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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사도행전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2:47)

1. 성경 (행 2:43 ~47)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3)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4)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5)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6)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47)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요약본)
"43 사람마다 두려워 하는데~~~~~" ; 그는 이처럼 교회의 모습이 이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는 여러 다른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는 일도 생겨났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것은 교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생겨난 것이다. 어떤 분파가 생겨난다면 모든 사람들은 단호히 그것을 반대하며 또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것은 늘 혐오하였기 때문에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두려운 마음을 일으켜 그들을 억제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들로 인하여 한 순간도 그 상태를 보유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누가는 그 두려움이 어떤 종류의 것이었던가에 주목한다. 즉 사람들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는 두려움이 아니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조이게 하고 억제하여 그들이 감히 주의 역사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런 두려움이었다.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 이 부분도 역시 그 두려움의 영향을 설명하는데 보템이 된다. 여러 가지의 기적은 그 밖의 하나님의 모든 역사와 함께 그들에게 두려워하는 생각을 일으켜 주었다. 그것은 왜 그들이 하나님을 반대함에서 스스로 두려움을 느껴야 했느냐 하는데 대한 유일한 이유는 아니요,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할지라도 그들은 여러가지 지적에서 하나님이 사도들의 편에 있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이로서 우리가 다음의 결론을 얻게 된다. 즉 기적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복종하도록 해 주는 일에 유익할 뿐 아니라 또한 악한 자들로 하여금 어느 정도로 그들의 광포성이 수정되고 부드러워지도록 하는 일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다. 

 

"44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 "함께"로 번역된 헬라어의 본래의 의미는 '동일하게' 혹은 '하나로'의 뜻이다. 그것은 장소의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마치 누가가 그들이 동일한 장소에 상습적으로 함께 유숙하였다고 말한 것과 같게 여겨진다. 그러나 나는 차라리 그가 조금 뒤에 그들이 한 마음이 되어 있었다고 말하는 것처럼(4:32) 그들이 함께 일치한 생각을 가진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다음에 거기서 생겨난 결과로써 그들의 관용성에까지 이르게 된 것으로 그는 그러한 적당한 순서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이 자체 안에서 진정 형제애로 결합되어 있었으며 그 증거로 부자들이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었다는 사실을 우리로 보게 하는 것이다.  이제 이것은 인상적인 사랑의 예이다. 그래서 누가는 우리가 풍부하게 소유한 것에서 형제들의 빈궁을 구제해야 하는 일을 배우도록 하려고 그 사실을 기록해 준 것이다.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 복음을 진행시키는 일에 보다 큰 편의와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그들을 성전으로 이끈 것은 자주 출입하였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들을 성전으로 이끈 것은 그 장소의 신성이 아니었다. 그들은 율법의 그림자와 같은 일들은 폐지되었음을 알고 있었으며 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을 본받아서 성전 예배를 권장하고 싶은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전에는 많은 신심 있는 사람들이 모였으며 그들은 마음을 딴 데로 쏠리게 하는 자신들의 사사로운 관심사를 잠시 제쳐놓고 하나님을 찾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들은 자주 성전을 출입했다. 이런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이끌기 위하여 그들은 계속 성전에 있었다. 그들에게 영향을 준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겠는데 그것은 특히 사람들의 수효가 그처럼 크게 불어났으므로 그 사람들 가운데서 가르침을 공동으로 전해 주기 위하여는 개인의 집에서는 그것을 편리하게 운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떡을 떼며~~~~~" ; 그들은 공중 앞에서만 진정한 신앙심을 보여 준 것이 아니었고 그들의 개인생활의 과정과 방침도 같은 종류의 것이었음을 누가는 지적해 준다. 그들은 함께 식사하는 일이 보통이었고 또 그것을 간소하게 했다고 누가는 우리에게 지적해 준다. 왜냐하면 호화판의 연회를 벌이는 이들은  이처럼 친밀하게 함께 식사를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47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 이방인들 가운데서까지도 호의를 발견할 만큼 결백한 생활의 열매인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미워하였다는 것도 우리는 의심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누가가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는 여기서 착실하고 조금도 증오의 독에 감염되지 않은 부류의 사람들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신자들이 그들의 결백한 생활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호감을 샀으며 인정을 받는 그런 방식으로 자신들이 행동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 누가는 이러한 말로써 그들의 부지런함이 그 결과에서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기들의 능력의 최선을 다하여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주의 양무리 가운데로 끌어 모으려고 노력했다. 주께서 교회를 날마다 부흥시키셨기 때문에 그들이 수고한 노력이 결코 헛되거나 무효하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확실히 교회가 부흥하기보다 약화된다는 사실은 우리의 게으름 때문이거나 혹은 실상 우리의 죄 때문에 유래된 것이다. 한걸은 더 나아가서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이 교회에 더해졌다고 그가 말한 점도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우리가 교회 안으로 허입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구원을 얻는 수단이라는 것을 그는 가르치고 있다. 왜냐하면 교화 밖에는 죄의 용서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생명의 소망도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모든 신자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교회에 받아들여진 것은 뛰어난 위로인 것이다. 바로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 고 불리어지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