻에 저촉될 때 무서운 형벌을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신 데 대한 책임 문제에서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이 뭔가 특별한 가치를 가진 것처럼 그것을 행하는 면에 있어서 그들이 아주 바보 짓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저주하시는 그런 일을 계속 좇는 데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것은 그 얼마나 철저한 바보짓인가? 그러나 바울이 뜻하는 바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 문장이 그가 곧 뒷 부분에서 인용하고 있는 이사야(28 :11)의 증거를 인용하고 있다는 점에 주의하여야 한다. 그러나 해석가들이 그런 관계를 주의하지 않아서 잘못 판단한 것이므로, 또,모든 잘못된 견해를 수정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이사야서의, 귀절에 대한 해석을 하고 다음으로 바울의 말을 취급하려고 한다.
그 장(章)에서 (사 28장), 이사야 선지자는 '모든 악을 행한 열 부족에 대하여 맹렬한 공격을 하고 있다. 유일한 위로는 하나님께서 유다족속 중에 더럽힘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있음을 인정하신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곧 타락을 또한 슬퍼할 것이며, 그들에게 개선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더욱 비참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탄식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가 뉘게 지식을 가르치며, 뉘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그는 그들이 이제 갓 젖을 땐 유아들보다도 더 교훈을 받을 힘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을 살펴보자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하는구나 하는도다" 이 모방의 말로써, 그는 그들이 빠져 있는 게으 름과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즉· ‘내가 그들을 가르칠 때, 나는 다만 내가 일하고 있다는 구실만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믿을 수 없을 만큼: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애써서 오랫동안 그들을 가르친 것을 그들이 곧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다시 계속하여 보면, '그 백성에게 말하는 사람은, 말하자면, 입술만을 더듬거리며 움직이는 사람 같으며 또한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로 지껄이는 사람 같다. 이것은 바울이 인용하고 있는 귀절이다.
이게 그 뜻은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이 하나님을 깨닫도록 가르치고 있는 때에 그런 무지와 어려움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데, 이것은 전혀 알지 못하는 말로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어떤 야만인이나, 외국인에게 들려 주었을 때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보다 조금도 더 나을 것이 없으며, 따라서 무서운 저주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꼭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말씀을 다시음미하면서 그것을 더 연구하도록 이 귀절을 그들에게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율법에 기록된 바' 라고 사도 바울이 말한 데 대하여 이것은 일반적인 말하는 방법에 모순되는 것은 이니다. 왜냐하면 선지자들은 율법에 관계되지 않는 사역을 한 것이 이니라, 사실상 율법을 플이한 사람들이었으며, 모든 그들의 가르침은 율법에 대한 보충과 갈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율법이 그라스도 사대까지 존재하였던 성경 전체를 총망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바울이 이 귀절에서 이끌어내는 결론은 형제들아, 선지자가 그렇게 맹렬하게 정죄하였던 그런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어라.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런 결과도 없이 너희들의 귓전을 울리기만 하는 그런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너희들이 예언을 배척할:때에, 그것은 너희들의 귓전을 울릴 뿐이며, 또한 너희들은 공허한 소리에 놀라는 것보다는 놀라움으로 충격올 받아 벙어리가 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모양인데, 이것은 너희들 스스로가 하나님의 저주를 자초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 라고 말하는 것이다. 더구나,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다른 곳에서, 영적으로 어린 아이가 되는 것은 칭찬할만한 일로 인정 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항의를 할는지 몰라서, 바 울은 그것을 예상하였으며, 또한 참으로 그들이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며 지혜에는 어린 아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여기에서그리스도인의 순진성을 무지로 취급하는 자들이 얼마나 오만한 자들인가 하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바울은, 가능한 한 믿는 사람들이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사람보다는 당나귀를 인도하는 것이 더 쉬 운 일이므로, 로마 교황은 단순성에 대한 구실을 변호하면서; 그의 모든 백성들이 무지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도록 지도하고·있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교황의 지도아래 있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제정하여 주신 것 사이의 비교를 하여야 하며, 또한 그들이 어떻게 동의할 수 있는가를 살펴 보아야 한다.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 ;. 이 귀절은 두 가지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그러므로'라는 말이 앞에 나오는 문장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앞의 논쟁 전체에 대한 일반적인 방법의 언급인가에 따라서 그렇게 된다. 만일 그것이 앞 문장과 특별한 관계를 갖는 것이라면, 그 의미는 이렇게 될 것이다. 형제들아 너희들이 그렇게 갈망하고 있는 그 일이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신 은사가 아니라, 사실은 불신자들에 대한 보복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신 형벌이다.' 그것이 이런 식으로 이해될 때에, 바울은 방언의 계속적인 사용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바로 일어나고 있는 그 당시의 상황에.대하여서 언급하려고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그것이 전체의 논쟁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그 범위를 넓히기를 원한다면, 비록 방금 설명한 그 해석을 나는 더 취하고 싶지만, 굳이 그 사람과 다툴 생각은 없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일반적인 방법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뜻은, ‘방언이 표적, 다시 말하면 기적인 한, 방언은 엄격한 의미에서 믿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불신자들을 위한 것이다'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방언은 여러 면으로 유익한 것이다. 복음 전도자들이 언어의 상이성 때문에 온 세계에 복운을 전파하는 일에 지장을 받지 않기 위하여 방언은 실제로 필요하며 그러므로 또한 그들이 다른 민족 간의 의사 전달에 불편이 없게 되는 것이다. 방언은 또한 불신자들이 이적을.보고 놀라움과 감동을 받게 하는 데도 팔요하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이 이적은 그리스도를 지금까지 몰랐던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도록 준비를 갖추게 하는 목적이 있다. 이미 그리스도의 교훈에 헌신하는 믿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준비를 갖출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예언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무시한 채, 방언의 은사에 지나친 강조점을 둔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물론 예언은 특별히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며, 그런 이유 때문에 믿는 사람들은 이 예언과 친숙하여야 한다. 방언에 관계되는 한 모든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그들의 기적적인 요소에 관계되고 있다.
"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합께 모여……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 그들은 그들 자신의 마음이 완전히 어리석음과 잘못된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그들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이 불신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으며, 또 불신자들이 그들의 모임에 들어가 그들이 말하는 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불신자들이 알아 듣도록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또한 경고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모르는 어떤 사람이 정상적인 말이 아닌 알아 듣지도 못할 의미 없는 소리를 지컬이고 있는 사람을 본다면, 또, 이해 할 수 없는 이상한 태도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본다면,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돋기 위하여 모였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들을 미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불신자들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회들의 우스운 행위를 비웃고 있는데 너희들은 스스로 마음 속에서 대단히 즐거워하고 있다는 이 문장에는 신랄한 비난이 깃들어 있다.
그것은 이 모든 것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고, 또한 믿지도 않는 사람들이 완전히 분명하게 알고 있는 그 어떤 것을 너희들이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크리소스톰은 여기서 한 가지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즉, 만일 방언이 불신자들에게 표시로써 주어진 경우라면, 지금 바울이 이와 같은 사람들이 그들을 비웃을 것이라고.밀말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의 대답은 기호로서의 그들의 목적은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며, 그들을 가르치는 수단이 되게 하거나 혹은 그들을 개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그들 자신의 죄악 때문에 그들은 그 표지를 광증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불신자들이나 무지한 사람들이 기적으로 말미암아 감화를 받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한다고 인정하더라도, 그것은 그로 하여금 부적당한 시간에 그 은사를 악용하는 것을 조소하고 정죄하는것을 그치자 않게 할 것이다.
더구나 그는 스스로 ‘이 사람들이 자신들을 피곤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목적도 없이 하면서 무엇을·노리고 있는 것일까? 이 땅 위에서 언어를 사용하는 목적이 무엇이며, 또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의미하는 것은 물론 고립도교회 교인들이 스스로 아주 만꺽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러나: 불신자들과 모르는 사람들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그런 무감각한 처신을 정죄 할만한 충분한 합리성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 그가 이미 믿음의 가족들에게 예언이 방언의 은사보다 얼마나 더 유익한 것인가 하는 사실을 앞에서 밝혀 준 것과 같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또한 이제 그는 국외자들에게 그것이 역시 더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 이것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논증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나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가장 큰 은사인 예언의 은사를 무시하는 극도의 사악이었기 때문이며, 또한 교회에 속하는 믿음의 가족들을 무용(無用)한 다른 은사에 현혹 되도록 하며, 또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게 하였다. 그는 예언이 가진 효력을 지적하고 있는데, 말하자면 그것은 불신자들의 양심을 하나님의 심판대로 소환하고, 또 무관심 속에서 확실한 복음을 멸시하는 그런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그런 하나님의 심판을 실감있게 깨닫도록 그들을 감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 귀절을 다른 귀절, 곧 히브리서 4장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은,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라는 말씀과 비교한다면, 그것이 더 이해하기 쉽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상의 두 귀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동일한 효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그러나 히브리서에서 그 사실이 더욱 완전하고 분명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앞에 나타난 귀절에 관한 한, 무엇이 책망을 받으며 또 판단을 받는 것을 의미하는 지. 이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양심은 그것이 무지의 어두음 속에 싸여 있는 한, 잠자고 있으며 게으르고, 또한 죄를 싫어하는 증오의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있다. -
한마디로 불신은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드는 졸음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구석에 까지 침투하고 들어가며 , 밝은 빛을 투사 함으로써 말하자면 어두음을 쫓아내고, 또한 치명적인 무기력을 추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불신자들이 책망을 받는 방법인데, 그 이유는 그들이 그렇게 삼각하게 불안과 두려움으로 대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그들이 곧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동일한 방법으로 그들은 심판을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이전에는 적용이 혹암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또한 그때는 그들의 비참성과 수치스러운 생활을 깨닫지 못했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빛으로 옮겨졌고, 또한 그들 자신에 대한 증거를 나타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므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모든 것으로부터 심판을 받고 또한 책망을 받는다' 라고 바울이 말하였을 때, 우리는 그가 말한 모든 것으로부터'라는 것을 ‘모든 예언하는 사람들로부터'라고 이해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 귀절의 처음에 ‘만일 다 예언을 하면'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예언에 대한 그들의(고린도교회 교인들) 멸시를 제거하기 위하여 ‘다' (모두)라는 일반적인 단어를 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불신자들이 책망을 받는 것은, 선지자가 불신자들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표명하지 않고 비밀리에 그들에 대한 심판이 임할 것을 선포하거나 혹은 분명한 말로 심판에 대한 것을 감추었기 때문에 불신자들이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심판에 대하여 들을 때, 그들의 양심은 듣고 깨닫게 된 것을 통해서 양심 자체의 심판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불신자는 그의 상태로(죄의 상태—역자 주) 계속 빠져 들어가고 있으며, 또한 자신을 살펴본 후에, 그는 그가 무엇과 같은가를 깨닫게 되고, 그 전에는 그가 부인하였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와 같은 일에 대하여 언급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있다. 즉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
즉시로 바울은, ‘그 마음의 숨은 것이 드러나게 되므로’라는 말씀을 덧붙이고 있다. 여하튼 나의 생각에는,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인가를 나타내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오히려 전에는 그에게 감취어져 있던 그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그의 양심이 자극을 받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여기서 크리소스톰은 다시 한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즉, 바울이 조금 전에 그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는데, 어떻게 예언이 불신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그렇게 효과적이라는 말과 일치할 수 있겠느냐 라는 것이다. 그 자신의 대답은 그것이 무용한 기호로써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들을 가르치는 수단으로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나 자신은 그것이 사단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어서 빛을 보지 못하게 하고 있는 멸망 받을 불신자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더 간단 하고 적철한 것 같다. 만일 이 문장이 이사야 선지(사 28 : 11)의 말과 연결 된다면, 더욱 적절한 것이 될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선지자가 예언이 소용 없고 아무런 유익이 없는 불신자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25. 그 마음의……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 이것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며 그 이외의 것이 아닌 것으로써 육신의 자랑을 버리게 한다. 예언은 그것이 우리에게 일어나게 한다. 바로 그 예언의 성격 때문에 인간의, 자만의 정점으로부터 내려오게 하는 효과를 특별히 가지며, 엎드려 하나님께 경외하게 한다. 그러나 예언이 많은 사람들에게 별 의미를 주지 못하고 있는데, 참으로 이것은 그들이 그 예언을 들음으로써 더 악하게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능력을 예언의 속성으로 하는데 있어서, 바울은 그것이 변함없이 작용하도록 그것을 적용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어떤 위대한 은사가 거기에서 파생되었는가에 대하여 지적하고자 하였으며; 또한 그 기능의 성격에 대하여 나타내기를 원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사며, 그의 위엄이 그들의 모임 속에서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불신자들이 고백하도록 하는 크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26. 그런 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 바울은 이제 이 악들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모든 각각의 은사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하며, 차례 차례로 나타내고, 또한 당연한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더구나 교희는 무용하거나, 쓸데없는 일에 전심하혀서는 안 되며, 무엇이든지 덕을 세우기 위하여 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는 덕을 세운다는 말의 정의를 이렇게 함으로써 시작하고 있다. '어떤 은사를 받은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는 일’이 되도록 적용하는 고통을 감수하여야 한다.' ‘모든사람'이라는 단어는 다음과 같은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그들 모두가 어떤 그런 은사를 받은 것처럼, 아무도 그것을 일반적인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아요" ; 바울은 이제 그 순서의 개략을 말하고 있으며 또한 그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방언은 통역이 없으면 무용한 것이므로 그들은 그것을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 바울이 명령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는 다만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여야한다. 교회는 오늘날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실례에서처럼, 예언의 도움이 없이는 방언을 할 수 없으며, 또한 아무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바울은 신실한자들의 모임으로부터 성령의 어떤 은사를 견제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하여 이 양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미 방언이 기호인 한, 그것이 신자들에게 적합하다고 앞에서 말하였으므로, 여기에도 역시 모순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여기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렇다. '만일 기적이 특별히 불신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특벌히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어느 면에서 신자들에게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만일 당신이 모르는 말이 신자들에게 기 호라는 것을, 이사야 선지자의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에서 받아들인다면, 그때는 바울이 여기서 개설하고 있는 그 방법이 다르다. 물론 모호한 점이 없는 해석이 언어를 따르고 있는 한, 그는 그 언어에 여유를 주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의 잘못을 수집 할 때, 그는 잘 조화된 혼합을 이용하고 있다.'
한편 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축복이 믿는 사람들의 단체에서 나타나도록 하기 위하여 그것이 어떤 것이든 하나님의 은사를 배척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 그는 하나님의 영광에 속하는 것을 몰래 탈취하는 야망을 막기 위하여 제한을 두고 있으며, 또, 어떤 중요한 은사를 중요한 자리에 배열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또한 그는 결과도 없는 어떤 허식만이 존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그것에 조미료를 치고 있다. .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 바울은 '그의 은사를 자신만이 마음속으로 즐기도록 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하자’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라는 말씀을 자비로우시게도 자기에게 주신 은사로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조용히 감사를 드리고, 그것을 공적으로 사용할 기회가 없을 때는 그것을 자신의 사유물인 것처럼 혼자 즐기는 것이다. 바울은 이 은밀한 말을 교회에서 공적으로 이루어전 것과 대조시키고 있으며 후자를 그는 금하고 있는 것이다.
"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 바울은 더욱 이 예언에 대하여 제한을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보통’ 말하듯이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우리의 매일의 체험이 이것을 실증하기 때문에 이것은 진리이다. 그러나 그는. 방언의 경우에 그가 그렇게 하였던 것처럼 그렇게 정확하게 수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왜냐하면 만일;그들이 예언에 더 시간을 할애 한다면, 그와 동일한 위험성이 없기 때문이며, 또한 참으로 이상적인 일은 계속적인 관심울 예언에 기울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바울은 인간이 그들의 연약함에 대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왜 그가 예언과· 말에 대하여 둘 다 동일한:수로 제한을 하였는지 질문을 계속하여야겠다.그는 후자의크경우에 ; 있어서.; '많아 야제 사람’ 이라~-분명히-덧붙이고있는데’ 만일 말이 그렇게포서중한 .... 것이 타면, 그것이 더 소중화계 자용되어야 함이 마땅하치 않겠는가?.:..냐는.:_~미끼 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한다. 3두 예언은,말f두에 포함뒤며 그 방법으로 바울 온 낱말을 이해한다. 왜냐하면 말은 설교할 때, -;또::기도할 때, -사용되기 때 문이다· 설교에서,구 설교자는예언을 대신하고 있으며·,二따라서 머셔빈번히. 말이 사용되고 t•있늪 .. 가운데서 제·, 1위의 방법 이 되고 있다. 그는3단만 .ii!. 만 때문에 그것이 허락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거기에, 제한윷 가하-=¥-Jj있는 것이며, 또한 무력한사람둘이 그들이 말할 차례와 기회의 머 좋은프란한을 박탈하지 않도록 하기.위하여;댜합계 한것이다. 그는 분명히 ;그가5말하는 싼입을3할보-한 사람료이국둘의=촨~봐분섹쇠 끌어온 것아어야_하타一또 U적 인 호원 로 말민앞와잎밍되~o~..:..함육조브프~M보,. 그러 나 물론 다 만 평법한 지식을 가전 사람들 앞에서 그들 자신들을 강력하게 내세울{준비_ 가 뭘사람들은-아무도 없다.
"다른 이들은 분변할것이요·" ; 그가 하나님의 은슈t를 억압하기를.-원학고섭l 다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여 항의할 기회를 다른 사람들에게 주지 않기 위 한여 구들의 경 우를 끝내.기 위 하여 ; ' 반을을교회 원 유입 을 위 하여-· i도프그것을t이 용하는 것이.~얼마냐가능한 앞인zt를 그들에제 부여주고 있다 I .'•'집지어근윷 이 칩묶흡1주1킬 때두괄하자만다른싸람들이 말한 것인 문엇인가를 구둘의 카음에 신중하기1 생각하면서 마음」늘순으로 침묵을r-지킬때에도다렇다." 건전 한 교육이,I.사단의모사기적인 방히우로:부패되도록 하지 않거 위하여,-또 다론,무가치한 생각으로 인하여 해칩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분별력의 체 험을 가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은혜이다. 그러므로 바울은침 묵을 지 켜 조금 남겨 놓음으로써 다론 선지 자들이 . ':교회 를 위 하여 봉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어떤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수 없는 하나님의 교훈에'난대하 여 판단을 하도록 허락하는 것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한 나 의 대답은 하나님의 교훈은인간의 판단에 따라좌우되지 않으며,'r그들의 임 무논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하여 그것이 선포된-하나님의 말씀인가,;· ~r아니면 이것을 구실삼아 사람들이 그들자신이 만든것을 악하계.,..자랑하고·있는 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다시 이 문제에 대하여 !살펴보게 될 것이다
"30. 만일 곁에 앉은 다른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 그것은 또한그들이 뭔가 말할·가차가 있는 것을 가졌을 때마다, 말할 기회가 그들에계 주어질 것이라는 선(善)에 대한 모든것이며,:도 그렇개 그들은 성령이 얽매여 있거 나, 혹은 그의 음성이 침묵케 된다고 불평하는 더 이상의 이유를 가질 수 없 을것이다. 사태가 그것을 요구하였을 때 모든 사람들은 말할'기회와 자유 를 연계 된다. 한 가지 조건은,4 아무도 다른 사람들의 펄요요를 생 각하지 않 고 오히려 자기 만족에'도취하며, 순서없이 자신만을 위하여 덤빌 수는 없 다는 것이다. 다론 한편1 바울은 그들 모두가 이 자제력(自制力)을 발휘하기 룹요구하뇨 있는데, 그들 각자가(실제로 말할 때) 뭔가(여러 사람들에게 더 좋은 것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을 가전 다른 사람들에게 그령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중으로써 그렇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의 참 자유는 각 사람이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하도록 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리, 다만 모두가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부터 최저의 위치에 있 는사람까지 기쁨으로 그들의 위치를 지키면서 누구를 통하여 성령이 말씀 하시든지 간에 그 말씀을 잘 청종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 계시의 신뢰성에 관한 한, 우리는 곧그것에 대하여 배우게 될 것이다. ;~ 나 --''. '1 • ' _ \ < _ L 1 』’ ·’’` I
"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먼저, 바울이 ‘모은이라 고 말할 때 믿는 사람들을 모두 이 말 속에 포함시킨 것이 아니타, 다만 이 온사를 받은 사람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구나, 그는 그들이 모두 갈은 순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니타, 각자의 받은 은사를 따라, 개개인이 그 온사에 맞는 정도로 말하기 위해 앞으로-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말하고 있는것 같다 .. __ '크 누구도내내 기다 립 수만은 없으며, 말할 기회는 때로는 이 사람에게, 또 때로는 처 사람에 주어질것인다.
그는 "다:·모든 사합으로 배우게 하고”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는데1; 그러나 그것은-예언자들에게려합한것이며,』또한 사실상 바울은그둘을특별히 의 민 하고 있는 것이 다. 만일 구 자신이 가루칠만한 챠잘이 있음을 보여 주지 않 고 또 항상 배울 자세가 되어 있자·:-않~-사람은그. 누꾼두 결코 좋은 선생 이 윌 수 없다._,또 인간은가론 사람들에제 청종함으로 인하여 그들에게서 얻는 그 무엇이 없이 다만 자신의 지식으로 가득차고 만족할만한그런~자족 의 상태에 들어 갈 수는 없는 것이 다 .. ~ -+1-러므로 모든 사람들은下다른 사람들 에제교회는 가루치는 기회가:주어쳤을때, 그들의 순번을,』 배우는 사람들 로서1만취하는,'방향으로기울어지지놉않는 그런 1빔방법으로 그들의그의무를 수행하여야 하며,1또한 그렇게 한우로써:괴로움을 받는잎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
둘째로 바울은 “모든 사람으루 컨턴을 받게 하기~( 위하여"라고 말하고 있 다· 우리는 여기서 :이렇게'r추론할 수있~t:f-즉, 질두를 ,벗어나 그一라스도의 사역자들은 다론 사람들이 모든1면에서 우제할문아니라, 또한 그들이 자기 둘과 같은 은사를 받았다는사실을.충십으루며.,기뻐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sacred ~_ecor~s)은 우리에게 _,모세가 바로 그런 ·자세를 가졌었다고 말 하고 있다. 모세의,사역자(여호수아)가어리셔온 질두로볼타고 있을 때.:또 예언와 온사가도한다론 사람에게도 부여된 것을 분개하였을때, 그는-다네 가나를 위하여 사기하느냐.-『여호와께서 그-신(神)을 그~소·모든 백성에게 ;·주 사 나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민 p .: 28)라고 여호수아를 책망하 였다. 그리고 참으로 그것은 양십적인자역자들이 그들이 하나님의 성령위 도구가 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며, 그 하나님의 성령께서 다론 사,람들손에 서도역사하신다는 것을 깨닫도록 특별히 그들을 져려하고 있는 것이다-~그 것은 그들을 재확신시키亡 '-위대한 원권이 되고 있다,
또한많은 사역자들이 있고 또 그것을 증거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말라 전파되도록드크게l 도움을 받는 것은 고무할 만한 일이다• 그러 나 바울이 여 기 사 사용하고 있 는 1(apaKaAE&d~a,(파라칼레 아스다이 )라 논 동사가 뜻이 모호하기 때문에,' r구것은 또한‘그들아 권고를 받을 수도 있 뷰'고반역칠수 있다·,( 구것亡 ° 아주 져철한 것인데,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 나웃를'열십으로 수행하는 . 데있어서 자극을 받기 위하셔서는 때때로 다론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이 좋은 일이가 대문이다
"32. 예언하는 자틀의 영이~~~ 제재틀 받나니" ; . 그들아.J차례로니그렇쎄 할 팔요가 있는 이 유는 다론 예 언자들이 그들 중의 '한갑자람하석한 예 언에서 잘못을 발견하게 되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이~711:_;말하는것과갈 다. '어떤 사람이 비평을 받는 위험에서 벗어나려는~~·장당한;일이 아니 다. 그러므로 사실상 무손 일이 일어날i것이라는것은멀f;r ]f-,L~갔는:기회가 때때로 회중 가운데 조용히 앉아 있는'다른 사람에게도일주어질 국:있다는^ 것 이 다
어떤 사람들은 이 귀철을, 마치 바울이’ 꽈거 한대주님의 산차자뇰홍1사로 잡았던 무이의 영향력(eJJOoun.ta<1µ6~; 엔두자아스모스)왕 그들의 자재터이저앓 었으므로 소유를 당한 사람들' 이 아니라고 말하는것처 럼 오:해하고 있다_r,하 나님의 선지자들이 정신을 잃은 것이아니고.; 바울이 이포귀절을 1처리할촨야 무것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의 의미는 (내가 이미 말한六셔 르) 이무도 다론사람들의 비평에서 제외되지는 않지만,\그라나十모든 챠람 들이 그들의 교훈이 동시에 비평에(-종속되는 규정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J 물론 거기에 어려움이 따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념사호~;.바훈이` 그들의 영(靈)이 제재를 받는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여 그가-은자에 대하 여 말하고 있을지타도 성령 자체는 사람들의 '판단을 받지겪갈논데어떻게~~--;:_상 령의 은사인 예언이 인간의 판단을받을수 있겠는가?I이탄 자고 방식어F랴 르민 심지어는 성령에 의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그논 면밀한 겁、 토를받이야 한다고 말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것이다.
난갑1것이 자명(自明) 하가 때문에 그것이 얼마냐 견달 수 없는 일인가를 지격할 펄요는 없다곤 그 러나 나는 성령이나 혹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런 종류의 비평을r받아야 한다 는 것을 부인한다. 나의 주장은 성령께서는 -,그가 누구의 판단홀:받지 ~i으 십 온 물론,` 그가 천히 모든 것 을 판단하시 기 때 문에 그~.2-1-==-촌업 성 온 '조금도 감소뒤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또한'하나님의 거룩한'말씀온 그~-말씀이누나 타나시차마자 그것이 곧 아무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서 계속촌경의一대 상이 된다. Ir 1c그렇다변무엇이 겁사를받가위해 ;종속되는가?'라고 여러분온 친문할 것이다. 여기에 대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 죽 만일‘ 어떤 사람이 충만한 계시를 받았다면 그1사람과 그가 받은 은사는모든 비평을초월하계 될 것이 다. 계시의충만성이있는곳에는 종속의나문제가 대두노되지 많든든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을 각 사람에께 어렸급제.한된방법위내에서만부여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최대한으로 어떤 한 사람에게 은사를 많이 부어주신 경 우라도 항상 뭔가 부족함이 있으므로, 한 사람이 자신의 탁월성으로 인하여 그의 늪온 위치에서 다론 모든사람들울아태로 내려다 볼 만큼 그가 받은 온사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은주급도.-,놀라운 일이 아니며,). 또 사람들에게 는 뭔가 다론 사람들의 비판을 받을 여지가 항상k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논 이제 어떤 l:IJ-1법으로든지 이무런 모욕이 없이 성령을 관찰하며, :::L 의 온서를 음미하여야한다. 그리고 더욱더 모든 것이 연구되커`모또한 아무 것도 고찰필요가 없다고 판명되면, 1동시에」 뭔가 발전하는 것이 있게 될 것 이다.
그러므로 이모든 내용을 종합하여 보면, 은사는 이런 방법으로 겁사 를 받아야 -하며, 예언자들은 그가 말한예안이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온 것 인가를 시험받이야 한다는것이다,오 왜냐하면-모든 예언위 ·근원이 성령이프 로, 더 이상의 혼란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 ·';·. r C' 굽 그러나 다론 문제가 또 일어난다. 곧 어떤 표준아 겁사를 위해 설정될`것 인가타는 질문이다,. 아 질문에 대한 부분적인 해답은 키미 '바울의 입을 통 하여 친히 밝히고 있다. ' 그는.로마서-12장 6철에서 예언을 "믿음의구분수대' 로~(ad analogiam fidei)라고 척 도하고 있 다• 二러 나 실제 적안평 가에 -관한 한, 그것 이 하나님 의 말씀과 성 령 에 의 하여 지 배 를 받아야 ·한다는 I 것은 의. 십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무엇이든지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깨닫게 된 것만 이 인정을 받으며,· 하나님의 말씀의 수단에 의하여 인정을 받지 않은것만이 정최를 받게 된다. 간단히말하만오칙 하나님 한 분만이 판단하실 수 있으 며, 오직 인간은 다만 하나남의 전령관이 될 분이다 ••
우리는 바울의 이 귀절에서 어떻게 교회가 놀라운 부(富)와 다양한 영적 온사로 말미 암아 번창하게 되는가를 깨 닫게 될 것 이 다. 왜 냐하면 그둘의 순 번을완전히 할당하는 기관이더기 위하여 거기에는 선지자들의 · 학교가 있 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대단히 다양한 온사가 있었기 때문에 약간-과다(過 多)한 것도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 자신의 빈약한 재능과 결핍을 사실 상보게 된다. 그러나이것은룰림없이 우리의헌망은(忘恩)에 대한 대가로써 우리가 마땅히 받이야 할형벌인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풍요합은 결코 관대하십온 줄어드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 다합이 없으며, 또한 그의 나 우리는 그의 자비하십울 받을 자져이 없고, 또합 하나님께서 관대하십으 로 주시는‘모든 축복을 받을간만능력이없당· 구렇지안우리는 우리가 경 건을 실행하기에 게으르지,.않고、 구것이 산출하는 결과를 얻기에 게으르지 않는 한, 이칙도 우리는 빛과 교훈을 충분히 받을수 있고 또한 나누어 줄 수있다` ,
"33. 하니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이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 '창조자’와 같은 말은 이해되어야 한다• 이것은 가장 귀중한 문장인 데,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섭길 수 있는 유일한 길온 화평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또한 화평을 이루기 위하여 열십을 품어야 한다는 것을 이 훑 장이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다툼을 좋아하는 곳에는, 하나님이 그곳에서 통치하고 계시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하계 전도다. 그 러 나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 사람들의 입출이 계속` 그 렇게 말하지 않던가? 동시에 참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어떤〕강덥 으로든지 혹은다론 방법으로 그들 자신이 처명해지기를 원하거나、또 어떤 중요한 분위기를 만들기를 원할 때, 그들은 공연한 일에 문제를 할으키거나 혹은 큰`소란을 일으킨다 . .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종들에 대하여 판단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마음 속에 이 표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을 마음 속에 명십하도록 하자. 곧 그들이 화평과 조화에 대하여 .마음을 쓰고 있는지, 또 화평스러운 방법 으로 처신하고 있으며, 가능한 한 그들이 논쟁을 피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하는 데는'우리가 이해하여야 할 평화, 곧 하나님의 전리가 결속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야 한다. 왜냐하면 만 일 우리7t 사악한 교훈과 투쟁하여야 한다면, 그 때는 하늘과 땅을 웅칙이 는 것이 팔요할지라도, 그러나 우리는 투쟁 속에서 인내하여야\하기 때문집 다.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전리가 어떤 논쟁없이 잘 유지되고 .있는가를 살 펴보는 것을 우리의 주요 관십사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만일 불신자들이 반항하면, 우리는 그들과 두쟁하여야,하며, 또한 우리는소란 때문에 우리가 비난받게 될 것을 부끄럽계 여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평화를 위하여서는 하냐남에 대한 반항위 표인 이,·반역이 저주스런 일인 데 반하여, 그리스도의 왕국을 방어하기 위하여 팔요한 이 두쟁은 축복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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