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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주석/여호수아

보라 나는 오늘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은 마음과 뜻으로 아는 바라 (수23:14)

1. 성경(수23:1~16)

1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 하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
2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곧 그들의 장로들과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나이가 많아 늙었도다
3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
4 보라 내가 요단에서부터 해지는 쪽 대해까지의 남아 있는 나라들과 이미 멸한 모든 나라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제비 뽑아 너희의 지파에게 기업이 되게 하였느니라
5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사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6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7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 중에 들어가지 말라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들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8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
9 이는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오늘까지 너희에게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
10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11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12 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13 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
14 보라 나는 오늘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은 마음과 뜻으로 아는 바라
15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너희에게 임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모든 불길한 말씀도 너희에게 임하게 하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를 멸절하기까지 하실 것이라
16 만일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 하니라

 

2. 묵상 (Calvin선생주석)

이것은 여호수아가 자신의 임종이 가까와오자 자기가 죽은 다음에도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예배가 그대로 남아 있게 하려는 뜻에서 엄숙하게 간청하는 장면에 대한 묘사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민족들 사이에서 누리는 평화와 안식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탁월한 속복으로 묘사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앞에서 지적된 점, 곧 그들이 아무 여려움 없이 일망타진해서 파멸할 수 있었던 척군들 사이에서 끼어 살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소심중 때문이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들의 배온망덕을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호수아의 신앙에 기초한 간청은 또한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둘이 본받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한 가정의 가장이 자기 일생 동안에만 자녀들을 생각하고 자기가 죽은 다음 그들에게 보탬이 되는 길을 최선을 다해 모색하지 않는다면 그런 가장을 가리켜 헌명한 사람으로 부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훌륭한 위정자와 지도자는 자신들이 물려주는 훌륭한 상태가 먼 훗날까지 지속되도록 세밀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베드로는(벤후1 : 25) 자신이 이 세상에서 떠난 다음에도 교회가 자신의 권면을 명심하며 그곳에서 혜택을 입기를 바란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호수아가 모든 이스라엘을 초청했다는 말에 이어서 그가 장로들, 두령들, 재판장들 및 유사들을 초청했다는 말이 곧 덧붙여지고 있는데, 나는 이것을 물론 누구나 올 수 있었지만 특별히 두령들과 유사들만 소환한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두번째 소절은 앞 소절에 대한 설명인 셈이다. 사실 온 백성이 다 초청받는 것으로 볼 수 없는 것은 그런 모임이란 도저히 불가능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초청받았다는 귀절의 의미는 장로들, 재판장들 및 그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모이라는 명령이 하달되었으며 오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같이 데리고 올 수 있었다는 뜻이다. 여호수아의 연설은 둘로 되어 있지만 나는 역사가가 흔히 그렇듯이 먼저 전체 연설을 요약하고, 다음으로 그 내용을 상세하게 밝히면서 앞에서 생략 된 부분을 보충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3). 한 부분에서는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상대로 권면하면서 하나님의 지속적이요, 지친 줄 모르는 은혜를 확신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모든 면에 있어서 진실하시다는 점을 체득했으므로 앞으로도 원수를 내쫓고 파멸함에 있어서 동일한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점을 조금도 의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그 땅의 분배를 예로 들면서 그들의 틀림없는 성과에 대한 보중,또는 담보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가 각 지파의 자리를 지정하고 경계선율 그어준 것이 결코 아무렇게나 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순서에 따라서 된 일이기 때문이다.

"6.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 이제 그는 정복의 비결을 너무 자신만만해 하는 나머지 너무 안일하게 지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그들이 꾸준히 율법을 순종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여삐 보실 것이요, 그 결과 무슨 일을 하든 일취월장할 것이라는 점을 약속하고 있다. 위선자들의 경우 제아무리 자신만만하게 하나님을 조롱하며 욕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한다. 아니 종종 있는 일이지만, 그들은 적잖은 소란을 피워가면서 그의 약속을 들먹인다. 그러나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을 항상 품고 있기 마련이다.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를 성심껏 추구하지 않으면 안되며 우리가 그에게 인정을 받고자 한다면 우리가 그에게 등을 돌려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크게 힘새"라는 표현은 다른 곳에서도 지적했듯이 진지한 연구를 뜻하는데, 그 까닭은 천성적으로 아주 약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힘 이상을 분발하지 않을 경우 율법을 철저하게 지킬 각오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순종에 대한 정의가 모세 오경(신5 : 32)에서부터 다시 인용되고 있는데, 그 참 순종이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7. 이 나라들 중에 가지 말라~~~~~~" ; 그는 만약에 그들이 모든 타락의 근원에 대해서 세심한 경계를 퍼지 않을 경우 자신들의 임무를 도저히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음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충고하고 있다. 이것을 그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아주 필요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를 주위에는 사밥으로 사단의 율무가 처져 있었으며 그들의 미시에 대한 성향이 있마나 있던지 미신이라면 그들은 앞을 나무어 나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먼저 이방민족들과 친근하게 사귀다 보면 그들의 최악에까지 휘맡려들고 말 것이라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곧 이 귀림에서 사용되고 있는 '뒤섞임'은 바울이 사용하는 "멍예를 메는 것"(고후 614)과 동인하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먼저 우상숭배에 대한 유혹율 제거하고 다음으로 우상숭배 그 자체에 대한 자신의 협오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그가 무릎윤 잡고 절하는 문제, 제사상율 차리는 문제, 기타 다른 의식율 명백히 밝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그들을 두고 '맹세하는 깃'읍 통해서 그 모든 사악한 예배를 대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것으로 주장하는 것 가운데 제아무리 하않은 것이라도 그것이 우상에게 양도될 경우에는 그의 영광이 탈취된다는 접 알게 된다. 그러기에 그들이 하나님 한 분에게만 매달려야 한다 접, 곧 그들이 철두철미하게 하나님께 동여 매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9. 대저 여호와께서~~~~~~너희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 그는 그들이 변하지 않는 한 하나님께는 틀립없이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이렇게 암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이 하나님의 호의를 사는 한 끝없이 승리의 길율 계속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마침내 그는 그들이 자신들의 생명과 안전율 소중히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유지하도록 조심하라는 점을 다시 권면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곧 하나님에 대한 사랑율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이 모든 찬 순종의 원천이다. 우리가 자발적이요 연련한 애정을 가지고 그에게 매달리지 않는다면 아무리 우리의 생활용 율법의 외형적인 형식에 맞추려 한물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12. 너희가 만일 퇴보하여~~~~~~~~~" ; 그는 율법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방법에 따라 위협을 덧붙임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통해서 충분히 이끌리지 않는다면 접을 주어서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려는 마음을 갖게 하고 있다. 정말이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다정하게 권면하실 때 즉각 순종하지 않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인간의 육신은 얼마나 굽뜨던지 항상 위협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율법의 통상적인 방법을 채택하는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여호와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무서운 일이 그에게서 따를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뿐
만 아니라 그들이 가나안 민족들과 친하게 지내다 보면 그들이 옆구리를 찌르는 창살과 눈을 찌르는 가시노릇을 할 것이라는 점을 누누히 강조하고 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자신에게 성별하시면서 거기에 모든 불결한 것이 제거되기를 바라셨으며, 그는 이 백성이 나쁜 본보기로 영향을 받아 타락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이런 악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한편으로는 백성들이 그 땅이 못된 미신으로 더럽혀지는 것과 참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섬기는 것을 아무렇지 않은 일로 여겼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또 다른 여러 악을 통해서 계속 머러워졌으므로 그들이 온당치 못하게(4) 살려준 자들에게서 괴롭힘과 적대행위를 당하는 것은 이 흉측한 멸시에 대한 정당한 처벌에 지나지 않았다. 모세와 여호수아의 이러한 경고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은 사사기를 통해서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재앙에 대한 이러한 선포가 전혀 모 없었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여호수아가 죽은 다음에 그들은 전쟁을 할 정도로 용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열성은 덧없는 것으로 드러났으며(5) 곧이어 그들은 흉축한 이방 의식에 말려들고 맡았다. 여기서 우리는 그 어느 것으로도 억제할 수 없는 사악한 예배에 대한 무절제한 욕망이 인간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엿보게 된다.


이제 이 가르침이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된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자. 옛날 이 백성에게 가나안 민족들을 타마하고 모든 속된 오염에서 의연한 자세를 취하도록 한 명령은 특수한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는 아무곳에도 우리의 명확한 경계선이 없으며, 우리는 모든 악인들을 쳐죽이기 위한 칼로 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악으로부터 충분한 거
리를 두고 거기에 빠져드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는 길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악에 휘말려들 경우 거기서 당장 홈이나 얼룩을 묻히는 것은 기정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점은 다른 곳에서 이미 설명되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단지 지나치는 말로 언급할 뿐이다. 

 

"14. 보라 .나는~~~~~~~가려니와~~~~~~" ;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기로 되어 있으므로 (히9 : 27) 여호수아는 자신도 죽을 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모든 인간의 공통된 운명이 자신에게도 닥쳐온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자신이 떠난 다음에 백성들이 너무 과도하게 슬퍼하는 일이 없어야겠다는 뜻에서 그들을 위로하고 있다. 사실 그들은 그들의 머리가 없어지자 마치 몸몽만 남게 된 자신들의 처지를 보고 더 없는 슬픔을 느꼈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그는 목표를 달성한 다음에 자신의 생명이 끝나고 있으므로 자신의 상태가 온 인류의 그것과 다르게 되기를 바라는 일이 없어야겠다는 점을 당부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죽음의 형태가 모두에게 공통되지 않은 것으로 암시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하늘의 가르침을 믿는 자들은 썩어지지 않는 씨앗을 통해서 불신자들과 구별되며 그들과 한가지로 멸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여호수아는 모두에게 공통된 것, 곧 생명이 끝난 다음에 이 세상으로부터 떠나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전체 이야기의 핵심을 간추리자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호의와 자신의 약속 성취를 통해서 스스로 참된 것으로 입증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경고 역시 공연한 소리로 끝나지 않을 것이요, 틀림없이 그가 자신의 예배를 더럽히는 행위를 최종적인

파멸을 통해서(6) 복수하실 것이라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