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 (요13:1 ~ 12)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1)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2)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3)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4)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5)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7)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0)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11)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요약본)
”유월절 전에” ; 요한은 마태와 다른 기자들이 서술하고 있는 것 가운데서 여러가지를 일부러 생략하고 있다. 대신 그는 발씻기는 이야기와 같이 그들이 취급하지 않은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는 뒷 부분에서 왜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는가 하는 점을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지만 여기서는 그리스도께서 이 상징을 통하여서 제자들에 대한 그의 처음 사랑이 한결 같고 영원하시다는 점을 증거하셨으며 이것은 그의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빼앗기더라도 죽음마저 이 사랑을 소멸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하려는 뜻에서였다는 내용으로 이 서론을 시작하고 있다. 이 확신은 또한 오늘날 우리 마음에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어야 마땅하다. 비록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도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있는 자신의 백성을 사랑하신다는 표현에서 그가 우리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점을 배우도록 하자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죽음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가졌던 동일한 태도를 오늘날도 여전히 품고 계시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죽음이 하나님의 하늘 나라로 향하시는 길임을 알고 계셨다는 점을 말하는 중요한 귀절이다. 그가 그곳을 향해 급히 가시면서도 그의 백성에 대해서는 전과 다름없이 사랑을 베푸셨다면 오늘날도 그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생각할 이유가 전혀없다. 이제 그는 죽은 자들 가운데 맏 아들이시므로 이 죽음의 정의는 역시 교회 전체에 그대로 적용되기도 한다. 곧 그 길이 바로 하나님께로 향하는 길인데 사람들이 이 길을 떠나서 방황하고 있다.
”저녁 먹는 중” ; 요한은 가롯 유다가 이미 그리스도를 배신하기로 마음에 결정을 내렸을 때 이 발 씻김이 있었던 것으로 말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놀라운 참을성, 곧 그처럼 사악하고 흉칙한 배신자의 발을 묵묵히 씻어 주신 면을 강조하고 있다. 게다가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이 가까와 오자 생존시의 마지막 행동을 실천하는 뜻에서 이 시간을 의도적으로 선택하셨다는 점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 아시고” ; 나는 이것을 그리스도의 마음의 평정의 근원에 대한 설명으로 본다. 그는 이미 사망에 대한 승리를 확보하셨기 때문에 그의 마음은 곧 이어질 영광스러운 개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이란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면 크게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비록 곧 유다의 배신을 받으실 예정이었지만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그에게 주셨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어떠한 당황도 그에게는 없었다는 것을 복음서 기자들은 나타내고 있다.
“겉옷을 벗고~~~~” ; 상의를 의미한다 통옷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 하나님께서 언제 어느 때고 무엇을 명령하시든지 항상 지체 말고 거기에 순응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내가 하는 것을 ~~~~~” ;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왜 우리에게 이런 저런 일을 시키시는지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더라도 그저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점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잘 정돈된 집안에는 가장 한 사람에게만 결정권이 있고 나머지 종들은 그들 위에 손과 발의 역할을 할 뿐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명령을 두고 그 명령의 순종에 대한 이유를 모른다는 이유로 거절하는 사람은 너무나 오만불손하다. 그러나 이 권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당분간 숨기시고자 하는 문제를 우리가 모르고 있다해서 걱정할 필요는 하나도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현명하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경우 우리의 이러한 종류의 무지는 그 어떠한 지식보다도 더 지혜롭기 때문이다.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 신앙의 진정한 지혜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올바르고 적합한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그의 이름을 거룩하게 받드는것에 있어서 그 밖에 또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 한마디로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판단하는 재량권을 포기하기 전에는 그가 제 아무리 하나님을 존귀하게 모시려해도 겉 모양만의 겸손 밑에는 언제고 교만이 깔려 있기 마련이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 그리스도의 이 답변에는 아직 그의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로 결정한 의도가 명백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영혼에 해당한 내용을 신체에 비교하심으로써 그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일이 결코 자신에게나 그의 역할에 있어서 신기하거나 생소하지 않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그는 베드로의 지혜의 어리석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주님께서 우리와 다투기 시작할 때는 언제고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말것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그러한 봉사를 거절하므로서 자신의 구원의 핵심을 거절한 샘이다. 물론 이 귀절에는 일반적인 교훈도 담겨 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얼룩을 씻어 주시기 전에는 더럽게 오염되어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기서 씻어 주시마고 자청하고 있는만큼 각자는 자신의 더러움이 씻겨지도록 자신을 내어 바치며 마침내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한자리를 확보할 수 있어야겠다.
”주여 내 발뿐 아니라~~~~~~” ; 주님은 신자들의 온 몸이 ‘깨끗하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모든 면에서 순결하기 때문에 더 이상 그들에게 아무런 오점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죄의 지배가 무너짐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중심 부분이 깨끗하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의가 장악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의 발이란 우리가 날마다 이 세상과 접하면서 대하는 모든 욕망과 염려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이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우리의 모든 부분을 장악하고 잇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이 세상의 오염과 관계가 없겠지만 우리는 육적이요 땅에 살고 있는만큼 최소한 우리의 발은 진창을 밟지 않을 수 없으며 그 정도에 한해서 불결한 것은 도리가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언제고 우리에게 청결케 해야 할 것이 있음을 발견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은 죄의 용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를 따르는 자들을 점차적으로 그리고 계속적으로 육신의 욕망에서 완전히 구원하는 갱신이다.
”너희가 깨끗하나~~~~~~” ; 그러므로 발을 씻는 것이 그들에게는 적합하다는 결론이 따르고 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자신을 검토하도록 하는 뜻에서 곧 혹시 유다가 회개의 감정을 느끼는가 하는 점을 보기 위해서 예외 조항이 덧붙여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의도는 그들이 곧 뒤이어 나타날 죄악의 극악성을 보고 염려하지 않도록 하는 뜻에서 미리 나머지 제자들의 마음을 다지는데 있었다. 그러면서도 일부러 그의 이름을 지목하지 않는 것은 그에게 회개의 문을 완전히 봉쇄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이미 절망적이었으므로 이 경고는 그의 죄책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제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곧 경고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신성이 그들에게 더 완전하게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들은 또한 순결이 결코 성령의 평범한 은사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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