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 (고전 10:1 ~ 13)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1)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2)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3)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4)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5)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6)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8)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10)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11)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2)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13)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바울은 이제 그의 두 가지 비교를 사용하여서 그가 가르쳤던 교훈을 입증 하기 위하여 그 실례들을 들고 있다. 고린도 교회 교인둘은 사실 그들이 아직도 출발점에 머물러 있는데도 마치 그들이 이미 노련해졌거나, 혹은 그들의 모든 과정을 완성한 것처럼 그렇게 행동하고 자만하고 있었다. 바울은 이 근거없는 환회와 확신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너희들이 바로 출발점에 머물러 있는데 만족하고 있으면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며, 너희들과 꼭같이 하였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너희들이 모르기를 원치 않으므로, 그들의 실례를 들어 너희들을 깨우치기를 원한다. 실례를 제시할 때, 어떤 차이점이 비교의 힘을 소멸시켜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무엇보다 먼저, 이스라엘과 그들과는 전체적인 상황이 현저하게 다를지 모르는 우리 사이에 차이점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일어났던 동일한 복수가 고린도 교회 교인둘에게 일어난다고 위협할 생각인 까닭에 그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너희들이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어떤 특권 의식에 대한 자만심을 갖지 말라. 그들도 오늘 우리가 누리는 것과 동일한 은혜를 받았었다. 오늘 우리처럼, 하나님의 교회가 그들 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온사를 악용하였을 때,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하였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그와같은 일이 너희들에게도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여야 한다. 유다도 유다서에서 이와 동일한 논증을 하고 있다.
"1.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늘날의 우리들처럼 하나님의맵성들의었다는것을 나타내고 싶어 .. 하고 있 으며 따라서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도 준업하게 형벌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에 서 형을 받지 않고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도록 하고 있는 것이 마 그 요접을 말한다면, 만일 하나님께서;그들을 용서하시지 않으셨다면,一 그..,..들과 상황이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우브도 하나님께서 . .,사하여 주시지 않 을 것이타는 것이다; 바울은 이 유사성을· 그들이 하나님의 동일한 은혜의 칭조를 받았다는 사실에서 증명하고있다; 성례는하나님의 교회가 구별되 었다논 증거이다. 바울은 먼처제례를취급하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막의 뜨거운 태양열에서 보호하신 것을 가르쳤으며, 또한 그들의 행진로 (行進路)를 인도하시 고 바다를 건너 게 하신 것 은 참으로 그들의 경 우에 있 어서는 세례와.같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또한 바위에서 물이 흘러 넘쳤으며, -만나와· 성찬에 부합하는 성례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그들이 '모세에게 속하였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을 다른 말로 표 현하딥,~ 그들이 모세의 관할하에 혹은 그의 지도력 아태 있었다는· 뜻이 된 다. 나는 Us(에이스)라는 전치~t가 여기서 e:(엔)대선 자용펀. ~것으로 생 -一각한다. 왜냐하면 의십할여지없이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전서 1장13전에서 " 말한 것처럼, 어떤 사람의 이름이 아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 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첫째 이유는 세례를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훈에 들어가게 되며, 또 다른 이유는 세례가 오로지 그리스도의 능력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그의 이름만 호소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모세의 인도와 관할하에 있는 그들은 ‘모세에게' '세례를 받은 것이었다. 어떻게, ,‘구름과 바다에서''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두번씩이나 세례를 받았다’고 말할 것이다. 여기 대해서 두 가지 칭조가 언급되고 있다고 나는 대답하겠다. 그러나 그것들은우리들에게 일차하는 세례 한가지에만 효력을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더 어려운 질문이 재기된다. 바울이 우리에게 말한 이런 은사들은 일시적인 은혜를 가져다 주는 것이 룰림없다. 구름이 태양열로부터 른그들을 보호하였으며 그들의 길을 안내하여 주었다. 그리고 이런 것은 이 현실 생 활에 관계되는 육적인 온사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홍해를 건년 것은 바로의 잔학으로부터 피한 것이며,'또한 철박한 죽음의 위험으로부터 그들이 구원 받은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의 세례는 영적인 것이다. 그러면 왜 바울은 정례를 지상적인 온사로 만들었으며; 그들 속에서 형적 신비를 추구하였 을까? 나는 바울이」그런 류의 기적들속에서 육적인 우월성보다 더 차원이 높은-두무엇 을 추구할 충분한 이 유가 있 었다고 대 답한다. 한난보쁘1 서 그의 백 상들에 게 아 세 상의 현실적 생 활을 돕기 를~――을지 라도 그의 一간칭二 중 요하신 목적은 그들의 하나님으로써, 또 영원한 구원이 그에게 있으신 하나 보신을 천히증거하시며 계시하시기를 원하신 것이었단· '-성경 전체를 동하여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로 볼리우고 있다.
그러 므로구름으로써 그가 선택하신 백성들에게하나님의 임재를 선포하실 때, 구름 가운데서 그들이 ,지상적인 축복을 받을 분 아니라, 또한 영적 생활의 증거도 받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하여 구름은 이중적인 목 적을 가졌으며:, 그것은 홍해를 건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들~o1-".바토위 손으로부터 피하도록 하기 위하여,` 바다 가운데로-길이-열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위한 유일한 이유인 그들을 그의 부살핌프t보호 이태 두산.사실은, 그들을 모든 떤::에서 보호하도록-결정되셨지 ......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사십로부터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의 대상이며;';-fl=:하나님은 국들의 구원에 관계하고 계신다는 절릎을· 내릴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이스 라엘 백성의 구원을 기여하도록 하기.·위하여 제정된 ·유월절이 r동시에.,그라 스도의 정례였던 것과 갈은 이유이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가 있는가? -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위해서 이 세상에 ~ 어떤 일에 있어서 그들의 구세주이십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이런 인에 적철한 r주의를 기울 이는 사람이라면, 바울이 말하는 내용에 아무런 모순이 '없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보다 더욱 그 사람은 영적인 본질이나,一유형적인 형상 속에서 유 대인들과 우리의 제례 사이에 아주유사성이 있음을 발견하계.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一모든 것들에 대하여 성경에는 일체 언급이 없다고 더 강 력한 반기를 제시할것이다. 나는 그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의 상령으로 하나님께;-1 역자하시며 분명한 설명없아 하나님께서 선율 이루신다는·,것운 의십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놋뾰의 경멋느그리스도께서 친히 그정 울영작성례라는사실을증거하셨다(요3:14). 그러나우리논 그것의.~J황에.s..대해서 어떤 언급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알 려지지 않은컵·,비밀을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의 방법으로 나타내신 것이다.·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 ; 이제 바울은 주님의 최고희 성만찬에-一해당 되는 다론정례에-~대하여 언남하고 있다. ·:그는 ‘만나와 반석에서 흘러내린 물온 육신을 위한 양식으로서의 가처분만 이니라, 영혼을 위한영적 영양소도. 되었던 것이다'타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OI그 두 가지는 육신을 위한 영양소 를 공급한 것은 룰림없는 사실이지만, 그 위에 그것들이 다른 목적을 위한~ 봉사에 방해물이국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서 육신의 양식의 필요성에 칙면하였을 때, 그는 동시에 영원한 영혼의 복 리도 베푸신 것이다. 이 두 가지 면온 쉽게 -조화가 되며, 그것은 요한복음 6장31철 이히에 나타난그리스도의月말씀으로 인하여 곤란하게 되는 것은 아 니다. 거기에서 주님은 만나를우리 육신울타락하기 쉽게 하는음식으로, 또; 한 그것을 우리 영혼의 참·양식과 대조시키고 있다. 그의 말씀은 여기서 바 울이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른 것같이 보안다 •.. 그러나 이 문제는쉽게 해결될 수: 있다.
성경 처자들이 성례를 취급할 때,, 혹은 그 문제에 대한 다론 일들을 취' 급할 때, 때때로 그 방법이, 그들이. 취급하고 있는&사람들의 역량에 따라서 그들이 말하는 대용이 달라진다.: 예를 들면,· 바울은 할례를 항상 갈은 방법 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라는 관접에서 '...CJ:퍼볼 때, 그논 할례를 ‘믿음의 의로운 표'라고 말하고 있다• 다론 한편, 할 례를 단순한 의형적 상칭에 자만하고 있는 사람들과 할례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다고 찰못 생각하는사람들을 공져할 때 그는그들이 할례를 행하는것 으로 모든 율법을 다 지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할례는 처주의 상칭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그것에 대하여 생각한 거짓 사도들에 대하여서만 취급하 고 있는데, 왜냐하면-그논하나님의 순수한 제도에 반대하는 논쟁에 관계하 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의 악용에 대해 반대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육신저인 일에만 급급한 군중들이 모제가 40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을 먹였다는 이유로, 그티스도보다 그를 더 생각하였을 때, 그리고 만나를 육 적인 양식으로만 생각하고참으로 그 이의의 것으로 여기지 않았을 때, ::::Z. 리스도깬선높二프릎셴~曰답으로써, 만나의 의미에 대하여 설명하지 않 밭-들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둘에게민三먼 .U 말말씀을· 학섣단. 주님 은 이 렇게 말씀하셨을지 모른다. '너 희 둘은 참으 로 느라울 정도로, 모세를 가장 특출한 선지자로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71-광야에서 너희 선조둘의 배를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너 희둘의 배를 충분히 채위줄 음식물을 공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희둘의 눈 이닌 것으로비치는 것이 나를반대하는 한가지 이유이 에는 내가 아무것도 다• 그러나 만일 너희들이 부패하고 말 음식물을 그렇게 높게 평가한다면, 생명을 주고 우리의 생명을 영생하도록 먹여줄 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러므로 우리는 이 귀철에서 주님이 그가 말씀하신 만나에 대 하여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아니타, 그의 말에구]를 기울이는 자들에게 마음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론 한편, 바울은L쉬기서 하나님의 성찬을 다루고 있는데, 불신자들이 그것을 악용하는 그런:...방법으로 하고 있 지는 않다 •. 더 나이가서 "조상들이 다 갈은 신령한 식물(食物)을 먹으며"라고 바울 이 말하였을 때, 그는 무엇보다 먼처 성례의 능력과 효력이 어떤 것인가를 암시하고 있으며, 두번째로 그는 율법시대의 성례가 오늘 우리 시대와 동일 한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만일 만나가 영져 양식이었다면,, 그 저나라한 모습들(figuras nudas)은 성례에서 우리들에게 나타나지 않는 다는결론이 니온다. 그러나참형태의 실상이 동시에 우리에계 주어졌다(rem figuratam simul vere darz').
왜 냐하면 하나님 께 서 는 공허 한 외 형 (figmentis) 으로 우리를 양육하실 만큼 그렇게 속이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표적 (signum)은 참으로 표적 이 며 , 또 그 자체 의 본질 (substantiam)을 간칙 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 가톨릭 교도들이 어떤 형태의 변질을 어리석계 꿈꾸고 있 는 것처럼, 다론 한편, 우리논 하나님께서 함께 연합하신 그 실체와 형상 (veritatem et figuram)을 분리시킬 권리가 없는 것이다. 가돌릭 교도들은 실체와 상칭 (rem et signum)을 혼동하고, 슈웬크펠드(Schwenkfeld)나 혹 은 그를 좋아하는 그런 불신자들은 실체로부터 상칭 (signa a rebus)을 분 리하였다. 우리는 중용을 취하도록 하자. 말하자면 주님께서 결합하신 것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 사이의 차이를 우리가 찰못하여, 하나를 다론 하나에 옮기지 않도록 한다.
우리는 아직도 옛날의 증거와 오늘 우리의 그것 사이의 유사성에 대한 두 번째 요점을 취급하고 있다. 벳 율법의 성례는 다만 은혜를 나타낸다(figu rasse)는 것은 학자들에게 찰 알려진 교리이지만, 그러나 우리들의 성례는 은혜를 쎄풀어 준다(conjerre)'. 이 귀절은 그 모순을 논박하는 데 가장 적 철 하다. 왜 냐하면 그것 온 성 례 의 실체 (rem sacramenti exhibitam)가 우리 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옛날 사람들에게도 전달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 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조상들이 율법 아래서 실체없는 표칭을 가졌다고 상 상하는 것은 소르본(Sorbonne) 학파들의 사악이다. 나는 그 표칭의 효과가 율법 이태 있었던 구약의 우리 조상들에게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인하 여 우리들에게 훨씬 더 풍요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완전히 동의한다. 그러므 로 그둘과 우리 사이의 차이는 다만 져온 차이밖에 없거나, 혹은 보통 말하는 것처럼, ‘다소'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둔이 가진 것은 약간이고, 우 리는 더 충분히 (plenius) 가졌기 때문이 다.
그러 나 그것은 우리 가 실체를 가 진 데 대하여, 그들은 형상만을 가졌다는 그런 경우는 야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마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 가운데서 갈은 빵 울 함께 먹은 것처럼 설명하고, 또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리와 비교되고 있 다는것을 그들은와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사람들은 바울의 의도에 귀 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바울이 여기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옛날 사람들이 우리와갈은은혜를받았으며, 루동일한성례에 참여했다 ... 그래서 어떤 록 귄호-23.J~음으로써, 구들이 받았던 어떤 형벌을우리는 보할f누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도록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 누구와다 --물 생각은 없다. ~다만 나위생각을 밝히는 것 분이다. 그렇지만 나는 반대 설 명을 취하는 사람들이 제시한 매력적인 경우를 찰 알고 있는데, 곧 그것은 조금전에 사용휴}칙유에 아주 찰일치하고 있다. 다시선명하면 이스~엘사· 람들 앞에는 동일한 경주로가 그들 앞에 놓였고, 또 그들은 모두 갈은 출발 지접에 서서, 갈은 노선운 달리며, 갈은 소망을 품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상을 받지 못하였다.
그런대내가 모든 것을 자세히 살펴 볼 때에, 나는 이런 이유들 때문에 나의 견해를 포기하게 되지 않았댜 왜 냐하면 사도 바울이 오칙 두가지 성례에 대해 설명하고있는 충분한 이유를 가전프있고, 또 목별히 세례에 대해'.-ti 그러하기 때문이다. 왜 그가 그들을 우편헛1 대조시키지않고이것을·하였을까? 분명히 만일 그7]-_이스라엘 백 성호건: 육체의 한계에 그의 비교를 적용하였다면 그논 할례와 또 .미 찰 알 러즈巳 더 중요한 성례를 그 대신에 인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 게 찰 알려지자 않은 그들을 택하였던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그들과 우 리 사이에 대조를 이루는 데 더 효과저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가 청가한 교훈이 대단히 져철하지 않을 것이다. 즉 ‘그들에게 일어난 모든 일둘은 우리에게 본보기가 된다 •. 왜냐하면 그둘에계대린 하나님의 심판을 우리가 보기 때문이며, 만일_웃린카돛일한 법촨튤L한다면, 갈은 십판이 우 리 어너교· 업i'~ :우려 가 있기 때 문이 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 그리스도께서 영적 바위라고 바울이 말한 것 처럼, 또 눈에 보이는 상칭인 바위에 대하여서는 바울이 일체 말하지 않은 것처럽, 바울의 이 말을 곡해하는 사람둘은 아주 어리석은 자둘이다. 왜냐 하면 바울이 외형적인 칭조를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찰 알고 있다는 것윤 우리가 찰 알기 때문이다. 바위가 실제로 영쳐인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그들의 빈대논 어리석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명사’는, 오그것이 형적 신바의 장칭이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기 위해서 I '.그것에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성례를바울이 이스라엘 백성의 성례와 : I 1: .) I I\ 비교한 것은 불림없다. 그들의 둘째번 반져온 더 어리석고 유치하다.
그들은, ‘한 자리 에 가만히 머물러 있는 바위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따라 다닐 수 있느냐?'라고 질문한 다. 그들은 백성들을 결코 실패케 하지 않았던 물의 흐름을 표시하는 바위 라는 단어가 마치 최대로 분명하지 않은 것처 럼 질문을 하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물을 흘려내는 바위가 마치 그 바위 자체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수행하는것처럼, 그들이 가는 곳마다훌 러넘치도록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영 저 기초임을 바울이 의미하였다면, 왜 그는 있었다는 촌재 동사의 과거형을 사용하였을까? 그것은 그가 선조들에게만 유효한 그 무엇을 가리키고 있음 이 이주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찬의 형태에 대해 말하게 하기보다는 싸움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아 얼마나 건방전가를 보여 주는 기회를 주는 이 어리석은 허구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말자. 나는 옛 성례에서 그 실체가상칭과 연합되었다는 것과, 그 실체가 백성들 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을 이미 말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형상 (figurae)이 며 , 그리 스도께 서 참으로 지 방적 으로 그들에 게 연합된 것 이 아니 며, 또 자연 그대로나 혹은 본질적인 결합이 아니라 성,1로 연합되고 있다 는 결론이 나윤댜 성 례 에 대 하여 말할 때 환유(換pt)가 아주 공통적 으로 #되·교있기 때 문에 사도 바울이 바위 가 그리 스도라고 말하는 이 유이 다. 그러므로 실체의 명칭이 여기서 상칭에 옮겨지고 있다. 그 이유는-그 명칭 을 져철하게가 야니라, 이미 내가 말한 그 결합 때문에 비유최으로 상칭에 져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 재 11장에서 더 충분히 취급될 것이 므로 여기서는 다만 간단히 언급할 분이다. 그러나 아칙도 문제71-남아 있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육체가 그들이 먹을 수 있는 실촌으로 없 었는데 어떻게 유대인들이 그 영적 음식과 음료를 먹고 마시는 일에 참여할 수 있었겠는가? 여기에 대해서 나는 비록 육체가 촌재하지 않았을지라도, 그것은 마찬가지로그들에게도 식물이 되었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이것은무 익한 궤변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구원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의 존하고 있으며, 또 그런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의 육체와 피에 의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그둘이구월의느令찬을 맡`기 위해섯눕 그들이T그리 ''T'I I. • i r e L도의 육체와 피를 받아° 요ll-있.는 것이었다.,. ~것울맡는 것은 성 .l= 할 펄 링굽 은밀한 역시-이신데, 성령은 피조된 것은 아니지만, ...J구리스도의,.,살이 그불전-에 서 켜·유혹하게 되 는 그런: 방법 으로 역 사하신다. 그러 난 . .::z..뉵 구들이 』우리'들과는 다른 그들 고유의 방법으루 i먹었으며, 대가 이미 말한 대로 그리 스도는 더욱 큰 계시로 맡~1-0?야J스우리들에게 더 충분하게 지금 전달되고 있 는 것이다 오늘우라시대에 먹,_ -"'C' 것은一 본질적 인 것이며 ( . substantzaJzs est -I I ;. man~uc~tio), 그것5는 구들웠신년 에-는 가능하진 뭇했 덮 어던 것 이-다’、 다른 말루프현하다면, 그리스도께서i는 우리를-.위해서 회생화신 그의::.살로, 또: 우리 의 양식으로-지정된-그의 육체로써 우리를 먹이셨으며, 이것으로부터 우리 -' ... 는생명을 얻는 것이다.
"5.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아니하신고로" ; 우리는이제-,사도 바울이 그와같이'.·시작한 이유를 깨닫게 된댜 즉 .그것은 우리가:그들보다 어떤 면 에사마 낫다거나혹은 우월하다고 생각지 않도룻효}기 위하여, 또겸손하 고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울을 섭기게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이다. 그것만 이 검리의 빛과 은혜로운·_축복의 재산이 우리에계시 상실되지 않게 하는 유 일한 방법이기 때문오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온 그 둘 도두를 .:::::z..의_;__백성으로 선택하셨다. 그러나 그들 중F다수가 은혜에서 며 났다. 그러므로, 그들의 실례를 우리둘에게 경고로 보여주었는데 동일한 일 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지키도록 하자. 왜냐하면 그들을 그렇게 준업하게 형벌하신 하나님께서, 그와 갈은 최를 우리가 법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형벌하시지 않도록 하자. . . . .
여기서 또 다론 반대가 일어난다 죽 만일 그 때에 위선자들과 불경건한 자둘이 영적 식물을 먹었다면, 오늘 우리 시대에도 성례에서 그 실체 자체 를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의 불신앙이 하나님의 전 티를 제거하기 위하여 나타날지도 모른다고두려워하고 있으며, 그들이 그. 렇게 가르쳤으므로 경건치 못한 자들은 그 표칭이 실체를따르도록 하였다. 구러나 그들의 두려움은 전혀 무근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z.. 표. 칭이 가치가 있는자들에게나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다갈이〉나타나도록<ng urat) 하는 것율 제공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다 받 운수 있는것은 아니다. 동시에 성례의 본질은 변화되지 않으며, 성례의 어떤 효력도 또한 상실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관계하시는 한, 만나 역시 불선자들에게도 ‘영적' 양식,이다.
그러냐불신격자들이 오칙:...C육적인’ 업만 가졌 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전 것을 먹지 못하였던 것이다. 나는 이 분제에 대한 자세한'언급은 11장으로 미루겠다. . 저희가 펑야에사멸밍을 받았느니라. 그들이 하나님을1기뻐하지 않았다는 증명 에 의 하여 증거 가 나타난다. 왜 냐하면 하나님 께 서 그의 전노로 그들을 준업하게 대하셨으며,.그들의 배은망덕을 형벌하셨기::때문이다. 어떤'사람 들은 이것을 칼렙1과 여호수아 만 두 사람만을 제하고, 광야에서 멀망당한 전 백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뻔선만 나는 그가 그들의 다른 법주센선-설명하고있는 구만사람들을 다만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6.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 바울은 구약시대의 그들에게임했 ·반형벌이 우리에게 적철한 교훈이 되어, 우리가 그들처럼 하나님의 전노를 인으키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계속 분명한 말로써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을」설하셨던 그대로 말하자면, 분명한 그림(in tabula)으로 그의 준업성을' 우티에게 나 타내시어서, 우리가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두려움을 배우게 하였다.' 나는 」거 울' (typus)이 란 단어 에 대 해 서 곧 설명 하겠 다. 한편 나는 독자들 에게 내가 신중한 생각없이 벌게이트 역본(Vulgate)과 에라스무스(Erasm us) 두 역 본들을 분리 시 키 는 것 이 아니 타는 점 을 지 적 하고 싶 다. 왜 냐하면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시기 위하여 제시하여 주신 하나님 이 그위 백성들을 다스리시는.그 상황을, 모호하게 혹은 최소한 분명하게 취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
"우리로 하여금~~~~~힘이니." ; 그는 이재 여저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의 주의 를 끄는 것만이 옳은 수많은 최를 1정최할 기회를 그들이, 그에게 주게 할지 도 모르논 어떤 실례들이나, 혹은 한정된 본보기를 제시하고 있다. 나는 우리가 민수기 .i6장 64철에서 발견하는 것과 아무리 다른 것들이 관 련이 있을지라도,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사건은 민수기 ll장 4철에 나타나는 내용이 자세히 설명되고 있는 것이타고 생각한다. 백정들이 얼마동안 만나 를 먹고 있었을 때, 그들은 그것을 싫어하계 되었고, 그들이 애굽에서 먹었 던 것과 갈온 다른 음식물을 동경하기 시작하였다. 이제!그들은 두 가지 법 최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나하나님의:특벌선물을싫어하고, 탐욕스럽게도하 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여러 다른 음식물을 동경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탐욕은 하나님을 노하계 하였고, 또 하나님께서 구들에게 맹렬한 역병(疾病) 을 벌하시게 하였다. 그결과로써 그곳이름을 ‘탐욕의 무덤'(기브룻 핫다아 와)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탐욕을 낸 ‘그들이 거기 장사되었기' 때문이다.
이 본보기로써 ‘하나님은 하나님의 선물을 싫어하는 데서I.발생하는 그런 탐욕들과 우리의 욕십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싫어하시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J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 이상을 요구하는 것 온 분명히 최악이고 불법이기 때문이다. ’ ’
"7.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 바울은 출애굽기 32장 7철 이 하에 기록된 말씀을 언급하고 있다 모세가 백성들의 생각보다는 더 오태 산에서 지체하자 지각없는 백성들은 그둘의 변덕을 참지 못해서, 아론으로 하여금 송아지 우상을 녹여 만둘고, 그것을 숭배하기 위하여 세우도록 하였 다. 그것은 그들이 그들의 하나님을 바꾸려고 하였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의 실존(實存)을 어떤 시각적인 형상으로 보기를 원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육적一인 마음과 일치하는검이었다.
그때 그들의 우상을 매우 준업하게 형벌 하은-대 있어서, 하나님은 얼마나 그가 유상을 싫어하시는가를 분명히 밝혀 주셨다. 백성이 앉아서 먹고,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합과 같으니라 이 귀절을 바로게 해석하는 사람둘은 극소수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것을 음란으로 이끄는 방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배부론 후에 충춘다'는 국} 알려진 말과 갈이, 그러나 모세는 우상을 섭기면서 사람들이 행하는 거룩한 축제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축제와 놀이는 우상 숭배의 양면이었다.
그것은 거룩한 예배의 일부로서, 충겐릎노겐볼프卜 걷-합하기 위한여, 거짓 신 堅넘L예배하는 자들~1 하듯이, 하나님윈 밸성들도 실재로 그렇게 하였다. 그리고 부정하고 세속적인 사람들은 여기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이방인들 역 시 그들의 우상 숭배에 거룩한 놀이를 정하였으며, 이 경우에 있어서 그들 의 송이지 숭배에 그들의 본을 따르고 있었다는 것은 의십의 여지가 없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주제넘어서, 이무런 정당성도 없이, 무엇이나 그들이 하는 일이라면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그런 분으로 하나님을 만들고 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도 그들의 신들이 예를 들면 가장 보기 홍한 광경들과 무 례한 층, 더러운 언어, 그리고 모든 종류의 불멸을 기뻐한다고 믿는 그런 어리석은 정도까지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본을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 도 그들의 종교의 축제를 가쳤고, 놀이를 하였으며; 우상 숭배로부터 온 것 은 아무것도 생략하지 않게 되었다. 이 솔칙한 의미가 바로 그 참 뜻이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의문이 제기된다. 왜 바울은, 우상 숭배에 있어서 결국은 그것이 중추적인 것이고 다른 두 가지는 다만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데 예배에 대한 것보다는 축제와 놀이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일 까?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의 상황에 가장 찰 맞는 것을 취급하려고 선 택하였음이 틀림없다. 그들이 우상 앞에 엎드리기 위하여 불신자들의 모임 에 습관적으로 참석한 것 같지는 않고, 불신자들이 우상 섭기는 축제에 곧 찰 참석하여서, 우상 숭배의 표적인 타락한 의식(儀式)에서 물러서지 않았 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범최하고 있는 방법을 하나님께서 분명히 정죄 하신다는 사도 바울의 선포는 충분한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간단히 말 하면, .그는 우리가 부정하계 되지 않고서는 어떤 우상 숭배에 참여할 수 없 으며, 또 우상 숭배의 외적인 표적인 것들을 상대함으로써 자신을 더럽히는 자들은 하나님의 형벌을 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8.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 바울은 이제 간음 문제로 돌아 가고 있다. 여사적인 기 강을 통하여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여기에 마음대로 람닉하였다는 사실이 분명하여지며, 또 그리스도에게 헌신하였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런 최악을 법하지 않았다는 사절을 우리는 앞의 여러 장에서 쉽 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최의 형벌을 우리는 두려워하여야 하며, 또 하나님 께서 더럽고 음란한 최를 얼마나 미워하시는가를 기여하여야 한다. 모세는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혹은 이만 사천명이 멸망받았다고 하였다. 그 러나 아무리 그들이 숫자에 대하며 의견이 다를지라도 그들의 진술을 조성하기는쉽다. 가의정확한一숫자를i-''확인하려고깨개인을 정확하거1 계산화터 는 뜻이 없으면, 그것은·I;신뢰를받지 못한다 •. 예를 들면 로마인들이,5사실온 빠에서 2백이었던 것을'Centuniviri,, 곧· 백이라고 불렀다 •.
그러므로 이만 사천을, 주님께서 폐하시고, 다른 말로'표현하면, 이만 삼천이 넘는1것으로 하셨으며, 모세는 상한선을바울은 하한선운 각각'취하였으므로,·•참으로 아 무란 찰못이` 그들 모두에 계 없는 것F이 다~-이 말씀은 민수가 25장 9철에一 나타 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어려움에 칙면하게 된다. 모세는 하나님의 전노:거F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브올의 의식(儀式)에 참여하였기 때문에-일어난 것 이라고 하였는데, 왜 바발은 이 살륙이 간음에 의한 것이라고 ... 하고 있는가?
그러나 그 배반으로부타 시작되었으켜,.`또 이스라엘 백성들아 불순종하게 된 것은, 그들이 거짓 종교의 헌신에 그들이 영향을 받은 때문이 `아나고、 오히려,· 창녀들에게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냐님을 진실되게경배하는.일에서 떠나도록 하기 위하여·미디안 사람들이. 그들의 탈을 이스라엘 사람둘에게 주도록 발람이A 그들을 권고하였기 때문이三 다·.~;그보다도 야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런 깨옵저조인유성홈에'-,-끌려서 하나날 을 불순종하계 된 그런 큰 우맹은,.그들은 정운에 대합 형-별을 맡아`야 했 ' .,;.,, " 노 · 다..:....근러므로 우리는 하냐'님·제서 갚훑융zl-ti한건l철,덮한시며~~-참우루콴릎 어 떤 것 보다도 더 준업 하계 다스리 신다는、 사실을 깨 달으면서 , 간음이 결코. -' •~--,., ... "' ' 사소한 죄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우도록 하자•
"9. 주를 시험하다가~~~~~ 우리는 저희와 같이 그리스도틀 시험하지 말자." ; 이 문장은 민수기 21장 6철 말씀에 키려록된 내용을 나타내고 있다. 백성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접점 파곤하여지자, 그들은 그들의 운명에 대해 불평하기 시작하였고 또‘어찌하여 하나납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 …'라고 ·하면서1 하나님윤 원망하는 말을 하기 시작하었다. 바울은 백 성 들의 , 이 불평 을 ‘원 망' (te~t~tionem_〉1이 라고 묘사하였 으며 , 정 당성 이 없는 것이라곤 하였는데,I,그 이유는 ‘원망'이란 인내와 모순되는 것이기 때 문인다. ~그'.백성들이 그때 하나님을 대적한 유일한 이유는 그들이 ~1나친 ”에-~사로잡었고,i 하나님께서 경하신 적철한 시간을 기다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바울이 우리에개 경고하고 있는 이 악의 근원 온,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면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십에 우리를 말기지 봇 하는 조바십을 나타내는 것이며, 또한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을 기대 하면서도 우리의 결접과 요구대로 행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주의하도록 하 자. 하나님은 이 오만에 대히여 이스리엘 백성둘을 준업하게 형벌하셨 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동일한것-의로운십판-울 남겨 두셨다. 그러므 로 우리가 그와 갈은 형벌을 받지 않으려거든,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아야 한다. 이 귀철은 그리스도의 영원성에 대한 놀랄만한 증거를내포하고 있다• 에 타스무스의 핑계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 중의 어떤 사람둘이 .그런 것처럽 그리스도를 시험하지 말자'. 왜냐하면 그것온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기에 너무 강압적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블리우는 것 온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중재자로서 그를 롱하 지 않고는 그의·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으셨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그 의 손에 의하지 않고는 은혜를 베푸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모세에게 처음 나타나시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행에 항상 그들과 함께 하셨 던 천사는 때때로 iTtiT'(야웨)라고 블리운다• 우리는 그때 그 천사가 하나님 의 이들이었으며, 또 바로 그때, 그는 이미 그가 우두머리였던 교회의 안내 자였다. ‘그리스도’라는 지적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적당한 의미를 가지고-있으며 그것은 당시에 하나님의 아들에게 아칙 적용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요 3 : 13)라고 다른 곳에서 보는 것처럼, 그것은 여기서 특성들의 연합을 통하여 그에게 주어졌다.
"10. 저희 중에~~~~~~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 다른 사람둘은 이것을, 땅을 정람하러 간 열 두 사람들이 돌아와서 백성들의 결십을 뒤혼 둘어 놓았을 때 일어난 원망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불평온 하 나님의 어떤 특별한 형벌을 즉각 받은 것이 아니며, 다만 그 소유한 땅으로 부터 그둘 모두가 축출되는 형벌을 받았으므로, 이 귀철은 뭔가 다른 방법 으로 해석되어져야한다• 그 땅에 둘어가지 못하도록 금지된 것은 대단히 준 업한 형벌이다. 그러나, 그들이 파괴자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다고 말함 으로써, 바울은 아주 분명하게 어떤 다른 종류의 보복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민수기 16장에서 우리가 본 말씀에 대하여 언급한다• 하나 님께서 고타와 아비람의 교만을 형벌하셨을 때,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내리 신 형벌을 마치 모제와 아론이 내린 것처럼 그들에 대하여 져동을 하였다• 하나님은 이 백성둘의 소란을 하늘의 볼로써 형벌하셨는데, 이 형벌로 죽은 자가 일만 사천명이 넘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들의 음성으로 하나님을 대 저하여 일어나는 반여자와 말씽꾸러기둘을 형벌하시는 하나님의 전노에 대한 분명하고 기여할 만한 증거를 재시하고 있다, 물론 그들은 모세에 대하여 불평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모세를 모욕할 근거가 없었으며, 또 그들이 모세에게 '분노를 터뜨릴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위임하신 임무를 모세가 신실하계 수행한 것이었으므로, 그들은 사실상 그들이 실제로 그런 것처럼 그둘의 불평을 롱하여 하나님을 대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일 우리가 신실한 하나님의 종을 대적한다면, 그것은 사람을 대저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하나님을 꽁져하 고 있다는 사실을 기여하도록 하자. 또한 이런 오만이 형벌을 면치 못할 것 이라는 사실도 께닫도록 하자. ‘파괴자'논 하나님의 십판을 시행하는」천사로 이해하여-야 한다·-
이고재 그 는 성경의 귀철둘이 각각 다르게 보여주는 것처럽, 인간을_벌하사기 위하여 때로는 악한 천사를 사용하기도 하시고, 또 때로는 선한 천사를-이용하시기 도 한다. 바울이 여기서는 그들 사이의 구벌을 하지 않고 있으므로, 득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 이스라엘에게 일어났던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 ‘거울이 되게 하기 위하여, 그는 이 모든 일들을 다시 되풀 이하고있다. 다른말로표현하면, 하나님께서 그의십판으로내리신본을우 리 눈앞에 보여주신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더 교묘. 한 이론둘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대단히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우상 숭배자둘과 간음자 그리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다론 사람들에게 내려졌던 십 판의 종류들인 이런 보기둘이 화가에 의해 그려진 그림들처럽, 우리 앞에 절실하게 대두되었음을말하였을때, 나는사도바울이 말한뜻을충분히파 악하였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온 그와 같은 최에 대해서 전노하 시는 하나님이십을 우리에게 나타내주는 살아 있는 그립들이기 때문이다.
이 설명은 간단하거나 또 사실저이거나 모두 마찬가지로 어떤 미천 사람들 을 침묵시키는 유이을 또한 가지고 있는데, 이 미친 사람들은 고대인들에게 일어났던 일들만이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예표하는 것임울 증명하기 위하여 이 귀철을 의곡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것을 백성들이 교 회 를 예 시 하는(esse figuram) 것 이 라고 의 당하계 생 각한 것 이 다• 이 사실로 부터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셨거나 혹은 주신 것은, 그것이 은혜이든지 혹은 형벌이든 간에 그리스도의 오십과 함께, 충분한·현실로서 나타날 것임을 다만 예시하는 것이타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것은 최고로 해로운 한편의 헛소리인데, 그 이유는 그것이 거룩한 조상들에게 십각한 해 (害)를 입혔고, 또 하나님께도 더 중대한 손상을 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런 사람들은 그들이 동시에 진짜 교회에 들어 있다는 그런 식으로 교회를 예 시하고 있다. 그들의 환경이 우리의 그것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교회의 기 본적인 모습은 이미 오늘날 제시되었다• 그것에 주어전 약속들은 그것이 그 들 안에 포함된 그런 방법으로 복음을 예시하였다. 그들의 성례들은 그것들 이 마찬가지로 그들 시대에도 적용되는. 효과를 가전 참 성례들이었던 그런 방법으로, 오늘 우리들의 성례를 예표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요약하여 본다 면, 그 당시에 있어서 말씀(doctrina)과 성례(signis)를 적철하게 사용한사 람들은 오늘 우리와 갈은 그런 동일한 성령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 울의 이 말씀들은 어리석은 자들을 후원해 주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말씀들이 그 시대에 알맞는 참 의미를 갖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그 시대의 사건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다만 일종의 꽁허한 의관에 불과 할 뿐이다. 그러나 정반대로, 내가 이미 설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림에서 처럼, 우리가 보도로 명백한 것은 우리에게 경고가 되어야 하는 일들임을 분명히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또한 말세를 만난" ; -r-iA7J(델레국마지막)이라는 단어는 때때로 ‘신비’를 의 미하기도하며, 또아마그의미는이귀철에 아주잘어울릴것이다. 그러나 나는 용인된 해석을 따른다. 왜냐하면 그것이 더 바론 해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이미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만물의 충만이 현 시대에 일치하고 있으므로 말세가 우리에게 임박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율법과 선지자들이 모두 바라던 특별한 목표 이다. 한편, 바울의 이 문장은 하나님께서 구약의 언약에서 더 완고하였으 며, 항상 최에 대하여 벌하실 준비를 갖추고 계셨지만, 그러나 이제 하나님 께서 우리에게는 더 부드럽고, 우리를 용서하시기를 더 기뻐하시기 시작하 셨다논 현대의 사상과 충돌된다. 그리고 비슷하게 우리가 구약시대 사람들 이 발견하였던 하나님보다 우리에게는 더 너그러워지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가 은혜의 법 아태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실재로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하셨다면, 어떤 일예 대하어 우리에게도 .그렇지 않으시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음에 하나님께서 최를 벌하십에 있어서 오늘날 더 너그러위지셨다는 것은 찰못된 생각아아니다. 참으로 우리논 하나님의 선하십이 그리스도의 ·오십과 합께 더 은혜롭고.、풍요하게 사람들에게 부어졌다는 것을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부적당한 그런 사람들을 형벌하지 않는다는 데 대해 서는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안가? 다만 이 접에~~의를 기울여야·:한다• 즉 오늘날은 다론 형태의 형벌이 있 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버지로서의 사랑을 그들에게 분명히 하 가 위하야 오랫동안 신실한 자들에게:상을 베푸셨던 것처럼, 그는 육신쳐인 형벌로써 그의 전노를더욱나타내셨던 것이다. 다론한편, 우리가지금 받 고 있는 충분한 중거 속에서, 하나님은 외형적인 형벌을 그렇게 자주 우리 에게 내리시지 않으며, 또 사악한 자들을 다스리십에 있어서 육체적인 형벌 올 구렇게 자주 가하시지 않고 있다. 여러분은 이 주제에 대하여 나의 〈기득 교〉강요〉(2. 10 .. 3)에서 더 자세한 것을알게 될·것이다 •.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 이 둘째 귀전은 첫째 귀절에서 이끌어 대었다. 이런 일들이 처작에 위임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유리한 것이 야니라 다만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칭벌이 그 당시 그들을 효과적으로 훈련하였던 하나님의 참 형벌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으로부터 유 출한 것온 아나고:, 하나님께서 그 당시 그의 십판을 효과적으로 하셨을 분 만 아니라, 우리를 훈계하시기 위하여 그들에 대한 기록이 영원히 남아 있 도록 하신 의도가 또한 있으신 것이다. 고들에 관한 기사가 죽은 자들에게 무손 유익이 있을까? 만일 그들이 다른 사람둘의 실례를 통한경고를 받아 둘이지 않는다면, 살아있는자둘에게 무슨노용이 될 것이며, 그둘에게'무엇 을 깨우쳐 줄 것인가? 그러 나 바울은 모든 성도들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 으며, 그것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유익될 것이 없다고 모두 동의하고 있는 그 원리문 당연한 것으로 여가고 있다. ( . . . . • r,1 !' -•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 바울은 앞의 설명에서 우리가 시 작하였다는 사실이나 시작하는 과정에서 혹은 진행 과정에서 자만하지 말아 야 한다는,결론을~-내리고 있는데, . 그렇게 뒤면 우리가 자기 만족에 빠지게 뒤고, 또한아무것도 이루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그들 자신의 상황에 대하여 매우 자만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많은 부끄러운 간계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나 그들의 자만은 부당한 자기만족으로써, 선지자들이 항상’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정죄하였던 그런 최와 유사한 것이었다. 그러나 가톨릭 교도 들은 이 귀철을 믿음에 관한한, 우리가항상 불확신의 상태 속에 있다는 그 들의 불경건을 확립하기 위하여 왜곡하고 있으므로, 우리논 여기에 두 종유 의 확신이 있다는 사실에 주의하여야 한다.
그 한 가지는 하나님의 약속운 믿는 것으로써, 믿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시지 않는다는 것을 확 신하며, 또 이 불변의 확신 위에서 신실하고 담대하계 사단과 최를 대적하 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자신의 연약함을 기여하면서, 두렵고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또한 그의 염려 중에도 기쁨으로 자신을 하나 남께 맡기는 것이다 이런 확신은 거룩한 일이며, 성경 여러 곳, 특히 로마 서 8장 3S철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 럼, 결코 믿음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 이다. 또 다른 하나의 확신은 그 근원을 무관십에 두고 있는데, 사람들이 자신 이 받은 은사로 말미암아 매우 자만하고 있을 때, 그리고 그들 자신의 상황 에 대하여 이주 무관십할 때, 그렇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그들이 모든 사 탄의 공져에 대하여 공개적이타는 결과를 안고서 자신들의 위험권 밖에 있 는 것처럼, 참자코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리석은 확신에서 야기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의 자기 만족을 바울이 보았기 때 문에 , 그들이 그것 을 포기 하기 를 바울이 원했던 것과 갈은 그런 종류의 확신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그들이 염려하고 불신하는 그런 상태에 머물러 있으라든지 혹 온 가톨릭 교도들이 생각하는 것같이 그들의 구원에 대한 의십 때문에 불 안해 하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사람을 믿는 데서 온 잘못된 확신으로 부풀어 있는 그런 사람둘에 대하여 바울이 말하고 있으며, 또 하나님 아닌 사람을 의지하는 데서 오는 연약합을 멈추라고 그가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여하도 록 하자는 것이다. 골로새 교인들의 견고함이나 혹은 "믿음의 굳은 것"올 칭찬한(골 2 : 5) 다음 바울은 그리 스도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믿음에 굳게 서기를 그들에게 부탁하고 있다(골 2 : 7)
"13. 사람이 ·감당할 시헐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 다른 사 람들은 그둘 자산의 해석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은 바울이 좀 전 에 언급한 것처럽,( 하나님의 .전노에 대한 그런 무서운 본보기를 듣고 난 후 에, 그들이 괴로움을」강하거나 놀라고 또 낙답하지 않도록 그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하여 이것을기록하였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의 권고가 어떤 효 과를 나타내기 위하여, 그는 회개의 기회가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는 그. 것을 이렇게 말하고있는 것이다 •• 철망할 팔요는 없으며, 또 나는 낙십할 이유를 너희들에게 제시할 이유는'조금도·없다. 참으르 너희들에게 일어난 일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발생하였던 그런 일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가벼운 유혹이 그둘에게 닥쳐왔을 때, 오히려 그가·그들의 십약함을 책망하고 있는 것이라는 경향이 있으며, 또 humanus라는 단어 를 인간이라고 ... 번역하였으며,. 때로는 :온건한 사람’이라는 뜻을 의미하기 도한다.
그러므로 그들에 따르면, 그 의미는 ‘너희둘이 가벼운 유혹에 굴 복하는 것이 옳은 일이냐?'타는풍은이 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 귀철을 위로로 본다면, 그 문맥이 더 적철하기 때문에 나는 그 견해로·머 기울어전 다.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과거에 관한 한, 그들이 착한 마음을 갖도록 그 가 말하였던 것처럼,. 그들을 회개하도록 감동시키기 위하여, 그는또한 하나 님께서 감당치 못할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 하신다'타고 미래에 대한 무 한한 소망으로써 그들을 져려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그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만을 의뢰한다면 아무리 가벼운 시험이 우리에게 다가을지타도, 그 시험이 우리를 단번에 념 어드려 승리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을 미쁘신 분이라고 부 르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 이상으로 신실하신 분이십을 의미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이렇게 그의 의미를 나타넬 수있을 것이다.
즉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보호자로 증명되셨으며, 하나님께서 보호하실 때, 너희 들은 안전하다. 왜냐하면 그는 결코 그의 백성들을 그들 자신에게 맡겨두시 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단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그의 지A '-J하 십 아태 두시게 되면, 너희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한, 두려워할 팔요가 조금도 없는 것이다. 만일 우리의 도움이 팔요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그의 도움을 철회하신다면, 또 만일 우리가 무거운 침 아태 눌려 연약함 속 에서 허덕이고 있는데도 계속 우리의 그 두쟁 (tentationes)을 돌보아 주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거짓으로 우리를 희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시험에 빠지지 않도록하시기 위하여 두가지 방 법으로 우리를 돕고 계신다.
죽 하나님은 우리가 팔요로 하는 자원을 우리 에게 제공하여 주시고, 또한 시험의 한계를 정하여 주셨다• 사도 바울은 여 기서 그 두번째 방법에 대하여 대부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첫번째 문 제, 곧 하나님께서 시험이 그 압도적인 힘으로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하도록 그 시험을 완화하신다는 사실을 무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험하실 때, 우리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아시고, 그 능력의 정 도에 따라 우리의 시험을 조정하시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시험'이라는 단어를 일반적인 방법으로 받아들이는데, 그것은 모든 것이 우리에게 유혹 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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