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 (요 9:6 ~ 12)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6)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7)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8)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9)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0)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1)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12)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요약본임)
”땅에 침을 밷어~~~~~” ; 그리스도의 목적은 그 소경에게 시력을 회복시켜 주는데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불합리한 방법으로 일을 시작하신다. 이는 주님께서 그의 눈에 진흙을 바름으로 말하자면 그의 소경 됨을 갑절로 소경되게 하시기 때문이다. 누구나 주님께서 그 불쌍한 사람을 조롱하고 있거나 미친 사람처럼 상식 이하의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하심으로써 그 소경의 믿음과 순종을 단련시키고자 하셨다. 이는 그로 모든 사람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었다. 그 소경이 주님의 말씀만 받고서 그의 시력이 회복될 것이라고 완전히 확신한 것은 보통 믿음의 증거가 아니었다. 그는 이 믿음을 가지고 가라고 하신 곳에 속히 달려갔다. 그리스도를 순종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일들이 많았을지라도 그가 단순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순종했다는 것은 또한 그의 믿음에 대한 놀라운 찬사가 아닐 수 없다. 경건한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만족하고 믿음없이는 믿을 수 없어 보이는 사실을 미리 확신할 때 그것이 참된 믿음에 대한 시금석이다.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추면 즉시 믿음은 따라오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신실한 안내자가 되실 것을 확신하는 사람마다 고요히 자기 자신을 그의 지배하심에 굴복시키는 것이다. 만약에 누군가 그 소경은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알지 못하고 또 하나님의 아들로서 받아야 마땅할 존귀를 그리스도께 돌리지 못했다고 이의를 제기해 온다면 그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분으로 믿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순복했고 또한 주님께서 참되신 분이심을 의심하지 않음으로 그리스도에게서 오직 신적인 것만을 보았다. 더우기 그의 믿음이 더 칭찬을 받아 마땅함은 그가 그렇게 적은 지식을 가지고서 자신을 그리스도께 완전히 바쳤기 때문이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 진흙이나 실로암 물에 물론 눈을 고칠 만한 효능은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자유로이 또한 자주 외적인 상징을 기적으로 장식하셨다. 이것은 신자들로 하여금 표적의 사용법을 잘 알게 하기 위해서나 혹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 아래 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나 또는 주님께서 수여하시고자 하는 대로 그의 각 피조물 안에는 그만큼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먼지와 침으로 만들어진 진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물으면서 그것을 그리스도의 비유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나는 이 비유를 신뢰한다기 보다는 지나치게 교묘하기 때문에 버리고, 다음과 같은 단순한 견해로 만족한다. 즉 사람이 처음에 진흙으로 만들어진것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의 눈을 회복시키는데 진흙을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온 몸을 창조하시는데 사용하신 똑같은 능력을 그리스도께서 그 소경의 몸의 일부분에 사용하신 것을 증거하기 위함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 주님께서 장애물을 제거하시고 그 소경의 눈을 열어주는 것이 어느 사람이 진흙을 씻어 내는 것과 같은 어려운 일이 아님을 이 표적을 통해서 선언하시기를 웒하셨을 것이다. 한편은 사람이 그의 눈에 진흙을 바르는 것과 같이 사람의 시력을 주관하는 것이 그의 능력에 속함을 선언하시기를 원하셨을 것이다. 나는 이 후자의 해석을 더 좋아한다.
또한 주님께서 그에게 실로암 못에가서 씻으라고 명한 것은 아마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현재 하나님의 능력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 자신들의 과실임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사8:6 참조)
@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느니라 (사8:6)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 많은 사람들은 그가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는 하나님의 새로운 능력이 그에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나님의일에 하나님의 위엄이 밝게 나타나면 나타날 수록 그만큼 하나님의 일은 사람들 가운데서 호응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의심은 기적을 입증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는 그들이 소경으로 하여금 자기 간증을 하게 함으로써 더욱 그리스도의 은혜를 찬미케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이 기적의 사실을 더욱 확실하게 드러낸 모든 세부적인 일들을 모으고 있다.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 순종의 이러한 결과는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마다 모든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용감하게 앞으로 전진할 것을 요구하며 주님의 인도하심과 권위에 의해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간에 그것이 결과적으로 잘 될 것을 의심하지도 말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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