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그리스도로 우리에게 나타나심으로써 최초로 생명되심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이것은 최고의 축복으로서 우리 모든 사람이 온 마음과 정성을 기울여서 이 축복을 갈망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되었다는 말씀은 아주 간단한 말씀같지만 그러나 죽음의 상태가 얼마나 비참하고 무서우며, 그리고 천국과 하나님의 영원하신 영광이 어떠하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몇 마디 말로서는 도저히 표현될 수 없는 의미심장함이 이 말씀 속에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이 큰 축복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목적---이 것은 참으로 중요하고 유일한 축복이며,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다------은 우리의 마음을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이다. 이 주제의 위대성 때문에 그 진리가 분명하고 충분히 증명되어야 하므로 사도 요한은 바로 이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우리가 주목하고~~~~~" 등의 말씀은 복음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확고하게 하기 위한 말씀이다. 아무 근거 없이 사도 요한이 이렇게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구원은 바로 복음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복음의 확실성이 무엇보다도 더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는 사실들을 믿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믿는다는 말은 어떤 상상하기 쉬운 사실이나 또는 떠도는 말을 쉽게 받아 들여 믿는다 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확고하고 틀림없는 확신으로 어떤 사실을 받아들여서 불변의 진리로 그 사실을 확신있게 믿는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사도 요한이 이 복음에 대하여 그렇게 여러 가지로 확신에 확신을 첨가하는 이유인 것이다.