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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사도행전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행16:40)

1. 성경 (행16:35~40)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35)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36)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37)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38)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39)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40)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35 날이 새매." ; 의문이 생긴다. 무엇이 재판관들로 하여금 그들의 계획을 그처럼 급히 바꾸게 했던가?  전날에, 마치 그들은 가혹한 형벌을 가하려고 했던 것처럼, 바울과 실라를 착고에 채워 놓도록 명령했는데 지금 그들은 사도들이 형벌을 받지 않고 가도록 허락하고 있다. 어떻든 그들이 사도들을 심문했었더라면 그 사건을 알게 되고 그들이 관대하고 바른 마음의 태도를 되찾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건에 대한 상황은 전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 마음을 바꾸었음이 분명하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본문에는 일차 소란이 생긴 다음에 일반적으로 생긴 사실 외에 다론 것은 전달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일반 백성의 마음은 들끓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란은 그 다스리는 자들까지 지나치게 행동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히 그릇된 일이다.

 

버어질(Virgil)의 말은 유명하다.
"큰 무리 속에서 자꾸 이런 일은 생긴다. 소란이 생겨나면 비천한 군중의 마음은 격노한다. 횃불과 돌멩이는 이미 공중을 날고 분노는 무기들을 끌어온다. 이때 우연히 성실과 봉사로 존경할 만한 어떤 사람을 보면 그들은 조용하고 멈추어 서며 귀를 기울인다. 그가 말하면 그들의 마음은 바뀌고 감정은 가라앉는다."―에 니 이 드(Aeneid) 1장 148 이 하.

 

그러므로 재판관들이 소란의 열기 가운데 사람들과 함께 열광하는 것보다 더욱 합당치 않은 일도 없다. 그러나 이 사례는 보통으로 그처럼 생겨나고 있다. 그러므로 그 다스리는 자들(decuriones)은 백성이 폭동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이는 사도들에게 매질을 하는 데 넉넉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자기들의 부주의에 대한 벌로서 부끄러움과 치욕적인 오점을 가져야만 했다. 그리고 이 소란의 원인에 관하여 조사를 했을 때 아마 그들은 그 선동자들(circulatores)을 처벌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을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과 실라가 무죄함을 너무 늦게 알고 그들은 사도들을 석방했을 것이다.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 실예로써 지나치게 성급한 행동은 얼마나 삼가해야 하는가에 관한 경고를 받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상관들이 자기들의 잘못을 잘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자기들이 잘 알지 못하고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을 취급함에 있어서 자기들의 잘못은 개의치 않고 그 잘못을 너그럽게 보아 넘기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바울과 실라가 자유롭게 떠나도록 그들이 허락했을 때 자기들이 이전에 잘못을 범했음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도들을 향하여 끝까지 불공평하고 잔인하게 하지만 않으면 그것으로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다.

  죄인을 다루던 관리 (lictor)들이 가졌던 그 관직에 대한 상징은 막대기에 매단 도끼였는데 공중의 관리들(appart"tores)을 그들이 가지고 다녔던 그 지휘봉 때문에  '호타브두코이' (지배자의 몽둥이를·가진 자) 라고 호칭되었다.

 

"37. 공중 앞에서 때리고"  ; · 피고로서의 항변에는 두 가지 근거가 있었다. 첫째로 로마의 시민권율 가진 사람에게 폭력을 가했다는 사실이며,  둘째로 이 폭행은 법의 질서에 반대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바울이 로마의 시민인 것을 장차 알게 될 것이다. 로마 국민을 제외하고 어떤 사람이라도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의 생사에 관한 권한을 가질 수 없다는 법은 포르시어스 (Porcius1의 법 과 셈 프로니어스 (Sempronius)의 법 , 그리고 다른 많은 법에 의하여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바울이 매를 맞기 전에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던 사실은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재판관들은 자기 자신들을 위한 변명으로서 그의 침묵을 거짓 없이 핑계 삼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그 소란의 흥분 중에 무엇을 주장해도 인정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바울은 지금 늦게 매에 맞지 않는 방법을 구하고 있으며 상관들이 친히 와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을 보면 어리석고 쓸데없는 위안의 방법을 주장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말에 대해서도 쉬운 대답 이 있다. 바울이 이러한 요청을 함으로써 그의 형편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이 자기의 개인적인 유익을 결코 염두에 두지 아니하였으며 장차 모든 경건한 자들을 위한 약간의 유익 을 얻으려는 것이었음을 주시 해야 한다. 이는 상관들이 선하고 죄 없는 형제 품을 향하여 극히 방자한 행동을 감행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지금 바울은 자기의 권세로써 그들에게 타격을 줄 수가 있었으므로 그들이 형제들에게 어떠한 손상도 주지 못하도록 그들을 돕기 위하여 자기의 권세를 내세우고 있다. 바울이 하고 있는 불평의 이유는 그것이었다. 우리의 원수들이 죄 없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억압하는데 지나치게 자신들을 방임하지 않도록 그들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등한히 하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바울은 자기에게 찾아온 기회를 지혜롭게 활용했다. 주님께서 그러한 종류의 도우심을 우리들의 손에 쥐어 주시는 데에는 이유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우리에게 손상을 주면 우리는 그들을 손상시킴으로써 보복해서는 안되며 그들의 격한 감정을 제지시키기 위하여 애를 써서 그들이 동일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해롭게 하지 않게 해야 함을 명심하도록 하자.

 

"38 저희가 로마 사람이라 ~~~~~ 두려워하여."  ;  그들은 심문도 하지 않고 죄 없는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분노를 그릇되게 쏟았던 이 행위는 더욱 심각한 범죄의 협의가 됨에도 그 일 때문에 두려워하게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어떤 사람의 보복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에 관해서도 마음의 동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불공평에 관하여 생겨나는 반대에 대해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이를 무시해 버린다. 오직 그들은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여 로마로부터 받게 되는 형벌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이 범죄가 높은 위치에 앉아 있는 총독들에게 가장 큰 범죄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 식민지의 치리자들이 이 죄를 범할 경우에 그들에게는 얼마나 무서운 처벌이 임하겠는가?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 당하는 두려움은 이와 같다.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양심은 무디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사람들에 의한 보응이 위협해 올 때까지 온갖 죄악에 빠져 들어간다.

 

"40  형제들을 만나보고~~~~~"  ; 그들은 즉시 떠나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 형제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했다. 아직 어린 복음의 씨앗이 죽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허락만 되었다면 그들이 더 오래 머물러 있었을 것임에 의심은 없다. 그러나 상관들의 요청은 긴급하고 무력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그들은 그 요청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해야 할 일율 등한히 하지는 않았다. 형제들이 강건하도록 격려했던 것이다. 그들이 즉시 루디아의 집으로 갔던 것을 보면 교회의 수가 많아졌 음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교인들 중에서도 경건한 의무를 실행하는 열심에 관한 한, 루디아는 교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었으며 모든 경건한 사람들이 이 여자의 집에서 모이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