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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요한복음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요11:44)

1. 성경 (요11:39 ~ 44)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0)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1)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2)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3)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44)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요약본)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 이것은 불신의 표시다. 마르다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하여 자신이 기대할 수 있는 능력 이하로 주님을 대하고 있는 것이다. 악의 뿌리는 그녀가 하나님의 무한하고 측량할 수 없는 능력을 자신의 육적인 감각에 의하여 헤아려졌다는 점에 있다. 우리의 마음이 잘못된 생각에 의하여 지배될 때, 우리는 주님을 우리 마음에서 추방하여 주님이 우리 안에서 행하실 일을 이루지 못하도록 만든다.  물론 마르다가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라고 말할 때 마르다는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혼돈되고 불투명한 믿음은 우리가 구체적인 상황에 이르렀을 때 이를 활용하지 않는다면 별로 유익이 없는 것이다. 나아가서 우리는 마르다에게서 최상의 사람들의 믿음에도 많은 결함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녀는 그리스도에게 달려나와 그를 맞은 첫번째 사람이었다. 이것은 보통 이상의 믿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 주님의 길에 어려움을 제기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까지 미칠 수 있도록 우리의 감각이 포착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능력을 하나님께 돌릴 줄 알아야겠다. 그리고 만일 한 가지 약속이 우리에게 충분한 증거가 되지 못한다면, 어쨌든 하나님께서 두 번, 세 번 확증해 주실 때는 마르다처럼 묵묵히 따르도록 하자.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 주님은 마르다가 들었던 약속에서 충분한 희망을 걸지 못한 점을 들어 그녀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고 있다. 이 말씀에서 요한이 말로 표현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미 앞에서 예시한 대로, 주님께서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이를 의미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기대하지 않았음을 인하여 마르다는 책망을 받았다.

 

”네가 믿으면” ; 이 말씀은 믿음이 우리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영광이 그의 일 가운데 비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이 우리에게 나타나도록 그 길을 평탄케 해 주기 때문에 언급되었다. 불신은 하나님의 길을 가로막는다.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의 뜻에 의하여 구속을 받는 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의 악의가 하나님의 능력을 저항하고 반대하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저항하고 반대하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 주의하여 볼것 같으면 이적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적을 통해 그의 손의 능력을 나타내시며 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시기 때문이다. 마르다는 그리스도의 두번째 선언에 만족하여 돌이 옮기는 것을 허락했다. 그녀는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이 명령을 내리시는 것을 보았을 때 마르다는 기꺼이 주님의 명령에 의존한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 참으로 기도를 위해 준비된 마음의 표현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바로 부르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연합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지상에서 들려 하늘에 오르기 전에는 될 수 없다. 물론 이것은 항상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깊은 육신의 더러움에 빠져 있는 위선자들은 그들의 심각한 표정에 의하여 하늘을 끌어내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위선자들이 하는척 하는 것을 하나님의 자녀들은 진심으로 해야한다. 그러나 그의 눈으로 하늘을 우러러 보는 자는 정신적으로 하나님을 하늘에 가두어 두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편만하여 계신 분으로써 천지에 충만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이 세상을 떠나 천상으로 들리기 전에는 하나님에 대하여 지나치고 세상적인 생각과 상상을 계속하기 때문에 성경은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의 보좌라고부르고 선언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히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들을 자신과 함께 하나님께로 데려가기를 원하셨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 나사로의 생명을 얻은 주님은 이제 아버지께 감사한다. 주님께서는 이 능력을아버지께로부터 받았다고 말하고 스스로 능력을 주장하지 아니함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대행자임을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사람들로 아버지께서 자기를 보낸것을 알고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하게 하기 위하여 감사를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 이 말씀은 주님께서 원하는 만큼 많은 이적을 행하실 수 있는 은혜를 아버지께로부터 받지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경고하는 말씀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아버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만을 행하시기 때문에 기도할 필요도 없다고까지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람들로 이 일이 참으로 하나님께로서 나온 일이라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하여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셨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 주님의 거룩한 능력은 주님께서 나사로를 손으로 만지시지 아니하고 그의 음성으로만 외치셨다는 사실에 의하여 더 잘 나타나고 있다. 동시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의 말씀의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고 있다. 주님께서는 그의 말씀으로 어떻게 죽은 자에게 생명을 회복시켜 주셨는가?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나사로를 살리시는 가운데 우리가 매일같이 믿음의 지각을 통하여 경험하는 주님의 신령한 은혜를 눈으로 볼 수 있는 표적으로 나타내신 것이다. 주님은 그의 음성에 죽은 생명을 살리는 힘이 내재해 있음을 보여 주셨다.

 

”죽은 자가 수족을 배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 사도 요한은 나사로가 무덤 속에 안장되었던 그대로 나왔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수족을 동엿던 배를 언급하고 있다.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 주님께서는 증인으로 옆에서 보고 있던 방관자들의 손을 이용하시기를 원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