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alvin선생주석/사도행전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행2:18)

1. 성경 (행 2:14~36)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4)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5)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6)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7)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8)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19)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0)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21)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22)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23)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4)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5)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26)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27)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28)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29)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0)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31)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2)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3)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4)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35)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6)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요약본)
”14 베드로가 열한사도와 같이 서서~~~~~~” ; “서 서”라는 말로써 누가는 이 모임에서 베드로가 무슨 중요한 설교를 했다는 것을 지적해 준다. 왜냐하면 그들이 좀더 잘 알아듣게 하려고 할 때, 연사들은 그들 앞에 일어서서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설교의 요첨은 그들이 이미 본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이제 제시되셨다고 그가 추론한 것이다. 그러나 우선 그는 제자들이 술취했다고 말한 사람들의 잘못된 견해를 반박한다. 사람들이 흔히 아침에는 술취하는 일이 없지 않느냐는 타당성을 내세워 반박한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기(살전5:7)’때문이다. 그 깕은 그들이 부끄러워 빛을 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실히 이 악습은 심하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지당하다.

 

”17 말세에 내가” ; 이 증거로써 그는 메세아가 이미 나타나셨다고 증명한다. 요엘이 마지막 날에 관한 것으로 분명하게 언급한 것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교회의 완전한 회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이 예언은 전혀 마지막 시대에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욜2:29).그러므로 베드로의 말은 요엘이 말하려고 하는 의도와 일치한다. 다만 그는 설명의 형식으로이 말을 첨가한 것이다. 그것은 당시에 실추되었던 교회의 명성이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세로워지는 일을 통해서만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대인들이 알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내 영으로 ~~~~부어 주리니” ; 이미 언급된 바와 같이 교회는 성령의 주심으로써만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그들이 모두 교회의 신속한 회복을 기대하고 있기는 하면서도 그 회복이 어떤 방법으로 달성되어야 할 것이냐 하는데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책망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부어 주신다고 말씀하셨을 때에 그것은 다음과 같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즉 하나님은 결코 다함이 없는 유일한 샘에서처럼 그의 영으로부터 무한한 각양 은사를 사람들에게 부어 주신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바울이 증거하는 것인데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고전12:4)”라고 한것과 같다. 여기에서 우리는 값진 교훈을 배운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은혜 이상으로 더 훌륭한 은혜를 우리에게 주실 수 없으며 또 성령의 은혜 없이는 그 밖의 모든 것은 실로 무가치하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가당 간단한 형식으로 그 백성들에게 구원을 주시기로 약속하시려고 했을 때에 성령을 그들에게 주신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이사실에서 뒤따르는 일은 우리가 주신 바 성령을 받기까지는 아무런 좋은것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인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우리가 모든 영적 축복의 보고에 들어가며 하나님의 나라에까지도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여는 열쇠인 것이다.

 

”모든 육체에게” ; 일반적인 진술의 중요성은 다음에 올 사항에서 분명해진다. 먼저 모든 육체라는 포괄적인 문구가 씌여지고 그리고는 다음에 구분이 주어지는데 그 구분에 의하여 예언자는 하나님께서 나이나 성별은 전혀 구별하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을 한가지로 하나님의 은혜에참예하도록 차별없이 용납하신다는 사실을 지적해준다.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 “예언한다”는 이 말로써 그는 희귀하고 비범한 지혜의 은사를 말해 주려 하는 것이다. 바로 이어지는 그 다음의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한 대목도 같은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 의미는 이런 것이다. 즉 성령이 하늘로부터 부어지자마자 그들이 다 예언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즉 그러한 일은 사도 자신들 가운데서도 혹은 전체 신도의 무리 가운데서도 전혀 발생할 일이 없다는 주장이다.  거기 대해서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즉 예언자들이 그리스도의 왕국을 자기들의 시대에 적합한 형상으로 묘사하는 것이 그들의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말할 때에는 제단, 희생제물, 금이나 은이나 향 같은 봉헌물에 대해서 언급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거니와 이제 제단은 사라졌고 율법시대에 사용되었던 희생 제물은 폐지되었으며 또 주께서는 땅에 속한 부 이상의 보다 높은 무엇을 우리 손으로부터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과연 사실이다. 

 

“18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 이 말에 의하면 그 약속은 하나님을 봉사하고 예배하는 자들에게 한정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령을 결코 남용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자들과 조롱하는 자들에게도 막연하게 성령을 주셨다면  그렇게 하실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남용인 것이다.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 우선 우리는 20절의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어떤이들은 그것을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던 초림이라고 설명한다. 또 어떤이들은 그것을 부활의 마지막 날로 여긴다. 나는 두 견해를 다 찬성하지 않는다. 내 견해로는 예언자가 그리스도의 왕국 전체를 의미한 것으로 본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자신의 왕국의 완성으로 인도해 주시려고 육신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그때로부터 이를 ‘큰 날’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그는 어느 특정한 날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요 그 날을 복음이 처음 선포되던 날에서 시작하여 최후의 부활의 날까지로 간주하는 것이다.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 매우 주목할만한 귀절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마치 게으른 나귀를 위협과 공갈로써 구원을 추구하도록 몰아치는 것처럼 하늘과 땅을 어두움 속에 싸이게 한 다음에 만일에 우리가 그의 이름을 부르게 되면 그로 인하여 구원이 우리의 눈앞에 비치어주는 것을 보여 주시기 때문이다.  이 정황을 관심있게 유의할 필요가 있다. 

 

"22 나사렛 예수~~~~" : 베드로는 이제 요엘의 예언을 자기의 목적에 적용한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그로 인하여 회복의 시기가 이미 왔다는 것과 또 그 일 때문에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 약속은 중보자가 와야만 성취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상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은 모든 선물은 우리를 모든 것의 원천으로서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 주는 일 이외에 적당한 용도가 없다. 베드로는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것으로 즉시 시작하지 않는다. 다만 단순히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그것을 그의 기적으로 입증한다. 그 다음에 그는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한 뒤에 죽음에서 살아나셨다고 덧붙인다. 이리해서 더욱 더 분명하고 완전하게 그는 예언자들 중의 한 사람이 아니고 바로 만물을 회복하실 자로 약속된 하나님의 아들 그분이시라는 것이 나타난다.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 베드로는 기적을 세가지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능력을 새롭고 비상한 방식으로 기벅으로 나타나시며 적어도 그것으로 인하여 큰 경탄감을 일으키시기 때문에 그것들은 큰 권능이라고 불리워진다. 그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어떤 이상한 일이 생겨날 때에 더 감탄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것들이 우리를 경탄케 하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불려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표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주께서 사람들의 마음이 기적에만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높이 올려져서 훨씬 높은 곳으로 그들을 이끌어줄 것을 원하시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세가지 말을 사용한 것은 그리스도의 기적을 보다 높이 찬양하기 위함이요 또 그 용어를 거듭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들을 깊이 생각하도록 이끌기 위함이었다.

 

"23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 하나님께서 그처럼 뛰어난 능력을 주신 그 사람이 나중에 갖가지의 능욕과 고통에 놓여져 그처럼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얼른 보아서 설명이 잘 안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는 미리 거침돌을 옮겨놓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의 삶과 죽음을 똑같이 지배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되기 위해서 여기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중요한 한 귀절이 있다. 누가가 그리스도의 일을 말하고 있는 그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편적인 섭리가 전 세계에 나타나는 것이면서도 특히 그리스도의 지체인 우리 자신들에게 비치는 그 섭리의 거울을 우리가 그 자신의 인격 안에서 갖고 있는 것이다. 누가는 여기서 두가지의 교훈을 들고 있다. 하나님의 예지와 섭리이다. 하나님께서는 결정을 내리시기 전에 자신이 결정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시기 때문에 순서로 보면 예지가 먼저이지만 누가는 그것을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의 다음에 놓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특정한 목적에 대해서 훨씬 이전부터 지휘하지 않으신 것은 아무것도 원하시거나 명령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계획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섭리에다 그의 예지를 연결시키고 있다.

 

 "너희는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 설사 불법한 자들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섭리를 따라서 정하신 일을 수행했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을 복종한 것은 조금도 없다. 왜냐하면 복종이란 자발적인 감정에서 솟아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법한 자들의 의도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더구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하나님을 복종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복종이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에 의존되어 있는 것이다.

 

"못박아 죽였으나" ; 그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서 언급한 것은 특별히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즉 부활이 보다 확실하게 믿어져야 되겠기 때문이다

 

"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 '사망의 고통'이라는 것은 육체의 감각 이상의 무엇을 의미한다고 나는 이해한다. 죽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성실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주시는 저주라고 들려질때 불가불 죽음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바로 죽음 그 자체보다도 훨씬 큰 재앙을 빚어 내는 불안과 공포가 생겨나게 되는 일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그리스도는 이러한 종류의 고난과 더블어 싸우셨다고 말하고 또 승리하셨다고 말한 것은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이제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25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 그리스도의 부활은 분명하고 확실한 예언에 의하여 증언되었으며 또는 예언자들의 가르침의 온전한 기록에도 증거를 얻을 수 잇는 것인데, 그것을 전혀 새롭고 낯선 것처럼 유대인들에게 입증해야만 했다.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 우리는 이 원칙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와 지금 함께 계시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눈 앞에 그를모셔야 한다. 그리고 그가 나타나시기 전에라도 그래야 하는데 그것은 신앙의 눈이란 현재 일어나는 경험보다도 멀리 앞을 꿰뚫어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혼란한 사태나 모든 위험 가운데서 신앙은 언제나 하나님을 인도자로 그 앞에 모시는 일을 특질로 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아는 일만큼 우리를 지탱해주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26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 자신에 넘치는 확신 뒤에 영혼의 즐거움, 그리고 몸 전체의 조용한 침착이 따라온다.

 

 "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 누가는 현재의 주재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므로 이 말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신자들은 자기들의 아버지의 성품을 모방하고 닮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에 '온유함'이 그들 가운데서 크게 찬양되었다.

 

"28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셧으니~~~~~" ;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죽음에서 생명으로 회복되었음을 의미하고 있다.

 

"30 그는 선지자라" ; 그는 두가지 이유에서 다윗이 자기의 시대보다 훨씬 뒤의 일까지 말하여야 했다 해도 놀랄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첫째는, 그가 예언자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다윗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약속 자체가 더욱 높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하나님은 맹세를 하신 것이다.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살아나셔야만 했다는 것을 다윗의 증언에 의하여 입증한 후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즉 자기와 그 밖의 자기의 동료들은 다 이 부활을 친히 목도한 증인들이라는 것이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 오른손이란 이 경우에 성경의 다른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그 손 혹은 능력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람들이 그가 죽음으로써 파멸되었다고 생각하였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그처럼 뛰어난 영과으이 정상에까지 올리우신 것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였다는 사실을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 그들이 자기들의 논으로 친히 목도한 결과 자체에서 그 권능이 그리스도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그들은 쉽게 결론 지을수가 있었겠지만 주의 영광을 그들이 더욱 더 확신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배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최고의 영광으로 높여져야만 할 것을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오래전부터 정하신 것이라고 다윗의 증언으로서 입증하는 것이다.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 권력행사의 합법적인 방식이란 왕이라든지 혹은 그 밖의 다른 이른으로 호칭되는 통치자들이 자기가 하나님에 의하여 임명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경우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윗도 당연히 통치의 명령권은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시110:1)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이스라엘 집은 약속된 그리스도가 오실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누구신지를 그들은 알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