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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요한일서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요일3:10)

1. 성경 (요일 3:7 ~ 12)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7)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10)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11)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12) 

 

2. 묵상 (Calvin선생주석)

"7.  의를 행하는 자는~~~" ; 사도 요한은 여기서 우리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사실은 바로 우리의 선한 행위에서 나타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가 말 하는 그리스도와 그의 지체들 사이의 동일성은 그 열매로 나타난다. 이것은 마치 그가 "이 진리와 증거를 우리 생활에서 나타내려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5장 25절에서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고 권고하고 있는 말씀과 같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발걸음과, 손, 또 그들의 언어와 눈이 죄로 사로잡히게 될 때, 마치 그들의 마음 속에서 이 의로 움이 완전히 매장되어 버린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8. 죄를 짓는 자는~~~~~" ;  '행한다' (짓다)는 이 단어는 외적인 행동을 나타 내므로, 그것은 인간이 악하고 불의하게 행동할 때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으 로서의 생활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와 반대로 마귀의 종노릇을 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그런 자들이 그리스도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인가 하는 사 실을 더욱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를 모든 의의 원천으로 표현함으로써, 마귀를 죄의 우두머리로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는 의 로우며, 또 자신의 행위를 통하여 그 의를 나타내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 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 도시사도 요한은 그 외의 다른 모든 사람들을 마귀의 동류들이며, 마귀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로 추방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로운 사람들과 마귀의 중간 상태에있는 사람들은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사단은 그리스도의 의가 다스리지 못하는 곳에서 횡포를 부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마니교도들처럼 두 가지 서로 반대되는 원리를 생각하는 것 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마귀가 본질적으로 창조시부터 원래 마귀였던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타락으로 인하여 마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 다. 또 우리는 마귀가 하나님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을 만큼 등등하지도 않 았으며, 따라서 그가 할 수 없이 억지로 억압을 당하고, 그의 창조주의 뜻과 중허락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하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지막 절에서 그는 하나님에게서 난 자들과, 마귀에게 속한 자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그는 마니교도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런 (변화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전자( )는 그리스도의 성령에 의하여 지배를 받고, 후자()는 하나님께서 믿 지 않는 자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준 사단에게 허락된 자들이라고 생각한다.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합이니라" ;  사도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의로우신 분이 라고 말하였을 때, 그 말은 그리스도만을 개인적으로 지칭한 것이 아니고, 그를 의()의 원천이지며, 원인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제 마귀가 죄를 짓는 다고 그가 말할때, 사도 요한은 마귀의 전 지체, 곧 모든 버림받은 자들을 모두 포함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사람을 범죄하도록 충동 칠하는 것은 모두 마귀에게 속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 우 리는 마귀를 따르는 무리들과, 그의 지배를 받는 모든 자들은 범죄하도록 포기되어버린 자들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언급하 고 있는 것처럼 처음부터' 라는 뜻은, "말씀이 태초에 계셨다" 라는 그 영 원을 그가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는 굉장한 차이 가 있다. 하나님께는 시작이라는 시간이 있을 수없다. 그러므로 말씀이 항 상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그가 시작되신 시간을 우리는 어느 때라고 지 적할 수 없으며, 필연적으로 그의 :영원이라고 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요 한은 마귀가 세상의 창조시부터 배교자가 되었으며, 그 이 후 마귀는 계속 그 의 독()을 사람들에게 살포하는 일을 그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  사도 요 한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내용을 다른 말로 다시 반복하고 있는데, 곧 그리 스도께서는 죄를 도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 여기에서 두 가지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데, 최초의 지배 아래 있는 사람들은 결코 그리스도의 사람들로 인정을 받을 수 없으며, 또 그리스도의 지체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는 곳에는 마귀와 죄악이 모두 소멸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요한은 그 다음 문장에서, 죄를 짓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덧붙이고 있는데, 이것은 과거의 것이 사라져버렸다는 데서 오는 결론이다. 이미 내가 말한 것처럼, 필연적으로 의와 함께 ,하는 그리스도의 ~왕국은 죄 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불일치에서 자연히 나타나는 논증이다. 나는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이미 설명을 하였다. 사도 요한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전적으로 모든 죄에서 자유함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며, 그들의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려 고 진심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참으로 이 칭호를 어떤 사람에 게도 줄 수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펠라기안파들과 카다리파 사람들은, 모 든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천사와 같은 순한성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하 면서 귀절을 증을 이 성경 비난한다. ,우리 시대에도, 재세례파의 일부에서 이 광 재현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완전성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양식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런 자들의 잘못을 찬성하지 않는 한 사도 요한의 이 말들은 그들 의 잘못을 논박하기에 충분하다.

 

그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라고 발하고 있다.이 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순간적으로 개조시키시는가  아니면 우리 안에 아직도 우리가 죽을 때까지 .옛사람이 [남아 있어서 그 중생이 시작되고 있는 것인가를 살펴보아야 하겠다. 만일 갱생()이 아직도 충분하게 완전히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오직 자체의 한계 안에서 죄의 멍에로 부터; 우리가 자유함을 얻은 것 기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날마다 많은 허물과 최에서 이번어 나려고 노력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 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직도 옛 본성의 공간재들을 그들 속에 계속 지 기다. 니고 있기 때문이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께서 죄의 욕망을 제거하여 주지 고 있기 때문에, 중생의 마지막에는 죄를 이기고, 하나님께로서 난 모든 사 의롭고 경의건한 삶을 '살게 되리라는 사도 요한의 논리는 확립된다. 없 탑들이 { ,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씨'라는 말을 같은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나님 의 구성령께서 경건한 사람들의 마음을 사랑으로 확고하게 서도록 만들어 주 심으로 육체적인 모든 번뇌가 그들을 사로잡지 못하도록 한다. 그러나 습 관이 되었고, 굴레를 쓰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제재를 받게 된다. 한마디 로[요한은 선택받은 자들의 타월성을 성령께 돌리고 있는데, 그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억제하며, 또 죄가 번성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 사도 요한은 경 건한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잘 다스림을 받고 있으므로, 그의 인도하심을 올바르게 받고 있다는 이 사실을 높이 평가하고 또 분명히 선포 하고 있다. 이것은 가톨릭의 가르침과는 아주 다르다. 솔본느 학파들이 인 간의 의지는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 분 별할 수 없다고 고백한 것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성령의 사역 은 우리가 선과 악을 구별할 자유 선택권으로 남겨 두었다고 생각한다. 여 기에서 그들은 인간의 능력으로 저항할 수도 있는 성령의 그 은혜를 자의 ()로 순종하는 인간의 공적을 바로 여기서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들은 성령의 은혜를, 만일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바르게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은 들여기서 매우 다르게 말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범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성령의 역사하심이 매우 효과적이어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계속 의()에 복종할 수 밖에 없다 고 말하고 있다. 여기 이 말씀은 성령께서 우리를 가르치심으로 그 의지가 형성되어, 의()아닌 다른 것을 행할 수 없다고 가르치는 유일한 성경 귀 절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새 마음을 주셨으며, 또 그의 자녀들에게 이것을 약속하셔서 그의 자녀들이 그의 계명 안에서 행 하도록 약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선포하시고 있기 때문이다. 더 구나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 속에 매우 효율적으로 역사하시 는 방법을 보여줄 뿐 아니라, 성령께서 그의 은혜로 우리 마음을 끝까지 지 켜주셔서 새로운 생명을 받은 사람은 끝까지 변함없이 인내하게 된다는 사 실을 분명히 선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솔본느 학파들처럼, 인간이 자유로 따 률 수도 있고, 배척할 수도 있는 중립적인 어떤 동기가 있다고 생각하여서 는 안된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도하심을 받기 때문에 끊임 없이 의를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더구나 궤변가들의 궤변적인 반대는 쉽게 논박이 될 수 있다. 그들은 이 런[방법으로 의지가 인간에게서 .박탈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타락한 본성이 부패한 경향을 띠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인간이 다시 선한 상태로 되기 위하여 그 타락한 본성을 회복할 필요가 필연적으로 있는 것이다. 인간이 선한 상태에서 즉시 .타락하였기 때문에, 동일한 성령께서 그가 시작하신 것을 끝까지 이루실 필요가 있다. 공적에 관한 한, 해답은 간단하다. 즉 인간이 아무 것도 받을만하지 않다는 것은 불합리하게 여겨질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은 선행을, 성령의 은혜로부터 흘러나오는 선으로 여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선행은 자발적인 그것이기 때문이다. 선행은 그것이 인간 자신의 것인 것처럼 인간에게 값없이 돌려지는 상을 받 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제기된다. 즉,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남을 받은 어떤 사 람에게 있어서 하나님께 대한 경외와 두려움이 소멸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사도 요한의 말의 결론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다르게 생각하는 이런 .사람들은 다윗을 그 실예로 들고 있다. 한 때 다윗은 야수같은 어리석음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으며, 이때 그에게서는 아무런 영 적인 빗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있다윗은 시편 51편에서 하나님의 영이 다시 그를 회복시켜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는 결론이 나옴직도 하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그의 선택 하신 자들을 거듭나게 .하시는 씨앗이 영원히 타락하지 않고, 그 능력을 나 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다윗에게서처럼 이 씨앗이 얼 마 동안은 질식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모든 경건 함이 그의 안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을 때, 그 꺼진 재속에 살아있는 불씨 가 숨어 있었다. .사단은 선택받은 사람들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은 무엇이든 지 다 뿌리째 뽑아 내리려고 애를 쓰고 있다. 최고의 것이 사단에게 빼앗기 는 것 같을 때, ,그러나 그 속에는 언제나 나중에 싹이 날, 숨어 있는 뿌리 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여기서 인생의 계속적인 과정이 아닌, 어떤 '한 행위그들이 그것이라고 부르는 것처럼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광신적인 사람들은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영원한 씨앗이 있는데, 이 씨앗은 모태에서부터 그들이 항상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몽상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사도 요한이 영원한 선 택에 대하여 논하지 않고, 중생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고 아주 신랄하게 사 도 요한을 끝까지 비난하고 있다. 또 두번째로 공공관적인 것을 하는 사람들 이 있으니, 곧 이 사람들은 요한이 말한 바대로 믿는 사람들은 범죄할 수 없 다는 미명 하에서, 그렇다면 주민는 사람들에게는 세상 만사가 다 합법적이라 고 비꼬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마음내키는 대로 무분 별하게 행동하여도 된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성령이 인도하시는 곳에 서는 죄가 형성될 수 없기 때문에, 간음, 도둑질, 살인 등을 행하여도 된다 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 요한의 뜻은이들의 주장과는 전혀 다르다. 그가 믿 는 자들이 범죄하지 않는다고 부정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의 말씀 을 따라, 주민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법을 새겨주셨기 때문에 :범죄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렘 31용33).

 

"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 이 짧 은 몇 마디 말 속에서 요한은 자기들의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로써 그들이 하 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의 신분과 이름이 헛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선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표적으 로써 그들은 자신들이 마귀의 자식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 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그들이 그렇게 분명하게 나타남으로써 온 세상의 공개적인 인정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거룩한 하나님의 양자됨의 열매와 그 효과는 항상 생활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 여기서 의를 행하는 것과 죄를 범하는 것 은 아주 서로 다른 것으로 반대가 되고 있다. 의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만 을 신실하게 경외하고 또 하나님의 계명 안에서 행하는 것-인간의 연약 한 능력에 미치는 한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의()란 율법을 완전하게 치키는 것을 말하지만, 믿는 사람들은 이 완전한 율법 준수와는 항상 먼 거 리에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들의 율법의 위법과 실패를 그들에 게 죄로 돌리지 않으시고, 하나님께 향한 그들의 절반밖에 안되는 순종을 의 로 받아주셔서 의로 인정을 하여 주시는 것이다.그러나 요한은 의롭게 살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가 부르신 모든 사람들을 그의 성령으로 중생시켜 주 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 생명을 김업은 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양자된 영 원한 증거이다.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 사도 요한은그의 목적에 일반적인 교 리를 적용시키고 있다. 이제까지 그는 믿는 사람들에게 형제 사랑을 권고하여 왔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참된 의에 대한 총 개요를 동일한 방향으로 결국론짓고 있다. 이렇게 이 귀절은 설명문으로 첨가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전() 의가 형제 사랑에 귀결되고 있는 이유를 앞에서 설명한 바 있 다. 하나님 사랑이 물론 제일 첫째이다. 그러나 대유법 ()에 의하면 형 대인 것 같으면서도 그 속에 모두 포 인간 사랑으로 있기 때문에 모두 의인으로 인정을 제 사랑에 따르는 이 하나님 사랑은 반대 함이 된다. 그래서 사도 은, '율법을 성취하도록 요한은 선행과 가득차 있는 사람들 사랑으로 가득차 받는다고 선포하고 있다. 그는 믿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가르침을 받 았으므로, 그의 정의가 그들에게 새로운 것으로 보여서는 안된다고 말함으 로써 그의 이 진술을 확증하고 있다.

 

"12. 가인같이 하지 말라~~~~~~" ;  반대적인 상황으로부터 끌어내는 또 다른 확증, |증오의 대상인 버림받은 자와 또 마귀의 자녀들의 생명이 말하자면, 바로 이런 가인같은 자들이다. -사도 요한은 그런 거물로서 가인을 제시하 고 있다. 이 말은 한편으로는 .믿는 자들에게 '위로가 되고 있다.왜냐하면, 사도 요한은 형제들아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결론짓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설명은 주의깊게 살펴보아야.할 필요가 있는데, 그들은 날조한 어떤 공적을 거룩하게 여기고, 쓸데없는 일로 괴로움을 받으 면서, ,하나님께서 그들 자신을 잘 받아주시는 줄로 생각하고 있다. 수도승 듈처럼, 그들은 거만하게 그들 자신의, 생활 -태도를완성된 상태로 부르고 있다. 보고황권 알아래서의 하나님 경외란 이교의 :폐물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질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유일한 의는 우리가 형 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사도 요한은 선언하였다. 더구나 증오와 허위, 질 투와 반목이 팽배한 곳은 마귀가 지배하는 곳이라고, 그는 덧붙여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형제 사랑이 하나님. 사랑을 원인으로하여 나 타나는 결과이기 때문에 현제 사랑은 하나님 사랑에서 분리될 수 없다는 사 실을 역시 기억하여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사도 요한이 통형제 사랑을 찬양 하는 바로-그 이유는 형제 사랑이 바로 하나님 경외의 증거가 되기 때문이 다. 가인이 제그의 행위가 악하여 그의 동생을 죽였다고 말함으로써 사도 요 한은 불경건이 지배하는 곳에는 증오가 모든 생활 [점령하고 있다고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그는 아벨의 행위를 우리에게 깨우쳐 줌으로써 세상이 이유없이 우리를 미워하거나 아무 근거없이 도전하여 올 때에, 끈기 있게 인내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