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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요한복음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요12:37)

1. 성경 (요12:37 ~41)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37)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38)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39)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40)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41) 

 

2. 묵상 (Calvin주석 요약본)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 복음서 기자는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에게 멸시를 받았다 해서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주님께서 분명하고 확실한 증거를 즉 자신과 자신의 가르침에 권위를 부여하는 증거를 부여받았음을 보여줌으로써 그 거침돌을 제거했다.  그러나 주님의 이적들 가운데 밝게 빛났던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은 눈먼 자들에게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믿지 않았던 것은 그리스도의 잘못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먼저 깨달아야 한다. 사도 요한은 믿음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간의 기능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서 나는 특별한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복음을 믿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그리스도에 대하여는 이미 전에 예언되어 있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 ; 요한은 이 예언이 유대인들에게 어떤 필연적 결과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뜻하고 있다. 이사야는 주님께서 그의 비밀한 뜻의 보고로부터 그에게 제시한 것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지자가 침묵을 지켰다 하더라도 이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증거 하지 않았을 경우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아무도 몰랐을 것이기 때문에 예언을 통하여 복음서 기자는 사람들에게 모호하고 의아스럽게 보였을 것을 거울을 보여주듯이 그들의 눈앞에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 이 문장은 두개의 구절로 되어 있다. 이사야는 이미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가 그리스도에 대하여 선포하는 것과 그 후에 사도들이 전파하는 내용이 사방에서 유대인의 반대에 직면할 것을 알고 이사야는 어떤 무서운 짐승에게 놀란 것처럼 먼저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둘째 구절에서 이사야는 왜 사람 수가 적은 지를 즉 사람들이 자신의 노력에 의하여 여기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분별없이 모든 사람을 다 깨닫게 하시고 마음에 빛을 비춰 주는 분이 아니다.  다만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 성령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그리고 유대인 중의 소수가 완강하게 믿지 않은 것이 믿는 자들에게 장애가 되지 않았다면 오늘날도 복음을 따르는 제자 수가 적다 해서 복음을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이에 첨가된 이유, 즉 믿는 자들을 만들어낸 것은 그들 자신의 식견이 아닌 하나님의 계시였다는 사실을 유의해야겠다. 팔이라는 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대로 능력을 의미한다. 선지자는 복음의 가르침 속에 포함되어 있는 하나님의 팔이 계시될 때까지 감취어 있다고 선언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는 모든 사람이 이 계시에 다 참여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내적인 빛이 없이 어두움 가운데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 이것은 약간 가혹하게 들린다. 왜냐하면 선지자의 말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어떠한 선택도 하기 전에 눈이 먼 운명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겐 길이 막히고 믿을 만한 능력도 빼앗기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미리 예지하셨다는 것이 사태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의 예지보다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인간이 무엇을 행할 것인지를 보신다고 말하지 않고 자기가 친히 어떻게 하시겠다고, 즉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어리석음과 혼미함으로 치심으로 그들의 악의에 진노하실 것을 선언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왜 그의 말씀으로 하여금 유대인들에게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의도하시는지를 지적하고 있다. 그들의 악의적인 행동으로 볼 때 그들은 그러한 대우를 받아 마땅했다. 이 말씀에서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감사하지 아니하는 백성의 악을 어떻게 심판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차이점을 유의하지 못하는 사람은 성경의 여러 가지 복합적 의미를 혼돈하게 된다.

 

”저희 눈을 멀거 하시고~~~~~” ; 이 말씀은 선지자 이사야에게 그의 가르침의 노고가 백성을 더 악하게 하는 결과밖에 가져오지 못하리라고 미리 경고하셨던 이사야 6장 9절로 10절에서 인용된 것이다. 이 말씀에서 주님은 자기의 말씀으로 버리운 자들에게 심판이 되게 하심으로 그들의 눈먼 상태가 악화되어 더 깊은 어두움에 빠지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 우리는 선지자가 여기서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배척한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주님께서 택한 자들로 하여금 자기에게 복종케 하지 않았다면 모든 사람들은 타고난 성품을 따라서 계속 주님의 은혜를 배척했을 것이다. 우선 인간의 상태는 한결같이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잃어버린 자들이 스스로 저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반항할 때 그들은 스스로를 잃어진 마음에 넘기 우고 점점 더 멸망으로 치달음으로써 이와 같은 진노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들 자신의 잘못이다. 그들 자신이 자신의 절망을 초래한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이 선지자의 말씀에서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변화의 시작이 어떠한 것인지를 간단히 배울 수 있다. 그것은 사단의 어두움에 잡혀 있는 동안 주님을 떠나 있던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서 빛을 비쳐주실 때이다. 하나님의 밝은 빛의 능력은 위대한 것이니 만큼 그 빛은 우리를 인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시킨다.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 읽는 자들이 이사야의 예언이 잘못 인용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요한은 선지자가 한 시대의 교사로 보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의 영광이 그에게 나타나 주의 통치 하에서 일어날 일들을 증거하게 하셨다고 직접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