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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요한복음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요 12:7)

1. 성경 (요12:1 ~ 8)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1)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2)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3)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4)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5)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8)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요약본)
”1.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 우리는 예수께서 명절에 올라가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성급하게 판단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성급하게 굴지 말고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때가 올 때까지 조용히 계속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경고해 주고 있다. 지금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베다니에 이르셨다. 그것은 베다니를 거쳐 사흘 후에 예루살렘까지 올라가시기 위함이었다. 반면에 주님은 유다에게 자기를 배반할 적당한 시간과 장소를 제공해 주기를 원하셨다. 이는 정해진 시간에 제사를 위하여 준비된 제물로서 자기 자신을 바치기 위함이었다. 주님은 자기에게 닥칠 일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원해서 자신을 제물로 바치기 위하여 나아갔다. 그리스도께서는 유월절 엿새 전에 베다니에 이르신 것을 볼 때 우리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그가 베다니에 나흘 동안 머무셨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요한은 어느 날에 주님을 위하여 만찬이 배설되었는지를 말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께서 거기 도착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있었던 일처럼 보인다. 마가와 마태가 언급하고 있는 향유에 대한 사건은 이 사건과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잘못이다. 시간적인 요소가 그들을 잘못 인식하게 하였다.

 

마가와 마태는 그리스도께서 기름 부으심을 받으신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틀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답은 용 이하게 두가지로 설명 할수 있다.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도착하시는 첫 날에 향유의 인침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주님께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에 벌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본인이 이미 말한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떠나기 전 적어도 하루나 이들 쯤에 기름 부음을 받았을 가능성이 많다, 유다는 그리스도께서 유월절을 준비하도록 그의 두 제자들을 보내시기 전에  제사장들과 흥정을 했음이 분명하다, 이제 이 두 사건 사이에 적어도 하루의 시간이 흐른 것은 틀림없다, 복음서 저자는 유다가 뇌물을 받은 후에 그리스도를 팔아 넘길 펀리한 시간을 찾고 있었다고 부언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을 언급한 후 향유를 부은 이야기를 덧 붙일 때 그들은 먼저  일어났던 일을 나중에 이야기 하고 있다. 그 이 유는 두 복음서 저자가 “이틀 후에 인자가 팔리 울 것이다” 라는 말을 전한 후에  그들은 이제 생략 했던. 내용, 즉 주님께서 그의 제자에 의해서  어떤 모양으로 어떤 기회에 팔리울 것인가를 기록하고 있다. 

 

마태와 마가는 이 때에 주님께서 문둥병자 시몬과 식사 를 같이하고 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요한은 집 이름을 밝히지 않고, 주님께서 나사로와 마르다의 집에서 식사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암시하고 있다. 요한은 나사로를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고 그리스도와 함께 초청된 손님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 마태와 마가는 그리스도의  "머리" 에 향유가 부어졌다고 기록 했는데 요한은 그의 발에 기름을 부었다고 한 것은 전혀 모순이 아니다. 향유는 보통 머리에 붓 는 것이었다. 그래서 플리니는 향유를 발에 부었다고 했기 때문에 이를 낭비라고 간주했던 것이다, 세명의 복음서 저자는 마리아가 그리스도에게 향유를 아끼지 않고 많은 양의 향유를 부었다는 사실에 내용을 같이 하고 있다. '요한이 주님의 발 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 전체가 발끝 까지 향유를 부은 바 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발' 이라는 말은 그 다음에 나오는 말 , 즉 마리아가 그녀의 머리로 주님의 발을 씻었다고 부언한 데서 더 욱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

 

“3.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 그것은 나드에서 취한 단순한 액체가 아닌 여러가지 향유를 섞은 것이었다. 따라서 온 집안이 향유로 가득했다고 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이다.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여기에 유다의 불평이 따르고 있다. 마태는 이를 제자들 젼체에게 돌리고 있고, 마가는 이를 제자 중 몇 사람에게 돌리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대유법을 써서  "한 사람이나 소수의 사람에게 사실이었던 것을 많은 사람에게" 적용 하는 것은 혼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불평이 유다에게서 시작되어 나머지 다른 제자들의 마음에 영향을 주어 유다를 지지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블평은 마치 풀무와 같은 것이어서 우리 안에 각종 생각을 불러 일으키며 따라서 우리가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더 쉽기 때문에 비판과 불평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책망하고 계신 제자들의 경신(쉽게 남의 불만을 받아들이는 것) 은 우리가 악의에  찬 말을 들을 때에 너무나 경솔하게 동화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경고 하고 있다.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 ; 플리니는 보통 향유의 1파운드의 값이 십데나리온을 넘지 않았다고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최고로  좋은 향유의 값은 310데나리온까지 나갔다고 말하고 있다, 복음서 저자들은 이것이 매우 비싼 향유였다고 동의하고 있다. 그리고 유다도 300데나리온으로 정확하게 측정하고 있다 (이것은 부다우스의 환산에 의하면 프랑스 돈 으로 50 루불에 해 당한다 ). 게다가 대부분의 사치품들은 과다한 여분을 뜻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이 크면 클수록 유다는 불평하기에 좋은 그럴 듯한 이유를 찾아내게 되었다. 유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마리아가 향유를 조금만 썼더라면 핑계 할 만한 근거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자는 너무나 방대한 액수의 돈을 아무 목적 없이 낭비해버렸다. 이러한 액수의 돈이면 가난한 사람들을 크게 도울 수 있었을 터인데 그녀는 가난한 자들에게 해로운 일을 한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그녀의 행동은 용서할 수 없다"

 

”6. 저는 도적이라~~~~~~”나머지 제자들은 별 생각 없이 마리아를 정죄하고 있으나 무슨 악의를 가지고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다는 가난한 자 들을 내세워 자기의 악한 동기를 그럴 듯한 말로 가리려 했다, 그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실제로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탐욕이라는 것이  얼마나 협오감을 일으키는 냉담한 괴물인가를 알 수 있다. 유다는 향유를 팔아 돈퀘에 넣었으면 그것을 홈쳐 갈 수 있었을 텐데 그 기희를 상실하게 된 것이 화가 났던 것이다. 그러한 탐욕이 그로 하여금 주저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팔아 넘기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유다는 가난한 자들이 횡령을 당했다고 말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거짓말 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치 그리스도를 팔아 넘기는 것은 자기의 손해를 보상하는 것으로서 별로 큰 잘못이 아닌 것처 럼 보통 위선자들이 하는 것처럼 자신을 속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사실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데 단 한 가지 이유 밖에는 없었다. 그것은 자기 손가락 사이를 빠져 나간 약탈물은 되찾자는 것이었다, 이득을 상실한 것에 대한 분노가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배반 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도적인 줄 알고 있던 사람을 돈궤를 맡는 회계로 택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것은 자신을 매달 수 있는 줄을 유다에게 제공 한 것 외에 무엇을 주었는가?  죽을 수 밖에 없는 범인의 유일한 대답은 하나님의 판단은 깊고 심오한 연못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행동이 가난한 자를 돌보는 일이나 어떤 연보를 믿을 수 없고 악한 사람에게 맡겨도 된다는 일반적인 원칙으 로 받아들여서는 안되겠다. 하나님께서 누가 교회를 다스리고 그 밖의 직분을 맡을 것인가에 대하여 하나의 율법을 제시 하셨다. 그리고 이 법을 어기는 것은 합당한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경우는 상황이 달랐다.그 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의  영원한 지혜가 되시는 분으로써 유다라는 사람을 비밀리에 예정하셨던 것이다. 

 

”7. 저를 가만히 두어” ; 유다가 책잡고 있는 향유를 부음은 주님의 장사를 위한 것이라는 근거로 변호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것을 일반적인 예배 절차나 교회 내에서 늘 행해져야 할 본보기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이런 종류의 예식이 매일 행해지기를 원하셨다면 그는 이 사건을 장례에 연관시키는 대신 무엇인가 다른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외적인 전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마음이 육적인 예식에 잘 기울기 때문에 가끔 그러한 예식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신중하게 선별할 것을 명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에서 값 비싸고 화려한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라고 유추하는 자들은 엉뚱한 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주님께서는 그녀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영속적인 절차로 간주되어서는 안 될 특별한 봉사를 해드렸다는 근거로 마리아를 용서해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마리아를 가만 두라고 말씀 하실 때 주님께서는 이웃을  이유없이 괴롭게 하고 무턱대고 말다툼을 시작하는 자들은 악하고 부당하게 행동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복음서에는 그리스도의 답변이 더 길게 되어 있으나  근본 내용은 같은 것이다.  유다가 책 잡고 있는 향유를 부음은 주님의 장사를 위한 것이라는 근거로  보호 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것을  일반적인  예배 절차나 교회 내에서 늘 행해져야 할 본보기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만일 . 그리스도께서 이런 종류의 예식이 매일 행해지는 것을  원하셨다면, 그는 이 사건을 장례에 연관 시키는 대신 무엇인가 다른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이 외적인 전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 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육적인 예식에 잘 기울기 때문에 가끔 그러한 예식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신중하게 선별 할 것을 명하고 계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에서 값 비싸고 화려한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뻐 하시는 것이라고 유추 하는 자들은 엉뚱한 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주님께서는 그녀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영속적인 절차로 간주되어서는 안될 특별한 봉사를 해드렸 다는 근거로 마리아를 용서해 주신 것이다.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
주님께서 이를 두게하라고  말씀 하실 때 그는 향유가 잘못된 시간이 아닌 적절한 때에 제대로 부어 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 보전 되었을 경우 그것은 적절한 때에 드러나도록 간주되었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전에 어떤 사람이 주님께 값진 별미를 대접 했다면 주님은 틀림없이 이를 거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마리아가 이를 보통 흔히 있는 일로 행한 것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그녀의 마지막 의무를 수행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몸에 향유를 봇는 것은 그 당시 하나의 영적인 상징이었으며, 무의미한 예식이 아니었다. 이것은 그들 앞에 부활의 소망을 제시 하였다. 약속들은 아직 모호한 것이었 으며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라고 불리운 그리스도(고전15:20) 께서는 아직 부활하시기 전이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는 이와 같은 도움이 필요했다. 이러한  약속이 아직 현실로 나타나지 않은 그리스도를 믿도록 그들을 인도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께 향유를 부은 것은 그 당시 불필요한 행사가 아니었다.

 

주님은 곧 죽게 되어 있었으며, 그는 마치 장사되어 무덤에 들어가기 위하여 인침을 밭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 문이다. 제자들은 아직 이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마리아는 갑자기 성령의 인도 하심에 따라 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일을 행 하도록 마음에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는  그들이 인정하지 것을 그의  부활에 대한 소망에 적용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를 인하여 그들의 악한 혈기로부터 깨어 날  수 있 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옛 백성의 자녀들이 이러한 의식의 다스림을 받는 것을 바라셨다. 그러나 오늘날 같은 일을 하려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영광을 손상 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주님의 오심으로 그러 한 그림자는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이 을법의 그림자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장사는 외형적인 예식에 의하여 장식 되어야만 했다 이제 주님의 부활의 향기는 향유가 없이도 은 세상을 살릴수 있는 만큼 강력하다. 그리고 우리가 사람 의 행동을 판단 할 때 그리스도의. 판결만을  따르도록 유의하는 것을 잊지말자. 우리는 언젠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우리는 이미 앞에서 지적한 대로 마리아의 이례적인 행동과 우리가 매일 그리스도께 드려야 할 예배 사이에 한계를 그어야 한다는 점을 유의 해야겠다. 화려하고 값진 치장으로 그리스도를 예배하려 하는 사람들은원숭이들이지 모방자가 아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한번 행해진 것을 인정 했으나 그것이 반복되는 것은 금하셨다.  주님께서 그의 제자들과 항상 같이 있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육적인 예배가 쓸데없는 영예가 어울 리는 것은 그런 임재함이 계속되지 않을 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주님께서 그의  성령의 은헤와 능력으로 우리와  같이 하시고, 우리 안에 내재 하시고 그의 살과 피로 우리를 먹이시는 것은 육신적인 예식과 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톨릭 교도 들이  그리스도를 예배 한다고 창안 해낸 모든 허례허식은 헛된 겉치례에 불과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를 노골적으로 거 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씀 하 실 때 그는 유다의 위선을 책망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서 가난한 자들의  필요를 위해서 구제하는 것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향기로운 제물이라는 교훈과 하나님을 예배 하는 데  쓰여지는 다른 비용은 모두 합당하지 못하다는 교훈을 배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