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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요한일서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요일2:18)

1. 성경 (요일 2:18 ~ 23)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18)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19)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20)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라 (21)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22)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23) 

 

2. 묵상 (Calvin선생주석)

"18. 이것이 마지막 때라" ;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괴롭힐지도 모르는 공격들에 대항할 믿음을 확고히 하고 있다. 교회의 통일성을 깨뜨리고, 또 교회들을 분산시켜 버리는 두가지 악을 행한 여러 종파들이 이미 나타났었다. 사도 요한은 믿는 사람들이 동요하지 않기 위해서 무장을 해야할 뿐 아니라, 그것을 다른 결론이 나도록 변화시켜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다.  그는 마지막 때가 이미 다가왔으므로 그들이 크게 경계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그가 "많은 거짓 무리들이 수없이 나타나고 있으니 넘어지지 않도록 깨어 있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 사실에서 그리스도께서 오실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갑자기 오셔서 우리가 놀라고 당황하지 않도록 주의깊게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여야 한다. 또 오늘날 우리는 깨어 일어나 사단이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이때,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모든 그것들이 마지막 때의 징조인 것이다.

 

그러나 요한의 죽음 이후 많은 세대가 흘러갔어도 주님이 오시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예언의 허위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여기에 대하여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사도 요한은 성경에 나타난 일반적인 방법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나타나실것 밖에 믿는 사람이 기대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경고하여 주고 있는 것이라고. 그러나  사도 요한은 재림의 날자를 정확히 제시한 것도 아니며  장차 교회에 일어날 일들과 세상에서 교회가 유지되는 동안 일어날 많은 사건들에 대하여 당시의 사람들을 속인 것도 아니다. 참으로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의 영원성을 가슴에 품고 있다면 그와 같이 긴 시간도 우리에게는 한 순간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 만물이 때가 차서 그리스도의 마지막 계시 이외에는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는 그 동안을 마지막 때라고 부르는 사도 요한의 목적을 이해하여야 한다.

 

"적 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  사도 요한은, 이런 일들이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믿는 사람들이 이미 처음부터 장차 교회를 깨뜨리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그것을 배우고 경고받았다는 ,사실을 쉽게 추리하여 낼 수가 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고백하는 믿음으로 주의깊게 자신들을 지키고 장차 2세대에게 주의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고 경고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회들이 이렇게 훈련받기를 원하셨다.

왜냐하면, 만약의 경우 알면서도 고의로 속아 넘어갔을 때 무지 때문에 속았다는 변명의 여지를 없이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의 모든 세상 사람들이 마치 적그리스도에 대한 경고가 한마디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비참하게 속아 넘어간 것같은 모습을 보게된다.

 

더구나 로마교 교황청에 장차 나타날 적그리스도에 대하여는 공통적으로 전혀 이 사실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없다. 그들은 대단히 어리석어서 교황의 횡포가 그들을 덮어씌우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가졌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그들이 듣지 않은 것처럼, 또 그리스도에게서 멀리 떠나있는 유대인들처럼 참으로 완전히 똑같은 사태가 이들 로마교 안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 만든 상상적인 메시아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와는 너무 동떨어진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율법이나 예언자들로부터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보여주려고 한다면, 그는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교에서는 적그리스도를 3년 6개월 동안 교회를 괴롭히는 자로 생각하고 있다.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나타나는 모든 표적들은 적그리스도가 분명히 로마 교황 중에서 나타날 것을 지적하여 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매 3년 마다의 적그리스도는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로마교 교도들에게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성령으로 깨닫게 될 뿐 아니라, 그가 나타내는 그런 표징으로도 그가 적그리스도임을 알게 될 것을 우리는 기억하도록 하자.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 이것은 적그리스도가 마치 한 나라의 어떤 사람으로 그들이 잘못 생각한 것처럼 정정하여 덧붙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적그리스도가 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환상에 빠져 있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장차 배도하는 일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그는 분명히 적그리스도는 왕국이나 한 체제일 것으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살후 22 : 3) . 그는 일반적인 악의 일종으로서 배도하는 일이 전 교회적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는 이 배도의 우두머리를 하나님의  성전에 않아 자신의 신성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그리려는 자로서 그리스도의 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잘못에 빠지기 않으려고 조심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사도 바울이 설명하는 적그리스도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나는 그 성귀에 대해서 이미 설명을 하였으므로 그것으로 충분한 줄 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이미 적그리스도가 많이 나타났다고 한 그의 말과 그 성귀를 어떻게 일치시킬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 나는 요한이 장차 산발적으로 나타날 전령사들로서 많은 적 그리스도들이 이미 나타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예를 들면 세린머스(Cerinthus); 말시온, 발렌티누스, 에비온과 아리우스 등 그 후에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일어난 마귀의 왕국에 속하는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다. 정확히 말하면 적그리스도는 당시에 현존한 것은 아니었고, 그 사악한 신비가 은밀히 역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믿는 사람들이 이 거짓을 추방하는 데,  더 신중하고 조심하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이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성령께서 성도들로 하여금 원수가 다가오고 있는 징조만 보여도 무장을 든든히 갖추어야 한다고 명령하신다면, 사단이 잔인한 .폭력으로써 교회를 압박하고 공공연하게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지금 이 때야말로 조금도 방심하거나 졸아서는 안될 때이다.

 

"19.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  사도 요한은 다른 반대를 미리 앞세우고 있다. 즉 교회가 이런 해독적 존재를 낳았으며, 한때 교회가 이들을 그 안에서 마치 키운 것같이 보인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무수하게 외부에서. 우리를 대적하여 오는 적들보다는 우리 가운데서 참 신앙을 고백한다는 자들이 타락하여 떨어져 나갈 때 믿음 약한 사람들이 더 많이 넘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그들은 교회 안에서 이탈하여 나간 자들이므로, 참 교인들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반대를 더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은 교회가 항상 이 악마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주로 인정하지 않으서면도 한때 입술로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신앙을 고백하던 많은 위선자들을 교회가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라고 말한 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교회에 출석하고 경건한 사람들의 일원으로 간주되어 왔다는 것을 사도 요한이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믿는 사람들의 이름 아래 거짓되게 숨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참 교인은 아니라고 사도 요한은 부인하고 있다. 마치 결코 알곡이라고 부를 수 없는 쭉정이들이 타작 마당에서 알곡과 함께 섞여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 사도 요한은 타락하여 나간 자들은 결코 교회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인치신 그의 백성들은 사도 바울이 밝힌 것처럼(딤후 2:19) 하나님께서 끝까지 그들을 지키신다. 그러나 여기 또 한 가지의 문제가 제기된다. 그리스도를 믿었던 것처럼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타락하는 사건이 종종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점에 대하여 복음을 고백하는 사람들 중에 세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본다. 즉 내적으로는 악한 양심의 질책을 받으면서도 경건을 가장하는 자들이 있고, 또 두번째로는 더 기만적인 사람들로서, 이들은 사람 앞에서 가장할 뿐 아니라, 자신의 눈을 현혹시켜, 마치 하나님을 참되게 경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세번째 종류의 사람들은 살아있는 믿음의 뿌리를 가지고,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진실을 참되게 나타내는 사람들이다. 먼저 설명한 두 부류의 사람들은 안정성이 결여된 자들이다. 요한이 교회와 불화할 수 없다는 사람들을 말할 때, 그는 곧 이 세번째의 사람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그들의 마음에 새겨주신 그 징표는 결코 지워질 수가 없다. 뿌리를 굳게 내린 썩지 않은 씨앗은 뽑히거나, 멸망당할 수가 없다. 요한은 여기서 믿는 자의 선택이 확고한 것은 인간의 지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까닭이라고 발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소명이 효과적이고, 그의 참으심이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를 갖게 된다. 한 마디로, 사도 요한은 타락하여 나가는 자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참 지식을 철저하게 갖지 못하고, 다만 약간의 일시적인 지식만을 가진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  사도 요한은 교회의 시험은 유익하고 필요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이런 그의 논리를 따르면 걱정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교회는 마치 타작 마당과 같아서 쭉정이는 바람이 불려가고, 알곡만 남게 될 것이 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쓰레기와 잡동사니들로부터 교회를 정결케 [하시 려고 교회의 모든 위선자들을 추방하실 때 행하시는 일이다.

 

"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  사도 요한은 그가 그렇게 열심으로 교인들을 경고한 이유에 대하여 겸손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그들이 마땅히 잘 알아야 할 내용에 대하여 무지하고 생소하다는 암시된 질책을 받아야 할 때, 그들은 마땅히 사도 요한의 이 권고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같은 방법으로 사도 바울도 로마교인들에게 그들이 유능하고 다른 사람들을 권고하기에 적절한 지혜있는 사람들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다. 동시에 사도 바울은 로마 교인들이 그들의 의무를 깨닫는다면 그 의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롬 1415).  또, 그는 이것을 아첨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고, 그들이 선포하는 내용이 무식한 사람에게나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운 사람들에게 모두 적절하고 유용한 것이므로, 그들의 가르침이 어떤 계층의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배척을 받지 않도록 신중하고 현명하여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우리는 사람들의 귀가 상당히 까다롭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경건한 사람들은 물론 그렇게  까다로와서는 안된다. 그러나 유능하고 현명한 교사는 그가 모든 사람에게서 들음으로 얻을 수 있는 어떤 것도 생략하는 법이 없다. 우리는 말하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지식을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는, 그가 말하는 내용에 주의와 존경심을 갖지 않게 되는 것이 분명하다.  그의 찬양으로 사도 요한은 그의 독자들을 자극하고 있다. 지식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만일 그들의 발전이 다른 사람의 그것만 못하였을지라도 별로 변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요약하여 보면, 사도 요한은그들이 무식하고 초보적인 자들이어서 그들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고, 또 성령의 역사로 그들이 분기하도록 권고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그들이 완전한 빛을 나타내게 하기 위함이었다. 다음 말씀에서는 그들이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쓴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진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썼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이 아주 무식하거나 초신자라면 그들은 그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제 그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사도 요한이 말할 때, 이것은 일반적으로 취급될 것이 아니라, 이 주제에 대한 제한된 의미로 취급되어야 한다. 그들이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그가 말할 때, 사도 요 한은 고대의 모습을 암시한 것이 틀림없다. 기름부음은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받았다. 그리고 다니엘은 때가 되면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지극히 거룩 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을 것이다(단 9:24)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로 부터 기름부음을 받으심으로, 그의 충만하신 모든 은사가 우리에게 내린다. 이 사실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그들 스스로 참으로 지혜로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성령의 으며, 더 나아가 참 지성소가 되시며, 유일하신 대제사장이 되시는 그리스 도를 통해서만이 성령을 분배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21.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라." ;  사도 요한은 거짓과 참을 구별할 수 있는 표준을 그들에게 제시하여 주고 있다. 이것은 진리로부터 거짓을 구별하여 내는 변증법적인 제의----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반적인 법칙이다----일 뿐 아니라, 무엇이 실제적이고 유용한가에 대하여 그의 말을 적용시키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마치 그들이 진리를 가졌을 뿐 아니라, 불경건한 자들의 허위와 오류를 방어하여서 잘 경계를 하고 있다고 사도 요한이 도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더구나 사도 요한은 한 가지나 혹은 또 다른 종류의 허위에 대하여 단순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 조작하여 내는 것은 무엇이나, 또 아무리 사단이 그들을 공격한다 할지라도 성령께서 그들을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들은 빛과 어두움을 잘 구별할 수 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22. 거짓말 하는 자가 누구뇨~~~~~" ;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으로 나타난 것을 부인하는 자들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 지나치게 고통을 받지 않기 위하여-만이 거짓말장이가 아니라, 다른 모든 거짓말하 는 사람들을 능가하는 거짓말하는 사람이라고 발하고 있다. 마치 그이러한 것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것(역자 주)이 거짓말이다. 아니라면 다른 아무것도 거짓말이라고 할 수 없다는 듯이 "하나님'과사람에 대한 배반은 범죄이다. 그렇지 않은가? 라고 !우리는 제공잘 말한다.

 

그가 일반적으로 거짓 선지자들에 대하여 발한 것을 이제 그는 그의 시대 의 상황에 적용하고 있다. 그는 마치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처럼 지적하고 있다. 나는 이 귀절이 세린머스(Cerinthus)와 카 포크레터스(Carpocrates)를 가리키 가리키는 것처럼 생각하였던 사람들에게 동의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을 더 넓게 그 범위를 확대시 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한 마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복음서에서 예수께 대해서 "가르쳐 주시는 데로 예수님을 인식하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내가 언급한 두 가지는 그리스도의 칭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지만, 그를 단순한 인간으로만 생각하게 할 수도 있다. 아리우스(Arius)와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를 경외하였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성을 부인하였다. 말시온(Marcion)은 그리스도를 단순한 환상적인 인물로 생각하였다.

 

사벨리우스(Sabellius)는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분으로 상상하였다. 이 모든 사람들은 그들 중 누구도 그리스도를 참으로로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들 되심을 부인하였으며, 가능한한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격하시켰으며, 그리스도 대신 그들 스스로 어떤 우상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그리고 펠라기우스(Pelagius)가 나타났다. 그는 확실히 그리스도의 본질에 대하여 논쟁을 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를 참 사람이며 하나님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광을 우리에게 전가시키고 말았다. 그는 그리스도에게서 은혜와 능력을 박탈함으로써 그리스도에게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는 그런 분으로 그리스도를 격하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오늘날 가톨릭 교도들은 성령의 은혜에 증대하여 자유의지로써 대하면서 :인간의 선행이 의와 구원을 얻는데 한 몫을 차지한다고 활생각하고, 그들 자신의 무수한 중보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상상하지만, 나는 그런 가상적인 그리스도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 들의 사악한 날조로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는 참 하나님의 살아있는 형상을 변질시키고 만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약화시키고 그의 사역을 모호하게 일그러뜨리고 만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모든 것이 그에게서 제거될 때마다, 그리스도께서 부인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율법과 복음의 끝이며,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다 포함되어 있으므로, 역시 그는 모든 이단들의 공격 목표와, 그들의 직접적인 화살의 과녁이 정도되고 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충만한 진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으므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모든 사람들을 거짓말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를 갖는다.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그런 배반자들의 우두머리만을 말하는 것이아니라,그리스도를 악한 자들 속으로 몰아넣으려는 모든 사람들을 다 적그리스도라고 부르고 있다. 그들의 죄를 자세하게 설명하기 위하여 사도 요한은 그들이 성자와 똑같이 성부도 부인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마치 "그들이. 완전히 하나님을 추방하여 버렸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종교가 없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그가 나중에 성부는 성자에게서 분리될 수 없다는 이유를 추가함으로써 그 사실을 확증하고 있다. 이제 이것은 놀라운 진술이며, 우리의 종교에 있어서 제일 첫째가는 원리로 인정되어야 한다. 사실 우리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이 계시다고 고백할 때 그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진 그 이외의 어떤 분이 아니다라는 둘째 논증이 필연적으로 따른다. 사도 요한은 여기서 본질의 통합에 대하여 자세하게 또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것은 그가 bμoobacos(호모우-시오스 :본질이 동일함) 이기 때문에 성자가 성부에게서 결코 찢겨 나누일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서 사도 요한은 뭔가 좀 다른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가시적으로 나타날 수 없는 성부께서 그의 아들 성자를 통하여서만 그 자신을 계시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에 대 한 모든 유용한 사실을 나타내고 또 보여주고 있으므로 그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불리우고 있다(히 1:3). 하나님의 참 위엄은 그 찬란한 광채와 영광으로 우리를 눈부시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 게 인하나님을 나타내어 보이시는 것이 필요하였다. 이것이 바로 다른 방법으 로는 우리가 가까이 위한 수 없는 빛으로 모사는 이유이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성부와 동일하신 영원한 본질을 가졌다는 데 대한 논의가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그 귀절 자체가 참으로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전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심으로 우리에게 나타내셨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믿음의 의식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그 이외의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은 전적으로 무익한 일이다. 또 만일 어떤 사람이-이 사실을 더욱 분명 히 고하기를 원한다면, 모든 충만한 신성이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 에,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 데서도 하나님을발견할 수 없다. 이 사실 에서 우리는 터어키인들과 유대인들이나 혹은 그와 유사한 사람들이 하나님대신에 순전 하 우상을조작하여 내고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그들이 예 배하는 신에 대하여 어떤 칭호를 붙이든지 .간에,: 그들은 그리스도 없 이는 도저히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가 없으며, 또-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 나님을 구체적으로 나타내어 주실 옮았는 바로 그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이 유 때문에 그들은 그들 자신의 날조와 어떤 피조적인 존재를 만드는 이외의 아무 것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들은 그들이-인 간적인 사색으로 그리스도를 떠난 어떤-신적인 것들을 철학화시키는 어리석 음으로 자신들을 속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이것은 사도 바울이 말 한 것처럼 그들이 머리를 붙들치 않은 것이므로(골 219), 그들이 바보 놀음만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대한 미식이다. 전대적으 로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많은 사본들이 "성자를 고백하는 자 등이라는 말을 역시 하고 있다. 그 러나 나는 어떤 필경사(서기관)들이 원문에 주해를 삽입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생략하고 싶다. 만일 하나님께서 성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으면, 그 의미가 하나님께 대한 합법적인 고백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라면 그 삽입구를 받아들일 수 있다. 만일 어떤사람이, 고대의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을 바로 깨달았다는 반론을 제기하여 온다면, 나는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이 항상 그렇게 정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 또 나는 태양빛이 그 공광선을 통하여 확산되듯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참되게 나타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